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6)--동해안--애견 펜션
모처럼 동해 쪽으로 나들이를 갔다. 내가 근무하던 지역이라 낯설지 않지만 산불이 휩쓸고 간 동해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겨웠다. 어떻게 불이 그렇게 지나 갈 수가 있는지? 궁금했다.
영덕지역은 피해가 크게 보였다. 강구에서 차를타고 위로 올라가니 산이 새카맣게 보였다. 그래도 마을은 대부분 남아잇었다. 목숨 걸고 불과 싸웠다니 사람의 힘이 대단하다.
축산을 거쳐 대진해수욕장으로 올라가다가蹈海壇(도해단)에 들려서 도해순국한 벽산 김도현지사의 발자취를 보았다. 나선 김에 천년고찰 유금사에 들려서 3층석탑을 바라보았다.
딸의 가족들을 만났다. 강아지도 만났다. 개가 없으면 입장이 안 되는 애견 펜션이라 강아지에게 감사(?)를해야할지?
손자들이 나의 무릎에서 꼼지락 거리던 녀석들이 어언 청년이 되어서 의젓하다.. 세월이 그렇게 훌쩍 가버렸다. 맛난 저녁을 먹고 나는 일직 자리를 나와서 뉴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 일직 바닷가로 나갔다. 구름이 가려 해맞이는 하지 못했다. 구름 사이로 햇빛을 보았다. 맨발로 모래밭을 걸으니 너무나 상쾌했다. 기러기들이 나와 숨바꼭질을 했다. 내가 가면 날아서 내 뒤로 갔다. 나의 발자국을 모처럼 봤다. 지나 가면 발자국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모래밭의 발자국은 돌아오는 것을 허락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내도 잠이 깨서 바다로 나왔다. 바다 돌을 몇 개 주었다.. 내가 줍는 바다 돌은 세 가지다. 둥근 돌, 발바닥 모양, 산모양이다.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아가페 별서에 여러 개가 있다. 둥근 모양은 원만한 것을 보여준다. 발바닥 모양은 내가 걸어온 길을 회상시킨다.. 산은 우리나라를 연상하며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아침을 먹고 퇴실 시간에 맞춰서 딸가족은 자기들 집으로 우리는 간단한 나들이를 했다. 내려오는 길에 신돌석 장군 생가를 방문했다. 신돌석장은 의병대장이다. 생가를 가보니 초가집을 재현해 두었다. 마을이 온화하고 포근했다. 차를 달려 영덕장에 갔다. 젊은 시절 자주 가던 곳이다.
목판을 앞에 두고 앉은뱅이 의자를 내어주던 할머니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장이 대목장답게 왁자지껄했다. 아내는 고향에 왔다고 이것저것 손이 무겁게 들었다. 또 차를 타니 나의 초임지에 가보고 싶었다. 50여 년의 세월이 희로애락을 남겨두면서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운전을 안 하니 좋기도 하지만 아들 녀석이 가자하는 대로 불평 없이 운전을 해주었다. 폐교가 된 시골학교를 멀리서 잠시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다녔던 교회를 가보니 말쑥하게 새로 지었다. 반가웠다. 잠시 교회에 들어가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추석명절을 기다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교회 담을 깨끗이 신축하면서 내가 있을 때 새마을 사업에 힘을 받아 쌓아 둔 돌담은 기초로 그대로 두었다. 저녁으로 리어카로 강의 돌을 날랐던 추억이 새롭게 떠 올랐다. 시골길을 달려서 남정 도천 숲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멋진 숲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고경초등학교 앞에 소머리 곰탕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무도 오라 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곳을 바쁘게 돌아왔다. 조용히 추석 명절을 기다려 본다.
첫댓글 추석전에 아들딸과 좋은 추억을 가지셨네요.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과 함께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가 그립습니다^^
뜻 깊은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요. 저도 영덕을 가보고 싶고, 저의 초임지를 가보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