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최고로 어려운 시 ‘오감도’를 배우고 지나왔다. 오감도는 이상(李箱)이 지은 시이고 천하에 난해시이고 무슨 시적 사조나 실험적 형식으로 억지로 어렵계 쓴 시이니 연구도 학자들이 나서서 달려들어 90년 가까이 해왔으나 갈수록 어렵게만 파고 들어가서 한 사람도 속 시원히 풀어내지 못하고 연구한 사람들만 귓속말로 주고 받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의 연구실적이 쌓이고 쌓여 왔다.
문인, 연구가 여러분! 그 이상(李箱, 1910~1937)은 조선총독부 건축기사인데 그 어느날 측량하러 나가서 일본 공직자들 누군가가 김해경(이상의 본명)을 보고 김상(김씨)이라 부르려 했던 것인데 조선 사람 성씨가 김씨 아니면 이씨이니 착각하여 이상(이씨)이라 했다는 것이고 이를 본 김해경은 자기를 ‘이상’이라 부르는 그 발음으로 이름을 정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착각, 초월, 의미파괴라는 의미의 문예사조적 실험적 전위파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이상(李箱)이라는 의미를 본인이 쓴 뜻은 “형벌(친일)을 조사하고 심의해서 그 정상에 따라 무덤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로 쓴 것이라니 경천동지할 이상 시인의 저항이 아니고 무엇인가?
독자 여러분! 잠시 옷깃을 여미고, ‘오감도’를 새롭게 해석해낸 김유섭시인(서정시학 등단 시인, 남해 김만중문학상 수상)을 주목해 주시길 바란다. 이상이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날이 1934년 7월 24일이니 이로부터 88년이 흐른 뒤 김유섭 시인은 ‘이상 오감도 해석’(2021, book속길)에서 ‘오감도’ 15편을 재해석해 낸 것이다.
재해석하면서 김유섭 시인은 “오감도가 연재되고 나서 9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오감도는 비극의 오독과 참혹한 억측에 짓밟히고 있다. 오감도를 자위, 섹스, 각혈, 자아분열 등으로 해석하고 심지어 이상을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배 시대에 민족의식 없는 시를 쓴 시인이라고 비난하는 글도 있다.”
여기서 우선 이상이 오감도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부터 들어보기로 한다
“일본 왕의 주둥이를 막아 죽이고 함께 죽겠다고 했던 결사 항전의 시인이었다. 시로 1인 독립전쟁을 한 전사였고 게릴라였다. 이것이 오감도를 난해하다고 하는 방식으로 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살펴 읽으면 난해하지 않다.”
이상은 초현실주의자거나 모더니즘의 수법으로 쓴 시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88년만에 빛을 보게 된다. 이상이 결사항전을 했다는 것, 조선민족 청년의 피가 끓는 시를 썼다 하니 이제라도 일제하 민족시인의 입지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현재까지 민족 시인 하면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를 들었는데 판도가 사뭇 달라져야 될 듯.
여기서 김유섭 시인의 저서 ‘한국 현대시 해석’(2021, book속길)에 의하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주목하게 된다.
진달래꽃은 종전의 해석대로라면 ‘별리의 시’(여인과의 이별사)이었지만 민족을 버리고 친일하려는 사람에게 역겨워 가실 때는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는, 의지와 조롱의 의미가 짙은 애국시라는 것이니, 이 부분도 심각히 토론해볼 게제에 와 있다 하겠다. 비록 88년 동안 우리가 이상의 시를 문학사조적 탈을 뒤집어 씌운 시로 오독해온 것이라면 우리나라 시학은 이제부터라도 건전한 토론대 위에서 오감도 읽기의 코드 찾기를 해가야 할 것이다. 아니 김유섭 시인이 밝혀낸 연구 결과를 두고 머리를 모아 이해하고 더 짚어야 할 데는 없는가, 알아보는 단계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 그 사이 우리나라에 친일시를 찾아내던 그 열정으로 민족 저항시를 찾아내는 열정을 보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일제강점기 하면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책 편집의 자의성)를 꼽아온 그 눈물겨운 나라지키기 정신이라면 이상이라는 시인의 시가 앞장서는 일제하 1인 독립운동자라는 주장이 나왔으니, 이런 경사가 있나, 이를 어찌 이론적으로 정립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자들이 여기 저기서 번쩍 번쩍 나타나야 옳다.
김유섭 시인에 의하면 이태준이 오감도를 아끼고 아낀 나머지 1934년 호주머니에 신문사 사표장을 써가지고 다녔다는 그 이태준의 밝혀지지 않은 사연의 추적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이상의 절친 김기림이 친구 이상 시인의 오감도는 “피로 쓴 것이다”라 한 그 “피로 쓴”이 새삼 하나의 암시처럼 다가오고 있다.
시인 이상은 당시의 시인이었던 김소월이나 한용운이나 이상화 같은 방식으로 시를 쓰지 않았다. 그렇게 썼다면 그는 진작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져 갔을 것이다, 한용운도 아니고 이상화도 아니고 이육사도 아닌, 일반인이 못알아보는 방식으로 썼다는 것 아닌가. 이 방식을 찾아서 김유섭 시인은 이상과의 눈싸움에 들어갔을 것이다. 무엇입니까? 어떤 방식입니까, 어떤 방식이라야 일제 고등관 눈초리를 피해갈 수 있습니까?
저작권자 © 경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출처 : 경남일보(https://www.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