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첫 토요일 성모 신심) 주님이 계신 곳 하느님은 마리아를 믿고 외아드님, 구세주를 맡기셨다. 사람이 되려면 여인의 태안에서 열 달을 지내야 하고, 사람 구실 하려면 누군가 최소한 십수 년은 돌봐주어야 한다. 성모상 여인은 예쁘고 가녀리지만 실제로 마리아님은 힘세고 튼튼한 여인이었을 거다. 만삭의 몸으로 긴 여행을 할 수 있고, 마구간에서 혼자서 출산하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사흘을 헤매며 찾아다닐 수 있는 분이었다.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당연히 영적으로도 튼튼한 여인이었다. 천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이 하시는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성모님은 그날 뜬금없이 목동들이 마구간으로 찾아왔던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다(루카 2,19). 그들이 그곳을 찾아온 사실보다는 그들이 전한 말을 더 깊이 간직하셨을 거다. 천사와 대화하셨던 분이니 그들이 천한 신분이어도 그것이 천사가 했을 법한 말이라고 알아들으셨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했던 말도 간직하셨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성모님의 마음과 기억 속에는 이런 것들, 구세주와 하느님이 인류를 위해 하시는 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땅에 묻히지 않고 여전히 한 여인으로 하늘에 계시니 그분을 찾는 이들은 그분의 이런 기억을 공유한다.
무더위 때문인지 며칠 잠을 설치며 나쁜 꿈에 시달렸다. 내가 어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조해서 벌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너무 생생해서 잠에서 깨어나서도 그 두려움과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다. 들어갈 수 없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무의식의 세계 안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입으로는 늘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분이라고 말하지만 내 무의식은 여전히 하느님을 무서워한다. 알게 모르게 저지른 모든 죄, 그 죄로 남들을 아프게 한 것에 벌과 심판을 두려워한다.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 그 자체이니 그분에게 직접 청하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중재자가 필요하다. 악몽에서 깬 아이가 제일 먼저 누구를 찾는가. 성모님을 우리 어머니가 되게 하신 걸 보면 예수님도 위급하고 다급할 때 엄마를 찾으셨던 모양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다. 부활은 온전히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영역이다. 반면에 성모님 이야기는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그분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믿으셨다. 성모상은 자모상이어야, 다시 말해 어린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참된 성모상이라고 한다. 성모님 계신 곳에는 언제나 반드시 구세주 예수님이 계신다. 하느님이 어린 예수님을 맡기셨을 만큼 든든한 분이니 내 영혼을 그분께 맡긴다. 그분은 그런 영혼들을 지체없이 아드님께로,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참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신다.
예수님, 주님은 어머니를 닮으셨습니다. 주님이 어머니를 신뢰하셨듯이 저희도 성모님을 신뢰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신 이유가 다 있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은 어머니 팔과 손에 앉아 계십니다. 특별한 의자는 그 존재만으로 거기에 앉을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거처럼 성모님을 부르는 건 바로 아드님을 부르는 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성모님을, 제 영혼은 하느님을 찾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