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
영국의 젠틀맨 계층의 총칭. 원래의 뜻은 <가문이 좋은 사람>에서 유래하며, 넓게는 귀족도 포함한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귀족과 요먼(yeoman) 중간에 위치하는 신분집단을 가리킨다. 중세 후기에 기사(knight) 가운데 군역면제금을 지불하고 군역봉사의 의무에서 해제되어, 지방에 토착해서 중소지주가 된 사람들이 젠트리의 주체를 이룬다. 그들은 기사와 함께 대영주(大領主)인 귀족에 대항하면서 왕권에 접근하여 치안판사로서 지방행정을 무보수로 담당하거나, 주(州)를 대표하여 하원의원에 선출되는 등, 지방사회의 명망가로서 독특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젠트리도 그 내부는 배러닛(준남작)·나이트(기사)·에스콰이어(향사)·젠틀맨으로 세분화되고, 배러닛과 나이트는 오랜 가문을 표시하는 문장(紋章)을 가지며 경(sir)이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수도원이 해산된 후 1세기 동안 귀족과 요먼의 쇠퇴와는 달리 젠트리는 발흥의 시기였다고 하는 R.H. 토니의 학설은 제2차세계대전 뒤 영국 사학계에 젠트리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문제가 된 그들의 상승원인이 어떻든지간에, 그 시기에 영국의 지배사회계층의 교체가 있었고 젠트리가 근대영국의 기수로서 실권을 잡았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젠트리에는 지주 이외에도 성직자(聖職者)·현직관리자·법정변호사·내과의사 등 전문직도 포함하게 되었고, 상공업분야에서 부(富)를 축적한 사람이 토지를 구입하여 젠트리로 인정받게 된 사람도 많아져서 점차적으로 본래의 신분계층적 개념이 희박해짐에 따라 젠틀맨은 예의 바른 교양인이라는 의미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요먼
봉건사회 해체기에 나타난 영국의 중산농민. 독립자영농민이라고 번역된다. 어원은 <젊은이(young man)>가 줄어서 된 것이라고 한다. 14∼15세기에는 연수입 40실링 이상을 가진 자유토지보유농(free holder)을 가리켰다. 그들은 주에서 의원선출권을 부여받고 배심원으로 지방행정에 관여하였으며, 백년전쟁에서 영국군의 정예로서 칭찬받았다. 그 무렵 진행중이던 봉건제 경제의 해체와 더불어 부상한 등본토지보유농(copy holder)과 일부 정기차지농(lease holder)이 이 계층에 추가되어, 요먼은 젠트리와 영세농의 중간을 차지하는 광범한 농민층을 가리키게 되었으며, 15세기 중엽에는 잉글랜드·웨일스 토지의 약 1/5을 보유하였다. 튜더왕조 이후의 절대주의시대에는 농업 경영과 모직물제조업 경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나타나는 한편, 인클로저(에워싼 토지)의 진전으로 토지를 빼앗기고 고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도 많아져서 요먼계층에는 양극분해가 일어났다. 특히 요먼의 핵심 인물이었던 자유토지보유농의 몰락은 18세기에 대지주의 과두지배강화로 한층 촉진되었다가, 19세기 자본제농업이 확립됨에 따라 실질적으로 소멸하였다.
-출처
야후 지식 검색(http://kr.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