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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가락
“아빠 잡아라”
열두 동이 가자면 죽는 게 일이다. 잎새는 살기 어렵다. 도나 개를 쳐 놓으면 곧 잡혀 달음질칠 수가 없다. 어쩌다 모나 윷이 나오면 모도나 뒷도 쪽으로 멀찌감치 도망갈 수 있다. 풋 밭에서 얼쩡거리다간 잡히기 쉽다. 방혀 쪽으로 들어가면 좀 덜 할까 했는데 모를 치면 또 붙들릴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
“오늘 저녁엔 이겨야지”
“돈 따 밤 사야 해”
저녁에 세상이 어떤가 잠시 보곤 자리 놓아 윷판을 펼친다. 겨울 긴 밤이 아닌데 정초 설이나 보름, 한가위 명절이 지나도 윷 치는 일이 재미있다. 서로 기를 쓰고 받지와 안지, 참으로 가다가 퍽 잡히는 게 신난다.
“윷판 지나기가 쉽나.”
“북적댄다.”
곳곳에 버글거리니 갈 수가 없다.
다 가서 그렇게 되니 힘 빠지는 모습이다. 그러다 여러 번 지게 되니 돈도 잃게 된다. 뿌루퉁하다. 작은 것이라도 걸고 해야 이기려 애쓴다. 지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잘 치면 후련해서 좋다. 부부간에도 승부 욕이 강해서 몇 푼 잃는 날은 편치 못하다.
“더 높이 던져요”
“굴리면 큰 사리가 나오잖아요”
“약 오르구먼”
괜히 트집이다. 건더기가 없나 살피는 것 같다. 높이 던져도 질 땐 상대편 하는 게 그리 보이는가 보다. 어쩌다 여러 번 잃으면 심통이 생겨서 윷 통과 방석을 저 구석에 갖다 넣어버린다. 다시 치지 않을 심사이다. 눈치를 보며 민숭민숭 지나다가 며칠 뒤 설 가져와 깔아놓으면 씩 실없이 웃는다. 한판 하자.
“어찌 치기에 모와 윷이 자꾸 나와”
“낮게 굴리는가.”
몇 번 이기면 날 선 말이 나온다.
간신히 이기면 양팔을 치켜세우며 좋아라고 기뻐한다. 칠순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 같다. 남자들은 낮엔 이일 저일로 나돌아다닌다. 집에 혼자 있는 아내에게 그거라도 있어 같이 해야 괜찮아 보여 거든다. 토닥토닥 윷 치는 모습은 정겹다. 모두 엎어지거나 하얗게 자빠질 땐
“모다”
“윷이다”
하며 소리친다.
“코로나로 세상이 이리 어지러울 땐 안성맞춤이다.”
요 앞엔 바둑을 뒀는데 열심이다. 오목으로 심취한 모습이 대단하다. 알을 요리조리 만지작거려 굴리며 어디 놓아야 이어지나 곰곰이 생각한다. 처음은 갓 배워서 질 때가 있었지만 점점 수가 늘어난다. 이젠 나를 이기려 바둥바둥 덤빈다. 입맛을 다시고 상대 포석을 눈치채며 놓길 잘 한다. 결판이 안 나 전 판을 헤맬 때가 있다.
“휘파람 불지 마 얼굴에 바람 스쳐”
보도 않고 툭 던지는 말이다. 조금 기울 땐 상대를 무안하게 한다. 살살 긁어야 마음이 편한가. 그 말이 맘에 걸려 그만 질 때도 있다. 자꾸 되뇌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기려는 방법이겠구나.
“빌빌 돌리지 마. 눈에 걸기적거려”
말하려다가 참는다. 삼삼을 만들어 먼저 다섯 개 줄을 세운다. 이겨야 속이 시원한가 지고는 떠름해서 못 사는 것 같다.
“야바위 같아”
“어찌 자꾸 이기는데”
“윷말을 잘 써야 하구만”
명절 때나 생일날에 아이들이 온다. 저녁에 딸과 외손자, 아내와 아들 모자끼리 편 윷을 한다. 시끌벅적하다. 뭐가 그리 우스운가 자지러진다. 난 내방에 늙은이 취급을 받아 들앉아 있어야 한다. 난리 통에 잠이 오나.
“아랫집에서 올라오겠구만”
“어지간히 하고 자야지”
혼잣말하다가 그만 잠이 든다. 아스라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다음날 우우 가고 나면 좀 허전해서 위로 삼아 바둑을 둔다. 싱거운가 하다가 밀쳐놨다. 여러 날 아니 몇 달이나 오도카니 있더니 어느 날 사라졌다. 광에 넣었다.
“멀뚱멀뚱하다가 그만”
이겨야지 지면 묘한 기분인가.
서로 하자는 말이 없었다. 아내는 서쪽 방 거실을 차지하고 난 저 외진 끝 동쪽 방에 산다. 내방은 냉방기도 없다. 겨울엔 온풍기이고 여름은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 지샌다. 저쪽에서 이쪽까지 길다. 혹시 자다가 가위눌리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벽을 만져 알려야 한다. 두 개 버튼을 붙여놨다. 각자 누르면
“띵똥”
그러면 빨리 달려가 봐야 한다. 시험 삼아 누르고 장난삼아 몇 번 만졌더니 시끄럽다며 그만하란다. 정작 어려울 때 누르면 오기나 할까.
중간 방으로 가 바느질하다가 그대로 잔다. 계속 그래서
“어찌 그런가.”
“코 고는 게 싫애”
가끔 피곤할 때 그런데 그걸 갖고 잘 자던 사람이 까탈스럽게 그런다.
어느 날 나보고 갓방으로 가란다.
무슨 사정이 있나 해서 글 쓰다가 그 자리에 누워 잤다. 하마는 오라 하려나 했는데 달이 가고 해가 바꿔도 얘기가 없다. 주옥이가 바닥에 누워 자는 게 안됐던지 침대를 사줬다. 자다가 생각나면 일어나 쓰곤 한다. 잘 됐다. 방바닥은 일어나기 힘들고 눕기도 그렇다. 일일이 개어 올려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늦게 들어와 자니 자다가 깬다.
“왜 이리 늦었어요”
“반찬 몇 개 만들고 빨래한다고···”
이불도 댕겼다 밀치고 다리도 걸치고 서로 잠버릇이 있어 뒤척일 때 어렴풋이 깨다 잔다. 잠자는 데 얘길 걸어 곧잘 대답한단다. 난 기억이 없는데··· 새벽 기도를 간다며 일찍 일어나 교회로 간다. 시간 맞춰 울리게 해 놓아 이른 새벽에 손전화가 징징거린다. 초저녁 일찍 자고 깨선 두리번거린다. 같이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어긋나 다툰다 이 새벽에.
“백일마을 이장을 만나 봐요”
“시골 가자는 말 안 들려요”
“외진 골짜기에 어찌 살려고”
혼자 있어 보니 만고에 편하다. 일어나라. 덮어라. 머리 감아라. 말이 없어 좋다. 그래도 섭섭하다. 쫓겨난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이 다 따로 잔단다.
“어디 그런 사람만 듣고 봤는가.”
“함께 자다가 심장이 멎은 사람 얘길 들었는데”
“따로 자면 알 수 있나.”
모친이 아무렇게나 깎아 만들어 쓰던 윷이다. 짤막한 아카시아다. 보풀이 일어 뜨끔거린다. 그걸 갖고 놀다가 가끔 따가워 놀란다. 한참 치니 껍질도 설설 벗겨져 나갔다. 하나 만들자 맘먹고 유가면 장인 장모 산소에 간 김에 숲에서 몇 개 베어왔다. 미뤄뒀다가 오랜만에 해야겠구나. 자리를 폈다. 반으로 갈라 여러 개를 만들었다. 아이들 주고 우리도 가졌다.
“골고루 나오는 걸 만들어야지”
“소목이나 하지 맘대로 될까.”
“정성 들이면 ---”
날렵하게 얇아야 좋다. 시중 것은 뭉툭해서 모 윷이 잘 안 나온다. 껍질을 벗겨 얼른 안팎 구분도 어렵다. 만든 건 짤그랑하는 게 쇳소리가 난다. 깎아서 가볍고 쥐면 손안에 들어와 안긴다. 던지면 굴러 모가 나오는 게 귀엽다. 어쩌다 윷도 되는데 이게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상대를 쉬 쫓아갈 수 있고 붙잡거나 나는데 한몫한다.
“또 치자고”
“바둑 둘까.”
“윷이 좋아”
만들고 보니 그게 무슨 나문지도 모른다. 처음은 검푸르렀는데 점점 손때 묻어선가 붉어진다. 밤나무나 싸리나무가 좋다 하더구만. 매일 저녁 치면서 아아 잘 만들었구나 했다. 도 개 걸 윷 모가 골고루 나오니 근사하다. 거기다 붉은 색깔을 표시한 것이 있다. 한발 뒤돌아간다. 돼지와 개, 양, 소, 말을 이르며 크고 빠른 순으로 된 것 같다.
“윷 바둑 화투를 잘 만들었다.”
“윷판과 명칭을 그럴듯하게 그리고 지었어.”
“민속놀이 윷을 누가 만들었을까.”
만들고 그리면서 적을 때 놀란다.
자녀들도 자주 쳐서 윷말 쓰는 일이 제법이다. 눈높이로 던지는 것도 잘 한다. 실 굴리면 엄마가 뭐라 한다. 더 높이 올리라고 한 말 던진다. 우리 집 군기반장이다. 주눅이 든다.
“더 올리세요. 신보씨”
아이들 앞에 남편 이름을 들먹인다.
“이만하면 되겠구만 괜히”
지니 별나게 군다. 어쩌다 잘 될 때가 있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모와 윷이 나오고 지름길로 빠져들어 간다. 모와 걸로 바로 나기 좋게 샛길로 가거나 뒤돌다가도 뒤과에 멈춘다. 샘이 나 못 견딘다. “아빠 잡아라”가 나온다. 일부러 풋 밭에 늘어놓아 잡고 거듭 쳐서 뒤따르게 한다. 앞에 가 기다리다가 넘어가면 붙드는 덫까지 놓는다.
상대를 잡고 치면 큰 사리가 잘 나온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붙잡는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나만 왜 이리 못 살게 해”
“토끼몰일세”
내가 못 할 땐 좋아한다. 특히 백도를 쳐 뒤돌아가면 땅바닥을 친다.
“그리 좋은가.”
“거꾸로 가는 게 속이 시원한가 보네”
모자가 한 편이 돼 날 잡으려 순사처럼 달려들고 눈을 부릅뜬다. 아내가 더 심하게 군다. 이 집에서 내몰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갓방으로 갔는데. 이러는데 이길 수 있나 지고 만다. 세 번씩 치니 빨리 끝나 몇 번 더 쳤으면 한다. 밤늦으면 주위에 미안하고 길게 하면 마음 상할 수 있어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나만 못 살게 한다”
“쫓아와 잡기 바쁘다”
그리 견제를 당해도 돈 통에는 내 것이 많다. 지고 잃는 것 같아도 돈이 그득한 걸 보니 잘 이기는가 보다. 그러니 삐딱해서 시샘을 내는 것인가.
어떨 땐
“돈 통이 좀 빈 것 같다”
가져다 썼소
“진성마트에 간다고---”
내 돈은 벼락 맞은 쇠고기다.
탁구 칠 때 가슴팍으로 밀어 넣으니 받기가 궁색하다. 왼쪽으로 팍팍 질러주니 그 또한 힘겹다. 많이 깎인 공이 날아오면 받아치는데 그만 네트에 걸린다. 복식 때 이기려고 약은 수를 쓰면서 상대를 애먹인다. 그런 걸 잘 받아야 하지만 능숙하지 못해 자꾸 당하고 겨우 이기면 개선가가 나온다. 지고 나면 진땀을 흘린다.
“무얼 하든 이겨야지 지면 찌뿌듯해.”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또박또박 맞춰서 점수를 올리니 헤아리기 힘들다. 안 맞을 것이 어쩌다 공교롭게 부딪치면 기분이 상한다. 미안하다고 고갤 숙이지만 속은 거북하다. 당구에 귀신이 있나 내 속을 썩인다. 안 갈 것 같이 비실비실 굴러 끝까지 닿아 맞히면 부글부글 끓는다. 빨리 서둘지 않는다. 보고 또 보며 초크를 칠한 데 덧칠하는 게 부화를 치밀게 한다.
상대가 잘 하면 축하하면서 속은 그렇잖다. 나는 왜 자꾸 지기만 할까.
“내가 그 짝이다”
이미 삐뚜름해졌다. 날 지게 만들어 조금 화가 난다. 그래도 그득한 돈 통에 천원 지폐가 만원으로 보인다. 이 북새통에 먼저 넉동을 나게 했으니 장하다. 가끔 아내 좋아하는 사과도 사고 군밤도 한 봉지 갖고 와 까먹는다. 입이 시꺼멓다. 던질 때마다 도 개가 나오고 상대는 모 윷이 펼쳐지니 속 상하는가. 가시 돋친 말이 나온다.
“더 높이 던지세요”
불퉁한 말이다.
아들도 내 윷 던지는 걸 따라 한다. 아낸 폴짝 올려 떨어뜨리고 아들은 빙글 돌려 던진다. 도 개가 잘 나오고 큰 사리가 안 나오자 윷을 잡고 뒤로 빼 활모양으로 얼굴쯤 올려 던진다. 또르르 구르다 모나 윷이 나오는 걸 본다.
“와 모 윷이 잘 나온다”
영업 비밀이 새나갔나.
저녁 먹고 모여앉아 치곤 가족 예배를 드린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이다. 그 시간이 우리에겐 소중하다. 모포를 겹쳐 펴고 구석에 셋이 앉는다. 한쪽은 윷판을 놓고 네 동씩 열두 동을 붉고 검게 칠해 표한 것을 세 곳으로 나눠 놓는다. 시작을 정해 쳐서 윷판에 올리면 다음에 잡히거나 옆에 놓게 된다.
“풋 밭엔 놔봐야 잘 죽는다”
“도 개는 치나마나다”
붙들고 잡히고를 거듭하다가 겨우 윷 자리나 모도, 뒷모도로 가는데 그것도 앞에 징검다리를 놓아 멀리 못 간다. 그릇에 게를 담아놓으면 하나가 밖으로 나가려다 잡아당겨 들어가고 다른 놈이 빠져나가려면
“어디로 가 이리와”
나갈 수 없다. 동 수가 많으니 잡히기 일쑤다.
명절과 생일날에 모여 분탕을 치다가 아내와 조용조용 쳤다. 바둑 두고 윷놀이도 했는데 윷이 더 재밌다. 몇 달째 석주가 내려와 같이 한다. 저녁마다 윷놀이가 일과이다. 코로나로 회사에 나가지 않으니 하릴없어 이 일이 즐거움이다. 바깥출입을 참아야 하고 나가려면 마스크 해야 한다. 가는 곳마다 통제해서 기록하고 손 소독하는 게 성가시다.
“내뱉은 공길 마시니 머리가 띵하다.”
숨 쉬는 게 쉽지 않다.
낮은 각방에서 책보며 지내다가 저녁이면 거실에서 만난다. 가다가 잡히면 억울하고 화나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웃음이다. 배를 잡고 꼬꾸라지거나 뒤로 벌렁 자빠진다. 그래 험난한 길을 가는데도 참을 지나 네 동을 나게 해 이긴다. 석주는 뭉쳐서 가길 좋아한다. 무거운가 조작조작 간다. 그러다 덜컥 잡히면 죽을 맛이다.
“아이고 나 죽었다”
그게 뭐 무겁겠나. 도 개만 나오다 그만---
뒤로 드러눕는다. 옆의 엄만 눈물이 날 정도로 웃다가 그만 오줌을 찔끔거린다.
모자간이나 모녀간은 허물이 없다. 어쨌든 이해하고 즐겁게 지나는데 나한테는 야박하게 군다. 내가 지면 괜찮으나 이기면 뿌루퉁하다. 잘 하는 게 눈에 거슬린다. 짧은 순간에 지난날 미움이 살아나는가 보다. 무던히 애쓰고 아낼 위한다고 했지만 부족한가 던지는 말에 찬바람이 스친다.
“떠름한 속이 얼마나 답답했겠나.”
“콕콕 찔러 아프다”
“바람을 피웠나. 노름해서 재물을 날렸나.”
“술을 마셔 고주망태 주정을 부렸나.”
그런 눈치와 말투에 조금 서운하지만 참고 모른척한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보시랑 댄다. 닦고 쓸며 씻었다 턴다. 어제 빨았는데 오늘 또 손빨래다. 아침마다 청소기를 돌렸는데 주저앉아 온 방과 집 안 구석구석을 훔친다. 밤늦게까지 딸그락거리며 쉬지 않고 건사하는 모습이 답답하면서 그 부지런함에 놀란다. 타고난 성품이 팔랑팔랑하다.
“아 맛있다”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을 칭찬한다. 어깨가 으쓱하다. 기분 좋아한다. 지난날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맹꽁이다.
“밥은 질고 국물은 밍밍하다.”
바지런을 떠는 아내의 밥상이 남다른 데가 있는가 했는데 도로 맛이 없다. 입맛에 안 맞아 왜 이럴까. 참다가
“반찬이 맛없어”
수저를 놓고 출근하면 종일 손이 떨려 일을 못 한단다. 무심코 한 말로 그 고생을 하며 만든 것들이 무슨 소용 있나. 잘 한다고 애써도 맛없다니 힘 나겠나. 서로 어긋난 게 많고 맞는 게 적어 미움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 게 쌓여 참지 않고 툭툭 뱉는 말에 적잖이 상처를 입었는가 보다. 그리 상냥하던 아내가 참배 맛같이 달게 하던 사람이 조금씩 변해갔다.
“세월아 빨리 가거래이”
혼잣말을 들었다.
점점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반대부터 한다. 아침에 무얼 부탁하면 저녁에 깜박 잊었단다. 실증이 생겨 말끝마다 다툼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이르면 필요 없다며 헛갈리게 한다. 아버지의 위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내 집의 일은 마음에 안 든다. 삐뚜름하게 말하는 걸 듣게 된다. 친정 일에 소홀하자 그만 네 집 내 집으로 갈라졌다.
“사사건건 벌어져간다”
갈 대로 가보자.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그 말을 두고두고 한다. 무슨 말끝에 들은 얘길 했더니 그만 책잡히는 말로 돌아온다. 쓸데없이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어찌 기억을 다 한다. 언제 무슨 얘기도 말한다. 내가 그런 말을 했는가 허둥지둥한다. 여자들과 말 승강이를 하면 이길 수가 없다.
“누에 실 나오듯 계속 이어져 나온다.”
“쌍심지가 생기고 어거지가 오가는 게 참기 어렵다.”
내가 잘 했다고 한마디 했다가 늘 패배의 길로 들어선다. 했던 말을 또 한다고 뭐라 한다. 그런가 해서 안 하면 몇 곱으로 더해 귀가 시끄럽다. 내 한마디면 꼬리를 달고 달아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다. 쌓이고 쌓인 만년설이다. 켜켜이 서리고 서린 맺힌 말이다. 그리 내가 잘못 했나 좀 봐 줄 수 없나. 가족을 위해 새벽에 나가 일하고 밤중에 들어오는데 ---
“한번 비틀어지니 걷잡을 수 없다”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한다.”
하나 막아놓으면 저쪽이 터진다.
생활하면서 의논해야 할 일은 모두 억지로 번져 빗나가고 걸핏하면 지난날 얘기가 날카롭게 나타난다. 처음 하고자 한 얘긴 간곳없고 엉뚱한 말로 뒤죽박죽이 되어 진흙탕으로 변한다. 편할 날이 없다. 웬수가 되어 서로 똑바로 안 본다. 그러니 말이 곱게 나오겠나. 되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한다지만 첫말부터 역정으로 변한다.
“바른말도 굽게 듣는가. 비비 꼬였다.”
“내 말은 비웃음거리다.”
말하면 듣는 것 같지 않다. 건성이다. 하나도 귀에 담아두지 않는 것 같다.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아이들 앞에 그건 소용없단다. 자꾸만 콩가루 집안으로 바뀌어 간다.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니 속이 불편해 자주 체한다. 소화젤 사 먹고 지난 지가 오래다. 어떨 땐 위 경련이 일어나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 부부가 아니라 남들처럼 무덤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비틀어지기만 해 그냥 머쓱하게 지난다.
“너는 그래라 난 내 멋대로 하련다”
“아이들 대학 가는 걸 보고 난 훌쩍 떠나련다”
그런 속 맘이 귀에 쟁쟁 울린다.
가까운 진해 백일마을을 가보고 아내 고향 경주 쪽으로도 찾아봤다. 붙들자면 그리 해야지 않겠나. 모두 비싸 아파트 팔아서는 어렵다. 부엌일과 청소, 빨래는 퉁퉁 부어 아무 짓도 할 줄 모른다. 어이 살겠나. 어디에 대고 얘기하며 윷과 바둑은 누구와 두고 치나. 나갔다가 들어오면 불 꺼진 빈방에 반기는 사람 없고 아침에 만졌던 것들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 얼마나 삭막하고 황량하며 숨 막힐까. 떨그럭거리는 그리운 소릴 들으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하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높이 던져요”
“밥 먹으란 말 목 아파요. 거듭 말하지 않게 하세요”
짜증 섞이고 뼈있는 소리여도 좋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 자락에 예쁘게 만들어 열무를 잔뜩 뽑아 해지도록 다듬었다. 둑에다 접시꽃과 봉숭아, 코스모스, 돌나물꽃을 심어 꽃밭을 만들었다. 여러 개 바늘을 달아 끌어 숭어 올리고 전어와 망둥어를 낚았다. 다시 승학산 기슭에 화전민처럼 밭을 만들어 가꿨다. 고라니와 꿩이 내려와 그물을 쳤다. 그 안에서 피리 불고 하모니카 들려주며 직박구리와 같이 노래했다.
어떨 땐 까치가 내 한 곡하면 저도 따라 한다.
“깍깍깍”
주위를 날아다니다 우리가 떠나면 숲으로 사라진다. 명지에선 학교 지을 빈터와 바닷가에 밭을 일궈 여러 채소를 심어 가꿨다. 옆 사람 사정이 생겨 함께 부치라 하자 밭이 배로 늘어났다. 산딸기나무를 키워 보름 넘게 따먹고 싸게 팔았다. 이사 가는 곳마다 만들었다. 시골 흉내를 내며 비위를 맞춰준다고 하지만
“굽어진 맘을 펴나가자”
“텃밭뿐만 아니라 외국도 가자”
“이고 지고 끌었다”
이태 살 거라 낯선 몽골 땅을 밟았다. 믿음 좋은 아내가 선교 활동하기 좋은 곳이다. 예전엔 기독교가 있었지만 불교 나라로 바뀌었다. 대놓고 선교활동이 어려워 가르치는 일로 시작해야 한다. 3월 청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바쁘게 생활했다. 낮은 영하 25도이다. 밤은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진다. 응어리진 맘이 얼었다가 녹으면 봄날 새싹처럼 보드랍게 피어나겠지.
“고려 때 들어왔던 칭기즈칸 나라를 찾았다.”
울란바토르 수도는 화산 분지여서 높다. 구름이 낮게 머리 위로 지나간다. 아파트에 상수도와 온수가 나와 난방도 된다. 중고차를 구해 이곳저곳 다니며 듣도 보도 못했던 낯선 곳을 구경시켰다. 신기한 곳이라며 좋아한다.
“가난이 줄줄 흐른다. 우리 70년대구만”
눈이 오면 쌓이잖고 바람에 흩날리는데 아름다운 그림이다. 비단결처럼 휘어져 굴러다닌다. 달밤에 보면 더욱 장관이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본다.”
아직 곳곳에 그 옛날 겔 천막에서 불 지펴 산다.
광야 사막인데도 시내를 흐르는 톨강이 있다. 깡깡 얼어붙어 쳐들고 일어나는 얼음장 강이다. 밑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꼴꼴 꼬르륵”
개구리 우는 소리로 들린다.
유월이 왔는데도 앞산 복드산엔 눈이 쌓였다. 기슭엔 잔잔한 꽃들이 수없이 피어난다. 보니 민들레다. 노란 꽃이 흐드러졌다. 얼마나 많이 폈는지 노란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 같다. 추워선가 땅에 붙어서 핀다. 보랏빛 붓꽃과 하양, 파랑 등 자세히 보면 바닥에 아주 작은 꽃들이 수없이 핀 것이 보인다. 우리나라 민들레는 쓴데 여긴 나물로 데쳐 먹기 좋다.
“들풀 무침이다”
고비사막에 듬성듬성 난 게 부추다.
“정구지 냄샌데 어이 이리 지천일까.”
먹음직해서 삶아 먹으니 쓰다.
지난날 러시아 군부대 전차병 막사에 교실을 만들어 청년들을 가르쳤다. 단어를 익히기 위해 그릇과 과일, 옷가지 등을 한 보따리 갖고 간다. 아내 열정이 대단했다.
“가르치는 일에 정신없다”
나란톨 시장에서 그릇을 살까 물어서
“짐 되니 사지 않는 게 좋겠다”
했다가 혼났다. 그만 화를 내고 내 맘대로 못하게 했다며 돌아가서 보잔다.
“또 훌쩍 떠나겠단 말인가.”
잘 하려 했다가 아직 남아있는 게 용틀임하는가 보다.
신기한 몽골에 이어 다음은 반대로 뜨거운 말레이 페낭을 갔다. 얼었다가 녹기도 하겠지만 내 맘에도 앙금을 이글거리는 더위에 녹여야 한다. 막 대했던 걸 뉘우쳐야 한다. 잘못한 사람은 뎅기열 모기에 물려 혼쭐나야 한다. 낮은 35도이고 밤에도 무덥다. 후텁지근해서 견딜 수 없다. 아파트 풀장에 들앉아 있어야 한다.
“이참에 개헤엄을 배워봐요”
“요즘 누가 개헤엄을 해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고 고개 들고 보면서 가는 게 좋아요.
따라 여러 날 하더니 횡단을 한다. 매일 들어가 산다. 먼 곳을 보기 위해 높은 산에 올랐다. 가까운 뒷산이다. 정상까지 오르막 철길이 놓였다.
“한국이 만든 페낭 대교가 길쭉하다.”
세계에서 몇 번 째라니 우리 토목기술이 대단하다.
“우째 여기까지 왔나.”
숲엔 개울이 있을까 했는데 없다. 들어가기도 험하다. 엉큼하다. 작은 원숭이들이 떼거리로 득실거린다. 던져주는 먹을 걸 가로챈다. 버려진 개들도 비리가 생긴 몸으로 나돌아다닌다.
불개미들이 이동하는데 줄줄이 가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거기도 경찰이나 헌병이 있는 듯 잘못 하는 놈을 세워 야단치는 것 같다. 뱀과 모기가 있어 불편하다. 육지엔 호랑이, 코끼리 등 맹수들이 다녀 무서워 들어갈 수 없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빤한 등산로로 앞사람 따라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아침 시장이 잠깐 열려 다녀오고 낮은 들앉아 있어야 한다. 작은 것도 저울에 올렸다가 내리며 얼마라 한다. 망고와 바나나, 파인애플도 달아 판다.
“오나가나 상인들은 똑같아”
장수가 밑지고 판다와 처녀 시집 안 간다, 늙은이 죽겠다는 게 거짓말이란다.
사과와 귤이 있다. 단감도 보인다. 두리안은 수박만 한데 가시가 우둘투둘 났다. 비싸서 맛있는가 먹었다가 혼났다.
“그 고약한 역겨움이 언성스럽다.”
“송장 냄새가 난다.”
주일날 교회 나가 종일 예배드리고 함께한다. 3개월 지나면 이웃 나라로 갔다 와야지 비자가 연장된다. 북쪽 태국에 가고 오면서 보니 고무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소낙비가 갑자기 내리는 곳에서 오토바이 운전자가 급히 비옷으로 갈아입는다. 벼 논이 곳곳에 펼쳐졌다. 일 년에 세 번 농사를 지을 수 있단다.
“쌀 풍년이다”
“심고 백일 지나면 거둘 수 있다”
갈아엎어 물 대고 씨 뿌려 두면 자라 열매 맺는다. 누렇게 고개 숙인 나락이 가을 들판 같다. 머리만 잘라 추수하고 마르면 불 질러 태운다. 못자리나 기계 농사를 하는 건 안 보인다. 더운 지방이라 얼른 일하고 들어오는 것 같다. 종일 엎드려 일하는 우리네 하곤 다르다. 야자수처럼 생긴 팜나무가 많아 열매를 거둬 기름 짜서 여러 가지로 사용한단다.
“비행기 연료로도 쓴다니 뜰까.”
나를 업신여겨도 대꾸하지 않는다. 참아 위해주면 풀어지겠지. 꽁꽁 설산의 빙하가 밀려 내려오고 강철도 오래 쓰면 닳아 무디어지는데 한 서린 그 마음 누그러지리라. 톡 부러지게 잘못한 게 없다. 시나브로 지나면서 얽힌 것들이니 오래 가겠나. 머잖아 모닥불처럼 사그라들겠지. 잔소릴 오래 들으면 버럭 화나는 일만 잘 참자.
“그래도 가고 싶어 빨리 시골 가자”
생떼를 쓴다.
걱정이다. 저러다 무릎이라도 나가면 어쩌려고. 무슨 일을 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 같이 하다간 힘에 겨워 따라가질 못한다. 일에 파묻혀 산다. 길 가다가도 휴지나 비닐 쓰레기가 있으면 줍는다. 그냥 지나칠 것도 봐 넘기지 않는 성미다. 남 주는 일은 귀신같다. 나 모르게 후딱 준다. 덜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곱다가도 밉고 밉다가도 곱다”
교회 바치는 일은 이골이 났다. 밭에서 한 짐 지고 오면 다음 날 보면 없다. 얘기해도 소용없자 그만둔다.
“주든지 말든지”
좋은 건 남 주고 우린 맨날 허름한 걸 먹는다. 자녀들도 엄만 고생하고 나는 자유분방한 줄로 안다. 오랏줄에 사는 걸 알겠나. 뭐 생기면 아들딸 챙겨 보낸다고 바쁘다. 난 항상 있는지 없는지 뒷전이다.
“허리 휘어지게 일해도 소용없다”
“온 동네 다 퍼주는 영옥이다”
땀에 젖어 후줄근하다. 밭일하는데 낫으로 풀 베는 걸 잘한다. 주저앉아 삭둑삭둑 소리가 재밌단다. 톱 들고 다니며 열매 따낸 딸기나무 자르는 일도 거뜬히 해낸다. 성큼성큼 남자 하는 일을 쉽게 한다. 축 늘어진 길을 막는 아카시아를 마구 잘라버린다. 가시가 무섭지 않은가. 밭에 들앉아 나갈 생각을 않는다.
“오훈 모임에 나가야하는디”
윷 칠 때 그 밝은 웃음이 하나도 걱정 없어 보인다. 시골 가잔 말도 쏙 들어갔다.
“모 나오라”
하고 정말 나오면 그 환한 얼굴에 빛이 다 난다. 천연덕스레 너스레를 피울 때는 훌쩍 떠나겠다는 생각도 간 곳 없어 보인다.
어쩜 그리 어여쁠까. 내 아내 맞나. 반짝이는 눈망울과 하얀 이, 붉은 볼이 모두 낯설다.
귀한 보석이다. 젊을 땐 멋도 모르고 허랑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든다. 하천에 뒹구는 걸 줍는다. 녹옥과 백옥, 청옥, 홍옥, 황옥, 흑옥 그중에
“영옥이 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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