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 12
그 아래부터는 찢겨져나가 읽을 수가 없다.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듯 했지만,
나는 다음 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한다. 무슨 뜻이지...? 라고도 생각한다.
오래된 신문을 읽은 듯하다. 갈라지고 떨어져나간 흙벽 표면 안쪽에 발라져 있던
신문. 지금과는 조금 다른 어투로 내가 모르는 불행을 적어놓은, 집 지을 당시의
신문.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신문이 아니었다. 메모인지 경찰 서류의 일부인지 모르지만, 나이든
남자의 필체로 한자 한자 적혀있다.
낡은 문서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내가 아직 어렸던 그 때, 검은집 거실의 탁자 아래에서 종이를 주웠다. 먼지를
입으로 후,후 불고 옷에다 쓱쓱 문질러 읽어보려 했지만, 곧 어두워질 것 같아서
읽지 못했다.
그 종이이다, 그 종이일 것이다, 라고 뚜렷한 근거도 없이 확신한다. 그 종이를
내가 가지고 나왔는지, 무심코 재킷 주머니에라도 넣어왔는지... 난 모른다. 모든
걸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다.
검은 집 안의 정경이 떠오른다. 누군가 살고 있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아닐 것
같은 2층 창가에서 얇은 커튼이 흔들리고, 그 사이로 비쳐들던 오후의 햇살. 잠들
기 전에 내 눈앞에서 나타나는 반짝반짝 물고기를 너무도 닮았던 금속 모빌. 그리
고... 너무 겁먹어있던 탓에 들려온 환청과, 악마가 내는 소리라 여기며 놀라 뛰쳐
나왔던 일.
나무마룻바닥 거실에는 먼지 낀 소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1인용 소파는 보지 못
했다. 단지, 3인용 소파 모서리 조금 앞의 빈 바닥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20여 년간 한번도 떠올리려하지 않았던 그 정경 하나하나를, 공기 하나하나를
손에 잡히듯 그려낼 수 있을것만 같다. 발을 디디면 내 발에 작은 꽃무늬 샌들이
신겨져 있고, 먼지 쌓인 나무바닥을 당장에라도 걸어갈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면
그때 느꼈던 먼지냄새와 초가을의 싸늘함이 폐포 구석구석 흘러들 것 같다. 머리
가 멋대로 재조합한 기억도 섞여 있겠지. 주온이나 토미에 같은 공포영화의 배경
이 되었던 집과 이어붙인 기억도 있을지 모른다.
내 맨션 거실이 그때의 거실과 겹쳐진 기분이 들어, 아직 밝은데도 조명 스위치를
켰다. 둥글고 부드러운 램프가 은은한 빛을 뿌린다. 어두울 때 켤 때는 몰랐는데,
낮에 보는 조명은 한없이 인공적이다. 영양소를 빼버리고 표백한 현대음식 같은
빛. 이런 소리 하면 늙은이 같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찻주전자에 수돗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는다. 머리맡에 있는 후드 버튼
을 누르자, 그릉그릉 하면서 공기가 빨려 들어간다.
요즘엔 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신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럴
지도 모르지만, 꼭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새 찻잔을 꺼내고 물을 끓이고 있다. 조
금 신기하게도 여겨진다. 난 차마시기로 ‘결정’한 적도 없는데 몸이 어느새 움직
여버린다. 찻잔에 말차를 떠 넣으며 ‘아, 나 목말랐었나’라든지, ‘나, 차 마시고 싶
었던 건가’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나하나 순서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일들.
집에서는 얇은 니트 티를 입고 있으니까 수돗물을 틀기 전에 소매를 걷어올린다.
젖은 손을 닦는 수건을 걸어놓지만 언제나 바지에 그냥 문지르고 만다. 찬장을 열
때는 바퀴벌레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고 항상 아주조금 걱정한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은 망설일 필요도, 일일이 판단할 필요도 없다. 뭐랄까... 일일
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기보다 자신만의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알아서 리드를 해
주니까 자동적이라고나 할까. 감정도 그런거라서, 매운 음식을 맵다고, 신 음식을
시다고 느끼는 ‘감각’과 마찬가지로 망설임이라는 게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오랜 시절의 종이를 앞에 두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혼란스럽
다. 어떤 기분이 되어야 정상적인 건지.
매일 보던 유년 시절의 창 밖에서 일어난 두 개의 죽음. 내가 검은 집에 대해 느꼈
던 두려움의 근거라고도 할 수 있는 일.
TV 뉴스에서 사건사고 보도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타인의 불행을 먹
이로 삼는 자극과 흥미. 그런 습성이 천박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렇게 뉴스로나 접
하게 되는 머나먼 에피소드의 편린과 죽음이란 터부가 부적처럼 적힌 종이를 손에
든 나는...
애절한 느낌. 조금 울고 싶은 느낌. 살아있는 나고, 이미 사라진 그들이지만 왠지
이마를 맞대고 있는 느낌. 그리고... 아쉬움. 그러면서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라는 거리감.
지난 몇 일간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은 탓에 조금 무덤덤해졌다. 장례식 직후가
아니었다면, 죽음이란 건 더 멀고 높은 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더라면 종이를
보고 더 많이 놀랐을 것이다. 비극이 일어난 장소에 발을 들여놓았었다는 경험이
신기하게도 여겨졌을 것이다.
어느새 찻주전자 뚜껑이 들썩이고 있다. 뜨거울 정도로만 데우려고 했는데 그만
팔팔 끓여버렸다. 세균은 다 죽었겠지만, 내 혀가 덴다. 서둘러 레인지의 불을 껐
다. 파랗던 불이 생명을 잃는다.
(to be continued...)
첫댓글 애절한 느낌. 조금 울고 싶은 느낌. 살아있는 나고, 이미 사라진 그들이지만 왠지 이마를 맞대고 있는 느낌. 그리고... 아쉬움. 그러면서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라는 거리감.....음... 이런 감정들은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듯 싶어요. 이런걸 어떻게 표현할까, 머리를 굴려보기도 하고.;; 아아, 왠지 이마를 맞대고 있는 듯, 그 부분...
어느덧 20대 후반에 들어서고 나니.... 감정이... 사라지고 있어요!!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라즈페님또래의 나이가 너무 부럽답니다ㅠ.ㅠ 라즈페님이 칭찬은 해주셨지만,, 그 부분 감정묘사도 그저 머리로 추론해 낸 것뿐.. 머리가... 머리가.... 로보캅처럼ㅠ.ㅠ
그럴리가요오! 감수성이 풍부하시기에 이런 글도 쓰실 수 있는거죠오! 저도.. 저도.. 나이를 거꾸로 먹고 싶.....(어이,)
역시...심리적인 묘사는 굿이에요..^^;;
아하하^^ 굿이라고 해주시니 너무 기분좋아요!!! 스토리진행이 엄청 느리지만, 언제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옷!! 가끔씩 저도 느끼던 점이 나왔어요!! 동감동감!! 오옷+_+!! 동감이 가는 글이 정말 좋은 글인데에!! 오예>ㅁ<!!사와지리님 팬되버리겠어요>ㅁ<!!!!!!!!!!!!!!!!!!!!!!!!!!!!!!!!!!!!!!!!
꺄악~>ㅁ<!!!... 느낌표를 너무 많이 써 주셔서 감동이에요!!!!!!! 우리동네 떡집에 있는 단팥떡은 제가 다 사겠습니다>ㅁ<!!!!!!!!!!!!!!!!
오옷!! 절 먹어주시는거군요!!!!!!!!!!!!!!!!!!!!!!!!!사시는 김에 제가 좋아하는 경단도 하나 사주세요>ㅁ<!!!!!!!!!!!!!!!!!!!!!!!그리고 드신 소감으을!!!!!!!!!!!!!!!!!!!!!!!!!!!!!!!!!!!!!!!!!!!!!!!!
떡집에서 사가지고 오다가... 너무 배고파서 하나씩 꺼내먹다가.... 목이 막혀버렸습니다!!! 역시 떡은 따뜻한 녹차와 함께가 아니면 위험해요ㅠ.ㅠ (경단은 돈없어서 못샀음.)
다들 뭐하시는 겁니까아-_- 저희만 빼놓고. 저도 시식 하나는 잘 합니다아!!!!저도 단팥떡을 사 먹겠습니다아!!!!!!!!!!!!!!!! (응?)
너무 많이 드시진 마세요.. 설날때 떡국도 먹어야 하잖아요... 아니,, 아예 단팥떡을 넣고 떡국을 끓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