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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조선 중앙일보에 발표한 이상 오감도 15편을 해석한다며, 한국 문학을 지배하는 문학 카르텔은 90년이 넘도록 문예사조와 미학의 망상으로 오독하고 왜곡하면서 일제 강점기 가장 위대한 민족시를 암장해 버렸다.
문학 카르텔의 오감도 해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낱낱이 알리고 싶지만, 아까운 시간 낭비인 까닭에 오감도 15편 핵심을 압축해 하나씩만 밝힌다. 진정한 문학 독자와 문학인들이 문학 카르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21세기, AI 시대 새로운 문학의 문을 여는 디딤돌로 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상은 오감도가 중단된 뒤에 남긴 말에서(이태준이 뒤에 알림)
- 오감도 연재를 마치면서 이천 점(자신이 쓴 시: 필자 주)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달고 그만 두니 서운하다. 중략....
이상이 밝힌 대로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았다는 말은 오감도의 바탕이 31년 32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31년 32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상은 오감도 15편에서 자세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문학 카르텔 해석대로라면 31년 32년에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조선에서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모더니즘 정신 분열 자위 섹스가 일어났고 이상이 이를 시로 썼다는 말이 된다.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감도 시제1호
13인의 아해 모두 무서워한다. 일제 강점기 무서워하는 것은 조선을 폭압의 식민지배하는 제국주의 일본이다. 그런데 13인 중에 무서운 아해가 나타난다. 제국주의 일본보다 더 무서운 앞잡이 모리배 친일파가 나타났다는 의미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필자가 어릴 때 아기가 울면 그치라고 할머니가 호랑이 온다고 하다가 그래도 울면 왜놈 순사 온다. 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 민족에게 제국주의 일본은 공포였다.
문학 카르텔의 현대인의 불안, 공포, 상호불신 따위의 해석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노예 조선 민족을 한 번 더 짓밟는 짓이다. 현대인? 일제 강점기가 축제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오감도 시제2호
아버지는 가정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백성의 아버지 왕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민족의 아버지 단군이다. “........”는 ‘말없음’이나 ‘머뭇거림’을 의미한다. 조선 민족인 내가 나의 아버지를 껑충 뛰어넘는 행위는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했다는 말이다. 즉 조선 민족 유교 가치가 전복되어 망한 강제 한일합방을 의미한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백부 집에 양자로 어쩌고 언어유희 어쩌고’가 뭔가! 한글로만 쓴 시다. 외국어가 아니다. 모국어 읽기로 읽어라.
오감도 시제3호
여기서 싸움 구경은 관전이 아니다. 싸움하는 사람이 싸움을 걸어 상대의 싸움 실력을 구경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깡패 시라소니가 깡패 쌍칼의 싸움 실력을 구경하기 위해서 싸움을 거는 것을 말한다.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싸움하지 아니하는 구경’이라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던 평화를 사랑하는 조선 민족이 싸움꾼 제국주의 일본에게 싸움하지 아니하는 구경을 시켜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비폭력 저항인 3.1운동을 의미한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알레고리 어쩌고 벤야민 어쩌고 싸움 구경을 관전으로 단정 짓는 이유는 싸움 경험이 없는 까닭인가?
오감도 시제4호
뒤집힌 1에서 0까지 숫자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유교 가치가 전복되어 망한 질서의 세계였던 조선을 의미한다. 점이 상징하는 일장기를 앞세운 제국주의 일본이 둘로 갈라 조선 민족을 분열시켰다. “진단 0 ‧ 1”은 “0”의 사전적 의미 ‘없다’와 “1”의 사전적 의미 ‘단일’, 그리고 가운데 일장기를 상징하는 점이 단일의 조선 민족을 민족의식 없는 친일파로 갈라 분열시켰다. 26‧10‧1931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만주마저 1931년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뒤집혀 식민지가 되었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2진법 어쩌고 라캉 어쩌고..... 시는 미학도 수학도 물리학도 아닌 문학이다.
오감도 시제5호
“익은불서 목대불도”는 날개는 커도 날지 못하고 눈이 커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강제 한일합방은 조선과 일본이 합쳐져 날개가 커졌지만 날지 못하고 눈이 커졌지만 보지 못하는 괴물이 된 실패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내부에서 반목하는 완성되지 않은 사각형 그림으로 이상은 실패한 강제 한일합방 조약 문서를 상징으로 친절하게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있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자궁, 성교 어쩌고 장자 어쩌고...... 시는 지식이나 지능 고백이 아니다.
오감도 시제6호
“앵무는 표유류에 속하느니라” 표유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짐승’뿐이다. 즉 앵무는 짐승이라는 말이다. 강제 한일합방은 짐승인 제국주의 일본에 속아 맺은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과 같은 짐승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가짜 부부 앵무 2필이다. ‘짐승 두 마리’라는 말이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앵무는 세기도 전에 두 마리 어쩌고 추문은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어쩌고.... 90년이 넘도록 어쩌고저쩌고인가.
오감도 시제7호
1932년 4월 29일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상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등을 폭살시켜 처단한 윤봉길의사가 시의 화자다. 윤봉길의사는 시라카와와 저승 문 앞에 있는 염마왕의 거울에 누가 악이고 선인지 그 윤회를 비춰보자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발판으로 삼아 조선 민족이 해방과 독립으로 나아가기를 염원한다.
향찰 이두 구결 등 일찍부터 우리 선조들이 한자를 목적에 맞게 사용했던 것과 같이,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도 목적에 맞게 사용한 것이다. 한자 이름 짓기와도 발상이 다르지 않다. 한글 문장을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에 숨긴 것이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휴양지에서 여자를 사귀고 그로 인한 고통과 망신으로 무너져 가는 모습 어쩌고 각혈의 체험 어쩌고...... 이상이 만만한가!
오감도 시제8호 -해부
1932년 1월 8일 동경에서 일본 왕 폭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이봉창의사의 의거 실패에 분통해 하면서 쓴 시로 추정된다.
일본 왕 히로히토를 가상으로 해부 육시해서 조선 민족의 원한이 풀리는지 시험한다. 1부 시험에서 눕혀서 해부 육시하지만 “기타(ETC) 아즉 그 만족한 결과를 수득치 못하얏슴” 조선 민족의 원한이 풀리지 않아 그 만족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2부 시험에서 세워서 해체와 극진공에 밀어 넣기 등을 하지만 “기타(ETC) 이하 미상” 어떤 방법으로도 조선 민족의 원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인간의 육체에 부여된 가치론적 어쩌고 본질 자아로 가역 반응이 어쩌고..... 이토록 명확한 시를 이토록 불명확하게 읽는다는 말인가!
오감도 시제9호 -총구
‘줄지어 불어오는 바람’은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제국주의 일본이 줄지어 강요하는 민족말살 정책을 의미한다. ‘내 허리에 큼직한 손이 와 닿는다’는 허리춤을 붙잡는 유도를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 일본 경찰의 체포 방식이다. ‘나의 소화기관을 총신으로 입을 총구로 느낀다’ 나를 체포하려는 일본 경찰을 향해 똥물과 함께 조선말을 총탄처럼 쏘아 저항하겠다는 것이다. 193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선어 사용금지에 저항하는 조선 민족 모습이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부제목 “총구”는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이고 ‘말로 대드는 입’이다.
문학 카르델의 사정의 순간 어쩌고 자살하려는 순간 어쩌고 각혈 체험 어쩌고...... 일제 강점기 식민지 노예 조선 민족의 삶이 문학이, 시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오감도 시제10호 –나비
“거울 가운데 수염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거울은 나비의 것이다. 거울 가운데 수염은 제국주의 일본 왕부터 지배계층 군대 상급 하급 군인들 거의 대부분이 기르던 수염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비가 거울 가운데 수염에 죽어가는 것은 1932년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의미한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통화구”는 ‘명령하는 일본 왕’을 상징한다. “유계에 낙역되는”은 ‘저승에 잡아매 늘어놓게 되는’이다. 조선 민족 여성을 저승에 잡아매 늘어놓게 되는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왕의 주둥이에서 나온 명령 때문이라고 이상이 증언한다. 분노한 이상은 일본 왕 주둥이를 막고 죽겠다고 결사 항전을 선언한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이다.
문학 카르텔의 사후 세계와 끝없이 어쩌고 죽음에 대한 진술 어쩌고 그 유계는 유클릿적인 어쩌고..... 공상은 시 해석이 아니다.
오감도 시제11호
1932년 시작된 황국신민화 강요와 세뇌에 저항하는 조선 민족이다. “그 사기컵은 내 해골과 흡사하다” “사기컵”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다. ‘조선 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조선 민족 국가관이 나와 흡사하다. “난데없는 팔 하나”는 제국주의 일본 황국신민화다. 그래서 난데없는 팔, 황국신민화가 조선 왕조 어진 성국의 덕치를 존중하는 국가관인 사기컵을 마루바닥에 내던져 깨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내 팔은 조선 민족 국가관을 사수한다고 한다. 황국신민화 강요와 세뇌를 거부하면서 조선 민족의 국가관을 지켜낸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학 카르텔의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법’ 어쩌고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깨어지기 쉬운’ 어쩌고...... 식민지 노예 조선 민족 청년 시인의 정신세계가 어떠했을까 고민이라도 해보았나!
오감도 시제12호
1931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대거 등장한 친일파들 때문에 민족이 분열되었음을 고발한다.
“때 무든 빨내 조각이 한 뭉탱이 空中으로 날너떠러진다. 그것은 흰비닭이의 떼다.” /때 묻은 수치를 실천한 조각이 한 뭉탱이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다. 그것은 조선 민족의 떼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 민족을 방맹이로 때려죽이면서 식민지배하는데 민족분열정책과 민족말살정책에 세뇌된 친일파들이 제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인 만주사변에 참전하고 지원해서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는 짓이 수치라는 것도 모른 채, 떼지어 달려간다고 한탄한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때무든 빨래, 공중” 등이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다.
문학 카르텔의 환각과 난시 상태에서 비롯된 초현실 어쩌고 더러움과 깨끗함의 일상성 어쩌고...... 흰비닭이를 방맹이로 때려죽이는 참혹한 일제 강점기 잔악한 식민지배가 보이지 않는가!
오감도 시제13호
1932년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인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제국주의 일본에 대항하지 못하고 조상신을 섬기는 조선 민족 전통 제사를 방안에 짐보따리로 정리해 놓았다고 고백한다. ‘두 팔을 나는 촛대 세움으로’라며 촛대 두 개를 세우는 것이 제사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화초분”은 제국주의 일본이 강요하는 신사참배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민족의식이 이런 나를 보며 민족의식이 없어져 황국신민이 될까 걱정하면서 조선 민족이 사라져버릴지 모른다고 겁을 내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런 희미하지만 조상신을 섬기는 조선 민족 전통 제사를 신사참배보다 사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문학 카르델의 신체 기관들을 해체 파편화 어쩌고 환각 이미지에 가까운 어쩌고..... 설마 두 개의 촛대 세움의 제사를 까맣게 잊었다는 말인가!
오감도 시제14호
1932년 식민사관에 세뇌당해서 조선 민족역사관을 버리고 제국주의 일본이 날조한 식민사관을 받아들이는 친일파에게 왜적의 침략을 멸망시켰던 이순신 장군 혼령이 슬퍼하면서 나타나, 조선 민족 역사가 얼마나 높고 위대한 것인가를 가르치며 호통을 친다. ‘고성 앞 풀밭’은 망해서 폐허가 되어버린 조선 민족역사관이다. ‘성’은 제국주의 일본이 날조해서 강요하는 식민사관이다. ‘성 위에 서서 기억에 꽤 묵어온 돌’을 던지는 행위는 조선 민족역사관을 던지고 식민사관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순신 장군 혼령의 호통에 식민사관을 받아들이던 친일파는 기절한다. 분노한 이순신 장군 혼령이 친일파 이마에 언제까지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어 응징한다. 그 싸늘한 손자국 낙인은 ‘민족 배신자’였으리라.
문학 카르텔의 울울한 역사 비판 의식 어쩌고 내가 무너지기 때문에 심장의 위치가 어쩌고..... 정말.... “포물선을 역행하는 역사의 슬픈 울음소리” 이상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오감도 시제15호
거울은 민족의식이다. 거울밖에 나는 민족의식 없는 친일파다. 시제4호 0‧1의 민족의식 없음의 0과 같다. 친일파인 나는 완벽한 황국신민, 창씨개명을 위해 민족의식 속에 나를 지워야 한다. 그래서 민족의식 속 나에게 자살을 강요하지만 실패하자 살해하려고 한다. 거울 속 내 심장을 향해 “문서 총”을 쏜다. 그러나 죽지 않는다. 민족의식 속 심장을 향해 문서 총을 쏜다는 것은 완벽한 황국신민, 완벽한 창씨개명을 상징한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민족의식 속 나를 죽일 수 없다는 친일파를 향한 이상의 경고다. 그리고 꿈에 극형을 받았다.라며 참담한 친일파의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상은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단일의 조선 민족을 친일파로 갈라 분열시켜 서로 악수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거대한 죄를 지은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것을 조선 민족은 각성하라고 소리친다.
이것이 오감도 15편 해석이다. 묻는다.
너는 어느 민족 자들이냐!
일제 강점기 가장 위대한 민족시 “오감도”를 오독 왜곡 암장시킨 한국 문학 카르텔에 묻는다. 이상이 작자의 말에서 밝힌 31년 32년 일이 오감도 15편의 바탕이라는 것이 필자의 “이상 오감도 해석”으로 환하게 드러난 지 6년이 넘었다. 문학 카르텔 그 누구의 그 어떤 해석에 이상이 밝힌 31년 32년 일이 있는가?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등 터무니없는 문예사조 따위에 맞추기 위해 시를 정신 분열 어쩌고 또 모더니즘에 맞추기 위해 부인이었던 김향안이 밝힌 이상이 한복만 입고 다녀서 검문소마다 검문을 당해야 했었다는 증언이 있는데도 ‘모던보이’ ‘댄디보이’ 어쩌고를 태연히 늘어놓는 것은 어떤 문학적 근거가 있는가? 이상의 여동생이 한, 이상이 일본 군국주의를 혐오했다는 인터뷰 증언이 있는데 그래서 “날개”가 일본 군국주의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분노하고 조롱하면서 조선 민족이 식민지 노예임을 각성하고 해방과 독립을 향해 나아가자고 소리치는데 이걸 매춘하는 아내에 붙어사는 기둥서방 식민지 지식인 어쩌고 하는 것을 90년이 넘도록 해석이라고 늘어놓고 있는 현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80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아직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한국 문학 카르텔에서 그나마 자유롭고 세뇌되지 않았다고 믿는 백낙청 선생님과 신형철 평론가에게 오감도 15편 해석에 대한 공개토론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 21세기 AI 시대 새로운 문학을 위해 반드시 정리해야 할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