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본체는 인연소생이 아니다
아난이 물었다. “부처님은 이 영묘한 정각(正覺) 자성은 인(因)도 아니요 연(緣)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과거에는 말씀하시기를, ‘능히 보는 견성(見性) 작용은 반드시 네 가지 연(緣)을 갖추어야 한다, 이른바 허공을 인(因)하고 밝은 빛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고 눈을 인해야 한다’ 하셨는지요? 이것은 또 무슨 도리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온갖 것은 인연소생이라 말한 도리는, 결코 자성 본체의 형이상의 제일의(第一義)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후천인 우주간의 만유 현상은 모두 인연화합 소생임을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나는 능히 본다’고 말하는데 어떠해야 ‘본다’라고 하고 어떠해야 ‘볼 수 없다’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해ㆍ달ㆍ등불 빛 등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갖가지 현상과 색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다’고 합니다. 만약 이 세 가지 밝은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밝은 빛이 없다면 곧 볼 수 없다고 한다면, 밝은 빛이 가버리면 응당 어둠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어야 하는데 사실은 어둠도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밝은 빛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데 어찌하여 ‘볼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냐? 만약 어둠 속에 있어서 밝은 빛을 볼 수 없는 것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밝은 빛 속에서 어둠을 볼 수 없음도 볼 수 없다고 말해도 된다. 만약 이 이론이 옳다면 사람들이 밝은 빛을 마주 대하였을 때이든 어둠을 마주 대하였을 때이든 어느 경우나 ‘볼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은 단지 밝은 빛과 어둠 이 두 가지 현상이 서로 변경 교체한 것일 뿐 결코 너의 능히 보는 자성이 그 가운데에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자성의 능히 보는 기능은 밝은 빛과 어둠을 마주 대하였을 때에도 보는데 어찌하여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알아야한다, 밝은 빛을 볼 때에도 능히 보는 자성은 바로 그 밝은 빛이 아니요, 어둠을 볼 때에도 능히 보는 자성은 역시 바로 그 어둠이 아니다. 허공을 볼 때에도 능히 보는 자성은 결코 바로 그 허공이 아니요, 막힘을 볼 때에도 능히 보는 자성은 바로 그 막힘이 아니다. 이 네 가지 현상의 상대적인 사이를 통해서 능히 보는 도리를 설명할 수 있다. 너는 더더욱 알아야한다, 만약 눈이 보는 작용 사이에서 능히 보는[能見] 자성을 보려한다면, 이 자성은 결코 눈앞의 보는 작용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능히 보는 자성을 보려면, 반드시 능히 봄[能見]과 보여 짐[所見]을 절대적으로 떠나야한다. 왜냐하면 능히 보는 자성의 본체는 보여 지는[所見] 작용과 능히 보는[能見] 기능이 볼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見見之時, 見非是見, 見猶離見, 見不能及].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나 자연 혹은 양자의 화합 작용을 가지고 자성 본체의 도리를 설명할 수 있겠느냐? 여러분들이 지혜가 얕고 열등하여 자성의 청정한 실상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잘 사유하고 게으르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야 영묘한 정각 자성의 대도(大道)를 증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