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의 <뮤지칼 베토벤>-예술의 전당에서 불멸의 사랑과 불멸의 음악가 베토벤을 만나다
무대의 영상은 화려했고 석양녁과 달빛이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흘러나오고
청각을 잃고도 사랑의 소리는 들을 수 있네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음악에 베토벤은 언제나 최정상에서 함께하고 있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가 2015년 2위에서 2021년에는 6년만에 1위 자리를 되찾았다.
KBS조사가 실시되던 1982년 조사에서는 교향곡 9번 ‘합창’이, 2009년 조사에서는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 1위를 차지하는등 꾸준히 1위를 고수했지만 2015년에만 1위를 라흐마니노프에게 자리를 물려줘 음악애호가들을 당혹하게 했다.(환경경영신문 2022.1.4.일자)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교향곡 9번 합창을 듣고 있다. 베토벤곡 중에는 청년시절에는 소나타 14번 월광, 교향곡 5번 운명을 즐겨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나 교향곡 9번 합창도 즐겨 듣는다.
그 베토벤이 104년만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섰다.
베토벤을 뮤지칼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운명과 맞서 싸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베토벤(1770년 12.17일 독일 본 출생-1827년 3월26일 오스트리아 빈 사망)의 뮤지칼은 <엘리제를 위하여>가 발표된 1810년에서 1812년 사이에 펼쳐진 삶을 그렸다.
이 시절은 베토벤의 음악세계가 절정기에 오르던 시절이지만 청각을 잃어가던 시기이면서 여인과의 격한 사랑의 불을 집혀가던 시절이다. 뮤지칼의 극본은 극작가 미하헬 쿤체가, 무대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작곡 및 오케스트레이션은 실베스터 르베이가 담당했다,
뮤지칼 베토벤의 화려한 영상무대는 유독 짙은 노랑과 붉은 색이 작열하는 노을과 다뉴브강물결, 비와 번개, 그리고 주점과 공원의 영상미가 돋보였다.
극작가 미하헬 쿤체는 베토벤이 1802년 10월에 남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The Heiligenstadt Testament"등을 참고하여 작품을 그려갔으리라 본다.
무대 배경보다 10여년전에 남긴 베토벤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담겼다.
<동생 카를과 ㅇㅇㅇ 베토벤에게,1802년>
지금까지 여섯 해 동안 난 절망적인 고통을 겪어왔어. 몰지각한 의사들 때문에 고통이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는데도 나아질 것이란 거짓에 속아왔지. 결국 이 병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나는 동료 인간들과 편안히 있을 방법이 없고, 세련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으며 사상을 교환할 길도 없어. 나는 추방된 사람처럼 외톨이로 살아야 해. 안녕, 서로를 사랑하라. 내 친구들에게 특히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슈미트 박사에게 감사한다. L공작에게서 받은 악기를 너희중 하나가 간직했으면 한다····”와 같은 내용이다.(환경경영신문 2022년 1월22일자)
무대의 배경인 1810년에서 1812년은 1807년 작곡한 ‘교향곡 제6번 전원이 작곡된지 3년 후의 일이다.
베토벤의 전기 작가인 빌헬름 폰 렌츠(Wilhelm von Lenz, 1809∼1883)는 베토벤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세 시기로 분류하였는데 무대위에서 펼쳐진 시기는
제2기(1804∼1816)로 개인적·주관적인 표현력이 상승하고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현하는 외향화시기 period of externalization로 교향곡 3번∼8번, 피아노소나타 중기 12곡이 포함되고 있지만 뮤지칼의 무대가 펼쳐진 2010년과 2012년의 작곡한 작품은 <엘리제를 위하여>가 유일한듯 하다.(환경경영신문,2022년 2월19일자)
루드비히 놀(Ludwig Nohl)은 베토벤의 자필 악보의 제목이 "Für Elise am 27 April [1810] zur Erinnerung von L. v. Bthvn"로 되어있을 것이며, <엘리제를 위하여>가 맞다고 했다. 그러나 엘리제(Elise)의 원명은 ‘테레제Therese’이지만 베토벤의 글씨가 워낙 악필이라 후에 출판한 루드비히 놀이 잘못 읽어 엘리제라고 붙여졌던 제목이라고 밝히게 되어, Für Elise가 아니라 Für Therese 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토벤이 1810년 5월에 청혼하고 거절당하기 직전에 그녀에게 보낸 사랑의 음악 편지도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18세의 테레제에게 바친 베토벤의 깊은 사랑을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이름이 바뀌었어도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엘리제로 바뀐 테레제가 베토벤에게 함몰되어가며 세 자녀의 엄마로 현실과 사랑에 고뇌하는 모습이 무대위에서 안개처럼 피어 오른다.
독일의 음악학자 클라우스 마르틴 코피츠(Klaus Martin Kopitz)는 ‘엘리자베스 뢰켈(Elisabeth Roeckel)이 바로 ‘불멸의 연인’이며 이 곡에서 말하는 엘리제다‘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것은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로지 진실을 아는자는 베토벤 뿐 이다.
베토벤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행동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혼수상태에서 갑자기 깨어나서는 하늘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음악에서도 그런 느낌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열정과 함께 찾아와 천둥과 번개가 빈의 하늘을 가득 채우던 1827년 3월 26일 어느 암울한 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위대한 악성은 떠나고 말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56년이라는 세월로 막을 내렸다. 링거 묘지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은 2만여 명의 군중이 애도하는 속에 영면에 들어갔다. 그의 <교향곡 제6번, 전원>의 4악장과 같은 날이었다(환경경영신문.2022년 4월2일)
무대의 마지막 결기는 천둥번개속에 땅 속에 묻히는 베토벤의 관이며 어느 여인이 헌화하는 장면이다.
<베토벤 음악 속 그의 영혼과 내면의 사랑이 주는 환희와 절망을 표현하기 위해 그의 음악을 사용하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헌신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실베스터 르베이)
(출연자: 박효신,박은태,카이,조정은,옥주현,윤공주,이해준,윤소호,김진욱,박시원,김성민,전민지,최지혜,이정수 외)
*에필로그
엘리제(테레제)와의 사랑은 사실상 이뤄질 수 없는 관계이다.
시대적 상황에서 엘리제는 드로스틱 남작의 부인(1816년 결혼)이지만 무대는 1810년에서 1812년 사이로 시대적 상황과는 배치된다. 하여간 베토벤은 시민(평민)출신이면서도 베토벤의 성품상 계급사회를 초월한 강렬한 짝사랑과 같은 사랑의 열기였다고 추정된다,
1810년 테레제에게 보낸 청혼의 편지에 "당신도 어느 정도는 날 생각하겠지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하겠어요. 나는 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깊이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베토벤에 대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그보다 더 자족적이고 활기에 넘치고 진실한 예술가를 난 본적이 없어. 그의 재능은 경탄스러웠네. 불행하게도 그는 철저하게 길들여지지 않은 성품이며, 세계를 그토록 혐오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그 자신에게나 타인을 위해서나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네. 반면 그에게는 용서해줄 요인이 아주 많고, 연민의 구실도 많은 것은 무엇보다도 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는 거네"라고 평하고 있다.
베토벤이 불멸의 여인들에게 헌정한 곡
<소나티나 F장조Sonatina in F major, WoO. 50>-「엘레오노레 폰 브로이닝Eleonore von Breuning」,
<월광 소나타>-「줄리에타 귀차르티Giulietta Guicciardi, 1782∼1856」,
네 손을 위한 6개의 변주곡 <나는 당신을 생각해요. 1803>-「요제피네 다임Josephine von Brunsvik-Deym, 1779∼1821」,
<희망에 부쳐서An die Hoffnung, Op.32>-「테레제 브룬스비크Therese Brunsvik, 1775∼1861」,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 von Drossdik, 1792∼1851」,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Geliebte, Op.98>-「안토니에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1869」
베토벤의 어린시절을 살펴보면 그는 아버지 요한 반 베토벤(Johann van Beethoven)과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nee Keverich) 사이에서 독일의 본(Bonn)에서 태어났다. 베토벤의 누나 루트비히 마리아는 태어나 곧 죽었고, 동생이 다섯 태어났지만 카스파르 안톤 카알(Caspar Anton Carl: 극에서 형제간의 갈등적 관계로 등장한다)과 니콜라우스 요한(Nikolaus Johann )둘만이 살아남았다. 베토벤은 13살이 되었을 때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으며, 16세가 되자 장남인 그는 집안의 생계를 떠맡아 힘들게 살았다.
할아버지는 본에 정착하여 합창단의 가수로 들어가 악장(Kapellmeister)을 엮임 하였고, 아버지 또한 합창단의 가수였던 탓인지 베토벤도 자연스레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처음에는 그의 가족은 매우 부유하였으나, 그의 할아버지가 1773년에 세상을 뜨고 아버지가 알코홀 중독에 빠져 생활은 점차 궁핍해지게 되었다.
베토벤의 첫 음악교사는 아버지였고, 궁정 오르간 주자인 토비아스 프리드리히 파이퍼(Tobias Friedrich Pfeiffer)가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그리고 친척 프란츠 로반티니(Franz Rovantini)에게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다.
’엘지제를 위하여‘는 피아노교습에서는 필수코스이지만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곡중에는 가장 쉬운 곡이다.
골목길에서도 종종 연습하는 음율을 감삼할 수 있지만 학교 수업시간과 쓰레기 청소차가 지나갈 때에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1798년<피아노소나타Klaviersonate 제8번 비창, C단조 Op.13
*1801년 <피아노소나타Klaviersonate 제14번 월광Mondscheinsonate; Sonata quasi una fantasia, C#단조 Op.27-2>
*1807년 <교향곡 제6번, 전원Pastorale F장조, Op.68>
*1809년 <피아노협주곡Klavierkonzert 제5번 황제Kaiser, Eb장조 Op.73>
*1810년<피아노솔로를 위한 바가텔Bagatelle A단조 WoO 59>일명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1824년 <교향곡 제9번, 합창Choral, Op.125>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환경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