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연중 제18주일) 내 마음이 향하는 곳 어떤 사람이 천당에 갔다. 그가 예상하고 바랐던 대로 아름답고 산해진미가 넘쳐났고, 특히 많은 하인이 그를 시중들었다. 때가 되면 멋진 음악과 함께 우아하게 밥을 먹었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심심하고 소화도 시킬 겸 운동을 하려고 하자 하인들이 그를 말렸다. 운동은 힘드니까 자신들이 대신 해주겠다고 했다. 오래전 본 코미디 프로 한 꼭지다. 억지스러운 상상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그것이 뭔가 중요한 걸 말하고 있는 거 같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는 하늘나라는 어떤 곳인가?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이셨다. 거기 있던 사람들 일부가 그분을 모셔다가 임금으로 만들려고 했다. 나도 예수님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그분을 찍을 거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걸 알아차리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5).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이리저리 찾아다녔고 마침내 그분을 만났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이틀 동안이나 당신을 찾아다닌 그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물가에서 만났던 그 사마리아 여인이 바랐던 것도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아서 물을 길으러 먼 길을 힘들게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는 그런 물이었다(요한 4,15). 우리가 바라는 하늘나라도 그 코미디와 같은 곳은 아닐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 따위는 세상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수고한다.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도 건물과 입주자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은퇴 후 여유로운 삶도 잠시,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노동과 수고는 삶의 조건이다. 살아있는 건 다 수고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노동과 수고가 없는 삶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온종일 수고한 부모를 위로하고 알 수 없는 힘이 생기게 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기꺼이 바치게 하는 그것이다. 광야에서 단식 중인 예수님에게 악마는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니 돌이 빵이 되게 하면 어떠냐고 했다. 빵 다섯 개로 수천 명을 먹이신 분에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 고행과 수행은 배고픔을 견디는 의지력 테스트가 아니라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거였다.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수고의 끝에는 하느님이 계셔야 한다. 평생 가장 행복했을 때가 자기 손으로 돈 벌어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던 시간이었다고 한 어머니의 고백이 기억난다. 사랑이 아니면, 하느님이 아니면 이 세상 수고는 다 짐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나중에 결국 다 남 것이 될 테니 헛되기도 하다. 자식도 결국 남이고 하늘나라에서는 모두가 형제자매다.
예수님을 열심히 찾아온 그들이 많아진 빵이 아니라 그 기적에서 표징을 보았다면, 그 기적의 의미를 알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래도 여전히 예수님을 찾아왔을 거다. 예수님이 아니면, 하느님이 아니면 그런 깊은 연민을 가질 수 없고 그 연민대로 무모할 정도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에게 사는 길을 배우고, 그 길을 따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수고와 고생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코헬렛이 말한 대로 나의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향해 있지 않다면 내가 여기서 수고하고 흘린 땀이 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코헬 1,2-3)” 영원하신 하느님을 향할 때 유한한 인생은 그 허무를 극복한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야(요한 6,27)”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거다. 그분이 구세주시고, 그분의 길이 구원의 길이라고, 참 행복의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어디서 다른 누구에게서 그 길을 배울 수 있겠나?
예수님, 주님에게서 사는 법을 배웁니다. 조금만 더 멀리 보고, 가끔은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향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모든 수고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