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수행자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하지 않았다 해도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질과 자기발전에
목적을 두고 사는 한
우리는 모두 수행자다.
도(道)라는 것은,
출가한 스님네나 해당 됀다며
거느린 처자식의 부양을
이유로 둘러대면서
나 와는 별개의 문제라며
도(道) 닦으라는 법문을 흘러 듣고
복을 비는 기복에 치중하는
불자들이 부지기수다.
석가가
생노병사를 고민하다가
왕자의 신분도 팽개치고 출가해
인간의 삶에 얷힌 세상이치를
하나하나 깨닫고 남긴
팔만사천 대장경으로
부처되지 못한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도(道) 다.
그러므로
도(道)라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옳은길을
이끌어 주는 지침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질이
나아지느냐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는 현실앞에서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수행자일수 밖에 없다.
그럼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소중함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순간순간마다 내 인생의 밭에 뿌린
마음의 씨앗은,
영겁을 두고 싹이 트고 자라나
내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씨앗을 뿌리면
좋은 과보가 돌아올 것이고
나쁜 씨앗을 뿌리면
나쁜 열매가 열려 돌아 올것이다.
그러니,
어찌 한 순간인들 방심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매 순간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씨앗,
가장 질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에
괴로운 일은 나로부터
멀리 있기를 바라고
오로지,
즐거운 일,
흡족한 과보는 다 내것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물론,
그것은 가능하다.
누구에게라도 가능한 일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순간순간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선행이고 참회라면 됀다.
지금 여기가
그대로 수행처면 됀다.
그래서 수행자는
"하루살이"로 산다.
하루살이라고 하니까
됄대로 돼라는 식의 찰나주의,
향락주의라는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인생 전체를 쏟아붓는 식의
절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여기서,
씨앗을 심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것 같이
그렇게 절박한 심성이 돼어 살아야 한다.
출가한 수행자들과
세속의 우리네 삶은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우리들은,
오늘보다 내일을 더 생각하고
내일에 희망을 건다.
내일이면 사정이 더 좋아지겠지,
오늘은 여건이 적당치 않으니
내일을 기약하자는
그런식으로 살아가는것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내일은 없다.
오늘이 있을 뿐이다.
내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결과로서 내일이지,
오늘과 무관한 내일은 없다.
고로,
앞으로 다가올 모든 내일은
오늘 속에 있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최선의 내일이 그 속에 있고,
오늘 방일하면
흐트러진 내일이
그 속에 있을 뿐이다.
이와같은 삶으로,
하루하루 삶의 질을 향상 시켜가면서또,
자기발전을 이뤄가면서
살아가는게 도(道)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자다.
그래서 수행자는
하루살이로 살아야 한다.
하루살이로 현실에 충실하며
그렇게 절박한 심성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