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의 맛 / 김분홍
아찔함은 어떤 맛일까
아찔함에 푸른색이 들어 있다
나는 푸른색을 펼쳐놓고 난간을 생각한다
그 난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난간에서 당신을 바라보니 어지럽다
잠시 혼란이 시작된다
혼란을 들고 나는 외출을 서두른다
문구점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어지럼증
회전은 나를 무자비하게 혹사시킨다
호객하는 훌라후프는 속이 비었고
빈 속에 들어가 빈 속을 돌리고 있는 바람개비
한 사람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배고픔은 우로보스처럼 둥글고
꼬리를 물고 있는 골목은 구수하다
오늘의 꼬리가 어제의 꼬리를 잘라먹는
허기는 주머니 안에 갇혀 사는 입이 큰 짐승이다
나는 나를 방목하는 짐승에게 질질 끌려다닌다
내 현기증에 누가 삼겹살을 구워줄까
⸺ 계간 《문예연구》 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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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분홍 시인
1963년 충남 천안 출생.
2015년〈국제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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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홍 시인의 「현기증의 맛」은 어떤 정동靜動(affect)-현기증(아찔함)-을 시적 대상으로 삼는다. 이 시에서 시인은 현기증의 찰나를 붙잡고는 그 정동을 더욱 풍성하게 의인화하여 표현한다. ‘아찔함’에 대한 시적 탐구라고나 할까. 이 시에서도 비약적인 유추적 상상력이 발동된다. 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아찔함의 색깔이 푸른색임을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그 색으로부터 난간을 떠올린다. 이 연상은 난간 위로 아득하게 푸른 하늘만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작동되었을 것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난간 위에 서 있는 것, 그것은 위태롭고 아찔하다. 이 위태로운 공간에 ‘당신’을 초대한 시인은, “난간에서 당신을 바라보니 어지럽다”고 말한다. 난간에서 당신을 바라본다는 일은 사랑에의 기대와 위험이 뒤섞여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푸른색’은 기대와 위태로움과 슬픔이 융합된 복합적 이미지다. 하여, 그 색은 ‘어지럼증’의 색이다. ‘당신’과의 만남은 기대와 두려움이 쳇바퀴처럼 어지럽게 도는 일, “한 사람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일이다. 어지럼증, 현기증은 이 회전으로 인해 일어나는 정동이다.
현기증의 정동은 시인에게 혼란을 가져온다. 그것은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혼란이다. 그러나 이 혼란을 멈출 수는 없다. 사랑의 ‘맛’을 알게 된 시인은 사랑에 대한 허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빈 속에 들어가 빈 속을 돌리는 바람개비”와 같은 것이 허기이다. 그래서 시인은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처럼 “오늘의 꼬리가 어제의 꼬리를 잘라 먹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허기라는 “입이 큰 짐승”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당신을 중심에 두고 삶의 골목을 어지럽게 돌아다녀야 하는 삶이다. 그 “꼬리를 물고 있는 골목은 구수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 구수함이 ‘아찔함-현기증-의 맛’일 텐데, 시인은 삶을 아찔하게 회전하게 만드는 사랑이야말로 삶의 깊은 맛을 우려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게 읽어본 「현기증의 맛」에서 시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사랑과 영원 회귀. 영원 회귀하는 허기의 삶. 이것이 시인의 세계관을 채우는 주제일 것이다.
- 이성혁(문학평론가)
Love Wind / Katsuhisa Hatt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