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정혜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남편의 폭행이 시작되었고 정혜는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호하려다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이게 됩니다.
결국 정혜는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수감 중에 아들 민우를 낳았고, 교도소 안에서 민우를 키우며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민우와는 머지않아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재소자는 아이를 낳을 경우 교도소 안에서는 18개월까지만 키울 수 있도록 법이 정하고 있었고 그 후에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맡기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입양을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혜는 친인척이 없기에 민우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났지만, 그래도 재롱둥이 민우 덕분에 교도소 안에서도 행복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정혜가 수감된 방에는 음대의 교수 출신인 사형수 김문옥이 있었습니다. 방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들을 쫒아가서 자동차로 치여 죽인 혐의로 복역 중이었습니다. 김문옥에게도 자식들이 있었지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씌운 어머니를 원망하여 면회도 오지 않았고 전화 통화조차 거부했기에 자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혜는 교도소를 방문한 합창단의 노래에 크게 감동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교도소 내에서도 합창단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합창단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면 하루의 특별외박이 주어진다는 것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어린 아들 민우에게 감옥 밖의 세상을 구경시켜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합창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음대교수 출신인 김문옥에게 합창단의 지도와 지휘를 부탁했습니다.
어려운 과정 끝에 김문옥의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오합지졸인 재소자들로 만들어진 합창단에겐 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연습 끝에 드디어 교도관과 재소자들 앞에서 발표회를 하는 날, 합창단원들은 힘을 합쳐 환상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후 합창단은 대성공을 거두어 정혜는 아들 민우와 하루의 특별 외박을 얻게 되었지만 바로 그날 민우를 다른 사람에게로 입양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감옥 밖의 세상을 민우에게 구경시켜주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감옥의 유리창 너머로 다른 엄마의 품에 안겨 떠나는 민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 민우를 떠나보내고 그로부터 4년 후, 교도소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연말에 있을 전국합창경연대회에 재소자들로 구성된 그들의 합창단이 특별초청을 받았던 것입니다. 공연 당일, 정혜를 비롯한 단원들이 흰색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관객들은 눈을 붉히며 눈물이 흘렸습니다. 이렇게 합창단의 노래가 모두 끝났을 때, 갑자기 객석에 불이 꺼지고 어디선가 꼬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객석 뒤편에서 어린 소년들이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무대 위로 올라와 한 사람씩 합창단원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때 정혜의 손을 잡은 소년은 정혜가 4년 전에 입양 보낸 아들 민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고 입양한 엄마를 친엄마로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음대 교수출신인 김문옥은 특별초청공연을 계기로 자식들을 만날 수 있었고 화해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연도 끝나고 교도소에서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간들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 감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 교도관이 김문옥에게 면회라며 따라 나서라고 말합니다. 면회를 와서 좋겠다며 농담을 주고받던 감방의 동료죄수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게 됩니다. 그날 바로 그동안 미루어오던 나이 많은 음악교수 김문옥에 대한 사형집행이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감방의 죄수들은 오열하며 “찔레꽃”을 부르는데 김문옥은 천천히 교도관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좋아하다가 그렇게 형장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은 괜찮다며 오열하는 동료죄수들을 달래며 말입니다.
이상은 하모니라는 한국영화의 줄거리입니다. 김문옥이 형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에 왜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이 오브랩 되었을까요? 언젠가 맞이하게 될 나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여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사형수 김문옥 보다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수 있을까요? 내 삶이 김문옥 보다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었을까요? 예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형장으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듯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죽음이 찾아오지 않겠어요? 김문옥 뿐만아니라 우리도 언제 어떻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던 일 멈추고 죽음의 형장으로 걸어가는게 사람의 운명이었습니다.
오! 대니 보이. 피리 소리가 골짜기에서 골짜기, 산 아래로 울려 퍼지고, 여름은 가고, 장미꽃도 모두 떨어지는데 당신은 가야만 하고, 나는 기다려야만 하는군요. 그러나 당신이 여름일 때 돌아오거나 혹은 골짜기가 조용히 흰 눈에 덮여 있을 때 돌아와도 나는 여기에 있을 거예요. 햇빛이 비치는 곳이건, 그늘이 진 곳이건 오!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꽃들이 모두 졌을 때 돌아온다면 그때 나는 죽었을 거예요. 나도 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당신은 내가 죽어 누워 있는 곳에 찾아와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인사하겠지요. 나는 내가 누워 있는 땅을 부드럽게 밟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거예요. 그러면 내 무덤은 더 따스하고, 행복해지겠지요. 당신이 그곳에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것이기에 나는 그저 평화롭게 잠자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 나에게 올 때까지.
<그리그(Edvard Grieg) 오! 대니 보이>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깊은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며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가 별일 없이 무사안일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다가 큰 위기나 특별한 일에 봉착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 것이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인도의 종교적인 지도자인 라마크리슈나가 있었습니다. 간디, 타고르와 같은 사람이 그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하루는 우기가 되어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까맣게 몰려온 먹구름으로 주위가 깜깜해져서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급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집으로 뛰어가는 길에 호수 주변으로 긴 둑과 들판에 백조 무리들이 웅크리고 서서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가 오면 새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데 라마크리슈나가 뛰어가니 놀란 백조가 몇 마리가 날아올랐고 급기야 수많은 백조들이 일시에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서 날아오른 백조들이 펄럭이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은 흰 천을 허공에 뿌려놓은 것 같았는데 긴 행렬을 이루며 날아가는 광경에 소년은 그만 넋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은 어린 소년에게 감당할 수 없는 희열과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일을 하던 농부들이 들판에서 13살의 소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신비로운 빛에 쌓여 있었고 얼굴에는 희열에 찬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농부들이 쓰러져 있는 그를 집으로 옮겼왔고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 깨어났습니다. 소년이 깨어나자 가족들은 왜 쓰러졌는지 물었습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집으로 뛰어오다 호수에서 백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황홀해서 쓰러졌는데 그때 이런 메시지가 들려왔다고 말했습니다.
“라마크리슈나, 백조가 되라! 날개를 펴라. 온 하늘이 너의 것이다.”
그날 이후 그 소년은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백조 같은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의 삶이 예전과 같을 수가 있겠어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많은 것을 알려야 할 사람은 가슴속에 말없이 많은 것을 담아야 하고, 언젠가 하늘에 번갯불을 당겨야 한다면 오랫동안 흰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떤 계기로 새로운 각오를 하거나 깨달음은 분명 축복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온 후에 저에게도 세 번의 색다른 경험이 있었습니다. 사업은 실패했고 많은 빚에 가족마저 버리고 세상을 떠나왔기에 가슴은 참담했습니다. 그렇게 참담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장작을 준비하기 위해 뒷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하늘은 화창했고 햇살도 포근하기만 했습니다. 땀을 흘려가며 나무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앞산을 바라보니 산속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하얀 눈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나무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화사한 햇살이며, 가슴이 뭉클하게 산속의 풍경이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문득 가슴을 때리는 메시지가 들려오더군요. 세상은 이렇게 축복 가운데 있는데 나 혼자 힘들다고 아우성이었구나 하는 말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쓰잘 데 없는 근심걱정과 마음의 짐을 그 자리에서 벗어 던지기로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가슴으로 느껴야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갈 수가 있지 않겠어요?
또 한 번은 낮이 짧은 12월의 한겨울이었습니다. 도시는 연말 송년회와 각종 모임으로 한창이나 흥청대고 있을 때였습니다. 산속에서 혼자 살고있었던 나는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할 일없이 집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때 앞 산등성이 위로 둥근 보름달이 막 떠오르는 게 문득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너무 황홀해서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때도 가슴을 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래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살아 있는 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살기로 했습니다. 남은 인생에 한 점 후회 없도록 말입니다. 그것도 맑고 순수하게 또 진실 된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봄날이었습니다. 그날도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였는데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어 놓은 참나무에 버섯종균을 심기위해 드릴로 구멍을 뚫고 있었는데, 봄기운에 해맑은 새소리가 들려오고 강아지 장군이도 재롱을 피우며 뛰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게 느껴지던지. 울컥하고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살아서 이렇게 일을 하고있다는 것이 큰 축복임을 느낄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며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단 하루도 밥만 축내는 밥충이는 되지 말자고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찾아온 감격은 라마크리슈나가 기절을 할 만큼 크고 위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예전의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달라졌냐고요?
심심하고 무료하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자유롭고 즐거운데 어떻게 무료하고 심심할 수 있겠습니까? 술을 찾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맑고 신선한 자연의 공기가 더 없이 좋은데 왜 담배를 피울 것이며 맨 정신으로도 부족해서 더 맑고 순수하고 싶은데 왜 술이 필요하겠습니까? 욕심도 내려놓고 주어진 환경에서 열정을 쏟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기도와 함께 맑고 순수한 삶을 동경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짐을 지고 있습니다. 아주 행복하게 보이던 친구도 알고보니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더군요. 십년을 넘게 어머님이 치매로 고생하는데 정년퇴직한 큰형이 사업을 시작해서 마음고생이 크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겉으로 행복하게 보여도 실제론 그렇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숙제를 안고서 그것을 풀기위해 끙끙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세번의 특별했던 경험은 내가 떠안고 있었던 숙제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음의 짐을 들게도 했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경험으로 비로소 예전의 나를 초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더 없이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저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푸른 나무와 풀에서 붉고 화사한 꽃이 피어나는 것은 크나큰 신비로움입니다. 사람들도 그렇게 화사하고 밝은 꽃을 피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는 밝음과 어둠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밝음과 어둠이 존재합니다. 사람 속에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함께 존재하며 아름답고 좋은 것과 추하고 나쁜 것도 함께 존재합니다. 이렇게 내 속에서 서로 상반된 것들이 존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푸른 풀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밝고 따뜻하고 선해서 꽃과 같이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피웠을까요? 천국이란 모든 사람들이 밝고 따뜻하고 선한 것들만 끄집어 피워내는 그런 나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감옥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득 찾아 온 죽음 앞에서도 음악교수 김문옥처럼 괜찮다며 담담하게 형장으로 걸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감방의 친구들을 달래며 담담히 떠날 수 있게 말입니다.
첫댓글 월아님 안녕하시죠"?
스마트 폰으로 이렇게 긴 글은 쓰시다니...
황진님도 잘지내시지요?^^
올해도 벌써 3월입니다
봄이다 싶으면 곧 여름이 닥칠테니
유수같은 세월에 실감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