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역대상16장23~43절
제목 :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이
다윗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드리며 구원을 위해 부르짖으려고 온 백성에게 촉구하고, 레위 사람들에게 직무를 위임한 후에 모든 의식을 마칩니다.
1. 찬양받기 합당하신 분(23~34절)
1) 열방의 찬양(23~30절)
(1) 구원의 날을 날마다 선포하라(23절)
“[23]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 이 말 속에는 여호와가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시 96:10;97:1;99:1, Payne).
즉, 여호와께서는 온 우주의 통치자 이 시므로 온 땅은 마땅히 여호와께 노래해야 한다고 다윗 왕은 주장하고 있는 것입ㄴ다.
'온 땅'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서는 '열방'(24절), '만민'(24절), '만방의 족속들'(28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2) 그의 영광과 기이한 행적을 모든 민족 중에 선포하라(24절)
“[24] 그의 영광을 모든 민족 중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 본시에는 이방 세계에 대한 다윗의 특별한 관심이 나타나있습니다.
즉 열방, 만민, 만방(26절), 만방의 족속들(28절), 세계(30절) 등은 모두 이방
세계를 지칭하는 말들입니다.
다윗 왕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놀라운 사역을 전파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다윗 왕은 그리스도의 전우주적 구원 사역을 내다보며 본시를 작성하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그 같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온 세계의 복음화를 시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사 9:1,2).
(3) 하늘을 지으신 여호와를 찬양하며 경외하라(25,26절)
“[25]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26]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 여기서 '헛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릴'은 '무가치한 것',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란 뜻으로 대개 우상에게 적용되는 용어입니다(사 2:20;10:10, 11;31:7;렘 14:14). 신 4:1-40 강해, '원어의 뜻으로 살펴본 우상 개념' 참조.
다윗 왕은 여기서 만방의 모든 우상들이 그것의 숭배자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행한 일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반면,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늘을 지으신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다윗 왕은 이 세상의 우상과 여호와를 크게 대조시킨 후 이방 사람들을 여호와 경배에로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고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다(27절)
“[27]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도다. - 여기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콤'은 본래 '장소', '공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궤를 모신 예루살렘의 장막(1절)을 지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Curtis, Zockler).
한편, 본절의 인용 구절인 시 96:6에는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베미크다쇼)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성소'(카다쉬)라는 말 대신에 '처소'(마콤)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는 아직껏 다윗 왕이 예비한 장막이 당시엔 성소(성전)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Lange, Payne, Keil).
이후 다윗 왕은 줄곧 하나님의 완전한 성소를 갖추기 위해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21장).
(5) 열방들에게 여호와께 영광과 권능을 돌리고 그를 예배하고 섬기라고 요청 합니다(28,29절)
“[28]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신 후(1-3절) 이방의 족속들을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 초대하는 말입니다.
즉 다윗은 본장에서 이사야서(사 55장)의 웅장한 필체를 연상시키는 말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세계 만민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이방 세계에 대해서는 복음에의 초대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는 선교 명령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 여기서 '그 앞'이란 '그의 얼굴 앞'이란 뜻으로 하나님 앞을 의미하는데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궤가 놓인 장막을 의미합니다(1절).
아무튼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에 마련된 장막 안에 옮겨짐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여 계신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제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민하'는 '소제(素祭)' 란뜻으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나(출 30:9;레 2:1;삼상 26:19) 새로운 왕에게 복종과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바치던 '공물(貢物)'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왕상 4:21;왕하 8:8, 9;17:4;20:12;사 39:1).
그런데 본 문맥에서는 온 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사상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므로 제물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표시인 제물을 그 앞에 가져오도록 이방인들에게 촉구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 '아름답고 거룩한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드랏 코데쉬'는 '거룩한 장식품'이란 뜻으로 위의 '제물'에 상응하는 말입니다(Payne).
여기서 이 장식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었으므로 '거룩한'이란 수식어가 붙여지게 된 것입니다.
한편, '경배 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하'는 '머리를 숙이다' '엎드리다'라는 뜻으로(창 23:7;레26:1)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복종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실 겉으로는 공물을 바치고 복종을 맹세하는 듯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다른 뜻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니 다윗은 그와 달리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진정으로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신 6:5).
(6) 온 땅이 그 앞에 떠는 것과 세계가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30절)
“[30]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 여기서 '떨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훌'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⓵ 춤추는 행위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빙빙 돌다'는 뜻과
⓶ '두려워하다',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단어의 의미상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 문맥이 하나님께 대한 적극적인 경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전자의 의미를 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다윗 왕이 온 땅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들에게 여호와를 경배하는 중에 기쁨의 춤을 출 것을 권면하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이어지는 구절과도 조화를 이룹니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하는도다 - '세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은 대기와 하늘을 포함한 지구를 가리키기도 하며(시 89:12;삼하 22:16) 때로는 사람이 거주하는 세계(inhabitable world, 사 13:11;14:17) 또는 전 지상에 살고 있는 주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용례들을 종합해 볼 때 여기서 '세계'란 지상의 모든 주민들과 나라들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세계가 굳게 선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온 세계가 평안과 안전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굳게 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쿤'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게 되는 평안과 안전을 의미합니다(시 37:23;90:17;112:7;잠 16:9).
또한 이 세계가 흔들리지 못한다는 말은 이 세계에 죽음과 파멸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합니다.
즉, 여기서 '흔들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무트'는 '죽다', '파괴하다'라는 뜻으로 본절은 이 세계에서 죽음과 파괴가 사라질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이니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이 세상 마지막 때의 일입니다(계 21, 22장).
2) 우주 만물의 찬양(31~33절)
이 단락은 시편 96:11~12을 인용한 부분으로 우주 만물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요구합니다.
(1) 하늘과 땅, 바다와 밭을 여호아께서 통치하심을 찬양합니다(31,32절
“[3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32]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 본절에는 만물이 하나님께로 나서 계속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고 하는 히브리적 세계관이 시적으로 잘 나타나 습니다.
특히 구차한 설명이나 추상적 관념을 나열하지 아니하고 구체적 자연 대상을 간략한 대구의 형식으로 노래함으로 히브리시의 전형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 이는 이 세계에 임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이 오직 여호와의 통치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히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 평안의 제 1원인으로서의 여호와의 통치 사상은 본시 뿐 만 아니라 본서 전체, 아니 역대기 전체의 주제입니다. 본서 서론, '주제 및 특징' 참조.
그리고 이 같은 주제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셔온 사건(1절;15장)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다윗 왕은 하나님의 궤의 입성을 단순한 종교적 의식으로만 보지 않고 만왕의 왕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중심부 예루살렘에 임재(臨在)하신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의 통치가 인간 세계에 가장 완전한 질서와 평안을 가져온다는 믿음 안에서 여호와의 통치가 온 세계에 임하게 될 메시야(Messiah) 시대를 바라보며 본시를 기술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 여기서 '외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암은 본래 '천둥치다'는 뜻으로 엄청나게 큰소리를 의미합니다.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 할지로다 - 여기서 '즐거워 할지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츠'는 '매우 기뻐 날뛰다'는 뜻입니다.
이상과 같이 모든 만물이 소리지르며 기뻐하는 이러한 장면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전우주적(全宇宙的) 성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종말적 구속 사역은 인간 뿐 아니라 만물까지도 새롭게 하므로 이 모든 만물은 그의 역사하심을 크게 기뻐하는 것입니다(엡 1:10).
(2) 심판하러 오실 주님을 나무들이 큰 소리로 기뻐하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33절)
“[33] 그리 할 때에 숲 속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임이로다 ”
주께서 땅을 심판하려 오실 것임이로다. - 이는 곧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인 주의 재림을 의미하는 듯합니다(Payne).
그때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기 심판을 받게 될 터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과 상급(賞給)을, 죄인들은 형벌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마 16:27;25:31-46).
2. 구원을 위한 기도(34~36절)
이 단락은 시편 106편을 인용하며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요청합니다.
1) 감사하는 이유입니다(34절)
“[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구절은 시 106:1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시107;118;136편).
그런데 이러한 구절은 찬송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많이 사용된 하나의 의례적(儀禮的) 구절입니다(스 3:11;시 118:29;렘 33:11).
한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내용이 없는 공허한 사랑이 아니라 직접적인 역사에의 개입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낸 행동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에 거하게 된 것은 물론이려니와 매순간 하나님께 배은망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용서와 인도하심을 입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35절)
“[35]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
35, 36절은 시 106:47, 48에서 인용된 구절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 본절은 얼마 전 블레셋 대군을 몰아낸 탓에(14:8-17) 이스라엘 내에 평화가 찾아온 당시의 상황과 조화를 이루는 구절입니다(Payne).
혹자는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라는 말에 근거하여 본절은 바벨론 포로 시대 상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나(Curtis) 이러한 주장은 본시의 다윗 저작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신 이미 앞에서 밝힌 대로 본절은 평화가 조성된 다윗 당시의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출하라합니다(36절)
“[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 레위인들의 찬양(7절)이 끝나자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견고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아멘'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또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다윗 왕의 시를 들은 모든 백성들은 그의 모든 시의 내용에 단지 입술로만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찬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단 찬양이나 기도 때 뿐 아니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님께 이러한 아멘 생활을 하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장 7-36절강해, '아멘의 의미' 참조.
3. 레위 사람들의 직무 위임(37~43절)
1) 기브온 성막에서 제사드림(37~40절)
(1) 다윗이 다윗 성에 놓은 언약궤 앞에서 섬기는 규칙을 만듭니다(37~38절).
“[37]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38]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 육십팔 명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를 문지기로 삼았고”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 아삽(Asaph) 및 그 동료들은 성전에서 항상 찬양하는 일을 맡아 보도록 세움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날마다 그 일대로 - 이는 직역하면, '그 날에는 그 날의 일에 따라서'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각 날에 드려지는 예배에 따라서'라는 의미입니다(Keil, Lange).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 육십팔 명. - 여기서의 오벧에돔(Obed-edom)은 지난 3개월간 하나님의 궤를 모셨던 인물입니다(13:13, 14).
그는 문지기의 직분과 함께 악사의 직분을 수행했었습니다. 15:18 주석 참조.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 - 여기서의 오벧에돔은 바로 앞에 소개된 오벧에돔과 동명 이인(同名異人)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오벧에돔은 여두둔(Jeduthun)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는데 여두둔은 므라리의 후손인 반면, 앞에서 소개된 오벧에돔은 그핫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26:1, 4).
(2) 당시 여호와의 성막이 기브온 산당에 있다고 말합니다(39,40절)
“[39]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에게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40] 항상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에게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 이는 다윗 시대에 성막(tabernacle)이 두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중 하나는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새로 설치한 장막입니다(1절).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만들었던 것으로(출 40장) 당시 기브온에 있었습니다.
이 기브온의 성막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까지 이스라엘의 성소로 계속 존재하였습니다(대하 1:13;5:5).
따라서 다윗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대제사장이 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사독(Zadok)과 아비아달(Abiathar)이었는데 사독은 기브온의 성막을 관할하였고 아비아달은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궤를 모셔놓은 성막을 관할하였습니다(18:16). 이에 관해서는 수 18:1-7 강해, '성막의 역사'를 보다 참조하라.
항상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 조석(朝夕)으로 번제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출29:38,39;민28:3,4).
즉 번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수소, 수염소, 수양 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와 같은 제물로써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번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대로 -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犧牲) 제사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모든 의무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시하는 구절입니다(Keil).
이와 관련해서는 민 8:14-22 강해,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참조하라.
2) 찬양대 조직(41~43절)
(1) 찬양대 조직에 대하여 다시 언급합니다(41,42절)
“[41] 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므로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그리고 택함을 받아 지명된 나머지 사람을 세워 감사하게 하였고 “[42] 또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에게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그리고 택함을 받아 지명된 나머지 사람. - 이들은 모두 기브온의 성막에서 사독과 함께 봉사할 자들입니다.
이들 모두는 이전에 아삽 및 그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일에 봉사하였으나(15:17, 18) 성막이 두 장소에 있게 되므로 부득이하게 나뉘게 된 것입니다.
즉 여기서 '택함을 받아 지명된 나머지 사람'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사역을 위해 선발되었다가 아삽의 찬양대에 선발되지 못했던 나머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5절 주석 참조.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므로.. 감사하게 하였고 - 여기서 '인자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로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하였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단순히 '감사하다'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속성이나 사역에 대한 인간의 선포나 선언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찬양의 개념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Westermann).
이와 관련해서는 34절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나팔 - 나팔은 다른 악기들과 같이 연주용 악기였다기보다는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악기였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15:24 주석참조.
여두둔의 아들 - 그는 38절에 소개된 오벧에돔입니다.
(2) 법궤를 옮기는 일을 마친 백성들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습니다(43절)
“[43]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마친 후 백성들이 만족하며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즉 오늘날 교회 생활에만 치중하는 자들은 자칫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을 등한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인 것입니다(막 7:8-13).
다윗도...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 - 본절은 삼하 6:20과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삼하에서는 본절 이후에 다윗 왕과 그의 아내 미갈(Michal)이 언쟁하는 장면을 기록한 반면 본서에서는 이러한 장면을 기록하지 않은 채 본장을 끝맺고 있습니다.
아마도 본서 저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다윗 왕조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가정 문제로 보여 진 다윗 왕과 미갈 사이의 다툼을 생략해 버렸을 것입니다.
한편, 다윗 왕이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했다는 말은 그가 앞에서 백성들에게 축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적 왕'으로서 그의 가족들에게 축복하려 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34절 온 땅과 하늘에서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그분의 구원, 그분의 영광, 또 그분의 행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가 찬송을 드릴 다른 어떤 신이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만물과 만민은 마땅히 감사하며 경배해야 합니다.
이비에 발린 말과 판에 박힌 의식, 의미 없는 곡조로 드리던 생명 없는 예배를 보리고, 정성 어린 예물과 아름답고 거룩한 삶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즐거이 노래하며 하나님께 나아 갑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5,36절 다윗은 백성들에게 기도하라고 촉구합니다.
‘우리를 구원 하소서’(호산나), ‘만국에 흩어진 우리를 건져내고 모으소서’라고 부르짖으라 합니다.
훗날 이 역대기를 읽은,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에게 참으로 적실한 기도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여 흩으셨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그들의 왕 다윗에게 맹세하셨던 영원한 언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다.
먼 훗날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불신의 사회와 위기의 교회를 위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마음을 모아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소서’
37~42절 언약궤를 모신 다윗의 장막과 기브온의 성막을 섬기는 레위 사람들에게 각각 임무가 주어집니다.
아삽과 그 형제들은 언약궤 앞에서 날 마다 섬기는 임무를 맡습니다.
오벧에돔과 그 형제들과 여두둔의 아들들은 장막의 문지지로 섬겼습니다.
한편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은 기브온 산당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에서 제사드리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헤만과 여두둔은 그곳에서 찬양하는 일을 맡았고, 여두둔의 아들은 문지기를 맡습니다.
이들 레위 사람들이 각각 섬기는 직무를 잘 감당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앞에서 복과 평안을 누리는 안정된 통로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공동체에서 어떤 임무를 맡았습니까?
궤 앞에서 섬기는 일로부터 문지기로 섬기는 일까지 모두 없어서는 안 될 중책입니다.
맡은 일을 하찮다 여기지 말고 맡겨주신 분께 작은 일부터 충성하는 일꾼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