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증오비를 바라보며 자라나는
<빈호아장애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작은 사랑
1966년 한국군에 의해 430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습니다. 그곳에는 또 영국인이 한국군 민간인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준 추모비도 서 있습니다. 베트남인들은 또 학살이 일어난 지점마다 자신들의 위령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한국의 읍면 단위에 해당하는 작은 행정단위인 빈호아사에는 이렇게 곳곳에 비들이 서 있습니다.
빈호아사의 한국군 증오비
증오비에는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라고 새겨져 있다.
영국인이 세운 추모비
빈호아학살의 한 지점인 쯩딘 폭탄구덩이 위에 세워진 위령비
1999년 처음으로 이 지역을 찾았을 때 마을 사람들이 온통 빨개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의 머리에도, 할머니의 아픈 허리에도, 시린 무릎에도 팔뚝에도, 비쩍 마른 아이의 불쑥 튀어나온 배 위에도 빨간약이 발라져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우리가 속칭 빨간약이라고 부르는 머큐로크롬이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파도, 관절이 쑤셔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 곳곳에 서 있는 위령비를 찾아다니다가 해먹에 아이를 눕히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자장가 소리에 스르르 눈이 감기는 아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 어느새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얼굴을 더는 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빈호아장애아동센터>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의 꿈결에도 할머니의 슬픈 자장가가 새겨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다가다 한국군 증오비를 바라보며 자라났을 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이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들여다보곤 합니다.
빈호아장애아동센터
재활 치료 중인 장애아동
비좁은 재활 치료 공간
<빈호아장애아동센터>는 2003년 빈선현 동부지역 13개사에서 진행된 <베트남어린이보호재단>의 "장애아동, 특히 고엽제 피해 아동 지원" 프로젝트의 지원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재활보조기구의 구입, 센터장 등 간부 및 재활치료사, 그리고 12명의 자원봉사자 등에 대한 보조 및 167명의 지체장애 아동들에 대한 식비(12만 동/월/1인) 지원 등 지난 10년간 약 25억 동(약 12만 달러)가 지원되었습니다.
그 결과, 72명의 장애 아동이 재활 치료를 받은 후 사회에 복귀하였고, 그중 32명이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애아동 가족의 물리적,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가족들도 재활기구 사용법을 익히고 재활 치료에 참여케 함으로써 집에서도 일상적인 재활 훈련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것은 <빈호아장애아동센터>가 장애아동에 대한 지역 공동체의 인식 개선 및 변화를 가져온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낡은 재활보조기구들
녹슨 재활기구
장애아동 8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
<빈호아장애아동센터>는 아직 보금자리가 없습니다. 동쭝 유치원의 교사 4동을 빌려 임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여 년간 사용해오던 재활보조기구들도 다 낡고 녹슬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나마도 지난 여름 태풍에 재활치료 공간으로 쓰던 교사 2동이 무너져 내려 지금은 아이들이 재활훈련을 받기조차 어려운 사정입니다.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빈호아장애아동센터>까지 오려면 어른 두 명이 꼬박 달라붙어야 합니다. 가족들은 이른 새벽부터 아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먼 길을 달려옵니다. 센터에 오는 날은 하루 밥벌이는 포기해야만 합니다. 휠체어도 없어 종일 아이를 두 팔에 안고 다녀야 합니다. 지금은 교사가 무너져 내려 하루 한 끼씩 제공하던 식사마저 끊겨 오전 치료만이 가능합니다. 오고 가는 데에만 반나절의 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 하는 먼 곳의 아이들은 치료조차 포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태풍에 무너져 내린 재활치료공간
구멍이 뻥 뚫린 천장
개보수가 필요한 재활치료실 내부
다행히 <빈호아장애아동센터>에 작은 사랑과 정성을 전달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빈호아 마을에 다시금 아름다운 자장가가 불릴 그날까지 우리들의 평화의 행진이 멈추지 않길 기원합니다.
휠체어 지원을 위해 <빈호아장애아동센터>를 찾은 <한벗재단>.
아동용 체육복 50벌을 전달하고 있는 <지구별 여행자>
<한홍구와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팀이 지원한 스테인리스 식판 80세트, 식용유 1박스, 어린이 간식
<빈호아장애아동센터>를 방문한 <베트남평화의료연대> 13기 진료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