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경찰활동과 학교폭력
경찰에서는 되고, 학교에서는 안 되는 것.
2020.04~2021.09 기간동안, 회복적 경찰활동에 접수된 1,563건 중에 학교폭력은 356건으로 22.4%를 차지한다. 학교폭력 사안이 회복적 관점으로 다루기에 적합한 사례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학교폭력문제가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모든 해결 과정은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교폭력해결의 교육적 해결을 위해 응보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연구와 경험을 통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정부의 정책은 오랫동안 엄벌주의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정부의 엄벌주의정책 정점은 2012년에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이었는데, 이때부터 학교는 학교폭력문제대처에 대한 모든 교육적 자율성과 전문성이 부정되었고, 교사는 오로지 매뉴얼대로만 해야 하는 법적 책무성만 주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강력한 엄벌정책은 학교를 법적 쟁송의 장으로 변하게 했고, 결국 교육적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는 더 큰 부작용을 낳았다. 교육부는 2019년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하면서 ‘학교장자체종결제’와 ‘관계회복프로그램’ 조항으로 회복적 접근이 일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막상 학교현장에서 학교폭력문제를 회복적 과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아직도 실행에 있어서 많은 걸림돌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회복적 경찰활동에서 학교폭력문제를 활발하게 회복적 과정으로 적용되고 있는 점이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사법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회복적대화모임을 왜 교육기관에서는 하지 못하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자문하게 된다.
지난 10월에 사법기관과 교육기관의 역할이 뒤바뀐 것같다는 생각을 더욱 더 떨쳐버릴 수 없었던 회복적 경찰활동 사안이 있었다. 이 사안을 돌아보며, 회복적 경찰활동이 학교에 주는 시사점과 학교에서 회복적 접근하려고 할 때 요구되는 과제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회복적 경찰활동에서 만난 학교폭력
지난 10월 초등학교 학생들 A와 B 사이에 발생한 학교폭력사안으로 경찰신고가 들어왔다. 벌어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학교 운동장에서 시작된 A와 B의 충돌은 교실 복도에까지 가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A와 B는 평소에도 잦은 다툼이 있어 왔다. 6개월 전에는 힘들어하는 A를 보다 못해 A아버지가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B를 혼낸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몸싸움이 반복되자 A아버지는 학교를 찾아가서 B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학교측은 만나게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도 요구했지만 개인정보라서 함부로 공유할 수 없다고 했다. A아버지는 계속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자, 학폭담당교사는 상대부모를 만나고 싶다면 회복적 경찰활동제도를 이용하라고 말해주었고, 결과적으로 A아버지는 B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B를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
A와 A아버지, B와 B부모는 회복적 대화모임으로 경찰서에 모였다. 대화모임과정에서 B가 A에게 엄마가 없다고 놀린 일로 힘들었다는 사실과 A는 B와 B의 어린 동생에게 욕설을 해서 B가 불쾌했고 A아버지가 혼낸 일로 두려운 마음이 생겼던 사실을 서로 듣게 되었다. 양측 부모 모두는 그동안 서로 만나기를 원했으나, 학교에서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아서 만날 수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A와 B도 욕설하게 된 것은 서로에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각자의 취약점을 공격받았다는 피해의식의 발로였음을 알게 되었다. A와 B 모두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상담 치료 중임도 알게 되었다. 양쪽 부모는 대화모임을 통해 오해를 해소하고, 앞으로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할 것과 아이들 성장을 위해 소통하고 협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A와 B 가족은 조만간 함께 식사하기로 하면서 훈훈하게 회복적 대화모임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면서도 양측 부모들은 이 과정에서 학교의 역할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했다. “왜 초등학생들의 다툼으로 경찰서까지 와야 되죠? 회복적 대화모임과 같은 것은 오히려 학교의 역할이 아닌가요?”
회복적 경찰제도의 의미와 회복적 접근을 위한 학교의 과제
회복적 경찰활동이 아니었다면, 두 가족과 아이들은 내내 오해를 쌓아가면서 서로를 더 많이 원망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점점 더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 몰렸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과 부모들이 대화모임을 통해 서로의 고통을 공감해주고 사과하며 화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부모 간에는 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협력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다. 회복적 경찰활동이 두 가정과 아이들의 삶을 살린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안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경찰활동을 지켜보며, 학교에서 학교폭력문제의 회복적 접근에 있어서 어려움과 과제는 무엇인지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현 학교폭력법은 회복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개정의 노력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회복적 접근과 충돌하는 법적 조항들이 있다. 「학폭 가해자‧피해자 즉시분리」조치는 갈등 초기에 피해측과 가해측의 만남을 불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 앞의 사례에서 A아버지가 B부모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교사에게 요구했지만 거부된 것은 「비밀누절금지」조항과 관련이 된다. 때때로 피해측은 가해측이 연락도 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가해측은 사과하려고 해도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억울해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예방법과 충돌하는 조항이 있더라도 융통성있게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의 사정은 또 다르다. 학교폭력문제로 민원이 발생하거나 법적 소송이 되었을 때, 교사의 책임은 ‘학교폭력예방법 절차 준수’ 여부에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교사들에게 학교폭력문제해결에 대한 교육적 전문성과 자율성을 허용하고 있지 않는다. 학교폭력대처에 대한 획일적이고 의무적인 법적 책무성을 강제하고 있고, 그런 이유로 교사는 학교폭력문제가 발생하면 사안처리 절차와 매뉴얼에 매몰된다. 이것이 회복적 접근을 가장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두 번째, 2019년 개정된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으로 ‘학교장자체해결제’와 ‘관계회복 프로그램’ 등으로 학교에서도 회복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회복적 접근과 충돌하는 법 조항이 있기도 하지만, 정작 회복적 운영을 위한 인프라 부족 문제와 제도적 지원의 미비, 그리고 교육 3주체의 동의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서 학교 현장에서 회복적 접근은 녹록치 않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시‧ 경기도‧대구‧전남‧전북‧경남교육청에서는 회복적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갈등조정가 양성과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에는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책추진이 요구된다.
A 아버지가 B부모를 만나기 위해 아동인 B를 경찰에 신고해야만 했던 일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아동‧청소년들에게 사법적 적용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아동 청소년의 문제는 사법 이전단계에서 해결하고 보호해야 하는 어른들의 역할이다.
사법기관인 경찰에서도 회복적 접근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는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회복적 접근이 당연히 우선시 되어야 한다. 회복적 접근이 학교폭력문제해결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적‧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