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아 4: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저는 우리의 신앙을 로맨스에 비유하길 좋아합니다. 비유는 이해를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로맨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여보, 진정한 부부라면 하루에 30분 이상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데 지금 8시니까, 8시 30분까지 얘기 합시다. 자, 말하세요!! 준비, 땅!" 이런 결혼생활, 어떻습니까? 원하십니까? 그런데 우리 기도는 혹시 이런 모습은 아닌가요? 30분 동안 나만 계속 떠들어 대는... 게다가 소리도 고래고래 지르고 말입니다. 소리는 하나님께 지르는 것이 아니고 사단에게 질러야 합니다.
진정으로 로맨스가 살아있고 친밀한 부부는 어느 날엔 전혀 대화가 없을 수도 있고, 어느 날엔 하루 종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나 그 형식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아는 관계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나 믿지?' 하면서 몇 날 며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신, 나 사랑해?' 하면 '결혼 전에 말했잖아!'라고 한다면 아무리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이것은 좀 문제가 있는 관계지요.
'영접 기도할 때 다 믿는다고 말씀드렸는데 뭘 또 기도하라고.'라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신앙의 현 주소를 이 로맨스로 점검해 보는 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신부이기에 이렇게 비유를 하면 신앙과 종교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은혜"를 전하는 입장이다 보니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의무사항들에 대해 얼마만큼 자유할 수 있는 것인지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헌금, 기도, 성경읽기와 같은 것들인데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진 종교성으로 인해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기에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말씀들인 로맨스를 대입하여 생각해 보시면 아주 쉽게 답이 나옵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일주일에 몇번을 만나야 하느냐, 선물은 얼마짜리를 해야 하느냐, 대화는 몇시간 해야 하느냐... 전부 너무나도 어리석은 질문들이라는 걸 아주 금방 알게 됩니다. 물론 신앙도 훈련의 기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경우, "일주일에 몇 번은 꼭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겐 예배하는 마음보다 예배하는 장소가 중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 깊이 형식과 규율에 얽매인 부분이 여전이 남아 있음을 기억하면서 이러한 형식과 종교성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 그분의 시각으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