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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거인을 위하여 - 마에스트로 구자범 팬카페 - 원문보기 글쓴이: Regina
# 경기필하모닉 정기연주회 "말러 교향곡 3번" #
3.17(토) / 19:30
경기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지휘/ 구자범
연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합창/ 서울레이디스싱어즈 & 성남소년소녀합창단
자막/ 김원철
[프로그램]
구스타프 말러ㅣ교향곡 3번
Gustav MahlerㅣSymphony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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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연을 위해 찾은 경기도 수원은 나로서는 제법 낯선 곳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연장, 이곳에 오기까지의 머나먼 여정, 그리고 그만큼의 어색함과 무겁게 짓누르는 피곤함...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실연으로 접하게 될 말러 최대의 걸작, 교향곡 3번을 만난다는 기대감, 이런 몇 가지 중요한 요소는 늘 그렇지만 고행 길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를 스멀스멀 떠올리게 한다. 그건 말러에 대한 '설렘' 조차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는 오로지 만족스러운 공연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내가 입을 정신적, 육체적인 폐해는 생각보다 큰 부담으로 떠안아야 하는데 이는 원하던 그렇지 않던 제법 오랜 동안 후유증의 잔해로 남게 된다. 물론 이는 눈앞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아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홀로 괴로워하는 나의 그릇된 판단력과 시원하게 내던져 버리지 못하는 못난 성격 탓이다. 그러니 그 누구의 책임으로도 떠넘길 수도 없는 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받아들어야만 하는, 내가 짊어지고 감내해야만 하는 마음의 짐이니 무엇을, 누구를 더 탓할 수 있으랴.
어찌됐건 오늘은 지휘자 구자범이 선보이게 될 세 번째 말러가 연주되는 날이다. 지난 1번(경기필)과 2번(광주시향) 공연을 모두 지켜본 나로서는 적지 않은 기대감을 안고 기다려온 초대형 이벤트였음은 너무도 당연했다. 무엇보다 리허설 과정이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는 지인의 소견도 연주에 대한 긍정적인 조바심을 갖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더군다나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그치고 하늘은 제법 맑고 청명했다. 만약 오늘도 비가 왔다면 구자범 지휘자는 아마도 비와의 지울 수 없는 악연을 끊어낼 수 없었을 테니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망상을 즐기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티켓이 매진됐다는 소식은 그만큼 공연에 대한 관심도를 반증하는 결과일 테다. 그래서인지 공연장 로비는 이른 시각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이러한 광경은 언제나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오랜만에 만난 동호회 지인들의 모습도 반가움을 넘어 흥분을 안겨주니 적어도 공연 시작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제부터는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진정모드로 들어가야 했다. 가까스로 티켓 배분의 의무를 다하고 공연 시간에 임박해서야 객석에 착석할 수 있었다. 처음 들어와 본 경기문화의전당은 대극장은 지방 중소도시 어디에든 흔하게 존재하는 시민회관 수준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결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음향의 산실(?)이었으니 오늘 공연의 성패는 오로지 구자범 지휘자와 경기필의 연주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을 듯 했다. 그래서 참으로 암울했고 암담했다. 내 그런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경기필 단원들이 하나 둘 입장하고 곧이어 튜닝이 시작된다. 정하나 악장은 아예 맨 먼저 무대에 입장해 단원들과 미리 교감을 나눈다. 이어서 합창단이 등장하고 무대는 꽉 채워진다. 잠시 후 지휘자가 늘 보아왔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포디엄 위에 올라선다. 개인적으론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지휘자 구자범의 모습이다. 뭔가 강한 결심을 한 듯 담담한 표정으로 객석을 향해 한껏 인사를 한 뒤 돌아서서 단원들과 한동안 무언의 눈길을 주고받는다. 늘 그렇듯 지휘대 앞엔 보면대가 없다. 암보로 연주될 모양이다. 이런 경우 청중이나 단원도 더더욱 긴장하기 마련이다. 암보의 의미가 과연 어떤 것인지 나는 그 깊은 뜻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만큼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임은 분명하기에 연주에 임하는 단원들의 자세도 남다를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곧이어 지휘봉이 허공을 힘차게 가르고, 오늘의 기나긴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온몸에 긴장과 전율이 흐른다. 게다가 오늘은 말러神 성령강림의 날이기에 더욱더 견딜 수 없는 흥분과 조바심일 테다.
Gustav MahlerㅣSymphony No.3
Ⅰ. Kräftig. Entschieden - 서주: 판(Pan)이 깨어나다, 여름이 행진해 오다
Ⅱ. Tempo di Menuetto, Sehr mäßig - 초원의 꽃이 내게 말하는 것
Ⅲ. Comodo. Scherzando. Ohne Hast - 숲속의 동물들이 내게 말하는 것
Ⅳ. Sehr Langsam. Misterioso - 인류가 내게 말하는 것
Ⅴ. Lustig im Tempo und keck im Ausdruck - 천사가 내게 말하는 것
Ⅵ. Langsam. Ruhevoll. Empfunden -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
혼의 서주는 안정감 있으면서도 강렬했고 또한 인상적인 깊이감이 담겨 있었다. 다만, 이 순간 고막에 와 닿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둔탁하고 건조한 사운드는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아,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첫 음이 울리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이 당황스러움은 예상을 뛰어넘는 고통으로 연주가 끝나는 순간까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오늘 연주의 방향이 어찌 흘러가던 간에 공명과 잔향이 거의 없는 이 무지막지한 홀 사운드는 나와 청중들을 무척 힘들게 들겠다는 예감을 갖게 했다. '아, 오늘 연주회 상당히 괴롭겠구나. 이 일을 어쩌나?' 나의 어두운 예감은 여지없이 현실이 되었고, 내 귓가에 들려온 소릿결은 단 한 순간도 촉촉함과 청명함을 담아내지 못했다. 이 난곡을 연주해내려 애쓰는 단원들의 노력을 이처럼 헛되이 만들어 버리다니, 아! 이 괴물 같은 홀이여! 1악장이 마무리 되는 순간까지 말 그대로 치열한 싸움이 계속됐다. 이 복잡한 구조를 집요하게 깨내려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모습은 일견 흐뭇하기도 했지만 반면 안쓰러운 느낌도 많았다. 게다가 각 파트에서의 잔 실수들이 수시로 겹치면서 (저음 현 파트가 치고 들어오는 순간 머뭇거렸던 부분도 있었고, 금관 파트의 잦은 음 이탈, 그리고 트럼본 파트에서는 음을 아예 빼먹는 실수 - 아마 호흡불안 등의 이유로 미처 마지막 음을 불지 못했던 것 같다 - 도 있었는데 이건 데미지가 상당히 큰 부분이었다) 전반적으로 어지럽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 새롭게 재단장한 경기필로서는 솔직히 감당하기 힘든 대곡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 시기적으로도 너무 무리한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어쩌면 1악장은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벌써부터 내 귀는 상당히 지쳐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2악장부터 조금씩 앙상블이 나아지는 느낌이었고, 역시나 현 파트의 소릿결과 구조를 쌓아가는 탁월한 조형미는 연주되는 내내 다소 위태로웠던 오케스트라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정하나 악장의 리더쉽은 이런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빛을 발했던 점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의 표정 속에서 단원들을 독려하고 어려운 난관을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고, 함께 만드는 앙상블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촉매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그의 솔로 파트 역시 충분히 인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역시나 홀 사운드가 뒷받침되지 못했던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 정말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은 문제지만 오늘따라 홀 사운드 문제는 정말 견디기 힘든 요소였다. 아무래도 이 점은 계속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조금 비약하자면, 경기문화의전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홀이 다시 지어져야 할 것 같다. 경기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수원에 제대로 된 공연장이 하나도 없다니 내가 다 화가 날 노릇이다.
3악장에 이르러서는 본연의 컨디션을 되찾아 가는 듯 했다. 여전히 불안함을 숨길 수 없었던 금관 파트도 (비록 음 이탈은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아가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목관 파트도 제법 발랄함과 능글맞음을 느낄 정도로 활기차졌고 현 파트의 긴밀한 앙상블은 전반적으로 안정궤도에 접어들게 하는 가장 커다란 힘이 돼 주었다. 3악장의 하이라이트인 무대 뒤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포스트 혼 솔로는 몇몇 소절에서 불안감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깊은 울림에서 나오는 농밀한 사운드는 상당히 많은 연습량과 준비 과정을 거쳤음을 미루어 짐작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역시나 홀 톤이 너무 건조한 탓에 포스트 혼 특유의 아련한 감수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연주자로서도 무척 답답했을 것이 뻔하고 어쩌면 좌절감마저 들었을 법한 요소였을 것이다. 예술의전당이나 아람누리에서 연주됐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은 비단 나만이 갖는 안타까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만회하려는 듯 금관 주자들의 감성적인 울림과 포효는 청중들에게도 충분이 긍정적으로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이후 이어지는 클라리넷과 목관 파트의 뻐꾸기 음형과 포스트 혼, 그리고 아련한 현의 섬세한 앙상블 역시 깊은 울림과 강렬함을 통해 인상적으로 마무리됐고 단원들이나 청중들의 표정에서도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로 4악장에 등장한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의 강한 존재감이다. 곡이 시작되자 천천히 무대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독창자, 고요한 현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첫 소절을 노래하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세워졌는데 그 소리를 들은 첫 느낌은 뭐랄까? '이 곡에 참으로 적합한 목소리로구나!' 였다. '아, 구자범 지휘자가 정말 좋은 소리를 가진 솔로이스트를 찾아냈구나! 유레카!' 마음속으로 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인상적인 미모와 그렇게 굵지도 얇지도 않은 중용의 미를 간직한 적절한 보이스에 안정감까지 겸비한 사운드는 강한 인상을 주며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다만, 오보에의 반복되는 3도의 상승 음형(밤의 새소리)은 다소 불편하게 들렸는데 좀 더 자연스럽게 상승곡선을 그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재즈적인 리듬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비스러운 느낌도 아닌 뭔가 지금의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이 음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기에 그런 거슬림은 더욱 심했는데 어찌됐건 메조소프라노의 풍성하고도 절제된 음향 때문에라도 이는 그리 큰 단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깊고 고혹적인 질감의 보이스에 오케스트라가 만족스러울 만큼 융화되지는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분명 있었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감각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받쳐줬더라면 정말 멋진 순간이 연출됐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연주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악장이었음엔 분명했다.
5악장이 시작되자마자 합창단이 일제히 기립했다. 이는 시각적으로 조금 어색하고 촉박한 느낌을 주었는데 차라리 악장 시작 전에 일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소년 합창단의 부재를 늘 가슴 아프게 느껴야만 하는 작품이 바로 이 곡이 아니던가! 어쩔 수 없는 어린이 합창단(사실 소녀 합창단에 더 가까운)의 섭외는 곡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결코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여기모인 아이들의 목소리는 듣기에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았다는 게 천만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게다가 바로 앞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어쩌면 전반부 연주의 불편함을 이제 와서 모조리 보상받았다는 느낌이랄까? 천사들이 들려주는 성령 충만함을 마음으로 느끼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찬란한 빛을 발한 합창단의 활약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짧지만 굵은 활약이었다고 믿는다.
드디어 마지막 악장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참으로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그런 만큼 인상적인 순간도 많았던 것 같다. 이 모든 시공간의 진정한 공유와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마도 이 6악장만이 가진 거룩한 힘일지도 모른다. 어찌 이토록 깊은 울림으로 듣는 이를 뼈에 사무치도록 깊은 감성의 바다를 헤매게 만드는지, 도대체 이 엄청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새삼스럽게도 말러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느린 템포로 일관하는 구자범의 지휘봉은 역시 현을 다루는 그만의 탁월한 능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었다. 비단 현의 비범한 앙상블 운용만이 아니라 청중들의 마음까지도 쥐락펴락하는 그의 신비로운 마술 봉(?)의 힘을 말이다. 여전히 건조함의 극치를 달리는 홀 톤은 내 마음까지도 바짝 말라붙게 했지만 그 와중에도 현의 울림에 촉촉한 습기를 불어넣는 마치 급속냉방 가습기 같은 지휘자의 능력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코다에서 작렬하는 금관과 타악의 강도는 탄탄한 앙상블과 더불어 단원들의 강한 몰입도를 보여줬고, 감성적으로도 충만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이들이 내는 소리를 오로지 담아내어 적절하게 전달해줘야 할 홀의 구조적 문제점은 아무리 한탄해도 모자라지 않을 테지만 그런 모노톤의 홀 사운드에서도 촉촉한 감성을 가슴 속에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말러가 가진 성스러운 힘이 여기에 임했기 때문일 테고, 이 속에서 생명력과 촉촉한 수분을 불어넣어준 연주자들의 희생과 각고의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곡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오케스트라 총주와 함께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음향의 거대한 폭풍우는 말 그대로 최상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렬하는 두 대의 팀파니, 춤추는 현 주자들의 거대한 물결, 울부짖는 금관의 뜨거운 포효... 그리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코다! 이 모든 것들이 주는 감동을 과연 어디에 또 비할 수 있을까?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분명 상당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긴 연주이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도 큰 감동의 종착점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들의 깊은 노고와 뜨거운 열정에 대한 당연하고도 필수불가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지휘자의 팔이 하염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기립과 환호가 공연장 안을 가득 메웠다. 청중들이 이토록 환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더도 덜도 말고 늘 지켜봐오던 구자범 지휘자와 경기필의 변함없는 모습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비록 불완전한 상태의 결론으로 귀결됐을지라도 청중들의 진심어린 감동 코드를 제대로 이끌어 낼 줄 알았던 그들만의 특별한 비결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고의 연주가 아닌 최상의 감동을 선사할 줄 알았던 진정한 연주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지휘자의 해석은 전반적으로 특별한 느낌을 주려했기 보다는 기본적인 해석의 선상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효과적으로 강조하려는 인상을 많이 받았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때마다 팀파니의 타격이 매우 강조되었고 금관 파트가 작렬하는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음 이탈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실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자신감 넘치는 음 이탈은 차라리 역설적으로 심리적인 쾌감을 안겨주기도 하는데 그만큼 단원들의 몰입도가 대단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해서 곡을 감상하는데 있어 크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간혹 목관 파트의 실수도 눈에 띄긴 했지만 이는 단원들이 가진 의욕 충만의 결과로 이해하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건 그들의 눈빛이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템포의 변화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전반적으로 노멀한 템포를 기저에 두고 달려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를 적절히 나누어 관객들의 심리상태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지휘자 특유의 템포 운용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 연주였다. 빨라질 때마다 팀파니를 비롯한 타악기들의 타격 강도가 매우 놀라울 만큼 강렬했는데, 이는 말러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청중들의 본능적인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은 담아낸 템포 변화를 작품의 해석에도 그대로 투영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정석적인 해석을 중시하는 스타일의 청자들에겐 분명 편치 않게 들릴 수도 있는 부분일 테지만 평소 구자범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이라면 있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결코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잔인한(?) 쾌감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지휘와 해석이라는 관점은 악보에 적혀져 있는 그대로의 음표적 반영이라기보다는 지휘자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따르는 사고의 총체적인 결과물,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해석적 논란은 충분히 있을 수 있어도 이를 폄하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대상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정통파 지휘자와는 다소 거리가 먼 구자범 지휘자이지만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골수 정통파라고 불릴 만한 지휘자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겠는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통해 그를 믿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청중들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며 청중들의 가슴을 뜨겁게 타오르게 만드는 그만의 특별한 능력만큼은 일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러의 3번 교향곡은 분명 경기필이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릇 안에 담아내기엔 너무도 크고 위대한 작품이기에 오늘의 이 연주는 분명 많은 불편함과 한계점을 노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해 오로지 그들의 능력 안에서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용기와 노력만큼은 오늘 공연을 지켜본 이라면 진정 모범적인 연주자로서의 표본으로 인정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로비에 모인 지인들의 모습은 코다의 감동으로 인해 상기된 표정들도 제법 있었지만 역시나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들이었다. 무려 100분여의 곡을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느라 연주자들 뿐만 아니라 청중들도 충분히 지칠 법 했으니 말러는 음악을 공유하는 양자에게 모두 잔인한 작곡가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만물을 이 곡 안에 모두 다 담아내려 했던 작곡가로서의 말러의 욕심을 굳이 여기서 거론하지 않더라도 분명 연주자이던 청중이던 모든 의미를 제대로 소화해내기 힘든 곡인데다가 여러 가지 악조건들과 연주적 결함, 그리고 사소한 실수들이 겹치면서 더 흡수하기 힘들었던 점은 오늘 공연의 가장 힘겨운 부분들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들만의 감동 코드는 분명 우리가 느낀 작품의 의미 이상의 의미였다고 자부하고 싶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이런저런 아쉬움과 좋았던 점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지인들은 한 결 같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지닌 인상적인 공연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늘 연주의 기능적인 측면, 해석적인 측면의 불만족이 반드시 감동을 저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 계기가 됐음은 여기 모인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깊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로비에서 바라본 청중들의 행복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과 완전히 하나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했던 내가 가진 오만과 어두운 편견이 못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느낀 불만과 아쉬움이 동시에 다른 이들에겐 가슴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던 감동의 등불같은 의미였다는 것이 그저 부끄러웠을 뿐이다. 순수하지 못한 내 마음, 그러나 나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그들의 열정과 감동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가슴 절절히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역시도 그들의 행복에 동참할 수 있었음이 너무도 다행스럽고 또한 감사한 것이다. 그때의 감동을 또 한 번 되새기며 새롭게 만나게 될 그들과의 대면이 벌써부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내 밑바닥에 가라앉아 찾을 수 없었던 순수한 감수성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해준 그들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하며, 다음 만남에서는 숨김없이 내 감정을 고이 전할 수 있기를 아울러 고대해본다. 그래서 기약어린 만남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기분좋은 흥분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또 그들을 만날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나를 강렬하게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완전히 꽃피우지 못한 그 완결점의 끝을 언젠간 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을 꿈꾸기에...
3.29
첫댓글 신동준님의 샤인인증샷을 남기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결코 꿩 대신 받은 거 아니라능...ㅋㅋ
아, 아무래도 제가 괜한 부탁을 드렸나봅니다. 여기서 운영자 노릇 더이상 못할 것처럼 부끄럽고 죄송스럽네요...^^;;
지나님께서 주신 탐스러운 튤립과 맛깔스런 브런치는 두고두고 잘 먹겠습니다. (아껴뒀다가 먹을게요...ㅎㅎ)
늘 과분한 찬사를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과분하지 않아요~^^
가라얀님과 말러를 알게 되어,무척 기쁘구요...
이번엔 각별한 말러3번연주여행이어서 더욱 그렇답니다.
우연히 '코심'검색하다 들르게 되었지만,이미 이곳 카페 말러와는오랜 인연이었던것만 같아요~ㅎㅎ
I don't care about the flower, but the brunch is MINE!!!
hehe
빨강색 튤립 : 사랑, 고백, 정조
노랑색 튤립 : 헛된 사랑
흰색 튤립 : 실연
보라색 튤립 : 영원한 사랑
꽃말은 그렇대요..^^
브런치는 저도 기대되요~한번도 못먹어봤거든요~^^
푸엥카레님, 맛나게 드세요. 제가 조금 나눠드릴게요...ㅎㅎㅎ
Oops! I DO care about the flowers now. So give them to me....along with the brunch!
But too many yellow ones (헛된 사랑) worry me ...
ㅋ푸앙카레님~그래도 튤립은 노랑이 가장 사랑스러운 거 같아요~~^^
저는 보래색 튤립을 한아름 가득 받고싶다능..^^
자유롭지만 고독하다님,
그럼, 다음에 만나뵐때 보라색 튤립을 들고 가겠습니다~~^
푸엥카레님~~헐~~!!ㅋㅋ
브런치 받으실만한 글이어요.
튤립들은 인생이네요. 그 모든 사랑이 나를 지나갔을 때, 또다시 사랑 할 힘이 남아있기를.
하늘나리님은요...모든 사랑을 다시 잉태하시는 사랑의 어머니이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