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길은 없다/류시화
동양에 와서 명상 수행을 오래 한 서양 여성이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선원을 열었다. 그녀의 이름이나 선원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원은 늘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30여 개의 방석이 놓인 선방 맨 앞에 앉아 매일 혼자서 좌선을 했다. 지역 신문이나 명상 잡지 등에 광고를 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어떤 홍보도 마다했으며 선원 표지판도 작아서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녀 혼자 빈 방석들을 향하고 앉아 아침 저녁으로 몇 시간씩 명상을 할 뿐이었다.
반 년 가까이 상황을 지켜본 그녀의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좌선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
그러자 그녀는 뜻밖의 말을 했다.
"무슨 말이야? 난 한 번도 혼자서 좌선을 한 적이 없어."
영문을 몰라 하는 친구에게 그녀는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내가 앉아서 명상을 하면 전 세계의 모든 명상 수행자들이 나와 함께 앉아 명상을 하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수행자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선원이 비좁을 정도야. 우리는 함께 호흡하고 함께 명상을 해. 따라서 난 외롭게 명상을 한 적이 없어."
그녀는 그런 정신적 연결 속에서 흔들림 없이 명상을 했으며, 얼마 안 가 하나둘씩 사람들이 찾아와 방석에 앉았다. 이윽고 빈 방석이 모두 채워졌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이름난 선원이 되었다.
혼자 하거나 혼자 걷는 길은 없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과거에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사람과 현재에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한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같은 파동끼리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주 안에서는 어떤 에너지도 사라짐 없이 보존된다.
명상서적을 번역할 때 나는 그 책의 저자가 내 옆에 앉아서 함께 번역한다고 느낀다. 생존한 저자이든 작고한 저자이든 그 사람의 영혼 혹은 의식체가 내 방에 와서 함께 작업하는 것이다. 그런 참여가 원활할 때 번역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만약 오로지 나 혼자서 번역한다고 생각했다면 많은 경우에 작업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장이 난해해 어려울 때는 저자가 의미를 설명해 주기까지 한다. 특히 시를 번역할 때는 그 시인의 협조 없이는 옳은 단어를 떠올리기 어렵다. 또한 지금까지 번역 일을 해 온 모든 존재들이 와서 함께 고민하고 도움을 준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이 그저 하나의 통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것이 나의 작업 비밀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반 고흐, 모네, 이중섭 등의 대화가들이, 혹은 당신과 파장이 맞는 화가들의 영혼이 나타나 당신을 돕는다면 멋지지 않은가? 당신이 눈을 감고 앉아 명상을 하면 크리슈나무르티, 오쇼, 라마나 마하리시 등이 옆에서 함께 명상을 한다면.
과장이 아니다. 누구도 혼자 일하지 않는다. 히말라야를 올라도 그 산에 올랐던, 그 산을 사랑한 모든 영혼들이 함께 오르는 것이다. 혼자 하는 일은 없다. 혼자 한다고 믿으면, 자신을 도우러 온 수많은 의식체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공간을 초월한 협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혼자 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우주 안에서는 혼자 내던져지는 법이 없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시를 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평생을 집에 은둔했다.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도 않는 비사회적인 시골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쓸 때마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시인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시인들을 '영혼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혹은 '책꽂이에 있는 동족'이라 여겼다. 따라서 시를 쓸 때 그녀는 고독하지 않았다. 사후에 시가 발견되어 그녀는 19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만약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제한된 힘을 사용하게 된다.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 편견, 지각 작용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 뿐이다. 그것이 존재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다. 우리가 우리의 가슴과 접촉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개인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그때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파동을 지닌 존재들과 이어진다.
부처가 명상을 할 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들이 와서 함께 명상한다는 말의 의미가 그것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길을 걷고 있든지 간에, 혼자 힘겹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무도 모르는 비밀 통로가, 당신 자신마저 알지 못하는 연결 통로가 거기에 있다. 그 통로를 통해 당신은 그 일과 관련된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들과 연결된다. 내가 여기에 앉아 있다는 것은 나와 연결된 그 모든 존재들이 나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photograph_Nathan Wirth
첫댓글 그런 수양의 묘미를 이용해
절깐의 재화를 늘리는 불교계의
현실이 안태까워 하시는 외국 스님의
파계에 공감합니다 !
저는 이 글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사실 지금도 전 보이지 않은 분들, 즉
잘 알지도 못 하는 많은 카페분들의 글을
읽고 감동하며 힘을 얻고 있거든요.^^
이 글 또한 저에게 무한한 힘을 실어주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나무관세음보살.
즐감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한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현실이 이루어지니
혼자 걷는 길이 아니군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