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거스케이프와 삶의 우연성 ]
빅뱅이 없는 천문학이나 진화 개념이 없는 생물학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천문학과 생물학은 우주와 생물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 경제학은 “경제가 어디서 오는가?”라는 경제의 원천에 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5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슈아 엡스타인(Joshua Epstein)'과 '로버트 액스텔(Robert Axtell)'은 최초의 출발선에서 사람들이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마치 페트리 접시에서 세포를 배양하는 생물학자들처럼 컴퓨터상에서 가로세로 각 50개씩의 격자 눈금이 그려진 완벽한 정사각형의 가상 공간을 만들어서 행위자들로 하여금 경제활동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 가상의 공간에는 단 하나의 자원인 설탕이 있는데 각각의 칸에는 서로 다른 양의 설탕이 쌓여 있습니다. 컴퓨터 가상 공간 속의 동북쪽 구석과 남서쪽 구석에는 산더미처럼 설탕이 쌓여 있지만 나머지 칸에는 설탕이 조금밖에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와 같은 가상의 설탕 섬을 ‘슈거스케이프(sugarscape)’라고 명명했습니다.
슈거스케이프 내에서 사람들은 설탕을 찾고, 움직이며, 설탕을 먹는 세 가지 행위만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어떤 지역에 설탕이 많은지를 판단해서 해당 칸으로 이동해서 설탕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먹어 치운 설탕은 곡물처럼 주어진 시간에 다시 자라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은 설탕의 양은 크레디트(credit) 형태로 저축 계좌에 쌓이지만 물질대사에 의해 소비된 설탕의 양은 그만큼 차감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물질대사에 의해 소비하는 양보다 설탕을 덜 먹게 되면 저축이 줄어들게 되고, 저축 계좌에 있는 설탕이 0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굶어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게임에서 제거됩니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슈거스케이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각각의 행위자는 서로 다른 유전형질을 갖고 있어서 시력과 물질대사 능력이 다릅니다.
시각이 좋은 행위자는 저 멀리 여섯 개까지의 칸을 내다볼 수가 있지만 시각이 나쁜 행위자는 바로 앞 한 칸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물질대사가 빠른 행위자는 살아남기 위해 매회 4단위의 설탕이 필요하지만, 물질대사가 느린 행위자는 1단위의 설탕만으로 한 회를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각 행위자의 수명은 임의로 정해졌고 최대 수명이 다하면 게임판에서 제거가 됩니다.
이와 같은 단순한 규칙 속에서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주어진 자원에 따라 초기 경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가는지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게임은 슈거스케이프에 임의로 분포하고 있는 250 행위자로 시작되는데 설탕이 풍부한 곳에 자리한 행위자도 있고 황무지와 다름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행위자도 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면 행위자들은 설탕을 찾아 사방팔방으로 달려가지만 열악한 곳에서 출발한 행위자들은 굶어 죽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행위자들은 설탕이 풍부한 동북쪽과 남서쪽의 설탕 산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행위자들의 부(富)를 추적해 보았습니다. 행위자들이 특정 시점에 얼마나 많은 설탕을 저축 계좌로 가지고 있는지를 추적한 것입니다. 분석 결과 시뮬레이션 초기에 슈거스케이프는 꽤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행위자들이 두 개의 설탕 산 주변으로 집결함에 따라 평균적인 부는 상승했지만 부의 분포는 편중된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억만장자가 출현하고 중간 계층은 점점 줄어들면서 빈곤층이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슈거스케이프에서조차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것일까요? 엡스타인과 액스텔에 따르면 유전형질이나 태어난 장소 등과 같은 단일한 요인이 개인적인 부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전형질이 중간 정도에 속하고 중산층 동네에서 태어난 행위자 1과 행위자 2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조건으로 따지자면 이들의 성공 확률은 동일합니다.
행위자 1은 우연히도 첫 발걸음을 북쪽으로 떼면서 그 길을 따라 설탕을 먹어 치우면서 이동합니다. 그러다가 설탕 산을 발견하고 행위자 1은 평균 수준을 훨씬 넘는 부를 축적하고 그곳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냅니다.
반면, 행위자 2는 남쪽 황무지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가도 가도 설탕 산이 나오지 않자 북쪽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발길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았습니다. 결국 행위자 2는 생존은 하지만 적은 설탕으로 힘겨운 삶을 살게 됩니다.
비록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처음의 우연한 선택이 게임의 과정에서 확대되면서 두 행위자 사이에는 엄청난 물질적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동일선에서 출발한 두 행위자의 경제적 격차는 특정 계층의 경제적 착취에 의한 것도 아니고, 행위자가 멍청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첫 발을 어느 방향으로 내디뎠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 것입니다.
슈거스케이프라는 이 단순한 모델조차도 가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삶의 우연성에 의해 지금 이 자리까지 열심히 걸어오신 모든 분의 인생을 응원하면서, 삶이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성장의 기록임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
첫댓글 좋은정보 잘보았습니다.늘 건강하시고,더큰발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