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은 하루
글 · 그림 김져니
10] 포스트잇 · 김져니
(끈끈한 추억 = Sticky Memories)
Sticky Memories라는 것이 있다. 독일에 사는 친구 아누가
알려준 개념이다. 우리의 기억은 포스트잇에 적혀 머릿속 어
딘가에 붙어있는데, 포스트잇이 벽에서 떨어지면 기억이 잊히
고, 일부 기억은 벽에 오래도록 붙어있어 어떤 예기치 못한 순
간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어떤 포스트잇이 기억 속에 붙어 있
을지, 또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을 뿐. 어디까지나 포스트잇
의 선택.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기억 중에는, 어린 시절의 사소한 장
면들이 섞여있다. 이게 기억난다고? 하며 신기해한 경우가 적
지 않다.
나의 포스트잇에 기록된 사소한 장면 중 하나는 중학교 삼학
년 때의 기억이다. 하굣길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물놀이를 하
다가 담임 선생님께 혼이 난 적이 있다. 우리는 음수대에서 물
싸움을 할 것 같지 않은 조용한 학생들이었기에, 선생님은 평
소보다 더 크게 화가 나셨다. 그래서 우리는 - 어쩌면 우리 중
나를 포함한 일부는 난생처음으로 - 주르륵 서서 삼십분이 넘
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 웃기게도 나의 포스트잇에 기록된 두
번째 장면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지켜보던 선생님의 슬리퍼다.
선생님의 슬리퍼가 짝짝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장면은 다음
날 아침, 어제 일은 까맣게 잊은 채,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
던 장면도 적혀있다. 선생님이 실소를 남기며 날리신 한 마디
와 함께,
"비위도 참 - 좋아."
이렇게 무작위로 붙어있는 머릿속 포스트잇들 덕분에 서른이
넘은 지금도 간간이 웃을 수 있는 일들이 생긴다. 아, 인생 참
다채롭다.
*
글을 쓰고 구글에 검색 해보았는데... Sticky Memories는
아누가 만들어 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색 결과에 나오
지 않는다...역시 나의 골방 철학자 친구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