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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타임의 대명사, 숏폼 비디오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적당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의미한 일을 하는 상태를 ‘킬링 타임’이라 부른다. 킬링 타임도 시대마다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데, 과거 콘솔, 아케이드, 그리고 PC를 중심으로 구성됐던 미디어 게임이 스마트폰 게임으로, 만화책이 웹툰으로, TV예능 프로그램이 유튜브 콘텐츠로 그 생태계가 옮겨졌다. 가장 최근에는 ‘숏폼 비디오’1가 킬링 타임의 대명사로 등극했다. 숏폼 비디오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플랫폼에 있는 짧은 형태의 영상으로, 2010년대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앱 비교분석 서비스 ‘와이즈 앱’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숏폼 비디오 플랫폼 이용 시간이 OTT 이용 시간보다 5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OTT의 출현으로 극장 영화나 브라운관 TV를 찾는 사람이 크게 감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OTT보다 더 강력한 미디어가 출현한 것이다. 이는 요즘 세대의 미디어 시청 행태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다(<그림>).
실제로 많은 청년과 청소년이 여가 시간만 되면 숏폼 비디오(이하 ‘숏폼’)를 재생하고 있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2에 특화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숏폼은 제작자에게도 시청자에게도 빠르고 간편하다는 게 큰 이점이다. 우선 제작 과정에 별다른 편집 기법이 필요하지 않기에, 비록 영상 퀄리티는 낮지만, 촬영만 하면 쉽게 업로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숏폼에도 다양한 효과가 더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영상에 비하면 간단한 편이다. 이렇게 15초에서 1분 이내로 편집된 영상은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는 매체가 된다.
이러한 특성이 반영돼 유튜브 생태계도 크게 달라졌다. 이용자들이 영상을 시청할 때, ‘쇼츠’3를 맛보기로 먼저 체험하고 더 관심이 생기면 본 영상을 클릭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숏폼이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예고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1분 1초를 아까워하고, 일상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숏폼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하게 도파민을 충족시킬 수 있는 놀이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별다른 수고나 노력 없이도 엄지손가락만 슥슥 내리면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긴 영상에 비해 짧은 시간 안에 서론부터 결론까지 다 들어가야 해서, 영상이나 멘트가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바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는 ‘반복적 환경’은 그 자극을 더욱 강화시킨다. 여기에는 알고리즘 기술도 한몫하는데, 이용자가 관심 있는 정보만 시청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무한 스크롤’4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일상의 지속적 자극은 스마트폰에 대한 과의존과 중독 증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도파밍’5 중독으로 명명하며, 뇌를 망치는 심각한 문제로 인지한다. 실제로 국내외 할 것 없이, 10대 자녀들의 숏폼 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크게 증가했다.6
숏폼 비디오의 암과 명
이렇듯 숏폼 열풍이라는 트렌드 이면에는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서려 있다. 스마트폰 이용 연령대가 점점 어려진다는 것도 문제인데, 동시에 고연령대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도파밍 중독 증상이 전 세대적인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현상과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교회가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대했던 방식처럼, 무조건적인 비판과 금기로 이끌어간다면 그것은 올바른 고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현대인의 삶의 한 부분이 된 뉴미디어를 전부 악한 것으로 치부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좋은 대안일 수 없다. 그렇다면 교회는, 오늘날의 숏폼 열풍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먼저 교회는, 숏폼이 오늘날 정보를 전송하는 ‘중요 미디어’가 됐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은 영화 소개, 여행 정보, 상품 및 맛집 리뷰를 전부 숏폼에서 검색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과거에 입소문에만 의존했던 홍보 전략이 네이버 블로그 협찬 글로, 다음으로는 유튜브 영상 광고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숏폼으로 넘어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도 숏폼으로 몰리고 있다. 돈이 된다는 것은 그곳에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이고,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오늘날 대중에게 숏폼은 단순히 놀이 문화를 넘어선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읽히고 있다. 이 변화를 인식한 몇몇 기독교 기관이나 교회 등은 ‘쇼츠’, ‘릴스’, ‘틱톡’ 등을 선교적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교회의 단 위에서 선포된 말씀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하루 1분 묵상’으로 제작하기도 하고, 유행하는 ‘챌린지’에 복음적 메시지를 가미해 활용하기도 한다. 복음 선포를 뉴미디어라는 새 도구에 담아 전달하려는 영리한 노력이다. 그렇다면 요즘 청년들은 중요 미디어가 된 숏폼을 어떻게 적극 활용하고, 또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면,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즉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에 대한 내용을 솔직하게 담은 콘텐츠를 종종 만날 수 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SNS는 가장 좋은 부분만 골라서 내세우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릴스를 통해 짧고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페이지가 늘어났다. 과거에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들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하기 어려워했는데, 요즘에는 육아 과정을 공유하며 같은 상황에 있는 부모님이 댓글로 서로를 격려하는 페이지도 생겨났다. 이러한 숏폼 문화로 인해 SNS가 용기와 소통의 장으로 변모했다.
더 나아가, 요즘 청년들은 숏폼을 배움의 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어학·전문기술·요리·경제 뉴스까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배운다. 과거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를 신청해야만 들을 수 있었던 전문가들의 가르침이 숏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령, 엑셀 기능 한 가지를 배우기 위해 15-20분짜리 영상을 다 보지 않아도, 1분 이내의 집약적인 배움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자신이 가진 정보와 지식을 무료 콘텐츠로 제작해 공유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채널을 찾아 팔로우만 해 두면, 시·공간을 초월한 일상에서의 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숏폼을 ‘삶으로 소통하는 장’, ‘지식을 공유하는 장’으로 적극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다.
숏폼 비디오, 그 이면에 있는 열망
분명 숏폼의 전달 방식이 사람들의 뇌를 망치는 것은 맞다. 또한 여기에는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유해한 콘텐츠가 꽤 많은 것도 사실이다. 허위 광고, 가짜 뉴스, 음란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악의적인 사람들이 숏폼까지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명과 암이 존재하듯 숏폼이라는 뉴미디어에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누가’, ‘어떤 의도로 제작했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와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교회는 숏폼 열풍 현상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숏폼이 왜 오늘날 미디어의 중심이 됐고, 대중은 이를 어떻게 재생산 및 활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시성비’에 맞춰진 미디어 시청 행태에는 현대인의 특성이 반영돼 있다. 불확실한 경기 전망, 불안정한 경제 소득이라는 공통된 시대적 경험으로 살아가는 청년 세대는 유난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되도록 일상에서의 작은 불안은 미리미리 해소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생각을 멈추고 무한 스크롤에만 의지하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던가, 시간을 아끼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맛보기를 먼저 경험하고 싶어 한다던가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예를 들면,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학원 등 정기권이 필요한 곳에서는 ‘3일 체험권’ 같은 상품을 내세워 고객을 모객한다. 맛집이나 팝업 스토어 같은 경우 ‘줄서기 앱’을 사용하는 곳이 더 큰 인기를 끈다. 드라마의 경우, 제작진이 나서서 ‘1-5회 요약본’, ‘결말 포함 몰아보기’ 등의 영상을 제작해 홍보하기도 한다. OTT 플랫폼도 재생 속도를 빠르게 변경할 수 있는 ‘배속 시청’을 찾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공감과 소통에 더 열광하는 추세다. 잘 짜여진 각본과 화려한 편집이 가미된 완성도 높은 영상보다는, 최대한 덜어내고 진솔하게 날것 그대로를 드러낸 콘텐츠를 선호한다. 이처럼 교회는 숏폼 열풍 이면에 있는 ‘힘과 시간은 덜 들이고, 실패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공감과 소통을 필요로 하는’ 대중의 열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지금껏 교회는 청년들에게 있어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하고, 조금 더 완벽하게 갖춰야만 하는 곳’으로 여겨지곤 했다. 실제로 교회에서 이뤄지는 예배나 모임, 프로그램에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이 덧대어져 있다. 어떨 때는 교회의 전통적인 형식이 본질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 공감과 소통을 막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 문턱을 낮추는 데 숏폼의 공식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미디어의 중심이 된 숏폼을 하나의 선교적 도구로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거나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선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교회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은, 전 세대가 숏폼 열풍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갖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미디어를 읽어 내는 문해력을 기르는 신앙 교육이 동반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숏폼 역시 소셜 미디어라는 한정된 장에서 알고리즘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즉 평소에 자신이 가진 취향과 정치적 성향 등에 맞게 취사 선택해 준 정보만 받아들이게 된다. 실제로 엘리 핀켈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알고리즘에 의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상대방과 견해가 다를 때 상대방의 정보는 무시한 채 적대감을 드러내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교회에서 바른 신앙적 가치관과 성경적 삶의 방식을 선포한다 하더라도, 미디어 매체를 통해 왜곡된 인식을 가진 성도들에게 복음이 잘 전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미디어 리터러시’7가 필요하다. 생명 죽임의 문화가 서려 있고, 폭력적이고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콘텐츠를 거부하고, 선한 콘텐츠를 선택해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올바른 성경적 문해력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영원히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대중문화 그리고 뉴미디어를 건강한 신앙적 기준을 가지고 바르게 읽어 낼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야 한다.
주
1) 숏폼 비디오 플랫폼으로는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이 있다.
2) 물건을 구매하는 데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되는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에 이어, 최근에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 ‘시성비’이다.
3)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숏폼 비디오 이름
4)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이란 사용자가 페이지 하단에 도달했을 때 콘텐츠가 계속 로드되는 방식을 뜻하는 용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내 숏폼 비디오 중독 증상을 일컬어 사용되곤 한다.
5) 쾌락, 즐거움 등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 ‘도파민’(Dopamine)과 수집한다는 의미의 ‘파밍’(Farming)이 합쳐진 신조어로 “도파민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6) 유지희, “짧으니까 더 못 끊겠어요”… “디지털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 한국경제, 2024.04.1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295964g
7) 미디어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인해 리터러시 개념이 더욱 확장됐는데, TV 등 기존 미디어에서는 ‘정보 파악 능력’이 중요하지만, 뉴미디어에서는 콘텐츠 활용 능력, 지식 정보의 공유 능력, 정보에 대한 ‘선택’ 능력이 강조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첫댓글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숏폼의 시대에서 기독교인이 갖추어야 할 올바른 성경적 문해력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의 중요함을 느낍니다.
여기에서 성경적 문해력은 일단 올바른 성경읽기를 통한 것이 기본이겠네요. 오직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