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실로 오랫동안 병원에 계시던 큰 오라버님께서 새해 첫 날 임종을.
결혼도 못하고 간 오라버니이지만 남은 삼남매는 우리끼리 예를 갖추기로 하고,
그냥 이틀밤을 동생내외와 친정조카들이랑 두런두런 옛 이야기하며 영안실에서 오라버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오라버님 고운 옷으로 마지막 단장을 하고 화장이 마음에 많이 걸렸지만 화장을 하여
영양군 청기면 공익골 골짜기에 작은 비석하나 세우고 아버지 밑에 안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곤 막내동생의 마음으로 의성고운사에 오라버님의 위패를.
다음 날 새벽 웬 눈이 그리 많이 나리던지.
서울로 돌아와 이틀동안 시름시름 잠만 자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려봅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새해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 했네요.
오르리 회원 여러분!
2010년 庚寅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2007년에 쓴 오라버님에 관한 글 첨부합니다.
물외인物外人
배영숙
오빠가 정신을 놓은 지 벌써 3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리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오빠는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무슨 일이 오빠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오빠는 마치 먼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가족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혼자서 바둑을 두거나 동네 이곳저곳을 헤메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중학생이었던 나는 두려움으로 오빠를 살피곤 하였다.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가 푸닥거리까지 여러 번 했다. 밑의 자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오빠에게만 몰두하기를 몇 년. 가세는 점점 기울고 엄마도 지쳤다. 오빤 결국 병원의 신세를 지게 되었고 엄마도 시름시름 앓아 입·퇴원이 잦아졌다. 간혹 병원의 오빠를 찾아가면 너무 선량해서 탈이다. 나에게는 물론 조카들에게조차 깍듯이 예대를 한다. 세상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끼어 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차려 입고 행사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문득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기 엄마 오빠나 잘 모시지’ 내 가슴 밑바닥에서 누군가 수군거리곤 한다. 사는 것이 뭔데……. 펑퍼짐한 옷 입고 살림만 하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모처럼 연휴에 오빠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오빠는 TV 앞에 가부좌 틀고 앉아만 있을 뿐인데도 같이 있으니 훈기를 느낀다. 불안스레 피아노 앞으로 자꾸 가기에 우리 가족사진을 보는 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빤 병원에서 담배를 2시간 마다 피우는데 여긴 집이니까 1시간 마다 피워도 된다면서 시간을 재고 있었다. 훈련이란 무서운 것 같다. 수없이 담배를 피우고 콜라를 몇 병씩 마시는 일 외에는 무념무상이다.
행복은 작은 것에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오빠를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해본다. 송이쇠고기 복음을 하고 생나물에 된장찌개를 끓인다. 별로 맛있게 먹는 것 같지 않는다. 뭘 해드릴까 궁리를 하다가 오늘 아침에는 개두릅을 새콤달콤하게 초고추장에 무치고, 산나물은 된장을 조금만 넣고 무쳤다. 오빠는 입맛이 도는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아이들 어릴 적 정성껏 요리를 해주면 맛있게 먹을 때 느꼈던 행복을 다시 맛본다. 그냥 보내기에 섭섭해서 오빠에게 며칠 더 같이 있자고 했다. 오빠는 무표정하게 병원으로 들어가시겠단다. 언제 또 나오게 될지 모르니 동생 가게로 나가 외식을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그냥 집에서 먹고 들어가겠단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는 아버지가 면회 가면 퇴원시켜 달라고 그렇게 졸랐었다. 한번 외출하면 병원에 안 들어가려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제는 겨우 이틀 묵고 더는 못 있겠는지 병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조른다. 아버지의 죽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동생하고 아버지는 역시 다른가 보다. 아니면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그곳을 떠나면 불안함을 느끼는지. 순하고 애기 같은 우리오빠! 잔뜩 교만 해질 수 있는 나에게 뭔가를 일깨워 주는 우리오빠! 그러고 보니 50 중반을 넘긴 오빠의 얼굴에도 잔주름이 그득하다. 그래도 이번 연휴 3일. 나는 오빠랑 함께 지내게 되어 행복하다. 마치 시끌벅적한 세상이 저만치 멀어진 듯하다. 모처럼 주부로만 있게 해준 여유가 나를 맑게 해준다. 점심 준비를 서둘러야겠다. 이제 점심 먹고 3시까지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나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레부턴 행사가 줄줄이 있다. 차려 입고 나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고 아는 체하고…. 그렇게 나는 나의 또 다른 직무인 이웃들에게로 돌아가야 하리라. 오빠 덕분에 조금은 더 따뜻한 손과 밝은 웃음으로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2007
첫댓글 허걱,,,그러셨군요...요사이 영숙님이 안뵈어서 혼자 마니 궁금했어요...까페 왜 안오실까..하고요.....
영숙님의 오빠... 참 좋은 곳에 가셨겠죠,,,병원보다 더 좋은......
명복을 빕니다...
아이쿠

많이 슬프셨겠어요

오라버님은 분명 좋은데로 가셨을 겁니다...
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몰랐네, 몇번 뵙는데 모두 그림도 잘 그리시고 아까운 분이라고 하였는데 그리 가셨네요 괜히 눈물이 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이하오 내 중량에 넘는 짐을 지워 줄 만하니 지워 주는 것이지요. 지난해는 큰일들이 너무 많았네요. 담담히 가는 걸음이 곱습니다. 새해가 밝게 열리네요. 가 보입시다...뚜벅뚜벅...
고인의 명복 빌어드리며 착한일 하셨군요..
저도 몇일전에 외할머니를 차디찬 땅속에 묻었습니다. 국민학교 다닐때 어머니 몰래 100원 동전을 저의 손에 쥐어주시며 공부 열심히 하라시던.....언제나 그자리에 계실줄로만 알았는데......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어서 슬픈거 같아요. 영숙님도 오라버니와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저보다 더 많이 가슴이 아팠을것 같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