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후드> 셀린 시아마 감독, 드라마, 프랑스, 113분, 2014년
폭력적인 오빠 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항상 주눅들고 눈치보며 소극적이었던 마리엠이
친구를 만나면서 한발짝씩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살기 위해 다시 또 다시 벗어난다.
마리엠의 꿈은 보통사람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업계로 가지 않고 일반고를 가고자 연거푸 유급에 매달린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일탈을 통한 자유를 체험하면서
보통삶에 대한 꿈을 하나둘 포기하기 시작한다.
범죄행위의 일탈조차 자유의 의미가 있음을 바라보는 셀린 시아마의 시선은
그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에 밀착되어 있다.
빅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바꾼 마리엠은 결혼해 아기에 매달리며
보통이 된 옛 멤버를 보며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다른 길임을 직감한다.
남자와 사랑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보는 일들....
그 동안 평범한 여성이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든 길을 거부하기로 한다.
19세기 로라가 인형의 집의 인형이기를 거부한 것처럼 21세기 마리엠은 빅으로 살기 위해 가출을 한다.
21세기 현대여성의 한 모습이다.
더이상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습.
이 영화에서 프랑스 흑인들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흑인은 프랑스 사회에 늘 있지만 주인공의 자리에 서보지 못한 존재가 아닌가?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하층민의 계급에 갇혀
흑인사회는 근육과 감정의 노골적인 힘으로 자신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가진자들은 교양이니 돈이니 과시할 힘이 많지만,
사회적으로 박탈된 계급의 하위문화는 직접적 물리력밖에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쉬울 리 없다.
마리엠의 가정 이름 대신 빅이라는 사회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자기 삶의 선택을 의미한다.
빅이 남성복장을 입고 남자로서 살아보는 것도 자기가 되고자 하는 시도였다.
셀린 시아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여성은 더 많은 결단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은 역시 시아마 감독답다.
보통의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 사랑하는 애인까지 떠나며 한바탕 울고
다시 미지의 영역으로 출발하는 빅의 모습을 통해 인간 개인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걸후드라는 말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냥 보이후드를 소년시절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립적인 말같이 느껴졌던 그 말의
전제 자체가 이미 남성중심주의를 드러내고 있는 말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여성의 성장영화로서 이 영화는 제목부터 문제제기적이다.
갈취, 절도, 밀매, 섹스, 가출 등의 가치판단보다 그 안의 동기를 새롭게 해석하고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백인의 시선도 아닌 흑인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시선의 전환 자체가 혁명적이다.
셀린 시아마는 그저 바라본다. 외치지 않는다. 그저 깊게. 감정을 읽고 공감한다.
그것이 셀린 시아마 페미니즘 영화의 전략이다.
= 시놉시스 =
홀로 생계를 이끄는 엄마를 대신해 두 동생을 보살피고,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오빠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마리엠'은 파리 외곽에 살고 있는 16세 소녀다.
집과 학교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그는
자유로운 영혼의 세 친구 ‘레이디’, ‘아디아투’, ‘필리’를 만나
‘빅’이라는 이름을 얻고 차츰 변화해 나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