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없다
맹인 부부 가수
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비닐우산
우리가 어느 별에서
너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슬픔 많은 이세상도
슬픔으로 가는 길
낙화
수선화에게
모밀꽃
기다리는 편지
또 기다리는 편지
여름밤
꽃지는 저녁
잎새에게
철길에 앉아
연어
아버지의 나이
달팽이
종소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동진
별똥별
칼 날
가을
겨울강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꿀벌
밥먹는 법
하늘의 그물
영안실 입구
북한산 명태
모른다
리기다 소나무
별들은 따뜻하다
구두 닦는 소년
끝끝내
새점을 치며
세한도
성의(聖衣)
사 랑
희망은 아름답다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강변역에서
눈부처
모래
이별 노래
청량리 역
그는
모두 드리리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봄눈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반지의 의미
겨울강에서
나무에 대하여
풍경 달다
까닭
그대의 밥그릇에 내 마음의 첫눈을 담아 드리리
꽃을 보려면
부치지 않은 편지
가 을 꽃
그리운 목소리
후 회
우박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새벽
거지인형
귀뚜라미에게 받은 짧은 편지
미안하다
누더기별
비 오는 사람
저녁별
상처는 스승이다
시인들이 술 마시는 영안실
아버지의 가을
장작을 패다가
끝끝내
발 자 국
밤길에서
겨울꽃
벗에게 부탁함
사랑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바닷가에 대하여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비 오는 사람
꽃
햇살에게
물 위를 걸으며
슬픔은 누구인가
푸른 애인
가시
마음에 집이 없으면
갈대는 새벽에 울지 않는다
새벽기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별 하나의 나그네가 되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음부처
모닥불을 밟으며
연인
쓸쓸한 편지
가을편지
너의 날개
내 마음속의 마음이
나뭇잎을 닦다
당신에게
물 위에 쓴 시
결혼에 대하여
꿈
새벽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 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슬픔 많은 이 세상도 걸어 보아라.
첫눈 내리는 새벽 눈길 걸을 것이니
지난 가을 낙엽 줍던 소년과 함께
눈길마다 눈사람을 세울 것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걸어 보아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눈사람을 만나러 돌아올 것이니
살아갈수록 잠마저 오지 않는 그대에게
평등의 눈물들을 보여 주면서
슬픔으로 슬픔을 잊게 할 것이니
새벽의 절망을 두려워 말고
부질없이 봄밤의 기쁨을 서두르지 말고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살아보아라.
슬픔 많은 사람끼리 살아가며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아름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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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가는 길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서울에도 오랑캐꽃이 피었습니다
쑥부쟁이 문둥이풀 마늘꽃과 함께
피어나도 배가 고픈 오랑캐꽃들이
산동네마다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리어카를 세워놓고 병든 아버지는
오랑캐꽃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물지게를 지고 산비탈을 오르던 소년은
새끼줄에 끼운 연탄을 사들고
노을 지는 산 아래 아파트를 바라보며
오랑캐꽃 한 송이를 꺾었습니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이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산 위를 오르며 개척교회 전도사는
술 취한 아버지에게 자꾸 말을 걸고
아버지는 오랑캐꽃 더미 속에 파묻혀
말이 없었습니다
오랑캐꽃 잎새마다 밤은 오고
배고픈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산그늘에 모여 앉아 눈물을 돌로 내려찍는데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함께 가난을 나누면 된다는데
산다는 것은 남몰래 울어보는 것인지
밤이 오는 서울의 산동네마다
피다 만 오랑캐꽃들이 울었습니다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너는 죽어 별이 되고
나는 살아 밤이 되네
한 사람의 눈물을 기다리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촛불 들고
통곡하는 밤은 깊어
강물 속에 떨어지는
별빛도 서러워라
새벽길 걸어가다 하늘을 보면
하늘은 때때로 누가 용서하는가
너는 슬픈 소나기
그리운 불빛
죽음의 마을에도 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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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는 저녁
꽃이 진다고 아예 다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적 없다
꽃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하느님도 쓸쓸하시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사랑을 바라다가 쓸쓸하시다
오늘의 마지막 열차가 소리없이 지나가는 들녘에 서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지 알 수 없어라
그대는 광한루 돌담길을 홀로 걷다가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나니
미소로서 그대를 통과하던 밝은 햇살과
온몸을 간지럽히던 싸락눈의 정다움을 기억하시라
뿌리째 뒤흔들던 간밤의 폭풍우와
칼을 들고 설치던 병정개미들의 오만함을 용서하시라
우듬지 위로 날마다 감옥을 만들고
감옥이 너무 너르다고 생각한 것을 잘못이었나니
그대 가슴 위로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없어
하느님도 쓸쓸한 저녁 무렵
삶은 때때로 키스처럼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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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에 앉아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멀리 기차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 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 일뿐
너의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사람은 죽을 때에
한번은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새들도 죽을 때에
푸른 하늘을 향해
한번은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나 죽을 때에
한번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길에 핏방울만 남기게 될까봐 두려워라
풀잎도 죽을 때에
아름다운 종소리를 남기고 죽는다는데.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온 까닭은 무엇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새벽에 닿은 까닭은 무엇인가
수평선 너머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각자 가슴을 맞대고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해는 바다 위로 막 떠오르는 순간에는 바라볼 수 있어도
성큼 떠오르고 나면 눈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누가 누구의 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의 햇살이 될 수 있을 뿐
우리는 다만 서로의 파도가 될 수 있을 뿐
누가 누구의 바다가 될 수 있겠는가
바다에 빠진 기차가 다시 일어나 해안선과 나란히 달린다
우리가 지금 다정하게 철길 옆 해변가로 팔장을 끼고 걷는다 해도
언제까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겠는가
동해를 향해 서 있는 저 소나무를 보라
바다에 한쪽 어깨를 지친 듯이 내어준 저 소나무의 마음을 보라
내가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기대었던 그 어깨처럼 편안하지 않은가
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벋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
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형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기차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늘 혼자 남는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울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로 손수건을 흔드는 정동진의 붉은 새벽 바다
어여뻐라 너는 어느새 파도에 젖은 햇살이 되어 있구나
오늘은 착한 갈매기 한 마리가 너를 사랑하기를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갔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세요
삶이란 마침내 강물 같은 것이라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도 저만치 강물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가세요
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
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디론가 길 떠납니다
찬 겨울 밤하늘에 초승달 뜨고
초승달 비껴가며 흰 기러기떼 날면
그 어디쯤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도 샛강가로 저를 찾으신
강가에 얼어붙은 검불 같은 아버지
하늘은 붉고 날은 흐리다
어머니는 오늘도 겨울산에 올라
북으로 간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너 무슨 그리움의 죄가 그리 많아서
원산 덕장 찬바람 속에 매달려 있었느냐
하늘 향해 겨우내 입을 딱 벌리고
두 눈 부릅뜬 채 기다리고 있었느냐
북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온몸에 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대관령 눈보라에 황태가 되어
북녘 하늘 바라보다 온몸이 뜯기나니
네 가슴은 아직도 동해의 푸른 물결
이제는 죽음도 눈물도 아프지 않아
흰 새벽 찬바람에 눈이 시리다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짖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묵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매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발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영등포역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고 하고
청량리역 어느 무료급식소에서 봤다고 하는
아버지를 찾아 한겨울 내내
서울을 떠돌다가
동부시립병원 행려병동으로 실려가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행려병자들을 보고 돌아와
늙은 소나무 한그루 청정히 눈을 맞고 서 있는
아버지의 텅 빈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다
바람은 차고 달은 춥다
솔가지에 내린 눈은 더이상 아무 데도 내릴 데가 없다
젊은 날 모내기를 끝내고 찍은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 옆에 걸려 있는
세한도 속으로
새 한마리 날아와 앉아 춥다
자정 넘은 시각
지하철 입구 계단 밑
냉동장미 다발이 버려져 있는
현금인출기 옆 모서리
라면박스를 깔고
아들 둘을 껴안은 채
편안히 잠들어 있는 여자
가랑잎도 나뒹굴지 않았던
지난 가을 내내 어디서 노숙을 한 것일까
온몸에 누더기를 걸치고
스스로 서울의 감옥이 된
창문도 없는 여자가
잠시 잠에서 깨어나 옷을 벗는다
겹겹이 껴입은 옷을 벗고 또 벗어
아들에게 입히다가 다시 잠이 든다
자정이 넘은 시각
첫눈이 내리는
지하철역 입구
창은 별이 빛날 때만 창이다
희망은 희망을 가질 때만 희망이다
창은 길이 보이고 바람이 불 때만 아름답다
희망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때만 아름답다
나그네여, 그래도 이 절망과 어둠 속에서
창을 열고 별을 노래하는 슬픈 사람이 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희망을 낳지 않는데
나그네여, 그날밤 총소리에 쫓기기며 길을 잃고
죽음의 산길 타던 나그네여
바다가 있어야만 산은 아름답고
별이 빛나야만 창은 아름답다
희망은 외로움 속의 한 순례자
창은 들의 꽃
바람 부는 대로 피었다 사라지는 한 순례자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기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들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 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면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하느님 눈물이
새들의 깃텃에 고요히 이슬처럼
몇혀있다.
강변역에서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그대의 밥그릇에 내 마음의 첫눈을 담아 드리리
그대의 국그릇에 내 마음의 해골을 담아드리리
나를 찔러 죽이고 강가에 버렸던 피묻은 칼 한 자루
강물에 씻어 다시 그대의 손아귀에 쥐어 드리리
아직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지
아직도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지
미나리 다듬듯 내마음의 뼈다귀들을 다듬어
그대의 차디찬 술잔 곁에 놓아 드리리
마지막 남은 한 방울 눈물까지도
말라버린 나의 검은 혓바닥까지도
그대의 식탁위에 토막토막 잘라 드리리.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만남에 대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만남에 대하여 감사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아름답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순결하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꽃이 진다고 울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 꽃이 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가난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영원하자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대의 국그릇에 내 마음의 해골을 담아드리리
나를 찔러 죽이고 강가에 버렸던 피묻은 칼 한 자루
강물에 씻어 다시 그대의 손아귀에 쥐어 드리리
아직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지
아직도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지
미나리 다듬듯 내마음의 뼈다귀들을 다듬어
그대의 차디찬 술잔 곁에 놓아 드리리
마지막 남은 한 방울 눈물까지도
말라버린 나의 검은 혓바닥까지도
그대의 식탁위에 토막토막 잘라 드리리...
구두 닦는 소년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짖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똥별을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묵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매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발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는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黃菊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하늘에 무슨 슬픈 일이 저리 있어서
또 누구의 서러운 죽음 있어서
저리도 눈물마저 단단해져서
배추밭에 우박으로 쏟아지는가
나는 퍽퍽 구멍 뚫리는 배추잎이 되어
쏟아지는 우박마다 껴안고 나뒹군다
하늘에 계신 누님의 눈물 같아서
하늘에 계신 어머님의 눈물 같아서
온몸이 아프도록
온몸에 숭숭 구멍이 뚫리도록
사람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낙엽들이 걸어간다
낙엽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뒤를 쓸쓸히 개미 한 마리 따른다
그 뒤를 쓸쓸히 내가 따른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
개미들도 누더기별이 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빈 손을 들고 무덤으로 간다
국화 몇 송이 문득 강가에 내던지고
오직 빈 손으로 저녁날 무덤가에 가서
마른 풀들의 가슴에 내 가슴을 묻는다
분노가 있어야 사랑은 있고
희망이 있어야 노래는 있는가
검정딱새 한 마리 내 뒤를 따라와
눈물의 붉은 비 거두어가고
어느덧 무덤가에 스치는 저녁별
상처는 스승이다
절벽 위에 뿌리를 내려라
뿌리 있는 쪽으로 나무는 잎을 떨군다
잎은 썩어 뿌리의 끝에 닿는다
나의 뿌리는 나의 절벽이어니
보라
내가뿌리를 내린 절벽 위에
노란 애기똥풀이 서로 마주앉아 웃으며
똥을 누고 있다
나도 그 옆에 가 똥을 누며 웃음을 나눈다
너의 뿌리가 되기 위하여
예수의 못자국은 보이지 않으나
오늘도 상처에서 흐른 피가
뿌리를 적신다
희미한 영안실 형광등 불빛 아래
시인들이 편육 몇 점에 술을 마신다
언제나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고
죽음은 용서가 아니라고
사랑도 어둠이었다고
누구는 컵라면을 국물째 들이키며
철없는 짐승인 양 술에 취한다
꽃이 죽어서도 아름답더냐
왜 발도 없이 인생을 돌아다녔나
겨울 나뭇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처럼
어린 상주는 꼬부라져 영정 앞에 잠이 들고
뒤늦게 누가 보낸 화환인가
트럭에 실려온 흰 백합들이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달 없는 하늘에 별들만 푸른데
영안실의 밤은 깊어가는데
해는 저물어도 꽃은 지지 않네
밤은 깊어가도 꽃의 피는 흐르네
붉은 땅 철길 너머 새벽비 오면
아직 너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 세상
너의 삶에는 피얼룩이 지지 않기를
마음 모아 간구하던 날들은 가고
너는 아직 강가에 무덤이 없이
꽃잎마다 칼이 되어 흩날리노니
날이 저물어도 꽃은 지지 않네
산은 깊어가도 꽃의 피는 흐르네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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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
사라의 용서도 용서함도 구하지 말고
청춘도 청춘의 돌무덤도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길이다
흐느끼는 푸른 댓잎 하나
날카로운 붉은 난초잎 하나
강의 중심을 향해 흘러가면 그뿐
그동안 강물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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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처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곤고히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저무는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인생의 눈부처 되리
내 죽을 때 망초꽃 되어
그대 맑은 눈동자 눈부처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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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기다림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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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어갈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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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에게
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
창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
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마음 하나 창밖에 걸어 두었습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
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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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가는 길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감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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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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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 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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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위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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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 싸리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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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리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 소절로 태어나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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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움녕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 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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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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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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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뮬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 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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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니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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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네가 준 꽃다발을
외로운 지구 위에 걸어놓았다
나는 날마다 너를 만나러
꽃다발이 걸린 지구 위를
걸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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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국사 종루 근처
공중전화 앞을 서성거리다가
너에게 전화를 건다
석가탑이 무너져내린다
공중전화 카드를 꺼내어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린 뒤
다시 또 전화를 건다
다보탑이 무너져내린다
다시 또 공중전화 카드를 꺼내어
너에게 전화를 건다
청운교가 무너져내린다
대웅전이 무너져내린다
석등의 맑은 불이 꺼진다
나는 급히 수화기를 놓고
그대로 종루로 달려가
쇠줄에 매달린 종메가 되어
힘껏 종을 울린다
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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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
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
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
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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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온 편지
팔 없는 팔로 너를 껴안고
발 없는 발로 너에게로 간다
개동백나무에 개동백이 피고
바다 위로 보르말이 떠오르는 밤
손 없는 손으로 동백꽃잎마다 주워
한 잎 두 잎 바다에 띄우나니 받으시라
팔 없는 팔로 허리를 두르고
발 없는 발로 함께 걷던 바닷가를
동백꽃잎 따라 성큼성큼 걸어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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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마음의 똥
내 어릴 때 소나무 서 있는 들판에서
아버지 같은 눈사람 하나 외롭게 서 있으면
눈사람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똥을 누고 돌아와 곤히 잠들곤 했는데
그날 밤에는 꿈 속에서도 유난히 함박눈이 많이 내려
내가 눈 똥이 다 함박눈이 되어 눈부셨는데
이제는 아무 데도 똥 눌 들판이 없어
아버지처럼 외롭고 다정한 눈사람 하나 없어
내 마음의 똥 한 무더기 누지 못하고
외롭고 슬쓸하다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으면
죽어서도 그대로 피어 있는가
장미는 시들 때 고개를 꺾고
사람은 죽을 때 입을 벌리는데
너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 같구나
세상의 어머니들 돌아가시면
저 모습으로
우리 헤어져도
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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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국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깍지 못한 소톱을 다정스레
깍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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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는 저녁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 지는 저녁에는 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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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마음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 가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베어낸 내 목을
평생토록 베개로 삼아주십시오
그래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 칼로 베개를 내려쳐주십시오
눈 내리는 그믐날 밤
기차역 부근에서
내 마음속의 마음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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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
강물도 없이 강이 흐르네
하늘도 없이 눈이 내리네
사랑도 없이 나는 살았네
모래를 삶아 밥을 해먹고
모래를 짜서 물을 마셨네
잘 가게
뒤돌아보지 말게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네
눈이 오는 날
가끔 들르게
바람도 무덤이 없고
꽃들도 무덤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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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하늘의 별로서 슬픔을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간절히 슬퍼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슬픔처럼 가난한 것 없을지라도
가장 먼저 미래의 귀를 세우고
별을 보며 밤새도록 떠돌며 가소서.
떠돌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가소서.
별 속에서 별을 보는 나그네 되어
꿈 속에서 꿈을 보는 나그네 되어
오늘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기대보소
사람들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도 끝난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내리던 누더기눈도
내리다 지치면 숨을 죽이고
새들도 지치면 돌아갈 줄 아는데
사람들은 누더기가 되어서도 돌아갈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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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의미
만남에 대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만남에 대햐여 감사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아름답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순결하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꽃이 진다고 울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 꽃이 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가난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영원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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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기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들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 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면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하느님 눈물이
새들의 깃텃에 고요히 이슬처럼
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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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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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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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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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온 까닭은 무엇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새벽에 닿은 까닭은 무엇인가
수평선 너머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각자 가슴을 맞대고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해는 바다 위로 막 떠오르는 순간에는 바라볼 수 있어도
성큼 떠오르고 나면 눈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누가 누구의 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의 햇살이 될 수 있을 뿐
우리는 다만 서로의 파도가 될 수 있을 뿐
누가 누구의 바다가 될 수 있겠는가
바다에 빠진 기차가 다시 일어나 해안선과 나란히 달린다
우리가 지금 다정하게 철길 옆 해변가로 팔장을 끼고 걷는다 해도
언제까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겠는가
동해를 향해 서 있는 저 소나무를 보라
바다에 한쪽 어깨를 지친 듯이 내어준 저 소나무의 마음을 보라
내가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기대었던 그 어깨처럼 편안하지 않은가
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벋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
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형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기차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늘 혼자 남는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울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로 손수건을 흔드는 정동진의 붉은 새벽 바다
어여뻐라 너는 어느새 파도에 젖은 햇살이 되어 있구나
오늘은 착한 갈매기 한 마리가 너를 사랑하기를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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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아름답다
창은 별이 빛날 때만 창이다
희망은 희망을 가질 때만 희망이다
창은 길이 보이고 바람이 불 때만 아름답다
희망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때만 아름답다
나그네여, 그래도 이 절망과 어둠 속에서
창을 열고 별을 노래하는 슬픈 사람이 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희망을 낳지 않는데
나그네여, 그날밤 총소리에 쫓기기며 길을 잃고
죽음의 산길 타던 나그네여
바다가 있어야만 산은 아름답고
별이 빛나야만 창은 아름답다
희망은 외로움 속의 한 순례자
창은 들의 꽃
바람 부는 대로 피었다 사라지는 한 순례자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
부치지 않은 편지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이슬에 새벽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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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에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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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다 소나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 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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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게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 있는가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
더이상 나의 눈물이
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독극물이 든 검정 가방을 들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더이상 당신 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것은 독을 버리는 일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가던 독을 버리는 일
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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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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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대하여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럼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겼했을 때
바다의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은
너와 처음 만났던 도서관 숲길이다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던
버스종점이다
아니다
버스종점 부근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지 위의 까치집이다
아니다
네가 사는 다세대주택 뒷산
민들레 무더기로 피어나던 강아지 무덤 위다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었다 진 원추리의 이파리다
아니다
외로운 선인장의 가시 위다
아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소년의 똥무더기 위다
아니다
초파일날
네가 술을 먹고 토하던 조계사 뒷골목이다
아니다
전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서 있던 명동성당 입구다
아니다
나를 첫사랑이라고 말하던 너의 입술 위다
그렇다
누굴 사랑해본 것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던
나의 입술 위다
그렇다
~~~~~~~~~~~~~~~~~~~~~~~~~~~~~~~~~~~~~~~~~
비 오는 사람
그대 빈 들에
비 오는 사람
술도 집도 없이
배고픈 사람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위하여
떠나가는 사람들의
옷 적시는 사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더니
빈집에 새벽부터
비 오는 사람
~~~~~~~~~~~~~~~~~~~~~~~~
꽃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물 위를 걸으며
물 속에 빠져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물 속에 빠져
한마리 물고기의 시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무릎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
슬픔은 누구인가
슬픔을 만나러
쥐똥나무숲으로 가자.
우리들 생(生)의 슬픔이 당연하다는
이 분단된 가을을 버리기 위하여
우리들은 서로 가까이
개벼룩풀에 몸을 비비며
흐느끼는 쥐똥나무숲으로 가자.
황토물을 바라보며 무릎을 세우고
총탄 뚫린 가슴 사이로 엿보인 풀잎을 헤치고
낙엽과 송충이가 함께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을 형제여
무릎으로 걸어가는 우리들의 생(生)
슬픔에 몸을 섞으러 가자.
무덤의 흔적이 있었던 자리에 숨어 엎드려
슬픔의 속치마를 찢어 내리고
동란에 나뒹굴던 뼈다귀의 이름
우리들의 이름을 지우러 가자.
가을비 오는 날
쓰러지는 군중들을 바라보면
슬픔 속에는 분노가
분노 속에는 용기가 보이지 않으나
이 분단된 가을의 불행을 위하여
가자 가자.
개벼룩풀에 온몸을 비비며
슬픔이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가지는
쥐똥나무숲으로 가자.
~~~~~~~~~~~~~~~~~~~~~~~~~~~~~~~~~~~~~~~~~
푸른 애인
푸른 하늘 아래 너는 있다
푸른 하늘 끝 그 어딘가에 너는 있다
나는 오늘도 사는 일과 죽는일이 부끄러워
비오는 날의 멧새처럼 너를 기다려도
너는 언제나 가랑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푸른 땅 아래 너는 있다
푸른 땅 끝 그 무덤 속에 너는 있다
사는 것이 죄인 나에게
내가 산다는 것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인 이 밤에
너는 언제나 감자꽃처럼 피었다 진다
~~~~~~~~~~~~~~~~~~~~~~~~~~~~~~~~~~~~~~
가시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
마음에 집이 없으면
마음에 집이 없으면
저승도 가지 못하지
저승에 간 사람들은 다들
마음에 집이 있었던 사람들이야
마음에 집이 없으면
사랑하는 애인도 데려다 재울 수 없지
잠잘 데 없어 떠도는 사람
잠 한번 재워주지 못한 죄
그 대죄를 결코 면할 수 없지
마음에 집이 없으면
마당도 없고 꽃밭도 없지
꽃밭이 없으니 마음속에
그 언제 무슨 꽃이 피었겠니
마음에 집이 없으면
풍경소리도 들을 수 없지
마음에 세운 절 하나 없지
아무도 모시지도 못하고
누가 찾아와 쉬지도 못하고
마음에 집이 없으면
결국 집에 가지 못하지
집에 못 가면
저승에 계신 그리운 어머니도
뵙지 못하지
이 짧은 시간 동안 (창작과비평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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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새벽에 울지 않는다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寺下村에 첫눈이 내린다
山竹 잎새에 하얗게 내려앉은 함박눈이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눈길에 붉은 피가 번진다
사람들이 손에 쥔 칼을 버리고 길을 떠난다
나는 마른 강가의 갈대숲에 나가
너를 기다리다가 다시 서서 죽는다
무심히 눈송이가 쌓인다
갈대는 새벽에 울지 않는다
시집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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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이제는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홀로 울지 않게 하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조그만 술집 희미한 등불 곁에서
추위에 떨게 하소서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을 알게 하시고
아름다움의 추함과 희망의 절망과
기쁨의 슬픔을 알게 하시고
이제는 살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리어카를 끌고 스스로 밥이 되어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이 되게 하소서
시집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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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만나자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시집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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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나는 죽으면 첫눈 오는 날
겨울 하늘을 날다 지친 새들 앞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하객들로 새들을 모셔놓고
어머니가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을 때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여자와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눈 속에 찬 매화는
아직 홀로 향기를 토하지 못하고
가섭은 부처님이 꽃을 들어도 미소짓지 않으나
내 언젠가 첫눈 오는 날
새들을 모시고 영혼결혼식을 올리면
여름날 소나기 한차례 지나간 뒤
부석사 앞마당에 핀 접시꽃 한 송이 꺾어
내 영혼을 축하해주십시오
시집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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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의 나그네가 되어
내 그대의 나그네가 되어
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내 다시 창을 열고
별을 헤어보리라
함박눈이 까맣게 하늘을 뒤엎어도
그대 하늘의 가슴 속으로
나는 아직 고통과
죽음의 신비를 알지 못하나
내 그대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
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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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하늘의 별로서 슬픔을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간절히 슬퍼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슬픔처럼 가난한 것 없을지라
가장 먼저 미래의 귀를 세우고
별을 보며 밤새도록 떠돌며 가소서
떠돌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가소서
별 속에서 별을 보는 나그네 되어
꿈 속에서 꿈을 보는 나그네 되어
오늘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기대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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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부처
새들이 날아와 빙벽을 쫀다
얼어붙은 미시령 매바위 폭포 위에
하루종일
부리가 없어질 때까지 얼음을 쫀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 날아와 쪼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수십 마리의 새들이 설악에서 날아와
몇날 며칠 잠도 자지 않고
빙벽을 쫀다
부리가 없어져도 빙벽을 쫀다
오늘도 눈송이마다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하고
미시령을 넘어가는 길은 또 끊어졌다
눈더미에 파묻힌 길들은 사람들을 내려놓고
저마다 동해로 떠나가고
나는 아침 일찍 지옥에서 돌아와 빙벽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엔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푸르르 새들이 떠난 자리에
부처님 한분
찬란하다
~~~~~~~~~~~~~~~~~~~~~~~~~~~~
모닥불을 밟으며
모닥불을 밟으며 마음을 낮추고
그대는 새벽 강변을 떠나야 한다.
떠돌면서 잠시 불을 쬐러온 사람들이
추위와 그리움으로 불을 쬘 때에
모닥불을 밟으며 꿈을 낮추고
그대는 새벽 강변을 떠나가야 한다.
모닥불에 내려서 타는 새벽이슬로
언제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겠느냐.
사랑과 어둠의 불씨 하나 얻기 위해
희망이 가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밟으며
언제 다시 우리가 재로 흩어지겠느냐.
사람사는 곳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이 눈물만이 아닌 것을,
타오르는 것이 어둠만이 아닌 것을,
모닥불을 밟으며 이별하는 자여.
우리가 가장 사랑할 때는 언제나
이별할 때가 아니었을까.
바람이 분다.
모닥불을 밟으며 강변에 안개가 흩어진다.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밟으며
먼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모두 꿈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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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머물 곳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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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
가을에는 사막에서 온 편지를 읽어라
가을에는 창을 통하여
새가 날으는 사막을 바라보라
가을에는 별들이 사막 속에 숨어 있다
가을에는 작은 등불을 들고
사막으로 걸어가 기도하라
굶주린 한 소년의 눈물을 생각하며
가을에는 홀로 사막으로 걸어가도 좋다
가을에는 산새가 낙엽의 운명을 생각하고
낙엽은 산새의 운명을 생각한다
가을에는 버릴 것을 다 버린
그런 사람이 무섭다
사막의 마지막 햇빛 속에서
오직 사랑으로 남아 있는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
~~~~~~~~~~~~~~~~~~~~~~~~~~~~~~~~~
너의 날개
푸른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햇살이 빛나는 눈물의
가을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가을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너의 봄에는
별이 오지 않아도 좋고
너의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지 않아도 좋다
너는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으므로
몰매를 맞고
사막의 언덕처럼
무릎을 꿇고 돌아왔으므로
가랑비도 내리지 않고
밤은 고요히 깊어 갔으므로
어머니의 손길이
너의 가슴에 닿았을 때
너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으므로
푸른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어둠이 내리고 별이 반짝여도
네가 날아가야 할
가을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 가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베어낸 내 목을
평생토록 베개로 삼아주십시오
그래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 칼로 베개를 내려쳐주십시오
눈 내리는 그믐날 밤
기차역 부근에서
내 마음속의 마음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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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마음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 가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베어낸 내 목을
평생토록 베개로 삼아주십시오
그래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 칼로 베개를 내려쳐주십시오
눈 내리는 그믐날 밤
기차역 부근에서
내 마음속의 마음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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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을 닦다
저 소나기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가랑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봄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기뻐하는 것을 보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고이고이 잠드는 것을 보라
우리가 나뭇잎에 얹은 먼지를 닦는 일은
우리 스스로 나뭇잎이 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푸른 하늘이 되는 일이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사람이 죽는다면
사람은 그 얼마나 쓸쓸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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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해질 무렵
서울 가는 야간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산 그림자가 소리없이 내 무덤을 밟고 지나가면
아직도 나에게는
기다림이 남아있다
바람도 산길을 잃어버린
산새마저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두 번 다시 잠들 수 없는 밤이 오면
아직도 나에게는
산새의 길이 남아 있다
어느날 찬바람 눈길 속으로
푸른 하늘 등에 지고 산을 올라와
국화 한 송이 내 무덤 앞에 놓고 간
흰 발자국만 꽃잎처럼 흩뿌리고 돌아선
당신은 진정 누구인가
어둠 속에서도 풀잎들은 자라고
오늘도 서울 가는 야간 열차의 흐린 불빛을 바라보며
내가 던진 마음 하나 별이 되어 사라지면
아직도 나에게는
그리움의 죄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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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쓴 시
내 천 개의 손 중 단 하나의 손만이
그대의 눈물을 닦아주다가
내 천 개의 눈 중 단 하나의 눈만이
그대를 위해 눈물을 흘리다가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하여
길이 없는 밤은 너무 깊어
달빛이 시퍼렇게 칼을 갈아 가지고 달려와
날카롭게 내 심장을 찔러
이제는 내 천 개의 손이
그대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내 천 개의 눈이 그대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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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국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깍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 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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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푸른 달밤이었다
그는 흰옷을 입고 있었다
한 손에 칼을 쥐고
또 한 손에 사람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 한걸음 뒤로 물러섰으나
그는 성큼 다가와 내게 소원을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성큼 다가와 내게 소원을 물었다
마침 달이 구름 사이로 들어왔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을 때였다
나는 그 달을 바라보며
시인이 되기보다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높이 칼을 들어 그가 대번에 내 머리를 잘라버리고
손에 들고 있던 새 머리를 내 목 위에 척 얹어주었다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는 잘라낸 내 머리를 다시 한 손에 들고
어디론가 달빛 따라 길을 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 매달려가는 내 머리가
몇번이나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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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시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뭇잎이 나무의 눈물인 것을
새똥이 새들의 눈물인 것을
어머니가 인간의 눈물인 것을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새들이 우리의 더러운 지붕 위에 날아와
똥을 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알았다
거기의 노숙자들이 잠에서 깨어나
어머니를 생각하는 새벽의 새벽이 되어서야
눈물의 고마음을 알게 되었다.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대구 계성중학교와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당선되었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로 당선되었다.
198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1979년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였다.
이후 시집 《서울의 예수》(1982)와 《새벽편지》(1987) 등을 통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을
따뜻한 시각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는 암울한 분단상황에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그려내었다.
《샘터》 편집부와 《월간조선》에서 근무하였고,
2000년 현대문학북스 대표가 되었다.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199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1999),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2000),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0) 등이 있고,
수필집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와
동화집 《에밀레종의 슬픔》 《바다로 날아간 까치》(1996),
《연인》(1998), 《항아리》(1999),
《모닥불》(2000),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199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