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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아서인가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때 그때의 왕이
누구였지요?
(형제자매들: 고레스)
고레스,
영어로는 키루스예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인데,
‘키루스(고레스)왕의 지혜가 필요한 때’라는 제목의 신문사설이 있었어요.
고레스왕이 지혜가 아주 좋았던 모양이예요.
처음에는 키루스라고 해서 그냥 그냥 읽었었는데, 알고보니 고레스 왕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중앙일보신문에 나왔는데, 중동학을 하시고 특훈 교수로 계시는 분이 쓰신
글이예요.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어서 여러분에게 읽어드리려고 해요.
한글로 먼저 읽어드리고, 요약해서 영어로 해 드릴게요.
제가 키루스 키루스하면, 고레스왕인 줄 아시면 되겠어요.
제목 : 키루스 대왕의 지혜가 필요한 때
지금 걸프해역에서는 석유 수출을 원천차단하려는 미국과 이에 맞서는 이란 사이에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다. 이란 핵시설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이란과 거래하고
있는 2000개 이상의 우리 기업의 피해가 걱정이다. 전면전 가능성은 낫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기 국면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 (기원전 559~530) 대왕의 지혜와
포용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나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키루스 대왕이었다. 세 대륙에 걸쳐 28개의 군소국가들을
거느린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키루스의 통치 기본은 종교적
관용과 종족적 융합이었다. 피정복 민족들을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우대하였으며
엘람어, 바빌론어,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모든 공문서를 세 언어로 작성하게
했다. 제국 내 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수백명의 전문 통역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였다.
승자의 언어와 종교를 타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았던 키루스의 통치는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리더십이었다.
그런 자유 정신은 결국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 공표로 이어졌다. 흔히 ‘키루스의
원통’이라 불리는 인권선언문에는 놀랍게도 노예제도 폐지와 노동자의 임금 지급,
여성인권의 신장 같은 혁명적인 조항이 들어있다.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그 사본은
유엔본부에 걸려있다.
키루스 특유의 관용 통치는 바빌론 유수에서 최고의 빛을 발했다.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에게 포로로 잡혀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을 해방해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밀린 월급을 지불하고 귀환 길의
안전을 확보해 주었으며 신성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다. 그리스 역사학자
크세노폰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복속민들에게도
‘Father(아버지)’였고 ‘빼앗는 자가 아닌 베푸는 자’로 칭송받고 기억되었다. 영국
역사학자 찰스 프리만조차도 키루스는 업적과 인품 모든 면에서 알렉산드로스를 훨씬
능가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구약성경 에즈라(공동번역 1:1~4)에는 키루스가 ‘고레스’로 나오는데,
바빌론 유수로
바빌로니아에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성전을 세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구약성경 이사야(45:1~4)의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라는 구절 등을 통해서도 키루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준 관용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키루스의 통치와 인재양성을 통한 제국 번영의 핵심은 크세노폰에 의해 저술된
『키루스의 교육』에 잘 나타나 있는데, 세계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 마키아벨리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키루스는 동쪽의 마사게타이족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기원전 530년 8월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시라즈 근교의 파사르가다에로
옮겨져 6층의 기단 위에 투박하지만 장중한 석관 속에 안치되었다. 무덤 형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엘람 시대의 지구라트를 닮았다. 세부 건축 장식과 디자인은 엘람,
바빌론,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 아나톨리아 형식을 다양하게 결합하여 다문화
융합이라는 그의 통치 철학이 무덤양식에도 그대로 표현되었다.
파사르가다에 일대는 ‘파라다시어스’로도 불렸다. 오늘날 천국의 정원이란 의미의
파라다이스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장미와 재스민이 만발한 파라다이스는
오아시스의 분수가 샘솟고 과일 향이 그득한 유실수가 줄지어 그늘을 이루며, 아름다운
새소리와 함께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함께 잘사는 이상향을 꿈꾸었다. 키루스의 통치 목표였다.
『쿠쉬나메』를
비롯한 이란의 많은 고전 작품에는 놀랍게도 파라다이스의 또 다른
이상향으로 신라를 지목하고 있다. 핵 문제를 둘러싸고 아시아의 동서 끝에서 벌어지는
파라다이스 위협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희수 한양대 특훈교수·중동학
[출처: 중앙일보] [이희수의 공존의 문명] 키루스 대왕의 지혜가 필요한 때
....................................
고레스에 대한 얘기예요.
아마도 고레스왕이 정통 페르시아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으로 인간의 권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런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성전을 재건축 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이런 배경을 알고 성경을 보면 훨씬 도움이 되겠어요.
지금까지 고레스(키루스)왕에 대한 역사를 읽어 드렸어요.
***어제 잠깐 얘기하기도 했어요.
며칠전에 jn자매님이 간증 올린게 있어요.
‘누가 나의 선한 사마리아인 인가?’라는 제목으로 올리셨어요.
제가 그 간증을 읽으면서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제가 굿 사마리탄에 대해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자매님이 아직 이해를 못하셨거나, 아니면 그 스케치를 아직 읽지를
않으신 것 같았어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뭐예요?
누가 지나갔지요?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형제자매들: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네,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율법사의 질문이 뭐였어요?
(형제자매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나이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느냐~
율법사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나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어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이 스토리를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나서 예수님이 이 율법사에게, ‘누가 강도맞은 자의 이웃이냐~?’라고
물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애들도 대답하겠어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물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no, 아니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율법사예요.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지식이 풍부한 선생이예요.
그런 선생에게 ‘누가 강도맞은 자의 이웃이냐~?’라고 묻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질문일 수 밖에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쩌면 하나님이 다른뜻으로 질문하셨는데,
작가가 이런식으로 쓴게 아닌가 싶어요.
왜냐하면 초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잖아요~~~
일반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율법사에게 그런질문을 하신다구요~~?
그래서 그때 제가 뭐라고 했어요?
원래는 예수님이 뭐라고 하신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예수님이 선생인 율법사에게 말해요.
“율법사야, 네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줄거니~?”
“이 세사람 중에 누가 저 사람(강도맞은자)을 자기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다시말해서, 강도맞은 자에게 “네 이웃이 누구냐~?”라고 묻는게 아니라,
“세사람 중에서 누가 저 강도맞은 사람을 자기 이웃이라고 생각했을까?”
라고 묻는 거예요.
예수님이, 강도맞은 자에게 쟤 이웃이 누구냐? 라고 하는 질문을 율법사에게
할 필요가 없잔아요~
그러니까 네가 강도맞은 자에게 가서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거지요.
“강도맞은 자에게, 네 이웃이 누구냐~~”가 아니예요!!
“네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라는 뜻이예요!!
이것을 확실히 구분하셔야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줄까~~”라는 질문이었어요.
여러분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저 강도맞은 자에게 얘기하는게 아니예요.
여러분이 강도맞은 자가 아니예요.
아직도 여러분이 강도맞은 자의 자리에 계세요?
아직도 여러분이 강도맞은자로 생각하시고, 누군가를 찾고 계세요?
Too bad~~
(이때 엄마와 함께D자매가 들어와, 여호수아형제님께 인사를 했음. 그 후에~~~~~)
어~ D자매님 얼굴을 보세요~
금가루가 있어요~~ 많아요~~~(하하)
엄마(I자매)하고 같이 와서 그러나~~~(하하하)
(형제자매들이 여기저기서 와서 D자매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그런후, 자매는 자기도 보고 싶다며 화장실로 자기 얼굴을 보러 go go~~~~.)
지난번에는 큰거 하나 있더니, 오늘은 여기저기 번쩍번쩍하네요~~
옛날에 통역하러 나오셨던 사모님 같은 경우에는, 얼마나 금가루가 많았는지...
완전히 금가루로 번쩍 번쩍 했었어요.
….
(여후수아 형제님에게도 머리와 얼굴 일부분에 금가루가 묻어났어요.)
그 참 희한하네~~
난 girl이 아닌데~~~~I am a boy~~~~~~~(하하)
(몇몇 자매들은 직접 와서 형제님을 금가루를 확인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JN자매님은 제목을 좀 고치는게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까~?”라고요.
무슨뜻인지 아시겠어요?
강도맞은 자에게 누가 이웃이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 예요.
잊어버리지 마세요.
그래서 제가 호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이 누군가의 이웃이 되기 위해 여기에 오셨어요.
여러분도 모르게 여기로 오셨어요.
그래서 누군가 힘든 사람이 오면, 여러분이 시간을 쪼개어 여기로 모이세요.
그래서 그 힘든 사람들에게 축사를 해서 자유케 해 드려요.
그리고 먹을것도 이것저것 해 오셔서, 사역후 먹이기도 하시고요.
그분들이 바로 여러분의 이웃인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게 이웃을 돕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그런 과정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럴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바닥을 치며 힘들어 할 때 여기로 오셨어요.
그래서 여기 호다에서 댓가없이 사역해 주고, 말씀으로 양육해 주던 그 사랑을
여러분이 맛보았던 거예요.
그래서 새장 안에 갖혀 있던 여러분이 점점 자유케 되었음을 경험해서 아는 거지요.
그랬던 여러분이 이제는 힘든자, 포로가 된 자를 보면,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
축사를 해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있구요.
이러한 것을 통해 점점 영적으로 자유케 해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미 사역을 하시는 분들은,
내가 저 힘든 사람을 내 이웃으로 보고 있구나~
내가 이런 방식(축사와 말씀양육)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여러분은 죽도 쑤오고 하는 사람들 보면, 뭐 한번도 안쒀오는 사람들도 계시지만~
과일도 가져오고 하는것 보면은, 항상 제가 하나님께 감사해요.
여러분이 집에 그냥 있으면 그런걸 하겠어요~~~
힘든사람을 보니까, 옛날 여러분 생각이 나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다 해오신다고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미 다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축사를 통해 악한영을 쫓아내어 주고, 말씀양육으로 더더욱
자유케 하도록 돕고 있어요.
그런 방식을 통하여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힘든 이웃을 돕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미처 몰라도 이미 그런 방식으로 돕고 계셨던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식으로 힘든 이웃들을 돌보고 계시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되어요.
(b자매: 어제 남편j의 전부인이 왔었어요…..)
어제 b자매님의 남편j이 병실에 누워있는데, 이혼한 전부인이 왔었나봐요.
그런데 남편이 J형제님이 전부인을 보자, 용서한다고 바로 얘기를 했다고 해요.
저번 일요일날 이미 용서기도하고 축사가 되니, 이렇게 쉽게 용서할 수가 있는
거지요.
이렇게 성령님과 함께 하는 기도는 파워풀 한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두 참새가 얼마에 팔린다고 나와 있어요?
(형제자매들: 한 앗사리온~)
그래서 뭐라고 나와 있어요?
그 다음 스토리가 뭐예요?
여러분, 기억나세요?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나와 있어요?
(s자매: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떨어 진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한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게 저의 질문이예요.
지금까지는 목사님이 이 구절을 말씀하시면 오케이 오케이 하고 그냥 넘어갔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이 구절을 보면서, 질문이 생겼어요.
여러분도 가만히 한번 보세요.
마태복음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하나도
땅에 안 떨어져요.
허락지 않으면~~~!
(s자매: 그래서 너희는 참새보다 귀하다고 하셨어요~)
네, 참새도 그러한데, 하나님은 너희의 사정을 다~~ 아신다고 해요.
그런데 저의 질문은 이거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에,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데,
하나님이 허락치 아니하시면 한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데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도 가만히 보세요.
제가 이 구절을 보니까, 하도 이상해서 여러분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냥 그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어떤 이야기가 있었지 않았을까요~~~?
(s자매: 제가 참새사냥을 좀 다녀봤어요. 그런데 참새가 두마리가 떨어지기가
어려워요. 그렇게 참새가 약다고요~ 기껏해야 한마리가 떨어지지~~~
공기총으로 쏴서 두마리가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참새 두마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하신 거예요~?
그게 아니지요~~~~(하하)
00총으로 쏘면 여러 마리씩 떨어진다니까요~~
저도 답은 몰라요.
제가 왜 이런말을 하냐면요,
그런말을 하셨는데, 그말하고 이말하고 무슨말일까~~했어요
제가 뚫어져라~~~~~~~~~고 보니까 그게 없어요.
그렇다면, 왜 참새 얘기를 하셔가지고 그래요~~?
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떨어지지 않아요.
모든게 하나님의 섭리에 들어갔다고 해요.
그 모든게 하나님이 컨트롤하신다~~~~~???
그래서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컨트롤하신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컨트롤 하신다~~는 말이 맞아요?
이게 저의 의문이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이 사역반 시간에 목사님께 여쭤 보세요.
성경은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또 보면 아니예요.
‘내가 저 새를 죽일까 안죽일까~~ 총을 쏠까 말까~~’
그런데 탁! 쏴서 참새가 맞았어요.
그래서 참새가 땅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셨어요.
그리고 총을 탁! 쐈는데 참새가 안맞고 날라갔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셨어요.
그런 거예요?
여러분도 그것을 가지고 고민 좀 해 보시라고 말씀 드리는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저는 모든게 다~~ 하나님의 섭리라고는 보지 않고,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어요.
‘내가 저놈한테 가서 쥐어 박아야겠다~’ 해서, 가서 콱! 쥐어박았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지~~!’라고 하실 거예요?
제가 쥐어 박아서 아프다고 하는데~
제가 총을 쏴서 참새를 떨어뜨렸는데~
하나님께서 ‘그건 내가 했어~~!!’라고 하시는 거잖아요.
그게 맞냐구요~~
성경을 보실때 자꾸 의문을 하면서 보셔야 해요.
제가 저 친구를 때렸는데, 그래서 울고불고 난리법석인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그런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내가 때린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뭐라하지 말아라~ 하나님한테 따져라~~!!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내가 널 치는 거야~~”
이제 맞아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모든것을 컨트롤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거잖아요~!
지금 제가 답을 드리는게 아니예요.
제가 읽다가 궁금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물어봐야겠다~ 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야 여러분의 것이 되니까요.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교회로 가셔서 목사님한테 여쭤 보도록 하세요.
제가 참새를 쏴서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허락해서 떨어졌나요~~~?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하나님이 허락치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여기에 계시면 제가 분명히 질문했을 거예요.
성경에는 아무도 질문한 사람이 없어요.
아니면 누군가가 질문을 했는데 안적었을 수도 있고요,
나중에 성경을 적은 거니까요…
아니, 어떻게, 내가 총을 쏴서 참새를 잡았지~~~ 어떻게 하나님이 허락 하셨어요~~
참새는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요~~?
그런데 다른곳에는 또 그러지 말라고 나와 있어요.
다른쪽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왜 싸워요~?” 라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허락했으니까 싸우지요~~”라고 하실 거예요?
본인 의지로 해 놓고서요~!(하하)
우리가 늘 얘기하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특별히 요 구절을 보고서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요 구절을 보고서, 아니 왜 예수님이 이렇게 얘기하셨나~하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아직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노아의 홍수때를 잠깐 얘기할까 해요.
노아의 홍수때에 하나님은 방주에 탄 노아네 가족들만 살아남았어요.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았어요.
배를 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그렇다면 그 죽은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방주로부터) 저~~ 멀리 멀리 살았던 사람도 있었을 거 아녜요.
저~~ 멀리 멀리요.
그런데 그들중에, 하나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정말로 한~~~~~~명도 없었을까요?
제가 그렇게 생각해 본 거예요.
그리고 만약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핵폭탄이 여기 오렌지카운티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잘 믿으니까….그래서 여러분은 싹~ 살아남고…
예수 안믿는 사람만 죽고....그럴까요?
아니면, 그 반대로 여러분이 그 상황에 죽었다고 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죽었다고 해서 크리스챤이 아닌 거예요~~?
노아 방주에 bad boy(나쁜 녀석)도 있었어요.
그게 누구예요?
함!
노아의 방주안에도 ‘함’같은 사람이 있었다니까요.
그러면 방주 밖의 사람들은 ‘함’보다도 못했을까요~?
이것도 답은 없어요.
그냥 제가 생각해 본 거예요.
옛날에 네로황제 때문에 사자굴에서 크리스챤들이 죽고 하잖아요.
그리고 카타콤에 들어갔을때 크리스챤들이 죽었어요.
그런데 그게 꼭 죄가 있어서 죽었다 고 할 수는 없잖아요.
저번에 욥에 대해서 얘기할때,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주고, 잘 못 믿으면 저주를 한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갇혀 버리면, 그렇게 고정관념처럼 갇혀버리면, 문제가 되어요.
이것도 아마 악한영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역사하는 것일 수 있어요.
스스로 새장에 갇히게 되어요.
그런데 성경에는 분명히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있어요? 없어요?
그리고 요즘에 시편을 읽다보면 계속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하나님~~~, 나를 도와주소서~~~어쩌고 저쩌꼬~’계속 그런 얘기들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시편을 보면서,
‘시편 작가가 바보네~~ 자기가 그럴줄 알았으면, 미리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지~~’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시편작가의 신앙은, ‘나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보다 힘이 센 저들은 멸해 주세요~’라는 거예요.
그래서‘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소서~ 구원해 주소서~ 나를 힘들게 한 저 적들은
치소서~ 없애주소서~’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을 읽는데, 제가 마음이 좀 그저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시편을 보실때,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님, 하나님하고의 관계에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때, 시편을 한마디 하시라구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요.
그렇게 하시면 돼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무작정‘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하시면, 저는 NO~! 라고 해요.
저는 No라고 한다구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 말을 고백할만큼 와서, 거기까지 와서, 고백하시는건
괜찮아요.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구요.
왜요?
여러분의 믿음이 그정도 이니까요.
시편1장에도 그래요.
‘복있는 사람은~’하고 나와요.
여러분 삶에서 어느날 신앙이 들어오면, 그 구절이 ‘이야~~~’라고 들어와서
외운다구요.
그러면 그때 여러분이 그 말을 쓰시면 돼요.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예요!
그래서 저한테 오면, “아니야~ 그말도 맞지만, 그 말보다 더 업그레이드
해야지~”라고 해요!
그러니까 시편 그 자체에 머물러서, 거기가 내 믿음의 최상(최고치)이라고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시편을 쭉 읽어보시면 그런마음이 드실 거예요.
옛날에 제가 시편을 읽을때에는 참 멋있다~ 멋있다~~라고 했었어요.
그리고 저의 어머니도 시편32이장인가~ 밤낮 외우시곤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요,
어~이것(시편) 가지고는 부족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예수님이 제 마음에 확실히 들어오고 나니까,
제가 시편기자라면 이렇게 안쓰지~~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시편을 보실때 그렇게 보시면 좋겠어요.
즉, 시편의 시각이 그게 끝이 아니라, 더 업그레이드~ 더 업그레이드~ 된
시각으로 볼수 있다는 것!
그래서 여러분도 업그레이드 된 시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래요.
그래서 우리 호다 방주안에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그래요~
‘함’과 같은 자가 같이 있어요.
그러니까 watch out~(조심하세요~)!
그리고 호다 밖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요,
칼로 두부(?) 자르듯이 하지 말라는 거예요.
호다에 있으면 무조건 좋고, 호다밖은 무조건 나쁘고~~
교회다니면 무조건 좋고, 교회 안다니면 무조건 나쁘고~~
그렇게 하다보면, 여러분이 그렇게 경직되어 들어가게 되어요.
제가 그랬잖아요,
성령이 임하면 flexible(융통성있는~)하게 된다구요.
물렁물렁하게~
그런데 그렇지 않고 경직되어 스스로를 가둬 놓지 않도록 하세요!
***제가 몇번을 이야기 한 것 같아요.
사도바울이 원래 이름이 뭐였지요?
네, 사울!
그런데 왜 우리는 사울을 바울이라고 부를까요?
언제 이름이 바뀌었나요?
사실은 본인이 자기 이름을 바꾼것 같지가 않아요.
성경에 그렇게 나온거지요.
그의 이름이 한번 바뀐걸로 나오는데, 사울에서 바울로 나와요.
왜 그럴까요?
(자매들: 사울은 큰 자 라는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 겸손한 자~)
(m자매: 요한계시록에…새 이름을 준다고 했고, 누가 축사받고 나면
여호수아 형제님도 기도하시다가 새이름을 주시기도 하고….사도바울도
성령님을 만난 뒤에….)
네, 얘기 잘하셨어요. 쨩!(하하)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주신 것 같아요.
바울은 어느나라 이름이지요?
사울은 어느나라 언어인가요?
(m자매 : 사울은 히브리어이고, 바울은 헬라어~)
바울은 이방인에게 전도해야 했기떄문에, 하나님이 헬라어(Greek)의 이름을
주었어요.
왜냐하면 사울이라는 이름으로는 이방나라에 갈 수가 없었어요.
예를들어, 한국에 어떤 외국인이 와서 자기 이름을 “나는 토마스야.”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은“토마스가 뭐야?”라고 되묻게 되잖아요.
그래서 초기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이름으로 바꾸어 선교하면, 더 쉽게 다가갈 수가
있는 것처럼요.
그것처럼, 하나님도 사울에게 이방인, 이방전도를 위해 새 이름을 주신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여러분도 호다카페에서 닉네임을 사용하고 계시잖아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닉네임을 주시기도 했잖아요.
아무도 여러분이 누구인지 모를 거예요.
누군가가 여러분의 글을 읽으면, 여러분을 잘 모를 거예요.
아마도 큰 목사님 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어요~~(하하)
그렇게 쓰는 사람이 쉽지가 않아요.
댓글도 여러분이 무지하게 잘 쓰시는 거예요~
***질문이 있어요.
누군가가 창녀일을 해요.
그녀는 어떤 할일이 없고, 오직 몸을 파는 일만 할 수가 있다고 해보세요.
그런데 그녀는 크리스챤이예요.
그래서 몸을 팔아 번돈을 교회에 헌금을 내어요.
자기가 몸파는 일을 하기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저~ 뒤에 조용히 왔다가
헌금을 내고 가요.
그런데 이게 좋은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자매: 나빠요~, 정말로 크리스챤이라면 안해야지요~ )
이 여자는 정말로 할게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m자매 : 다른 몸으로 때우는것들도 있잖아요~)
그건 여러분같이 범생이들이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범생이들이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얘기한다니까요~
그게 비난하는 얘기예요.
범생이니까 ‘어떻하든지 다른거를 해야지요~~’라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밖에 할 수가 없어요.
그 세계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치는데도 나올수가 없어요.
범생이로 자란 사람들은 범생이의 눈으로 보고 잣대를 갖다대어요.
그런데 저는 이들의 이해못할 세계를 이해해요.
제게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쪽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닌데, 어떤 여자가 집에 안가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너, 집에 가야지~”했더니,
하는말이, 외상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팔려서 묶였대요.
시계도 다 뺏기고…
그래서 얼마냐고 했더니 얼마래요.
마침 제가 그때 돈이 있었어요.
제 (선임?)월급이 3만원인가 6만원인가 그랬을 때예요.
그래서 몇달치 해가지고 그 돈으로 “이것 가지고 집으로 가~”하고,
버스태워서 집으로 보내주었어요.
그러면 그렇게 창기노릇 해서 번돈을 헌금내는데 잘못됐어요? 안잘못됐어요?
왜 대답을 못하세요.
…
여러분이 창기라면, 돈을 벌었는데, 헌금을 안하실 거예요?
신명기 23을 보도록 할게요.
신명기23장18절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바이블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창기가 번돈과 개같은 자의 소득은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래요~
그런데 여러분은요?
(자매들: 그건 구약이잖아요~)
구약~~(하하하)
저는 이 구절을 보고 깜짝 놀랬어요.
제가 창기라면, 이것밖에 안되는데 어떡해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몸이라도 줬으니까 창기노릇이라도 하니까요~
그래서 돈을 벌어서 내는데~~~~~(하하)
성경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요.
여러분은 이것을 받아들일지 아닐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 보시라고요.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말씀을 주실 거예요.
(자매들: 이건 모세가 쓴거잖아요~~ 왕궁에서 왕자로만 살아가지고 ~~,
신약에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에게 예수님이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이 구절은 구약이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럭키예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신약시대에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잖아요~~(하하)
예수님이 이 구절을 보신다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은 성경도 안보셨을 것 같아요~
왜요?
그 당시에는 바이블이 없었잖아요.
누군가 이 구절을 예수님께 드리민다면,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제가 만약 예수님이라면 “No way~~!”
그러니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두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라고
하세요.
그런데 구약의 이 구절은 어떄요?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많이 들으셨잖아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거잖아요.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100% 믿잖아요.
그래서 여러분은 창기가 가져온 돈은, “어비어비~ 나가~다시는 가져오지마~!”
“성전에 들어오지도 마~!!”그러실래요?
성경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그렇지만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어요.
요한복음8장11절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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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까~~
강도맞은 자에게 네 이웃이 누굴까~~
비슷하지만~~~
너무다르구나~~
저도 이제야 확실히 알았네요
내가 강도맞은 자가 아니야
내가 영생의 길로 가고 있는가?
내가 율법사의 길로 가고 있는가?
내가 내가만든 길로 가고 있는가?
내게는 한길밖에 없어요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길~
보혈하트길~~
보혈하트길~~
오늘도
아빠가 주신 사랑만 먹으며
또~
한계단을 올라가요
천국계단을~~
싸릉해요
감사해요
lovely day~~
I love JES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