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실천할 때 더워도 정말 덥다. 이런 더위는 난생처음이다. 지구 온난화, 아니 지구 열대화라는 경고가 위협이 아니라 사실이다. 어느 섬마을은 수년 후에 물에 잠겨 없어지고 어느 나라는 수도를 옮긴다고 한다. 저쪽 동네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담을 1m 더 높게 쌓는 공사 중이다. 북극 빙하가 녹는 게 남 걱정이 아니라 실제로 내 걱정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10년 전에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 회칙을 내놓으며 환경보호를 위한 인류 전체의 노력과 기후 위기를 경고했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Laudate Deum』 권고로 “더 크고 비극적인 피해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16항) 실제로 행동하기를 촉구했다. 예언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메시지이고 또 하느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시간이 지나면 장차 일어날 일이다. 이 예언대로 되지 않기를 바란다.
참 예언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매일미사 묵상에서 수녀님은 이렇게 썼다. ‘멸망을 예언할 때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판 선고를 들은 이들이 회개하면 그 심판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십자가에서 수난하고 돌아가시기까지 온몸으로 외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정말 하느님 말씀대로 된다. 재앙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벌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결과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유배를 상징하는 멍에를 자신 목에 걸고 다녔다. 얼마나 보기 흉했을까. 하난야 예언자는 하느님이 노예 생활을 끝내게 해줄 것이라고 하셨다며 그 멍에를 부수었다. 예레미야도 그 말이 하느님 말씀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 대신 쇠로 만든 멍에를 씌우셨다(예레 28,13). 거짓 예언을 한 하난야는 하느님 말씀대로 바로 그 해 죽었다(예레 28,17). 기후 위기와 재앙은 위협이 아니라 현실이다. 하느님이 아니라 과학자들 말만 들어봐도 지난 통계 수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는 연구나 걱정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이다. 지금 바꿔도 그 효과는 십수 년이 지난 후에 아주 조금씩 나타날 거다. 지금 세대는 그럭저럭 버티며 살겠지만 안 바꾸면 다음 세대, 우리 자녀와 손자 손녀는 정말 고생하고 어쩌면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예수님,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며 제자들이 갖고 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전부를 나눠주셨습니다(마태 14, 16.18). 재화의 나눔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거기에 더해 생태적인 회심을 실천으로 보여줄 때입니다. 귀찮고 비용이 들더라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