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자서전같은 장편소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어머니 쌈지속에서 누런 일 전짜리 한닢을 꺼냈다. 엄마가 나에게 콩나물이나 심부름을시킬 때 거기서 일 전짜리를 꺼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거기다 돈을 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허술한 돈 관리를 아는지라 탄로가 날 걱정을 안 했지만 나쁜짓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돈으로 구멍가게에 가서 눈깔 사탕을 사 먹었다. 눈깔사탕이 일 전에 다섯개였다. 엄마는 하루에 일 전씩 없어지는 걸 알아 보지 못 했다. 나는 며칠에 한 번씩은 가운데에구멍이 뚫린 오 전짜리도 집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구멍가게의 눈깔사탕 상자의 유리뚜껑을 그만 깨트리는사고를 내고 가게주 인이 집에 와서 유리뚜껑을 물어 달라고 엄마에게 아우성을 치고 소동을 벌이는 통에 들통이 나 버렸다. 그러나 엄마는 나에게 군것질 한 돈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 이 사건 후에 다시는 엄마돈을 훔치지 않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아득한 옛날 일이 생각났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 땐가 이학년때일 것이다. 그 당시 나의 할머니는 마산 부림시장에서 여자들의 치마저고리 한복원단을 파는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 할머니는 원단 판 돈을 쌈지에 넣어 두었는데 어느 날 나는 무엇이 먹고 싶었는지 무엇이 사고 싶었는지 할머니가 안 계실 때 집에 둔 쌈지를 살짝 뒤져보니 잔돈이 아니고 제법 큰 지폐들이 들어 있어 그 중 한장을 슬쩍 빼서 내 호주머 니에 넣었다.
저녁때 할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할머니에게 이실직고를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그 돈이 어린 나에게는 지금으로 치면 아마 오만원정도로 상당히 큰 돈이었을텐데 할머니가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몰랐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나에게 그 돈에 대하여 아무 소리도 안 하셨다. 나는 그것때문에 가족들 한테 큰 죄를 지은 심정으로 며칠을 지냈는데 그 이후에는 그 돈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오늘 오랜만에 박완서의 소설을 읽다가 그 당시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쌈짓 돈을 훔쳐서 전전긍긍 했던 생각이 나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인간은 원초적으로 마음 한구석 에 도벽의 꼬투리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할머니 손잡고 쫄랑쫄랑 절에 따라가서 바삭바삭한 다시마 반찬에 절밥을 먹던 생각, 시장에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우묵과 초코렛을 사 주시기도 한 등등 할머니의 장손자에 대한 지극했던 사랑에 새삼스럽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10/25 (2023) |
첫댓글 늘 조은글
고맙습니다
향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