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을 신고 산에 오르는 데 자신이 생겨
요번엔 마음 가볍게 그를 따라 나섰다.
집앞에 있는 삼봉산을 지나 시궁산까지 가는 코스다.
흰눈이 쌓인 숲길을 걸어 오르는 동안 믿는 건 앞서 걸어가는 남편의 발자국이다.
'그곳은 더 깊숙히 빠지지 않겠지...
혹여 낯선 곳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는 어떻게든 나를 구할거야. '
부부가 둘이서 눈 덮힌 산길을 걸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든든한 언덕이 된다.
아마도 인생길에서도 같은 믿음일 것이다.

늘 건너다 보던 낙엽송 언덕을 이렇게 걸을 줄이야...
크고 작은 가지가 부러져 흩어진 길은 새싹은 없어도 늘 걸었던 것처럼 정겹다.
무엇보다 마음이 가벼워서겠지...
지난 토요일 아침
"우리 낼 산에 가자. 앞산에...."
"그러죠. "
특별히 거절할 핑게도 없고 사실 지난 산행에서 자신도 생겨서 쿨하게 동의했지만
'이번 주 미사 안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모임때문에 이번 주 토요특전미사를 봉헌 못하지만
행여 저까지 못 가게 될까봐 혼자서 미사를 참례하고 돌아 왔다.
지난번 남편과 함께 가려다 다음날에도 일정을 만드는 바람에 주일도 못 지킨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주일이다.
나는 시치미를 딱 떼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여보! 미사 다녀와야지?"
하고 묻자 그는
"그러자. 다녀와서 바로 출발 하지, 뭐. "
남편과 함께 특전미사 봉헌 안한 사람처럼 아침미사를 봉헌하러 성당에 갔다.
언제나처럼 성당 마당에 동그마니 홀로 서 계시던 신부님께서
"참, 애쓴다. "
하고 웃으신다.
주일미사를 시치미 떼고 두 번 봉헌하는 제 뜻을 이미 꿰뚫으신 거다.
남편이 홀로 미사참례를 즐길 때까지 언제라도 그렇게 할 작정이다.
이제 남편은 미사참례를 당연히 여기는 것 같다.
내 기쁨이다.

미사 후엔 그에게 약속한대로
보온병에 뜨거운 물과 라면 두 개를 배낭에 담고
쵸콜릿, 사탕같은 군것질거리를 챙긴후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
산행길에 만난 낯선 이웃들이
"안녕하세요? 안전한 산행 하세요."
하고 인사를 던지고 우리도 화답했다.
겨울 나무의 은빛 몸뚱이에 햇살이 비쳐 아릅답다.
여름날 잘 자랄 가지들이 그림처럼 곰살맞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발견한 이 나뭇가지가 너무 멋져서 사진도 찍고...
우린 작은 고개를 몇개나 넘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걷다가 그만 삼봉산 정상을 지나친 지도 몰랐다.
눈길이 고약한 백암도예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심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 것 같지 않았다.
앞서 걸어간 누군가에 대해 참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깊숙히 빠진 누군가의 발자국이 아니었다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젠에도 적응이 되었는지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 도로에 내려섰을 때
"차 있는 곳까지 버스 타고 갈까?"
남편이 물었을 때
"어차피 걷고 운동하자고 나선 길 그냥 걷지...."
한 건 오히려 나였다.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졌다.

감사한 주일 산행...
문득 먼저 박해시대를 살아낸 신앙 선조들...
그분들의 고귀한 피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묵상이 절로 든다.

요번엔 씩씩하게 시궁산 정상까지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멀리 골프장이 보이는 지점에서는 괜히 남편 들으라고
"여보! 나 잘 걷죠? 난 골프보다 산에 오르는 게 더 좋네요.
당신은 올 겨울 너무 추워서 문 안연 골프장이 너~무 아쉽겠다. "
하고 놀렸더니
"나 대학 때 산악반이었던 거 기억 안나?
나도 산 좋아한다고....
당신은 걷는 건 잘하잖아. 스피드경기엔 약하지만..."
하긴 체력장검사에서 유일하게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게 800m달리기였으니 틀린 말 아니다.
올핸 산에 제법 다닐 것 같은 예감이다.
벌써 두번이나 산에 올랐고 거기에 재미를 붙인 우리 남편은
요번 주에도 어딜 갈지, 또 애들까지 앞세우자고 벼르고 있으니까....
누군가 우리와 산행을 함께 하려는 부부가 한 쌍만 있으면 좋겠다는 게 일단 내 바람이다.
그러면 맛있는 라면국물을 먹으며 한숨 돌리고 수다를 떨 때
한결 웃을 일이 많아지고 든든할텐데....
첫댓글 참
보기 좋습니다


검단산 잘 다녀오셨나요
우리부부도 지난 12월에 검단상 정상 까지
올랐었는데 너무 좋더군요
또 오세요.. 같이다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