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감사 예수님은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외국인인 유대인이셨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을 섬겼고, 율법서와 예언서를 헌법으로 삼아 생활했다. 하느님과 율법을 모른다고 해서 이방인을 개처럼 여겼다. 예수님은 그런 문화 속에서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다.
당신의 선교 사명은 길잃은 이스라엘 민족을 아버지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믿으셨다. 아마도 이방인이 아버지 하느님 신앙을 가질 수 없고 알지도 못할 거라고 여기셨던 거 같다. 그런데 몇몇 이방인들이 당신을 알아봐서 적잖이 당황하셨던 거 같다. 그들에게 참 신앙이 있는 걸 보고 놀라고 감동받으셨다. 로마군 장교가 아끼는 종을 고쳐 달라고 청하면서도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라고 말하는 바람에 예수님은 그 이방인의 믿음과 그 진정성에 놀라셨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방인 여인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그런 믿음 덕분에 그 종과 딸이 나았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느님 신앙, 메시아를 기다림은 문화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김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기는 하지만 외국인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고, 매일 먹는 그 흔한 김치를 외국인들이 찾을 줄은 몰랐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의 그 소중함과 가치를 잊어버리고 지내는 건 아닌지 반성한다. 아침저녁 하느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미사참례하고,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건 없는지 성찰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닌 일상이고 문화다. 이렇게 한다고 대박이 터지는 게 아니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니까 그렇게 생활한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국 사람인 나는 이방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다. 예수님이 한없이 다정하게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그분이 바로 내가 믿는 하느님이다. 예수님은 그분을 당신처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하느님이 나에게 뭔가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하느님이니까 그분께 예를 갖추고, 그분이 생명을 주신 아버지요 어머니시니까 마땅히 감사하고, 그분이 내 생명의 주인이니까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생활한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감사할 일인 건 분명하다. 여러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참된 걸 알게 됐고, 참사람의 길을 걷게 됐기 때문이다.
예수님,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느님과 저를 이어주는 중재자는 주님 한 분뿐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말고 다른 신은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뒤에서, 어머니를 통해서 새어 나오는 영원한 빛으로 인도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