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질병 때문에 의사로부터 죽은 목숨이라던 선고받은 소년이 장성해 목회자가 되었다. 그분보다 건강하던 형님은 65세에 별세했지만 본인은 어느덧 7학년 8반이 되었다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반천아파트에 살고 계신 그 분은 태풍 차바 때 차량 침수로 폐차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분의 연례행사 중 교도소 위문 공연이 들어있어 취재 요청이 왔을 때는 이미 울산구치소, 밀양구치소를 다녀온 뒤 였다. 노 목회자의 요청으로 어제는 경주교도소를 다녀오게 됐다. 작년 만추가경의 분위기가 연출되던 무렵 울산구치소 위문공연을 다녀왔을 때 그 곳에서 지인을 만나 안타까운 마음 한편에 반가워서 아는 척을 했더니 곧바로 “여기서는 일체의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교도관의 제재가 날아들었다.
필자가 교도소를 출입할 때 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 분명 문을 여닫는 소리임에도 그 소리가 그렇게 둔탁하게 들리고 육중한 쇳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경주교도소 위문공연은 원래 예정보다 갑작스런 일정으로 잡혀 10여 명의 사람들로 소규모 공연단이 꾸며져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강당에 모인 70여 명의 재소자들은 찬양을 부를 때 같이 따라 불렀고, 설교시간에 노 목회자가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이 한 순간의 실수로 지금은 비록 영어(囹圄)의 몸이지만 이곳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수양(修養)의 시간을 거쳐 사회로 복귀하는 그때 한 가족의 가장이 되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며, 자녀들의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한다. 그렇게 돌아갈 때까지 비록 어렵더라도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여 좋은 결실을 이루는 멋진 인생들이 되길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기타반주에 곁들여진 듀엣 찬양을 부를 때 재소자들은 ‘세상에서 방황할 때 목적 잃은 인생이었지만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가사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또 찬양반주에 율동을 곁들인 워십댄스를 춘 선교무용단들은 아름다운 춤사위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 소외된 곳을 찾아갈 때마다 동행해온 현대자동차 직장선교회에서도 함께해서 재소자들을 위한 위문품을 전달했다.
수감시설은 격리가 원칙인 곳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신분이 확실해야할 뿐 아니라 미리 몇 명이 방문하는지 사전보고가 돼야 하며,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패찰하며 사진촬영도 금지되는 곳이다. 사람이 어떤 일정한 장소에 격리된다는 것은 본능에 반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영어의 몸이 될 때 일상에서 다니던 자유가 한없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필자도 30년 전 신병생활 초기에 잠시 방황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영창생활을 15일 간 한 적이 있어서 더더욱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는지도 모른다. 온 가족들과 친척들 및 나를 알던 친구들도 깜짝 놀랐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그것도 이제 한 조각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때 어머니에게 썼던 옥중서신, 편지글은 글이 아니고 그리움이었다. 안타까움이었고, 눈물이었다.
기사입력: 2017/07/11 [15:40]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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