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사진=군포시청)
현장체험학습은 실효성이 높은 교육 방법이다.
현장체험학습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성장으로 가족 중심의 체험학습, 해외여행 등의 기회가 많아졌으나 같은 나이, 같은 공간, 같은 학습,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끼리의 현장체험학습은 또 다른 학습 효과가 있다. 학교에서의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면, 학습에 있어서 한 축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정서적 결핍이 가속화 될 것이다.
교육 약자의 경우 다양한 이유로 가정에서 체험학습 경험을 충분히 줄 수가 없다.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면 학창 시절 관련 추억이 통째로 삭제될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이 성장하면 건강한 사회 유지에 또 다른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여러 차례 안전 관련 사고를 겪으며, 사회적으로 안전 문제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고, 안전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학부모들의 권리 의식도 높아져서 교사들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교권 침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는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는 등 안전 관련 제도가 강화되고 있는데, 현장체험학습 관련 제도는 2014년 이후 개편된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에 머물러 있다.
초등학생을 휴게소에 방치한 혐의로 교사가 1심에서 800만원 벌금, 2심에서 벌금 300만원 선고 유예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교사는 버스 안에서 학생의 용변 문제를 처리했고, 학부모와의 연락을 통해 동의를 받았으며, 휴게소 직원에게 부탁을 했고, 휴대폰으로 지속적으로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로 고발되었다. 여행 일정을 멈추고 휴게소에서 학부모를 기다려야 했을까? 그 후 틀어진 일정에 대한 민원과 보상은 누가 해야 할까? 교과담당 교사가 동승했다고 하는데, 그나마 1명이라도 있었으나 내려서 학생과 함께 있지 않은 것이 과실이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학생과 교사를 보호하려면 최소한 별도의 현장체험학습 지원 차량이 있어야 했다. 학교에서 별도의 현장체험학습 지원 차량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체험학습 중 교통사고로 제자를 잃은 교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교사가 최소한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검사의 공소 요지다. 이 체험학습의 책임 차량인데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담임 교사는 선두에서 인솔했고, 그나마 한 명의 교사가 함께해서 먼저 온 학생들에게 안내하기 위해 먼저 갔다고 한다.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에 선두와 후미에 인솔자가 있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적어도 4명이나 6명당 1명씩의 안전 인력이 있어야 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당선인과 교사노동조합 및 산하 지역 노동조합 등이 16일 강원 춘천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지성배 기자)
현장체험학습 안전을 위한 체크리스트가 너무 많다.
국내·외 테마학습여행을 가려면 강원도의 경우 적어도 17개의 절차를 걸쳐야 한다. 현장체험학습을 가야 할 때 유형별 확인 사항이 19가지다. 현장체험학습 KS표준에 의한 점검 항목은 23가지다. 교통안전 점검 체크리스트만 28가지다. 이 중에는 소화기 비치 여부, 블랙박스 부착 및 정상작동 여부, 전후방 감지 센서 정상 작동 여부, 음주 감지 실시 여부 등도 체크해야 한다. 식사 관련 체크리스트는 15가지이고, 숙소는 21가지, 화재는 7가지다. 체험학습 자체점검표는 38가지를 체크해야 한다. 체크리스트가 많다는 의미는 그만큼 책임질 요소가 많다는 의미다. 사고가 났을 경우 매뉴얼상의 이 체크리스트 중에 빠진 게 있다면 교사가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게 되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체크리스트가 많고, 절차가 많고, 행정 처리가 많다는 의미는 그만큼 현장체험학습 안전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교사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구조는 안전에 있어서 허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현장체험학습 운영 시스템은 매뉴얼은 잘 갖추어져 있으나, 실제로 운영하는 인력의 부족과 제도의 미비로 괴리감이 크다. 이 괴리감은 학생들의 실제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매뉴얼을 구현할 실제적인 여건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교사들이 이 괴리감을 열정으로 메워 왔다. 학교 현장에서는 현장체험학습 사고를 ‘운(運)’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해도 사고는 날 수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날 확률을 줄이는 것이 과학이다.
16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성산리 동홍천IC 입구에서 수학여행단 버스와 트럭, 승용차 등 8중 추돌사고가 발생, 사고 차량이 멈춰 서 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 사고로 학생 등 30여 명이 다쳤다. (사진=강원특별자치도소방본부)
현장체험학습의 안전이 ‘운(運)’이 아닌 ‘과학(科學)’이 되려면 법으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 교육청, 학교 여력으로는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갖추기 위한 조직, 예산이 없다. 전국적인 통일성을 갖추기도 어렵다. 법령이 필요한 이유다. 법으로 이 여건을 갖춰줘야 현장체험학습은 ‘운(運)’이 아닌 ‘과학’이 된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인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할 때다.
현재 현장체험학습 안전 대책을 강제할 관련 법령이 없다. 유사 법령으로‘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있으나, 이 법률은 현장체험학습 사고 예방을 위한 실효적인 방안 의무화보다 예방 교육과 사고 발생 시 보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도교육청별로 현장체험학습 안전관리 조례를 제정한 곳도 있으나 관련 조직, 인력, 예산 확보에 대한 내용들은 다루고 있지 않다.
현장체험학습안전법(가칭)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교육청의 인력과 예산을 나눠 쓰는 구조는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다. 시도교육청별로 상이할 수도 있다. 현장체험학습안전은 국가 단위에서 관리하여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동일하게 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전국 교사들에게 받는 현장체험학습 학생 사망 사고 인솔교사들의 무죄 촉구 탄원서 보관함. (사진=지성배 기자)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5가지 제안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현장체험학습을 전담할 기관을 설립하여 현장체험학습 활성화와 내실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관리를 맡겨야 한다. 현장체험학습 안전의 과학적 접근을 위한 안전 관련 연구, 사례분석, 연수, 교사·학생 교육 등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체험학습의 안전한 진행을 위한 전문위탁기관 심사, 등록, 승인 기준 마련, 관리, 점검, 안전인력풀 운영, 안전 교육, 안전 인력 자격 관리 등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1일형 현장체험학습, 테마학습여행, 수련활동의 위탁 진행을 의무화해야 한다. 안전과 관련하여 전문위탁기관과 교사의 안전 역할을 나누기 위함이다. 교사는 현장체험학습을 교육적으로 설계, 계획하고 운영에 있어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 전문위탁기관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현장체험학습 모델에 대해 다양한 안을 제시하고 예약, 발권, 식사, 숙박, 차량, 이동, 정산, 안전 점검 등의 행정 처리와 안전 업무를 수행한다. 전담기관의 인증을 받은 전문위탁기관에 대해서는 계약 및 입찰 과정을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위탁 진행으로 인한 행정적 번거로움 때문에 위탁을 주저하지 않게 해야 한다.
셋째, 전문위탁기관은 학생 4인~6인당 1명을 필수 안전 관리 인력으로 제공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의 특성상 20명 이상 학급에서 두 명의 안전 인력으로는 사고 확률을 줄이기 어렵다. 작은 학교의 경우 기준 인원에 적합한 안전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자율 운영 가능하게 한다. 관내 현장체험학습의 경우 위탁 신청은 자율로 하되, 안전인력은 기준에 맞게 신청할 수 있도록 열어 줄 수도 있겠다.
넷째, 전문위탁기관은 별도의 안전보호차량을 의무적으로 제공한다. 이미 문제가 된 사례와 같이 질병, 상해, 긴급 사안 발생 시 별도의 차량이 없을 경우 현장체험학습 전체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전문위탁기관의 안전요원에게는 이와 관련한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전문위탁기관에 현장체험학습을 위탁함은 안전과 교육의 역할을 나누고,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과 책임을 나누기 위함이다.
다섯째, 현장체험학습을 운영함에 있어서 교사가 안전에 대한 확신과 사고 시 보호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아이들도 안전하지 않다. 아무리 완벽한 준비를 해도 사고가 날 수가 있다. 사고 발생 시 교사의 고의성이나 해태가 없다면, 경찰·검찰 조사에 교사 혼자 가게 둘 것이 아니라, 변호사 비용을 지원해야 하며, 민·형사 소송비 지원과 손해배상 책임보험 가입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강은희 교육감은 국민안전의 날인 4월 16일,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 안전체험관을 직접 방문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래프팅, 익수자 구조법 등 수상안전 활동과 심폐소생술, 지진체험, 자전거 라이딩 보호 장비 착용 및 이동안전 체험활동 등 다양한 안전체험활동을 점검했다.(사진=대구교육청)
고도의 안전을 원한다면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안전이 강화된 현장체험학습에서 안전비용의 증가는 기본적으로 수익자 부담이 되어야 한다. 저렴한 비용에 맞는 저렴한 안전보다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20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비용을 대략 추계하면 다음과 같다. 안전 관리 인력 5명(4명 1조)의 경우 인건비 100만 원(인당 20만 원), 안전보호차량 운영비 50만 원(인건비 포함)으로 1일형의 경우 1회 150만 원이다. 1인당 7만5000원이 더 든다. 전액 수익자 부담일 경우 국가적인 예산 부담은 없다. 교육약자는 복지 시스템을 통해 무료나 차등 지원 가능하도록 설계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교육부, 교육청, 지자체와 공동 부담하여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현장체험학습안전 전담 기관은 '어떤 형태로 설립하느냐?'에 따라 예산 추계가 달라질 수 있다. 별도 기관으로 설립한다는 가정하에 본원 30명 규모, 17개 시도별 평균 15명 규모로 추산해 본다. 본원을 설치·운영하는 비용 추계는 33억2000만 원이다. 구축비를 제외한 연간 운영비는 28억2000만 원으로 예상된다. 17개 센터의 설치·운영 비용 추계는 163억1400만 원이다. 연간 운영비는 160억1400만 원으로 예상된다. 총 예산은 190여 억 원이다. 인구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분담하면 연 10억 원정도의 예산이다.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사수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러다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진다.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교권보호와 관련하여 서이초 사건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진행 중이다. 현장체험학습 안전사고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미비는 사고로 나타난다. 교사가 무한책임을 지는 구조는 현장체험학습을 현장에서 사라지게 한다.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를 만들지 않으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현장체험학습이 없는 학교처럼 재앙이 있을까 싶다.
원본 링크 [이슈 현장] 현장체험학습 안전…‘운(運)’이 아닌 ‘과학(科學)’이어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교육플러스 (edpl.co.kr)
출처 : 교육플러스(http://www.edp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