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언감생심 '이란 말을 들을 때도 가끔 있다.
사람들은 고사성어나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유식함을 은연중에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도서관에서 빌린 삼국지와 수호지를 몇번 독파하더니
쓰는 언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자고로 사람은 배워야 된다는 사실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언감생심( 焉敢生心 )이란 문자 그대로 어찌 언, 감히 감, 날 생, 마음 심자로 풀이 하자면 어떻게(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쯤 되겠다.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백수라도 하루 해를 보내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현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신문도 주워와서 읽어 봐야 하고, 그리고는 어제까지 확진자가 몇명이나 되고 또 사망자는 몇명이나 되는지 첵크해 봐야 한다. 세수하고 아침밥 먹고 컴퓨터에서 인터넷도 켜고 주식종합화면도 켜서 주가의 등낙도 살펴야 한다.
그러다가 한 시간쯤 지나면 부산히 움직이던 캔들이 어느 정도 안정세에 들어가면 목구멍에서 커피가 당긴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한 구석에 붙어 있는 키친으로 가서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인다. 예전에 배 탈 때는 밑에 있는 오일러나 와이퍼가 정성껏 타 주었는데 지금은 다 떨어진 백수가 되고 보니 손수 타서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도 사지가 성해서 혼자서 타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예전엔 원두를 사다가 드립커피도 내려 마셨다. 또 커피 대신 녹차와 우롱차, 보이차를 마셔 보기도 했다. 차는 선물 들어온 것도 있었지만 중국 여행갔을 때 들렀던 차집에서 그 현란한 조선족 아가씨들의 선전에 꼬여서 샀던 것들이었다.
차가 떨어지고 나선 다시 커피로 돌아왔는데 원두는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서 귀찮아 봉다리 믹스커피로 대체하였다.
병원에서 당뇨 판정을 받고 나선 한 동안 믹스 커피도 끊었다가 세월이 지나니 간이 좀 부었는지.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려고 커피까지 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포트 물이 끓고 나면 우선 잔부터 데운 다음 봉다리 커피 하나를 뽑아서 가위로 목을 자른 뒤 봉지 뒷쪽을 꼭 잡은 후 빈 잔에 털어붓기 시작한다. 먼저 새카만 커피 알갱이들이 쏟아지고 그 다음엔 허연 커피 메이트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엔 설탕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지만 통로를 누르고 있는 손가락이 당췌 놓아주질 않는다. 보급은 그것으로 끝이다. 봉지에 남은 설탕은 처음엔 재활용 하려고 모았다가 필요가 없어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내 어릴 때 보릿고개 시절 설탕은 언감생심 꿈도 꾸질 못했다. 세상에 설탕이라는 물질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몰랐다는 게 바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설탕없이 어떻게 음식의 당도를 조절했나? 설탕보다도 당도가 훨씬 높은 사카린이 있었다. 물론 당원도 있었지만 사카린보다는 약했다. 학교 갔다와서 배고프면 새미에 가서 바가지로 갓 퍼온 찬물에 사카린 한 알갱이만 풀면 시원한 음료수가 되었다. 허기진 배가 불룩하게 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