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회창 지지자 여러분 사랑합니다...맑은샘입니다. 오늘 배가 좀 나와 성북동에 가서 운동을 좀 했습니다. 오랫간만에 운동을 하니 좀 땀이 나는군요...모레, 또 구국결사대의 남북총리급회담 반대 기자회견이 있기 때문이지요....경제리포트를 캠프에 드리라고 아는 형님께 드렸는데 잘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자를 그만둔지라 용돈이 좀 필요해서 운동을 좀 했는데 저녁에 갔다와 보니, 이회창님께서 계란 세례를 어이없게 받으셨더군요....다치지 않으셨는지 걱정되고, 경호팀에게 걱정을 좀 전합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요....한 어중간한 30대가 한나라당 경선과정과 전혀 상관없는 창님을 두고 어처구니 없는 불학무도의 일을 벌렸군요... 정도요? 누가 지금 정도를 걷지 않습니까? 창님입니까? 한나라당입니까? 한나라당 경선과정이 정도였다면 우리가 왜 나섰겠습니까? 필자도 한나라당을 사랑한지 십년이 되어 가는군요.....이런 점들 모두가 좌파의 농락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그 대구의 30대는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두 눈뜨고 경각심을 가집시다. 오랫만에 땀흘리니 기분도 상쾌하군요...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그까짓것 하면서 더 밝고 맑게 활기차게 나아 갑시다....이회창님, 지지자 여러분 화이팅....베르디 음악 한수 띄우면서 졸고 또 올라 갑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맑은샘의 신좌익사상비판 시리즈 21: 편협한 역사관의 대명사 미하일 일린>
구국결사의 맑은샘.
육체가 가끔 무척 피로한 날이 있다. “노동” 우익진영의 우리 젊은이들은 이 노동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필자가 아는 어떤 사람이 “자신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우파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필자는 이 사람과 “노동”에 관하여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이 “노동”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매우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좌파든 우파든 사람은 자신 스스로 어떤 노동을 하고 살지 않으면 사실상 무슨 살 가치가 없는 것이고 생각은 항상 머물고 행위는 썩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상 돈이 많다면 “노동”하고 살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실상 그 사람도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매일 무엇인가를 하며 사는 사람이고 필자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며 매일 무슨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 사람이 말하는 “자신이 싫어하는 노동은 먼지 먹고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 즉, 일명 “막노동”이며 그는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둥” 이에 대하여 매우 혐오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 사람은 “자신은 우파다”라고 말하는데 그리 우파 사상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도 못하며 그리 깊이 공부해 보지도 않은 것 같으니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필자는 오늘 하루 소위 공사현장에 가서 일명 “막노동”을 해 보았다.. 필자는 어느 경제신문기자로써가 아니라 필자 특유의 정신과 가치관에 모멸감과 정치적 유혹과 더러운 줄서기를 강요하는 직업을 과감히 버리고 현재 고등학교 아이를 가르키며 늘 무슨 책을 보고 생각하는 생활과 자유애국우익운동에 매진하고 있지만 “좌파들과 미하일 일린”을 생각하면서 이 “인간의 노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요즈음은 전혀 그럴 필요도 없고 나는 매일 육체노동을 해서 밥을 먹고 살 필요는 없어도, 좌빨들에 아부하는 편한 직업의 별로 온당하지도 않은 듯 한 푼돈 잘들어오기 직장에서 “어 살다가 급한 용돈이 잠시 필요한데 통장에서 돈을 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본 경험을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돈을 빌리고 싶지도 않고 해서, ”애라 하루 운동 좀 하지 뭐!“ 하고 공사현장으로 가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뭐 지금 하등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우익이라도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피 같은 돈을 벌어보는 것도 젊은 후배들에게는 강한 자립의 정신력을 기르고 건전하게 육체도 단련해 본다는 의미에서 매우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예전 직장생활을 하기 전, 한 때 신림동에서 막 우리를 틀고 법서와 시름하며 약 사개월 동안 소위 이 “막노동”을 해 본 경력이 있었다.
처음 한 달은 줄기차게 새벽 다섯 시까지 기상해서 바로 사무실로 나가야 하고 해가 뉘엿뉘엿 해질 때쯤 지친 몸을 이끌고 “피 같은 돈” 일당을 챙겨온다. 서울이 고향이 아니고 자라난 도시가 아니라서 어린 청년 시절에 부모님과 상관없는 생활, 과외거리도 없는 동네의 가난한 고시생 시절, 책값 있으면 밥값 없고 밥값 있으면 책값 없던 그 시절의 그 생활을 참으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 거리다.
필자가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법서를 보면 볼 수록, 법철학을 읽으면 읽을 수록 “무슨 무슨 유혹, 누가 공부 비용을 대어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면서 공부한다는 그 자체가 혐오스러울 때가 많았다.... 매우 부끄럽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고 악마와의 투쟁이었으며” “늘 무엇을 판단한다는 직업으로 가는 어려운 길에 눈물 나는 자신과의 혈투의 여정이었다.
처음 막노동을 나가는 새벽 다섯 시의 골목길에서 늘 생각나는 것은 “아 정말 조금만 더 자고 싶다.....사무실에 도착해 보았자 무슨 온갖 퀘퀘하고 음침한 장소와 맨날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이 괴로움이 무슨 나의 희망인가”라는 악마의 유혹이 늘 다시 이부자리로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참고 이겨내면 “비록 내 육체 하나로 시작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지만 나는 이 고통을 이겨내면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인간이다”라는 웃기는 나만의 신조부적을 외우면서 “오늘은 반드시 새 상법판례를 사 보아야지 그것이 중요하다”하며 또 현장에 가는 것이었다.
처음 막노동을 할 때는 시멘트 옮기는 것, 벽돌 나르는 것, 나무목재, 판 넬 옮기고 나르는 것,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고, 특히 처음 못이 신발을 뚫고 팍팍 들어오거나 몸은 안 따라 주는데 상급의 무슨 기술자가 빨리 “사모래 안개워오느냐?”고 호통 칠 때면 정말 온갖 인간굴욕과 증오가 다 생기고 다 때려 치우고 하기 싫은 생각이 마구 샘 솓아 난다.
“이거 대학 나와서 내가 저 막 되먹은 놈의 욕을 먹어가며 도대체 왜 이러해야 하는가?”부터 또 악마의 유혹이 찾아 온다....그러나 “내가 이 시간을 이겨내면 나는 승리하고 당당하게 내 돈으로 공부한다.” 라며 또 부적을 외우며 일이 끝날 때는 일당의 배추 잎파리가 춤을 추고 그 돈으로 산 내 법서에는 누구도 줄 수 없는 내 만녈필 사인이 들어 간다.
“가치와 현실 어쩌고 저쩌고...........” “라드부르흐 너 죽는다 임마, 나를 벌로 보냐?...오늘 나 정도면 너랑 포도주 한잔 하며 대면해도 되겠지?” 하며 보낸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지만 한 달 정도 해 보면 뭐 그것도 별것 아니다.....
힘들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신력도 강인해지고 육체의 근육도 붙고 일 끝나고 한잔 만 하지 않는다면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피로를 푼 후 새로 산 책 앞에서 그렇게 정신이 맑을 수가 없다. 그 시간에 본 법서의 조문들과 주석, 판례는 도저히 잊지를 못하는 것이다....
책을 다사고 공부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시기에는 막노동 “막 자도 끄내지 마라” 이지만 사실 내 법률학의 이론쌓기나 막노동하면서 일당이 6만원에서 12만원으로 올라 해본 소위 벽돌 사십개 지고 10층 철 난간 오르기까지, 한달 만에 아무 탈 없이 해낸 땀 흘려봐 전문가 입장에서는 그 환희와 미련 없이 버리는 그 몸의 땀을 어떻게 잊겠는가?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훈련병 시절 좀 빡센 듯 한 훈련을 받은 것과 같다고 보면 별 이상이 없다....이 육체노동 하면서 평생 살아라는 전혀 아니지만.....
하도 오랜만에 나간 오늘의 철골 구조물 조립현장에서 나는 그때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을 또 느꼈다. 도무지 눈에 불을 켜고 일당을 벌려는 아무 생각 없으며 땀만 흘리는 사람이 순간순간 발자욱 한자욱 삐긋 하면 아찔하다는 초긴장과 무거운 강철 빔을 들고 왔다갔다 하기도 바쁜데 무슨 좌파, 우파가 어떻고 마르크스가 어떻고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까?
그것 마져도 다 “꿈깨몽이고, 말장난 스톱이고, 헛소리 닫아라”일 뿐이다....오늘 현장에서 점심시간 아무리 노동자들을 둘러 보아도 뭐 심오하게 마르크스의 노동이 어떠니 미하일 일린의 노동관과 역사관이 저떠니 하는 인간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한평생을 육체노동만 하고 살았어도 진실하고 진정한 노동자 아저씨들은 필자가 눈 닦고 보아도 “마르크스와 마하일 일린”을 알지도 못하며 그런 웃기고 자빠지는 소리에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 가지는 불만?” 없음....가끔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는 공사현장에서는 딴생각으로 한눈을 팔다가 꼭 사고가 난다. (얼치기 좌빨 고문관? ^*^)
*필자가 아는 한 한국의 쓰레기좌파들은 원래부터 이 노동현장에서 자연스럽고 자생적으로 출발한 무리들이 아니었다. 물론 막 경제부흥을 일으킬 개발경제당시, 매우 불합리하고 미비한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필자가 전에도 밝혔듯 공익(公益)을 공익(共益)으로 해석하는 오류고 모순이며 노동법적 사고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대단히 어리석은 사고는 전체의 자유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명확한 진리이다. 우리 법에 노동법과 관련한 기타 관계 특별법들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조정하고 입법하고 해결해도 된다.
한데 우리의 쓰레기 원숭이 좌빨들은 사실상 정치 꼼수적 입장에서 노동현장에 위장취업부터 시작하고 노동운동을 한 것이다. 좀 괜찮은 종합대학의 풍부하고 다양하며 객관적인 좌,우의 여러 사상들을 총체적으로 보고 스스로 비판할 수 있으며 자기 사상을 선택하고 만들며 다듬어 나가는 인생의 조건과 환경이 전혀 있을 수 없었던 당시의 소위 “공돌이, 공순이”라는 어린 노동자들에게 천편일률적이고 편협하며 조잡한 세계관을 주입시킨 무리들은 모두 사실상 진성 노동자 출신들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노동하기도 바쁜데 무슨 마르크스를 알 것이겠는가? 대학에서 막걸리나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여자애들이나 꼬시던 고등룸펜들 아니겠는가? 그들의 자존심? 명예? 다 개폼이다... 웃기지 마라......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면서 분신자살했다는 한 택시기사이며 민주 노동당원이라는 자의 가족들의 기사가 “자살방조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듯 인터뷰 기사로 나가는 즈음, 이를 보면서 나는 너무나 악랄하고도 가증스러운 것이 우리나라의 얼치기 쓰레기 원숭이 좌빨 들일 뿐이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선전, 선동에 놀아난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쌀개방을 직접적으로 외쳐야 하는 농민도 아닌 택시기사가 얼마나 세뇌교육을 받았으면 자신의 일도 아닌데 분신자살하려 했을까? 이것은 완전히 더러운 정치꼼수적 선동이다.... 시위현장에 시민들도 노동자도 농민들도 거의 없는 좌빨들과 민주노동당원들의 굿판과 쇼... 그리고 민주 노동당원의 분신자살이라는 과대망상을 일으키는 극단적 언론 떠?으1? 퍼포먼스...아니 겠는가? 퍼포먼스가 이슈를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면 퍼포먼스로 정정당당하게 하라..........별 죽음 아양 개 폼,, 양아치 원숭이 소설을 쓰지를 말고.....
나는 다른 형제자매 우익 단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구국결사대에서 어느 대원들이 좀 정신력이 약해지고 기가 빠진다면 간부로써 이 “막노동 몇일 코스”를 반드시 자유애국우익시민운동의 정신교육 함양, 결사대 교육훈련 과정으로 집어 넣어 버린 기억이 있다....
구국결사대는 조그만 단체이지만 이년동안 800여회 이상의 거리투쟁과 다른 단체와의 많은 연대투쟁 중 극소수의 일부 합리적 연대사안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자체적인 재정으로 일을 해 왔다.
나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솔직히 자기 몸으로 엄청 땀을 흘리고 피같이 번 돈을 공익과 남을 위해 쓰거나 내어 놓는 것은 그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조그만 일이라도 내가 그렇게 번 돈을 운동을 위해 살짝 써 보아야 진정한 희생과 봉사의 전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며 운동을 해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교만한 자랑은 아니지만 북의 좌빨들이 광주에 왔기에 휘발유통 들고 지프를 타고 잠입해본 경험이라든가,, 맥아더동상 투쟁 때, 평택기지 사건 때, 부산 에이팩 사건 때, 좌빨들의 중심으로 경찰 바리케이트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뚫고 들어가 본 경험이 있고 위장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전투를 해본 경험으로 생각해 본다면:
무식한 좌빨들이 아니고 얼치기 고등좌빨들이 쳐놓은 “합법”이라는 외곡그물에 걸리고 말려들기 행위라던가, “남따라 하는 정신이라던가,? 남의 눈치를 본다던가? 평소에 말은 엄청 많다가 전투현장에서 대열을 이탈하고 경찰에 숨고 정보를 흘린다던가?
합리적 연대의 합의과정도 아닌데 무슨 누구에게 손을 벌린다던가? 자기만 잘났다던가? ”평소에 좌빨 타도 말은 무척 많은데 막상 전투현장에서는 뒤로 뺀다던가?” “우익 동지들이 만들어준 公益의 자리인지도 모르고 북의 만경대에 가서 절하고 온다던가?”
“좌빨종식 우익운동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우익사상이 무엇인지, 적인 좌빨들의 사상과 신전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덜빵하게 위장 좌빨들과 같이하며 우익을 분열시킨다던지?“ 피켓시위 한번 한 사진 들고 대형단체 찾아가서 뒤로는 앵벌이를 한다던지? 이런 정신으로는 연배차이를 불문하고 절대 존경받을 수도 없고 우리 구국결사대에 욕할 수도 들어 올 수도 없다.
우리는 분명히 “이 시대가 남도 아니고 바로 우리에게 왜 문제이며”, “왜 좌빨 원숭이들이 문제인지”를 자신 스스로 체득하고 싸울 각 분야의 전사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그것은 절대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와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자기 판단에 바탕을 둔, 스스로 전투하고 협동하는 대원들이고 그래야만 아무리 어려워도 혼자서 스스로도 싸우며 어렵다고 갈등하지 않는 투철한 좌빨종식의 전투정신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익운동을 하면서 무엇인가 자신을 위해 뭐 챙길 것 없는가?”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착각과 과대망상에 빠진다던가?” 하는 속마음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애초부터 그럴 것이라면 여기서 “뭐 돈을 벌 꿍샘”이라면, 무슨 뱉지 자리하나 가지는 것이 소원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체의 대소규모 외형적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규모보다도 때로는 그 구성원의 전투의 질과 투철한 정신력이다...
좌빨들과 위장들이 항상 노리는 것과 우익운동을 하면서 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이것이다. “졸고이지만 필자에게도 이 운동을 하면서 늘 무슨 책을 내어볼 생각이 없는가?”하는 유혹도 있었고 “연봉이 꽤 괜찮은 모 3선의원의 법률 보좌관 자리도 박찬 것이고, 경제신문편집장 자리”도 있었고 잠시 일도 해 보았지만 겸손도 해야겠고 그 기준에서 사장이 사장 같지도 않고, 노선이 정확하지도 않고, 언론의 사명과 정도도 아니고 줄서기 같아서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누구는 편히 살고 싶지 않겠는가?
어쨓든 그런 아주 특별한 하루를 간만에 접하고 돌아와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참으로 싱그럽고 맑은 숲의 바람이 불어오는 이 시간 동지들을 위해 나는 “미하일 일린”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 A : <미하일 일린 누구인가?>
(인간의 역사)를 쓴 일린은 러시아의 아동문학가이자 과학 소설가다. 본명은 일리야 야코플레치비 마르샤크(IL'ya Yakovlevich Marshak)로 1895년 러시아 돈 강 연안의 작은 도시인 보로네슈 시에서 태어 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발명가이자 과학자였고, 그의 형은 아동극 (숲은 살아 있다.)로 유명한 러시아 아동문학의 일인자이며 시인인 “사무엘 마르샤크”였다. 일린은 이 두사람으로부터 과학적 재능과 예술적 재능을 각각 물려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년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일린은 더 큰 도시인 레닌그라드로 나와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물리와 수학을 배웠다.
그 후 정식으로 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하여 과학수업에 전념했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청소년을 위한 과학서적이 의외로 적고, 그나마 대부분의 책이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문장이 어렵고 까다로워 청소년이 이해하기가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알기 쉽게 썼다는 책은 내용상의 오류가 많은 것이어서 일린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고 1924년경부터 아동잡지에 과학 이야기를 기고하기 시작했다.
특히 (위대한 계획의 이야기1930)가 러시아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고 고리키로부터 높이 평가되었다. 그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는 특이한 재능으로 영국등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주요저서로는 (빛의 역사) (자연의 정복)(산들과 인간)(등불의 역사)(책의 역사)(10만의 질문)(원자로의 여행) (시계의 역사) (행성의 개조)(보르딘전) (인간의 역사) 등이 있다. ---------------------------------------- B: <미하일 일린, 무엇이 문제인가?> *미하일 일린의 (인간의 역사)를 참조 하세요....
(인간의 역사)를 쓴 미하일 일린의 책에서 일린은 인간이 어떻게 자연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집단적 노동과 언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인간은 집단적 노동과 언어를 통해 도구와 기술의 발명과 개선뿐만 아니라 자연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환경을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즉, 그는 집단적 노동과 언어를 통한 문화적 전승과 협동작업이 인간을 거인으로 성장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해 단순하고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일린이 구쏘련과 러시아 출신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회학자 “에밀 뒤르깽”이 말한 “분업”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새윤리를 위한 우리들에게는 그리 탁월하고 구체적인 분석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a. (과학적으로 보아도 왜 문제인가?) 필자가 하루 경험했던 현대식 인텔리젼트 빌딩을 짓는 첨단 막노동의 공사현장에는 이십년 이상을 육체노동으로만 일하며 필자를 “데모도(^*^)로 부린 노가다(막노동)아저씨는 인식을 못해도, 필자가 예전에 잠시 나갔던 열악한 공사 현장과는 달리 소위 현대 산업공학에서 말하는 CIM(Computer Intergrated Manufacturing system) 과 로봇, 중장비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대규모 철골 구조물을 짓는데도 필자가 그날 파악한 현장의 최첨단 현대판 분업 업종만 스무개가 넘는다. 우선 들어가는 입구부터 수위가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을 카드로 컴퓨터로 일일이 확인하고도 얼굴을 익혀야 하며, 어마한 수십톤의 철제빔을 싣고오는 대형 트랙터팀, 지하를 파는 굴착기 팀, 파낸 물질을 옮기는 로우더팀과 덤프트럭팀, 필자가 맡았던 중 소형 빔 나르기와 대형 빔들 사이를 철제 대형 볼, 나트를 연결하는 팀, 기중기로 그 대형 빔을 고공의 위층으로 옮기는 팀, 고공에서 철골 빔을 연결하고 볼,나트를 조으는 팀(제일 위험하다), 레미콘 믹스 팀, 등등 줄여도 분업의 수가 많고 ,그 분업은 철저하고도 하등 오차 없는 깨끗하고 강인한 정신상태가 없으면 자칫 나 하나의 방치와 태만, “대충해도 되겠지”라는 정신상태로는 수십톤의 철골에 깔려 죽을 수도 있고 모두가 대형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지는 있고 하루 종일 강인한 근육의 에너지가 소모될 지언정,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도 없고 노동자의 얼치기 문화적 한을 토로할만한 한심한 정신적 여유와 막걸리 낭만도 도무지 있을 수가 없다.
분업의 하나 하나에 땀과 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며 계속 일이 효율적이고 간단하면서도 고도의 첨단 기술이 발전되는 프로페셔날한 건축 작업으로 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만이 남으며 , 분업은 원시시대에도 있었지만 문명의 학계에 처음 소개한 에밀 뒤르깽이 생각하지도 못한 고도 기술시대로 가는 것이며, 더러운 정치 꼼수 쑈의 좌빨 원숭이들을 우습게 보기에 충분하다. 한같 자본주의는 썩었다며 일 자체를 없게 만드는 더러운 선전 선동 술의 유치한 한계를 만들기에 만족한 것 아니겠는가?
b. 과학과 이성의 한계를 주목하지 못했던 일린 : 우리는 일린이 말한 원시인들의 신앙이나 고대인들의 종교가 비록 자연과 인간 사이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그 나름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원시시대에도 생존을 위해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과학적 사고와 기술의 힘을 빌리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채집을 위한 관찰과 실험이 필요했을 것이며 도구를 만들거나 개선하기 위해서도 관찰과 실험, 추론과 같은 과학적 태도는 필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인간은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일린은 마르크스시대를 산 사람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종교에 대해서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무척 혐오하고 있으며 무지를 양산한다는 잘못된 유물론적 시각으로만 보고 철저히 헤겔식의 사고 도그마 오류 교만에 착각하며 인간의 역사를 보고 있는 사람이다....그리고 특유의 말장난으로 아동문학을 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자신도 모르는 좌빨일 뿐이다....
필자가 남은 계정의 돈으로 어린 조카에게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선사하는 장난감 선물 중에는 철제로 만든 기중기와 건전지를 넣으면 자동으로 흙손 버켓이 돌아가고 정교하고 정밀한 캐터필터가 움직이는 “Komatsu PC3000-6 Backhoe Excavator ” 라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생명이 없는 슈퍼마켓에서 산 중국산 봉고차 모형보다 이 순진무구한 어린애가 왜 “삼쫑은 최고”라는 단어를 연발하며 숲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다람쥐와 대화하면서도 폴짝폴짝 뛰어 다닐까? 어린 아이도 생각하는 힘이 있어서 이 장난감이 왜 자동으로 스위치를 누르면 돌아가는 것일까? 하며 골똘히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경제현상은 맑스나 일린의 도그마 오류 도식처럼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그 근원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이 아닌 “인간이 아직도 과학적으로도 발견하지 못한 자생적 질서”의 힘이 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손하게 관계 맺기를 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그 나름대로 현명한 처신이다. 고대세계의 신화나 우화는 그 당시 나름대로 인간이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학과는 다른 차원에서 시도되었던 또 하나의 현명한 대응일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종교적인 신앙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영역의 사고를 가로막은 점은 사실이었지만 특히 고대국가에서 종교는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현실의 부당한 관계를 “신의 뜻”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하는데 악용되면서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종교를 내팽개친 인간의 실존주의와 사회주의도 교만하고 독자적인 새로운 이성의 이데올로기이며, 또 새로운 자유정신의 억압구조의 산물이라는 데에도 오늘날 많은 신 좌,우익 지성들도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과연 자본주의가 싫다고만 해서 그것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생각은 않고, 또 합리적으로 개혁 개선한다면서 그 합리적인 기준이 좌익적 사고의 근원을 가진 것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르며 순수한 노동을 악용하고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단연코 아니다....
우리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자연의 일체감을 잃지 않고 공존하려고 했던 고대인들의 소박한 믿음이 가진 긍정적 의미를 무시할수는 없다. 이 세계는 무한히 풍부하고 다양한 만물이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다. 이러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은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이 순간과 바로 그 장소에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이때 인간의 이성적 사고라고 하는 것도 마주치는 대상을 그 무수한 연관과 변화로부터 일시적으로 떼어내어 이해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학적 앎은 만물의 움직임과 변화를 그 미세한 부분까지 모두 예측할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이해 한다면 우리는 과학적 지식의 불완전한 맹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 한계를 넘어선 영역에 대한 이해를 인간의 직관이나 감성 또는 사이비 종교나 미신들이 아닌 스스로의 영성에 맡겨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하는 막노동 현장을 하루 다녀와 보고서 나는 그 성스러운 인간의 노동을 쓰레기 원숭이 사상의 착각으로 악용하는 더러운 붉은 무리들의 가증함을 욕하면서 과학적 한계, 또는 인간 이성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열린 태도는 인간의 위대함과 존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연과 인류사회에 대한 인간의 무거운 책임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더 발전된 과학적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편협하며 선긋기 도그마적인 사고의 일린을 간단하게 나마 졸고로 비판하며 돌아 보면서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하루 막노동현장에서 나는 좌빨들이 말하는 노동자의 한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우습게도 파탄 난 전체 자유 국민경제 속에서도 붕괴되어 가는 집권당의 정치 현상 속에서도 이상하게 구 민주당 (김대중)계열의 정치 추종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목동의 수많은 삼성, 현대라는 대기업들의 개발 현장에서 그 돈의 소스를 탐색하는 기회를 보고 온 것이었다..........
젊은이들이여........ 인간의 당연하고 신성한 노동 중 하나인 막노동을 팔면서 하는 좌익 한스러운 노동운동의 허점들을 보며 자유애국우익의 노동당연 경제 발전의 긍정적 사고를 말하자...... 발전되고 책임 있는 정책이 아닌 막노동 자랑해 이미지 사기쇼도 배격하자....... -------------------------------------------------------
<불꽃의 새들 (현대시)>
맑은샘 지음
새장에 갖히지 마라 새여 하늘 높히 날아야만 하는 나의 슬픈 우수(憂愁)의 새들이여 정신의 감옥에 결코 갖히지 마라 하얀 새여 맑은 창공 시원하게 날아 올라야만 하는 나의 새들이여 영원할 빛 군단의 전사들을 풀을 말하고 타는 목마름이란 말로 빌어 먹어 개 돼지새끼들이 가두려 하나 보라 사랑과 자유와 정의의 영원한 빛이 그대들 비출지라 새장속에서 라도 나와 아버지와 빛을 보라 달나라를 인용하고 새벽두시와 황톳길을 써먹은, 찢어 죽이고 불태워 버릴, 저 육두의 빠알간 돼지들이 장난하는 더럽고 구역질나는 시궁창에서라도 그대 와 나 우리 마음 밝아 다 타버리도록 맑고 밝아 히브리 노예들 음성이 점점 커지도록 별빛의 향로에 담기도록 슬프고도 아름드리 밝게 타오르지 않으리 육신이 피터지더라도 영원히 타오르는 저 불꽃을 보라 거룩한 새들이여 노동판에 있거나 기획실에 있거나 신문사 데스크에 있거나 연구실에 있거나 내가 죽어도 영원히 날아오를 하얀새들이여 몽상의 걸레들이 우리를 찢고 날개들을 꺽어도 숙련의 고릴라들이 가슴치도록 KTX를 타고 썩어빠진 비둘기를 탈수 없나니 시궁창에서라도 애써 쓰디 쓰더라도 갈고 닦아 결국 빛 칼을 들고 저 푸른 창공 날아올라 빛 강하의 속도로 빠알간 돼지의 허파와 심장을 찔러 꽂히는 거대한 하얀 물수리로 새시대의 대답이라는 큰 잉어를 물고 그렇게 태워 버리지 않으리 육신의 새장에서 암울한 광경이 있어도 보라, 우리 심장 타오르는 빛의 거룩한 등불이 그대들 숨은 날개 비추지 않으리 개 돼지들을 찢어 발기고 그 골통을 부수어 뇌수를 던져버리고 푸른 빛 창공 펼쳐보일 그 시원한 날 오지 않으리 슬프지 마라 새들이여 끌려가더라도 당당하라 인공기를 찢고 태워버린 이마가 찢어졌던 새들이여 전사들이여 이 육시랄 갈아버릴 세상에도 하늘에 겸손하게 그러나 다 태워버리도록 점점 세차게 타오르리라 타오르리라 하얀새들의 힘찬 날개를 비추일 저 거룩한 등불이 영원히 타도록 나는 슬픔과 기쁨을 넘어 외치노라 빛의 영광이 나의 그대들에게 영원히 그대들에게 -------------------------------------------------------------------- * 졸시 감상 음악 : 베르디 작곡 - 일트로바토레 중 Di Quella Pira(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 / Tenor Luciano Pavarotti . *자유애국우익동지들의 건승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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