(노년) 늙음의 미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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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25. 15:11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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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늙음의 미학(2)
(출처 : 경기일보 2012. 11. 28. 김상엽)
동양의 옛 그림에는 대개 노인들이 등장한다. 화면 한 구석에 지팡이 들고 어디론지 걸어가는 노인이나 나무 밑에 앉아 상념에 잠긴 노인 등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인데, 어쩌다 노인이 아닌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노인을 모시고 심부름하는 아이들 정도이다. 서양화에서는 큐피드나 천사는 물론이고 젊음과 청춘의 군상이 많이 그려지는 데 비하여 동양에서는 왜 노인들이 주로 그려질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젊음을 찬양하고 늙음을 비하하는 경향이 유럽문화권의 대체적인 경향인데 비하여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늙음의 경지를 동경하고 높이 평가한다. 중국에서 남을 가르치는 직위에 있는 사람은 나이가 많건 적건 ‘라오쓰老師’이다. 여기에서 노(老)란, 늙었다는 현실적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존경받을 만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양에서의 노인은 기욕(嗜慾)이 식고 총명이 눈을 뜬 경지를 의미한다. 기욕의 ‘기(嗜)’란 즐긴다는 의미이니 기욕이란 ‘좋아하고 즐기려는 욕심’이다. 다시 말해 기욕이 시들어서 물처럼 냉정한 태도취미가 동양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경지인 ‘늙음’의 경지이다.
동양노인 서양노인
젊음은 기욕이 왕성하고 사색과 창작에도 열정이 있지만 늙음은 존재를 직시하지 않고 그것에 대하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관계적으로 보게 된다. 나이가 들면 젊음의 급박했던 마음이 가라앉아 보다 더 크고 넓은 입장에서 그 존재의 전반을 내다본다는 의미이다.
서양에서는 노인을 대하는 태도가 동양에 비해 부정적이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노인의 지혜를 칭송했지만 로마의 시인들은 노인을 매도했고 중세에는 노인을 죽음과 거의 마찬가지로 여기고 꺼렸다.
늙은 남자는 무가치하고 늙은 여자는 마녀라고 하는 등, 노인에 대한 경멸의 감정이 절망적일 정도로 활개를 쳤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놀랍게도 노인을 더욱 멸시했다. 르네상스는 인간 찬미와 반(反) 중세의 큰 축에 더하여, 고대 그리스 문화의 부흥이라는 또 하나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애초에 고대 조각이 잇따라 발굴되었던 것이 르네상스가 꽃피는 계기가 되었기에 고대 조각에서 보이는 완벽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육체미와 인간의 운동능력을 인간 평가의 중요한 열쇠로 삼았다. 이렇게 되면 노인이 이제까지보다 더욱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건 필연적이었다. 젊음의 아름다움이 각광받을수록 늙음은 조롱받고 매도되었다.
방동미의 역설
동양의 선비나 학자라면 도학자와 같은 고고한 모습으로 늙음과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선비나 학자라고 해서 늙음과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만의 유명한 철학자 방동미가 1977년에 78세로 돌아갈 때 삶에 보인 집착은 유명하다. 그의 삶에의 집착이 너무나 속물스러운 양태를 보이게 되자 제자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고 전한다.
연로하신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이니 이해하자는 쪽과 너무도 좀스러워 보이는 스승의 행보에 실망을 느껴 제자이길 포기하다시피한 쪽으로 나뉘었다는 삼류소설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인간이 약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일인데, 방동미의 생에의 집착은 역설적으로 인생이 살아볼 만 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이젠 방동미를 이해할 듯도 하니 역시 나이를 먹게 되었나 보다.
김 상 엽 건국대 연구교수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출처] [좋은글](노년) 늙음의 미학(2)|작성자 맑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