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순종하는 수련 누구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누구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어떤 말씀은 듣기 좋고 어떤 말씀은 듣기 싫다. 사람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것의 판단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내게 좋은 건 선하고, 나쁜 건 악하다고 판단하는 거 같다. 하지만 선하신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고(마르 10,18), 우리는 좋든 싫든 그분 말씀을 따라야 산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사십 일 후에는 그 큰 성읍이 무너질 거라고 예언하자 그곳 사람들은 모두, 높은 사람에서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짐승에게까지 자루옷을 걸쳐 참회했다. 그리고 임금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요나 3,8-9).” 참회한다고 당연히 하느님이 재앙을 거두시는 게 아니라 그러실 수도 있으니 부르짖으라는 요구다. 반면에 오늘 독서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느님이 내리신 경고를 전하자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아 말하였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느냐?” 실로 성읍과 거기 있던 성소, 계약의 궤가 있던 장막은 오래전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파괴되었다. 그 아픈 역사를 잘 알고 있던 사제들과 백성들에게 예레미야의 그 예언은 저주로 들렸을 거다. 하느님이 저주를 내리시다니, 참 듣기 싫었을 거다. 그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을 거다. 그만큼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악도 선으로 만들 만큼 자기중심적이다.
남대문도 불탔고, 천년 고찰 낙산사도 전소됐다.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됐다. 하느님의 아들도 죄인으로 몰아 정당하게 살해했다.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좋아하고 이로울 거라고 판단 하면 못할 일이 없다. 극단적으로 사람은 사람도 복제해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 할 수 있어도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하면 재앙이 되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느님은 여러 방식으로 말씀을 전하신다. 누구는 듣고 누구는 듣지 않는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일을 저지르는 이들 때문에 그들은 물론이고 참회하고 회개한 이들까지 모두 피해를 본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자긍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은 강대국에게 점령당했고 임금과 사제까지 모두 노예로 끌려갔다. 거기서 누구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던 삶을 반성하며 많은 사회적 불이익을 감내하며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 끝까지 지켰다. 어떤 이들은 살기 위해서 이방 문화와 이교 신을 따라 살았다. 끝까지 지켜 가난해진 이들은 기적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느님 말씀대로 되었다. 사람은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 산다. 기도는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거다. 그래서인지 기도는 죽을 위험에 놓였을 때가 아니면 언제나 하기 싫고 지루하다. 기도는 훈련이고 수련이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 훈련이고 그 말씀을 따르는 수련이다. 하느님 말씀에 복종이 아니라 기쁘게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 파괴와 멸망은 사람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느님이 쓰시는 마지막 도구인 거 같습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이 파괴하시는 게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죄가 빚은 결과입니다. 그런 고통과 재앙을 겪기 전에,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처럼 하느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을 무한히 신뢰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