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믿음직한 검사차림의 남녀와 신관이 분명해 보이는 소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잠시 전으로 되돌아 가보면 동제국 서쪽에 위치한 미토대공의 영지인 갈마현의 브론즈 숲을 일행이 지나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와 다들 검 손잡이를 움켜잡고 소리나는 곳으로 뛰어왔던 것이다. 기껏 헉헉 거리고 뛰어와 보니 상황은 이미 전개되어 있었다.
오크 한 떼가 지나가던 사람을 습격했나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얼른 그 습격당한 사람을 구해내야 하는 게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우리의 두 겁사가 해야 할 일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난감하고도 황당한 표정을 한 채 정의의 사도는 구경꾼으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었다.
퍼버벅
" 끄아악!"
" 야! 너, 다시 말해봐. 여자라고? 니 눈엔 내가 여자로 보이냐~~~."
소리소리 질러가며 오크 머리가 사정없이 등과 가슴으로 시계추마냥 왔다갔다 하게끔 만들고 있는 주인공은 그 습격당한 여리디 여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간 쌓인 엄청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인 마냥 아주아주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난사하고 있었는데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 맷집 좋은 오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벌써 오크 다섯마리는 얌전하게 한쪽에 포개어 쌓여져 있었고 근처 나무가지에 걸려 있는 게 세마리. 대장인 듯 싶은 오크는 저렇게 뇌진탕 일보직전까지 가 있었으니....
소년이 잠시 주먹을 내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었다. 그랬는데 소년의 몸이 갑자기 붕 떠서 회전하는 듯 싶더니 한바퀴하고도 반바퀴 더 돌고 시원스레 내지른 발이 가까스로 서 있던 대장 오크의 가슴을 가격하였으니 그마저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신세가 되었다.
꾸에엑~!
540도 발차기!
미디암과 네프- 남녀 검사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 저거, 540도 발차지 맞지?"
" 권법에 능하다는 사람도 성공시키기 힘든 기술이잖아."
두사람의 놀람을 알 턱이 없는 여리디 여린 소년(?)은 숨을 크게 내쉬더니만 두 손을 탁탁 털고 바닥에 내려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배낭을 집어 들었다.
아직까지 일행은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치렁치렁한 백금색 머리카락이 얼굴을 절반정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백금색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그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으니.
"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까불고 있어."
하면서 씽긋 웃는 얼굴은 무쇠와도 같다고 자부하던 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길 만큼 청순미가 넘쳐 흘렀다. 네프의 입은 절로 벌어지고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 후와~!"
" 오크 놈들이 보긴 제대로 본 거네."
" 동감이야."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그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 드디어 도착인가?'
하루디안의 외곽 성문을 바라보며 땀을 닦아내는 일행이 있었다.
" 정말 엄청난 여행이었어. 안 그래? 레오."
먼지가 뽀얗게 앉아 이젠 제 색깔을 잃고 회색으로만 보이는 로브. 지쳐보이는 말. 이런 것으로 보아 이들이 꽤 먼 거리를 달려온 듯 보였다.
" 맞는 말이지. 촌놈이 시골구경한다고 국토 대횡단을 한거니까."
레오라 불린 사람은 머리에 쓰고 있는 후드가 귀찮은지 그걸 벗으려고 손을 얹으며 말했다. 순간 다른 일행의 얼굴빛이 일제히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만 곧이어 .
" 잠깐! 후드 벗지 말라고 했잖아!!"
" 레오, 너 또 무슨 귀찮은 일에 휘말리려고 하는 거얏!"
" 안돼! 절대 안돼!"
세명의 입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온 비명같은 고함소리에 레오는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석상이 되어버린 듯 굳어졌다. 그래도 애써 어색하게 헤헤거리며 입을 떼었지만 돌아온 건....
" 이거 계속 이렇게 쓰고 있어야 해? 나 무지 답답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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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깽.
살벌한 일행의 시선에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약간 심통이 난 듯 후드를 앞으로 당겨 깊게 써 버렸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아주 지극히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는 약간의 제스처로 그의 불만을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동행하고 난 첫 여행지에서 있었던 모종의 일. 그리고 산길에서 만난 도적들, 두번째 여행지에서의 못난이 영주.
" 그래도 하루디안은 수도니까 치안 상태가 좀 낫겠지. 레오, 조금만 참아봐. 성에 들어가면 벗어도 될거야."
남색머리의 히루가 다정하게 말하며 그의 어깨를 툭 치자 그나마 그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돌았다.
" 역시 레오한테는 히루밖에 없네."
" 그나저나 봄맞이 축제에다 태자전하의 성년의식이라고 했지? 아무래도 엄청난 인파가 밀릴 거 같은데...저 성문에 늘어선 사람들 좀 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