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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중한담(茶中閑談)1 박현선생님과 함께 하는 이야기마당2023 (3)
(2023년 10월 8일 14:00, 지유명차 청담점)
1-3 통제의 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인문학과 사회체계
우리가 그걸 어떻게든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때 그래도 삶이 뭔가 되찾을 게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움이 막연한 그리움이 아닌, 내가 이랬어야만 됐구나 하는 것을 알기 만이라도 할 수 있는 그리움이.
저는 그래요. 죽어서 천국, 극락, 아까 개념 다 바뀌었다고 그랬지만 천국도 없고 극락도 없어요. 단 죽어서 가는 세상이 다르겠죠. 그게 뭐 극락이고, 그게 뭐 지옥이겠어요.
그냥 한국 사람 비행기 타고 한국 오고 미국 사람 비행기 타고 미국 가고 영국 사람 비행기 타고 영국 가듯이, 뭐 이런 사람은 죽어서 저기 가고 저런 사람 죽어서 저기 가겠죠. 자기 갈 데로 가겠죠. 거기에 지역 붙이고 천국 붙일 이유가 뭐 있겠어요. 죽으면 갈대로 함수 관계에 의해서 가겠죠.
그런데 그 함수 관계 전에 아, 내가 이런 존재였구나, 내가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가 이래서 여기 있었구나,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그리움의 정체를 알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이건 진짜 황당한 얘기예요. 두서 없는 얘기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저는 현재 지구상에 나타나는 UFO 안 믿어요. 외계인 안 믿어요. 외계인이라고 막 나온 존재들 있잖아요. 아무리 봐도 그건 생명체가 아니에요. 의사 생명체, 아바타예요. 제가 볼 적에. 크로에 떨어져 있던, 외계인이든. 제가 볼 때는 아바타예요. 아바타를 수술을 했다면 아바타한테 아바타 수술을 한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가 같이 대화를 해서 정신적 메시지도 텔레파시든 뭐든 간에 거기서 기록했다면 아바타한테 들은 거예요. 저는 그렇게 봐요.
그게 정말 외계인이었다면, 지구상 그들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수없이 오래되고 길어요. 많아요. 왜 건드리지도 않고, 그냥 보고만 가고, 보고만 가고 했을까요? 그 친구들은 어디선가 온 시간여행자라고 봅니다. 단 아바타로. 생명체가 아니라. 아바타 못 만들면, 우리가 달나라에 개 보내듯이 만들면 아바타 보내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상상도 해요. 확신 안 해요.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게 오히려 더 논리에 가깝겠다 그런 생각만 하는 거예요. 어떤 경우는 자신 없게 말씀 드려야죠.
아무튼 그런 얘기를, 그냥 우리가 꿈꾸듯이 어릴 때 잊어버렸던 이야기, 그러나 고등학교 때 치열했던 그런 이야기는 아닌, 어쩌면 기억하지 못했던 5살, 4살 때 꿈 속에서 했을 법한 이야기. 즉 언어로 표현되기는 하더라도 언어로서 표현되지 않을 만큼의 순진했던 시절의 이야기. 내가 돌아갈 때 언어로 잘 표현 못하더라도 그 모습 하나는 가지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 꿈인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생시인지 모르는 그런 이야기. 모르잖아요. 저도 이런 이야기 나누다가 몇 주 있다가 죽었대요. 그러고 안 나올 수도 있죠. 모르는 거죠.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서 그냥 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래도 저는 얘기 드릴 만큼 드렸으니까, 이제 또 오랜만에 뵀으면 서로 주고받을 얘기도 있을 것 같고 하니까요. 제가 두서없이 아무 얘기나 다 하시듯이, 제가 그렇게 문을 열었으니까 이야기가, 질문이, 내용이, 구성이 되든 안 되든 안 따졌으면 좋겠어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나누고 싶은 어릴 적 꿈같인 이야기들
그게 따지고 나면 어느 순간, 우리 이런 얘기 들어봤죠? 나를 핫바지로 아냐 그러는데. 핫바지로 아냐의 핫바지가 뭔지 아시죠? 한국이 해방이 되고 나서 해방 전국에 위에는 재킷을 걸치고 밑에는 한복 바지를 입었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 대해서 문명 교육을 덜 받았다거나 사회적 경험이 더 부족하다거나 또는 이제 그 세상 물정을 덜 깨쳤다고 해서 낮춰서 부르는 말이 핫바지였죠.
그런데 그 핫바지도요 20년만 지속적으로 입었으면 한국적인 뉴 패턴이 되는 거예요. 아닐까요? 확실합니다. 확실한 예를 제가 들어 드릴게요. 아까 제가 입고 온 바지 치노바지라고 그랬죠. 이런 바지 엄밀하게 말하면 1950년대 때, 40년대 때, 2차 전쟁 때 군인들이 입던 바지잖아요.
군인들 입던 바지 중에서 스티브 몇 군데 좀 두드려 고쳐가지고. 그래서 요즘도 보면 1941 복각본 치노, 1942 복각본 치노, 그런데 이 모든 그런 소위 복각본 치노라고 하는 게 어디서 나오는지 아시죠? 아니, 그런 치노바지에 가장 발전된 패턴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딘지 아시죠? 일본이죠.
수많은 브랜드들이 있죠. 정말 깊이 깊이 파고들어가지고 저걸 어떻게 복각을 했지? 다시 만들어 냈지? 기가 찰 정도로 하고 있는 업체들이 다 일본이죠. 25년 전쯤에요. 30년 전쯤에. 일본에 처음 그게 나타났을 때는요 일본이 경제적으로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보통 경제적으로 침몰할 때는 복고주의 옷이 들어가잖아요. 잠시 나타났던 거예요.
그런데 경제적 침몰이 1~2년에 안 끝나는 거예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그랬는데 잃어버린지 20년 됐어요. 잃어버린지 30년 됐어요. 마침내 잃어버린 세월이 문화가 돼버린 거죠. 그리 고 그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거죠. 인정하든 말든.
한국도 재작년부터 젊은 분들이 배까지 올라오는 기장에 약간 좀 와이드한 핏의 바지를 많이 입죠. 저도 오늘 그렇게 입고 왔습니다만. 이 계절의 간절기에 아무리 옷장을 들여다봐도 입을 옷이 없어 갖고 여기 왔습니다만.
제가 옷을 적게 사서 옷이 없는 게 아니고요. 살이 쪄서 입은 옷이 없어요. 그리고 면바지 같은 경우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치노라고 불리는 면바지, 그냥 일반 면바지가 아닌 그렇게 개념으로 불리는 치노바지는 전부 다 허리 사이즈가 36까지만 나와요.
제 사이즈는 바로 한 사이즈로 위에요. 아니 예전처럼 좀 내려서 입으면, 허리에 걸치면 36도 입는데 배에 걸치면 36도 안 들어가는 거죠. 그럼 당장 뭐 상기되고 이야기하면 이렇게 되는 거죠.
아무튼 그렇듯이, 일본 지금 신호가 그렇듯이 소위 아메카지(American Casual)라고 불리는, 미군들이 와서 전해주고 간 그 엉성하게 수용된 미군 문화가 세월을 지나서 하나의 패턴 문화가 돼버린 것처럼, 우리 핫바지도 그렇게 입으면 세계 요즘처럼 생각하면 한복 바지에 옷 좀 약간 루즈한 핏을 걸친 재킷을, 블레이저 입어도 멋있을걸요. 충분히 가능하고 저는 일부 그런 게 시도되고 있다고 봐요.
뭐 이상할 것 하나도 없죠. 그런데 어느 시기에는 그 핫바지라고 해서 낮춰 불렀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가 조금 가볍게 보고. 조금은 그냥 내일 하자고 미루고. 그런 것 속에 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놓쳐버린 것이 있지 않을까, 잊어버린 것 속에. 대여섯 살 때 기억력의 획득과 더불어 잃어버린 것 속에.
기억력이 없을 때 젊은 시절의 꿈은 똑같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그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고. 그래서 핫바지도 어느 순간 패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너무 이상해 보이시는 질문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장 아름다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편하게 얘기도 나눠주시고 소식도 주셔도 되고, 하시는 시간으로 이어가겠습니다.
핫바지도 어느 순간 하나의 패턴이 될 수 있으므로
잘 지내십니까? 누구든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잘 지내십니까? 예매하죠. 잘이라는 말이 정말 애매하죠. 우리가 뭐 편하게 지내십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차라리 답을 할 텐데. 그죠? 몸이 힘드십니까? 이러면 답을 할 수도 있고. 하는 일이 잘 풀리십니까? 잘 대답하죠.
그런데 잘이라는 말이 우리말에서 똑같은 음가를 가진, 똑같은 내용을 가진 단어가 운남의 라히족에게도 있더라고요. 자르, 잘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려놨냐 그러면 사람을 이렇게 머리, 사람을 그려놓고 그 위에 이렇게 전기 파장처럼 지지직 올려놨어요. 그러니까 저 위에 있는 하늘과 소통하게 하는 거예요.
잘이라는 건 내 생명의 근원과 늘 안테나를 놓고 소통한다는 의미니까 정말 잘이라고 하는 건 질문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말 잘못된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멀쩡한 질문처럼 했지만 제가 방금 한 질문이 잘못된 질문이듯이,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 굉장히 좋은 질문일 가능성이 너무 많아요.(1-3, 계속)
1-4 질문 속에 있는 가능성
질문: 덕분에 차 잘 마십니다.
선생님: 네 감사합니다.
수강생: 얘기를 듣다가 영혼의 먹이로 선생님께서는 믿음으로 밥을 준다고 하시던데요. 혹시 다른 먹이가 좀 다른 것들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이제 개인적으로 아까 성경 얘기도 하시고 해서 진짜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짜 사랑이라든가, 기쁨이라든가 그런 게 혹시 먹이가 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생각 하시는가요?
선생님: 먹이를 준다고 하면서 제가 그런 얘기를 드렸는데 나중에 점점점 얘기하겠지만 먹이를 주는 것은 먹이를 받아먹는 존재하고 사이에 먹이가 전달될 벽이 없어야 되죠. 벽이 있으면 어떤 것이 먹이라 하더라도 전달할 방법이 없죠.
사실 그 벽을 없애는 게 먹이를 주는 자체인 거죠. 그 벽을 없애는 것. 그 벽을 눈곱만큼이라도 여는 만큼 그냥 저절로 먹이는 잘 전달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만약에 먹이가 빛이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의 빛이라고 한다면. 빛이 들어가야 클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가 믿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사랑일 수도 있고 소망일 수도 있고 뭐일 수도 있어도. 벽을 없애지 않으면 돼지 없는 돼지우리에 여물을 주는 거죠. 돼지는 돼지가 안에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돼지가 굶어 죽었겠죠. 돼지우리부터 열어야 되는 거죠. 돼지우리부터 여는 작업, 그런 게 아까 말씀드린 넓은 의미에서는 벽이 되고 있었던 것, 그것을 제가 통제라고 불렀습니다. 넓게 이렇게 들여 봤던 거죠. 통제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벽을 여는 일, 벽을 못 열면 몇 번을 믿은 들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또 하나의 통제와 악착이 되는 거죠. 집착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내 영혼이 있어’라고 100번을 믿어도, 내 영혼과의 통하는 소통의 문을 못 열었는데. 거꾸로 보면 어느 게 나인지를 떠나서 밖에 있는 몸이 나인지, 밥 먹는다고 하는 영혼이 나인지 다 떠나서 문을 열고 보면 알겠죠. 그런데 어쨌든 문을 여는 것은 길도 있겠고 어쩌다 열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문이라는 게 어딘가 얻어 터져 갖고 열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열어야 되는 부분도 더 크게 작용하겠죠. 여는데, 저는 그래요. 요즘 수행한다, 수련한다 하는데 저는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을 해요. 경제 법칙이 뭐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사실 그런 거 없죠. 그게 사람 죽이는 거죠. 적당한 비용으로 적당한 효과를 내야만 이게 맞는 거죠.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한 것이고. 그런데 그것을 바꿔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분들조차 평상시에 예보할 때 보면 최소의 효율성으로 이러거든요. 우리가 그렇게 까지 당하고 살아요.
아무튼 그것보다 더 심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분들이, 수행자들이 면벽 수행, 참선 이런 거 조금했다고 그 문을 열겠다고 하는 거예요. 절의 스님들이 아무도 성불을 못해요. 성불을 하려는 욕심에 가득 차가지고 있으면. 그 욕심마저 없는 분들은 아예 제치고. 성불하려는 욕심이 아니, 한평생 중이 돼 가지고. 요즘은 중이라고도 안 하고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스님이라고 불러요.
다 통제의 일선에 계시는 분들이죠. 종교와 이념, 도덕적 가치 등등등. 철학. 이런 것들. 다 어쨌든 통제 일선에 계시지만은. 아무튼 간에 그거 일생을 했다고 얻으려고요? 여는 건 여는 걸 해야죠.
감투 썼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감투 쓰고 성불하려고 하는데. 그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 경제학에도 없는 최소의 비용으로 경제학에도 없는 최대한의 비용으로 효과를 얻으려는 건데 가능하겠습니까? 너무 쉽게 생각해서. 아니 뭐 좀 숨 좀 고르고 몸 좀 움직인다고 해가지고 도를 틀 것 같으면. 그래 가지고 도를 진짜 트면 돈 벌고 앉아 있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저 여의도에 가서 정치하고 있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다 도 닦죠. 사회 운동할 사람 한 명도 없고요. 시민 운동할 사람 한 명도 없고요. 건강에 몰입해서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 한 명도 있을 거 없습니다. 그거 하면 도 트는 게 확실하다는데.
자기 혼자 도 튼다고 착각을 하고 최소의 비용을 들여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고 하는 상상 이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저는 그게 아니라 적당한 효과로 눈만 뜨고 가도 충분하다. 아름답지 않을까. 그 벽 열기가 쉬우면 쉽고 어려워 어려워도 애초에 벽이 생긴 대로 돌아가야 되겠죠. 벽이 원래 생겼던 자리로 안 돌아가고 나서 벽을 어떻게 하겠어요. 벽이 뭔지를 모르는데 최소한 자신의 기억이 생기고 나서는 벽은 생겼어요.
어머니로부터 듣는, 아이고 아이고 이름 부르는 그 순간부터 벽은 생기기 시작한 거거든. 내 첫 벽은 어머니였거든. 내 첫 은혜도 어머니지만 첫 벽도 어머니였거든. 내 첫 벽도 형제였고 두 번째 벽도 형제였고 두 번째 은혜도 형제였거든. 내 스승과 내 동료와 내 가족이 다 벽들이었거든요. 기억하는 순간부터는 적어도. 그래서 그 벽이 아닐 때의 시점에 나를 조금만 이해하면 어떨까 하는 거죠.
저도 제가 이런 얘기할 줄 몰랐어요. 웬만하면 이런 얘기는 제 집구석 안에서만 하지 안 해요. 사실. 이제 나이가 좀 더 차니까 오늘 못하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뭐 하자. 이런 생각입니다. 다 그런 심정으로 편하게 얘기 나누는 자리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이렇게 돌려서 예.
영혼의 관리는 영혼과 소통에서 시작
(수강생들의 안부를 묻고)
그래도 그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아요. 인구가 우리가 좀 적으면 뭐 많아도 그럴 수 있는데. 우리 인구 준다고 막 걱정이잖아요. 옛날 논어 보면 그런 거 나오잖아요. 나라가 살기 좋아지면 예전에는 좀 힘들었는데, 요즘은 사실 나라가 좋아지면 먼 데서 와서 그 나라 국민 하겠다고 하는 사람 천지인데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옛날 나라들이 고조선이고 이런 건데. 다 수많은 민족들이 모여가 한 나라 한 건데. 거기 좋으니까 와서 같이 참여해서 주체되고 이런 건데.
아니 세상에서 한국이 잘 살고 멋지게 살고 정말 이상형처럼 가깝게 살려고 애쓰고 접근해간다면 한국 국민 되려고 전 세계에 수십억에 줄 설 텐데요. 뭐가 걱정이 애 안 낳아가지고요? 아휴, 그 애가 나 열심히 낳아가지고 한 집마다 3명씩 낳아놨더니 나중에 세상이 바뀌어가 한국이 살기 힘드니까 딴 나라 국민 되겠다고 다 가버릴 건데.
잘 사는 나라 만들면 되는 거지. 애 많이 낳으라고 하는 것도 참 안 그래도 80억이 많아 갖고 숨 가쁜데. 그것을 보면 문을 안 여는 거예요. 국가는 뭔가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 그 안에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민족이라는 것만큼 통제하기 쉬운 개념이 없거든요. 그게 통제의 수단인 줄 누구도 생각 안 해도 저절로 그렇게 해요. 내가 사는 세상이 그게 편하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단일 민족이었다고요? 단일 민족의 역사 기껏 해봐야 1,000년, 1,500년? 몽골, 몽고라는 이름이 옛날에 몽골로 부르던 무굴이잖아요. 우리 무굴 제국이라고 들어봤죠? 역사에서. 몽고가 무굴이에요. 무글이 중국어로 표기된 게 몽골예요. 모고르가 몽골이에요. 무굴이 고구려예요. 다양한 민족들로 살았어요.
잘 살면 와요. 아니 우리가 너무너무 잘 살면 우리 어떻게든 통과해가지고 와서 여기 한국 영주권이라도 얻으려고 애 안 쓰겠어요? 지금은 영주권 갖고도 영주권 값도 못하니까 그렇죠. 우리 한국은 영주권과 시민권이 분리가 안 돼가지고.
범죄 저지른 사람도 국민, 열심히 사는 사람도 국민 아니 영주권은 몰라도 시민권에 해당되는 국민권은 일정한 의무를 다하고 일정한 노력을 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증거하고 거기에 의해서 범죄를 최소화한 사람들이 국민권자가 돼야 국민권이 그 보람 있죠. 지금 세금 수백억 안 내고도 국민 하잖아요. 온갖 범죄 다 저질러도 국민 한 사람, 그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언젠가는 이제 살기가 너무너무 좋아지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국민권이 별도로 나오겠죠. 그러면 그 국민권 얻으려고 세계 70억이 줄 설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줄 서는 나라는요. 국민은 5천만일지 몰라도 예비 국민이 50억이에요. 미래에는 예비 국민이 많은 나라가 제일 강국이에요. 현실 국민이 많은 나라가 강국이 아니라. 예비 국민이 많은 나라가 강국인데 현재 한국의 예비 국민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죠. 그 국민이 진짜 국민으로 될 수 있게끔 그 줄에서 안 빠져나가게끔 해도 괜찮을 겁니다. 이게 현실적인 얘기여서 아까 얘기한 좀 다른 통로의 이야기입니다만. 따져보면 또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지금 한국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줄 서 있는 예비 국민은, 우리도 한국 내에서 바라보면 이것도 잘못되고 있고 저것도 잘못되고 있고 많죠. 천지죠. 그런데 또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래도 ‘저 나라 가서 국민 하는 게 훨씬 좋겠어’라고 생각해서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제가 볼 적에 한 3~4억은 되지 싶어요.
그런데 거꾸로 볼까요? 중국이 한 14억 있잖아요. ‘기회만 주면 나갔으면 싶어’라고 예비 탈퇴 국민이 제가 볼 때 한 6억은 돼요. 어쩌면 넘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인건비 비슷한 거예요. 앞으로 역전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가 예비 국민을 전 세계에 뿌릴 수 있는 씨를 뿌리면 되지, 직접 많이 낳아야 될 필요가 없어요.
지금 뭐 옛날에는 비정상회담이 하는 어떤 젊은 외국인들 그 친구들 보면 우리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나라를 사랑하고 우리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더 애국자들 이예요. 그 중에서 일부는 귀화도 안 했어요. 예비 국민인데. 지금은 줄 서 있으면 기간만 차고 자격만 주어지고 애국가만 부를 줄 알고 한국어 할 줄 알면 귀화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무지무지 어려워질 수 있어요.
예전에 70~80년대 사법고시 보는 거 보다 한국 국민 되는 게 천 배, 2천 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돼요. 그래도 안에서는 계속 문제 생겨요. 여기서 보면 이 문제가 생기고 저기서 보면 이 문제가 생겨요. 누구 말만 떠나 우리가 코끼리를 눈 감고 만지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조금밖에 모르는 게 아니예요. 코끼리 귀만 만지고 부채다, 다리만 만지고 기둥이다, 조금만 아는 게 아니예요.
다양한 지식이 모이는 거예요. 코끼리 귀만 만지는 사람을 편협하다 할 수가 없어요. 코끼리 어차피 그렇게 살아요. 누구나 그렇게 살아요. ‘아, 귀를 만졌네’, ‘오, 존경스러워’, ‘다리를 만졌네’, ‘오, 존경스러워.’ 전체적으로 만져보지도 못하고 뭘, 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다 만져야 된다는 거 뭔가를 다 알아야 된다는 거 퀭하게 통달해야 된다는 거, 그래서 통달을 못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부분적인 모습을 존경하고 그 부분적인 모습도 개성이고 독특함이라고 인정해버리면 어느 순간 이 눈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한 겹 벗어질 수도 있죠. 막연하게 빛이 올 수도 있죠.
어떻게 그런 얘기하려고 오늘 이런 자리 장만했고 그런 자리인 줄 모르고 오셨으면 다음에 따라 오셔도 되고. 그래도 오세요. 다음에 더 재미있게 얘기해 볼게요. 그리고 점장님한테 말씀드려서 차도 더 맛있는 거 내보라고.
소통하며 잘 사는 나라를 만들면 되는 것
점장님: 맛있는 거 끓여봤습니다.
선생님: 사실 더 맛있는 건 없어요. 그 자리에서 더 맛있는 거지. 점장님 유튜브에 쓰셨나요? 점장님 얘기하던데 옛날에 맹사성이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느 농부를 만나서 소 두 마리가 있길래, 어느 소가 좋겠냐고 그랬더니, 일 잘하냐고 그랬더니 맹사성을 끌고 한참 가가지고. 재가 일 잘한다고, 왜 그런데 여기까지 가서 이야기하냐고 했더니 소 들을까 봐. 그런데 더 맛있는 차도 차 들을까 봐 무서워서 말 못하겠고.
점장님: 지유명차 차 다 맛있습니다.
선생님: 다른데 차도 맛있습니다. 단, 맛있게 끓이려는 마음이 추가되면 더 맛있습니다. 지유명차 차가 더 맛있었다면 지유명차 포차사들이 더 맛있게 우려서 더 맛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같은 차가 전 세계로 옮겨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이렇게 오늘은 줄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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