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가자
김재선 김진섭 마양일 박도서 백웅열 이성우 이영성 이종진 장기량 허헌구
1. 산행내역
미국에서 오랫만에 귀국한 양일의 합세로 화랑대역에 모인 친구들 모두 열명이다.
진섭이 3번출구 앞에서 우산 쓴 모습으로 한컷 하고 우린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출발한다.
공릉은 파주 삼릉 공 순 영릉 중 추존 왕비릉인 예종비 장순왕후의 공릉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맏 아들 의경세자(성종이 덕종으로 추존)가 요절하자 두째 아들 해양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한명회는 세째 딸을 세자빈으로 들여보내지만 산후병으로 요절하고 만다.
예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미처 추존할 사이도 없이 요절하여 조카 성종이 왕후로 추존하고 장순이란 묘호를 올린다.
한명회는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네째 딸을 왕비로 들여보내지만 후사 없이 그 또한 요절하고 만다.
이 어인 조화란 말인가 계유정난으로 정권의 중심에 떠올라 대대손손 권세를 누리려던 꿈은 하늘이 가만두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의 하늘은 정의가 싯퍼렇게 살아 있었는데 오늘날의 하늘은 무디어 진 것만 같아 답답할 따름이다.^^ㅎㅎ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만고불변의 진리의 잣대를 녹슬지 않게 하고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 까지도 숨쉬게 함이랄까..
공릉동을 설명하려다 먼 소리하는겨 내가 절로 나도 모르게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군 쯧쯧...^^ㅎㅎ
노원구의 이름은 고려 조선 때 강원북부 함경도 쪽에서 한양으로 오는 길목이여서 노원역이 있었던데서 유래한다.
일제 때 노해면 공덕리 태능리 였는데 서울에 편입 되며 태릉동이 되었다 공덕리 사람들의 반대로
두동네 사람들의 합의를 거쳐 공덕리의 공자(孔字)와 태능의 능(陵)자를 합쳐 공릉동이란 지명이 생겼단다.
인도를 따라 걷지만 가로수와 아파트 단지의 녹지구역에 자란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어 주어 하늘이 안보일 지경이다.
드디어 원자력병원 뒷편 공릉산백세문을 통과하여 백세까지의 건강을 보장받으며 잘 다듬어진 마사토 깔린 흙길을 걷는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우산 속 재잘거림이 옛날 등 하교길의 꼭 그 때 그 모습이다.^^
그리 가파르지도 않고 숲속에 뻗은 넓은 신작로 길 우산 속 빗방울 듣는 소리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픈 생각이 간절하다.
우중(雨中)이 아니라면 쉬어 갈 곳이 많지만 젖어 있는 상태라 우린 제법 너른 사모정에 자릴 잡는다.
못다 한 말이 머 그리 많은지 만나기만 하면 왁자지걸 후후 하하 그냥 참여만 하여도 웃음 꽃 끝이 없다.^^
종진이 내 놓은 수박 압권이고 진섭이 내 놓은 현미 가래떡 출출한 뱃속 달래기엔 그만이다.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친구 집에서도 호사를 누리누만 챙겨주는 사모님들 참으로 감사하구먼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오는 날은 쉬지 않기 때문에 산행 시간이 짧아질 수 밖에 없다.
삼육대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잠시 하산하다 보면 불암산 정상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안개에 가려 있다.
우린 다시 삼육대 제명호 정자에 자리 잡고 또 수다를 떤다.^^
남자들의 수다도 만만치 않지만 이야기의 소재는 아마도 여자들 보다는 무게가 훨씬 더 나갈걸로 생각한다.ㅎㅎ
제명호는 삼육대 전신인 평남 순안 의명학교 설립자 미국인 선교사 하워드 리(한국명 이희만)의 아들
이제명(미국명 제임스 밀턴 리)이 1953년 미 공병부대의 도움으로 만든 인공호수를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명명한 이름이다.
그는 1949년 지금의 캠퍼스 자리(노원구 공릉동)의 토지를 사들여 이전하고 교명을 삼육신학원으로 개명 초대원장이 된다.
1954년에는 필리핀에 대학을 설립하는 등 아시아 교육발전에 공헌하였고 금년 2월 19일 102세로 미국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다음 손님들에게 방(제명정) 빼주고 삼육대학교 캠퍼스를 걸어나오며 교문 안쪽 소나무 군락을 보며 감탄한다.
조선 선비의 상징 몸둥이가 붉은 고유의 소나무 강송 족히 칠팔십에서 백살도 넘어보이는 나무들 능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삼육대 교문을 조금 걸어나와 우리는 강릉(康陵)으로 들어가며 능의 주인 중종의 아들인 명종을 이야기한다.
조선의 측천무후 중종의 제2 계비 문정왕후를 모후(母后)로 둔 명종 어미 말을 안 듣는다고 종아리 걷고 매 맞는 임금이였다.
모후가 홍서하고 2년후 명종마저 승하하며 죽어서도 어미 치마 폭을 못 벗어나고 발치에 묻혔으니 팔자도 기구하다.^^
친정을 펼쳤으나 제 뜻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 하고 어쨌거나 명종으로 적자(대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끝나고 말았다.
비도 오고 능상도 천막지로 덮여 있어 관리인이 능침에 오르는 것을 불허하여 안내판 앞에서 머물다 물러나왔다.
꼭 삼년전 2010년 7월 유적답사로 태 강릉을 찾았을 때 뒷풀이 장소였던 담터고개추어탕 집을 향하여 발길 옮긴다.
우린 안내에 따라 2층에 자리 잡고 미꾸라지 튀김을 시키고 영성이 도서를 위해 아껴 두었던 죠니워커 블루라벨을 뜯는다.
바텐은 무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섭이 맡아 그라스에 따라 주는 위스키를 들고 영성의 진한 우정과 건강을 위하여 건배!
삼계탕과 추어탕 이번엔 몽땅 통으로 하고 막걸리 소주 부어라 마셔라 왁자지껄 우리들 판이다.
끝날 무렵 오늘은 도서가 내겠다고 하여 기본을 제한 오버 되는 것만 계산하라고 진섭이 모아 넘긴다.
호프회장 기량이의 꼬임에 홀라당 하여 봉화산 산행 때
기량이의 주선으로 뒷풀이 했던 그때 그 배 과수원에서 맥주 독에 빠진다.^^ㅎㅎ
이차는 없다고 줄행랑 쳐야 다음날이 편한데 이 미련한 인간은 아직도 헷가닥 할 때가 있어 곤욕을 치른다.
넘침은 모자람 만 못 하다고 그렇게 되 뇌이지 만 촌 넘 맹서 골 백번이라고 이 어리석은 넘 어이 한단 말인가...^^ㅎㅎ
하해와 같이 마음이 넓은 우리 54친구들이 있어 괴로워도 항상 즐거움이 함께 하는 오늘도 그런 행복한 하루였다.
함께 걸어준 친구들 참으로 고마웠고 공릉산 백세문을 통한 우리가 걸었던 그 길 오래오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라...^^
친구들 잘 들어 갔겠지?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낄낄 대 보세나~~~
첫댓글 비가 와도 노인네들은 갑니다 !!!.
건강하게 산에 잘 다녀 백살까지 살 친구들 자칭 노인네란 말쌈 삼가했으면!!!
비오는 날 산행에 즐거워 하는 젊은 노인네들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