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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학의 난
1596. 봄
김포평야에서 시행된 종자 배양법이 성공하여 새로운 김포벼가 탄생하였다. 김포벼는 그 양이 충분하여
전국적으로 보급이 되고 남반도 일부에까지 전해져서 논에 심어졌다. 김포평야에는 순수한 제주벼만이
재배되고 있었는데 2-3년후면 제주벼가 전국적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소금과 쌀을 매점하고 유통시키는
와중에 전국적으로 새로운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한성/의주간 도로가 개통되었는데 대륙진출의 대동맥이 만들어진 역사전인 사건이었다.
한성/원산간 도로는 산간지방이 많아서 좀도 시일이 지체되고 있었다
증기기관이 활성화되면서 수공업들이 기계공업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생산물은 대부분 천군부에서
소비되고 있어서 백성들에게까지 그 혜택이 돌아 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지만 서서히 산업화의
기초가 다져져 갔다. 전국적으로 3년과정의 소학교가 신설되기 시작했다. 각도에는 중학교가
신설되었고 한성에는 고등학교와 영재학교가 운영되고 있어서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사대부들은 정계로의 진출이 완전히 막히자 지방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많은 사대부들이 몰락해가고
있었다. 몇몇 적응력이 뛰어난 사대부들은 염점과 미곡점을 불하 받아 장사길에 뛰어들었으나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던 사대부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평불만이 가득찬 생활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압록강물이 녹아 내리고 있는 의주에는 공수여단에서 1개대대를 착출하여 그들을 근간으로 하여
창설된 1 기병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기존 천군의 주요 해군 출신 장군들이 대부분 육군 사단장으로
보직을 바꾸게 된다. 많은 천군 병사들이 장교로 승진하여 모집병을 정예병으로 훈련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작년가을에 모집된 5만의 병사를 천군부 휘하에 두고 있었고. 또 다른 5만의 병사가 순차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포병여단 및 기병사단 소속 포병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래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보병사단은 궁병와 창.칼병으로 이루어졌고 기병사단은 기병과 궁병 창병
포병대대를 갖추고 있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 각각 기병사단이 진주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반도에 주둔했다. 한반도에는
내년에나 보병사단이 주둔할 예정이였는데. 구성인원이 창병과 궁병이다보니 그 훈련이 총병보다
오래 걸렸고 지휘관들이 태부족 하였기에 빠른 시일 안에 군대를 현대화된 직제로 재편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작년에 편재된 5개 사단 규모의 병력도 그 숙련도와 군기에 있어서 기병사단을 제외하면
민병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왜란때 구성된 의병들은 천군부에 흡수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업으로 복귀 했다.
기존의 조선병들은 수군을 제외하고 대부분 대마도와 남반도에 집중되었다가, 천군부소속 인원으로
대체되어 일부는 현지에 남고 대부분은 지방군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단 일년사이에 상비군이 15만을 넘어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었지만, 왜의 조공과 염점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빠듯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초기에 소요되던 화폐발행용의 막대 한 금이 어느
한계치에 이르자 매년 발행되는 화폐가 줄어들어 그 잔여분을 재정에 흡수하 여 사용하고 있었지만,
다른 세원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 의주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조만간에 명의 사신이 의주에 도착할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외무부 대명부 부장인 이인석이 외무부장관에게 짧은 전화 통지문을 들고 서 있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이부장과는 대조적으로 조경환 장관은 웃으면서 누가 올 것인가를
물어 보았다.
“ 왕삼계가 사신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 음 아마도 우리의 힘을 보려는 의도일거야”
“ 일단 그들의 이목을 속여야지. 천군부와 의논하고, 이일을 승정원에 알리도록 하지.”
6월에 한성에 도착한 왕삼계는 한성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조선병을 보고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왜인에게 듣기론 천군이 있어 신식조총을 들고 100리밖에서도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데
그런 조총은 어디에도 없었다. 왕성 군데 군데에 족히 수만근은 나갈 철덩이가 놓여 있기는 했는데
저것을 움직이려면 족히 백필의 마소가 필요할 것 같았다.
치우천황의 친전을 받으며 대전으로 들어서자 대전에는 주안상이 상다리가 뿌러지도록 차려져 있었다.
덕담이 오가고 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왕삼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 지난날 대국의 도움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비록 상왕을 뜻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지만 대국의 보은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 그렇듯 사리가 분명하신 분께서 어찌 아직까지 사신을 보내어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지 않이하고,
이렇듯 대국의 신하를 욕보이는 것인지 그 저의를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정녕 대국의 보은을
생각하는 이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로 오만방자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으나, 치우 천황은 천군부에서 명과는 아직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명사신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 것을 거듭 부탁한 것이 있어 입술을 꾹 깨물었다.
“ 그점은 잘 못되었소이다. 내 이렇게 사과하리다. “
치우천황이 황망한 표정으로 왕삼계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 아마도 대국 황제께서 대신을 친히 사신으로 보내 심은 깊은 뜻이 있을터, 말씀해 주시지요.
경청하겠나이다.”
“ 황제께서 말씀하시길 듣자하니 조선이 왜를 크게 물리치고 화친을 맺었음에도 군사를 왜의 영토에서
물리지 않고 막대한 조공을 요구 한다 하니 그게 사실이면, 그일을 파하라 명하셨고, 듣자하니, 상왕을
폐하고 아들이 왕좌를 찬탈하였다 하니, 그게 사실이면, 아들을 폐하고, 상왕을 복원시켜라 하셨고,
대국의 황은을 입어 왜를 물리쳤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공을 받치라 명사신바. 그 물품은 따로이
전해드리겠나이다.”
사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치우천황은 끌어오르는 분노를 안으로 삭히며 태연히 말을 이어나갔다.
“ 명황제의 구명지은과 천지신명이 조선을 굽어살피시어 왜를 이땅에서 물리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
왜와의 전쟁에서 조선의 국토는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지고 많은 조선인들이 볼모로 잡혀갔는지라.
그 보상을 받고 빼았긴 조선의 물건과 잡혀간 볼모를 다 찾아 귀환시키면, 능히 군사를 물리겠나이다.
왕위 찬탈은 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상왕께서 왜란을 겪으시느라 고초가 심하시여 국사를 돌보기
힘들다 하시기에 자식 된 도리로써 어버이의 뜻을 받든 것입니다. 이는 빠른 시일 안에 사신을
파견하여 황제의 윤허를 받겠으니, 사신께서 잘 말씀해주시구려. 대국의 보은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지사라. 결초보은 하겠나이다.”
잠시 숨을 고른 천황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 그리고 황제에게 청하오니 명과의 사사로운 무역을 허가해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조선의 물산이
부족하여 대국과의 교역이 절박한 실정입니다. 소국의 어려움을 대국이 헤아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선왕의 고분고분한 태도에 왕삼계는 짐짓 놀라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것에 대한 것을
주청드리겠지만 황제께서 윤허하실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였지만, 그것은 명에게 오히려 좋은 일이
될지도 몰랐다. 지난 출병으로 제정 압박을 받고 있는 명 조정으로서는 사무역을 통한 관세를 제법
챙길 수 있었기 때문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 주원장 태조는 후손들에게 외부와의
교역을 삼가라는 유훈을 남긴 바 있었고 아직까지 그 유훈이 지켜지고 있었다.
의외로 순순히 황명을 받드는 것을 본 왕삼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명분이 없었지만, 그 많은 조공을 올해 안으로 보내지 않으면, 그 일을 빌미삼아 조선을 한번
혼내주면 그뿐이었다. 아직도 요동에는 10만의 명군이 진영을 풀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그보다
더 급한 일은 천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이미 같이 온 정보꾼을 풀어 놓았으니 조만간에
쓸만한 것들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엄청난 조공물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관리는 군소리없이 왕삼계가 내민 물목을 거의 수락하였다.
물목 대한 논의가 쉽게 끝나고 처소에서 쉬고 있던 왕삼계는 이럴 줄 알았으면 좀더 부풀려 자신의
것으로 챙길 걸 하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무슨 꼬투리를 잡든 잡아서
많이 울겨먹으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다.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왕삼계가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몸자세를 바로 잡았다.
“대인 저 이옵니다.”
“들라. 그래 알아보라는 것은 알아보았느냐 “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였지만 왕삼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무개한 것들 투성이였다.
“ 하늘에서 불사조가 불을 떨어트렸다 “
“ 천군이 바람처럼 하늘을 나르며 왜인을 죽였다.”
“ 천군은 100리밖의 왜인을 죽인다.”
“ 천군은 철새를 기르고 있고 철어를 기르고 있다.”
등등. 어찌보면 사실이였지만, 왕삼계가 믿기에는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다음날 천군부라는 곳을 찾아볼 요량으로 처소를 나섰지만 어찌된 게 그동안 안면을 터왔던 조선의
괸리들은 한명도 한성에 있지 않았다. 처소를 관리하는 관리에게 물으니 그들은 상왕이 자리를
물러나신후 자신의 죄를 크게 뉘우치고 왜로 건너가 조선인 볼모를 찾고 있다고 하였다.
천군부에 도착한 왕삼계는 더 황당한 이야기를 천군부 관리라는 자에게 들었는데, 천군들은 이미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로서는 그 약하기만 한 조선이 막강한 왜군을 어찌 몰아내고
오히려 왜를 정복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천군의 존재를 믿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분명이 뭔가 있긴 있는 듯 하였지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조선왕에게 물었으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왜를 물리쳤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난감한 왕삼계는 좀더 조선에 머물며 저들의
속셈을 파악하기로 마음 먹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
홍주목사 홍가수는 밤늦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고단한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관사에 들어 저녘상을
물렸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지금의 난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십년간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는 김서방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깊은 죽립을 쓰고, 털털하게 차려 입은 모양새가 양반은
아닌 듯 하였으나 그 기도가 제법이었다. 김서방에게 차를 내오라 이르고 손님과 함께 방에 들어가
상석에 앉았다.
“ 저는 지난날 속모관 한헌의 부대에서 선봉장을 맡았던 이몽학이라 하옵니다.”
“ 그래 자네가 어쩐 일로 이런 야심한 시각에 나를 보고자 했는가.”
“ 목사어른! 목사어른께서는 작금의 사태를 어찌보시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생전 처음 보는 자가 하는 질문이라고는 너무도 당돌하기 그지 없었다.
“작금의 사태라니.!”
“ 네 이놈. 방자하기 그지 없구나. 작금의 사태라니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냐 ?”
“ 목사어른, 작금의 천황은 군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저 천악 무도한 천군부라 칭하는 모리배에
둘러 쌓여 하루하루를 위협에 떨며 덕수궁에 유폐되다시피 하시고, 백성들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역에 힘들어 하고 있나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황명을 칭하여, 나라의 근간이 되는 유교를 억압하고 사대부들을 핍박하며
천주학이라는 허무맹랑한 학문을 전파하여 혹세 무민하고 있으니 어찌 하늘인들 가만히 있겠나이까.”
비록 지금은 예전의 관직인 목사직을 수행하고 있다곤 하지만 언제 갑자기 자신의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세인들의 말을 들으니, 저들의 혹세무민에 휩싸인 무지한 백성들은 저들을
칭송하고 있었고, 새롭게 저들의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관직에 조금씩 등용되고 있었다. 자신이
수십년동안 닦아온 학문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고 가문의 앞날이 걱정되기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저 앞에 있는 자는 지금 그것을 논하고자 이곳에 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는 반역이요, 잘못되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황명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저들의 처사가 다 마땅한 것은 아니나, 또한 다 못 마땅한 것도 아니고 민심이 저들에게 있으니
어쩌겠는가 ?”
한풀꺽인 목사의 말을 들은 이몽학은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간 뜻을 같이하는 선비와 덕망있는 분들을 만나뵙고 모두들 목사어른과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소인은 알게되었사옵니다. 더군다나 지난날 한성수군을 맡으시고 지금은 물러나 계신 원균대감과
국방부 장관이신 권율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뜻있는 조정의 신료분들이 저희들의 거사에 동참하겠다고
알려왔나이다.”
“ 그대는 지금 말하는 것이 무었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가 ?”
“ 저희들은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
그의 눈에서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은 곧 목사가 가담하지 않는 다면 바로 죽일것이라는
무서운 살기였다.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홍목사는 등뒤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지만, 섵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한 가문의 식솔들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 그대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는가 ? 저들의 천군을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
그들에게는 5만에 가까운 군사가 있네. 더군다나 듣도 보도 못한 무기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나.”
“ 비록 5만이라곤 하나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들을 움직이려면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전에 우리가 충청도를 장악하고 한성을 포위한다면 바로 한성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함경도와 평안도의 천군부소속 기병사단은 국경에 인접한지라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의
천군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있어서 한성 주위에는 기껏해야 일이천 정도입니다. 각 고을에서 저들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묶어 둔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군세가 천명이 되지 않지만
홍주목이 합세하고 기존의 군대를 수용하면 순식간에 수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염점과
미곡점의 몇몇 점장들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하기로 약조하였습니다.”
그의 말은 분명 솔깃하였다. 더군다나 국방부소속 조선병들이 참가한다면 승산이 매우 높았다.
일시나마 조선병들의 지위가 많이 내려 갔다지만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말미를 달라고 이몽학이를 돌려보낸 홍가수 홍주목사는 지금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내일 다시 온다 하였으니 그 안에 특단의 결정을 해야만 했다.
홍가수 일생일대의 결정이 내려지는 그 때에 천군부 정보부에서는 홍주에서 올라온 급보를 대하고
비상회의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일찍이 이몽학의 난을 염려하던 천군부에서는 이몽학의 주변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고 어제 홍주목사와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었다.
1596 한성 천군부
“ 역사에 예정된 일이 일어날 것 입니다만. 지금은 예전의 그때와 사뭇 다릅니다. 역사에는 부랑민과
승려들이 주축이 된 반란이었으나. 홍주에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이번 반란의 주축은 소외된
사대부뿐만 아니라 국방부의 수장까지 연루된 일이라 진압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이 일에 대한
대책은 기존은 이몽학의 난을 기준으로 하여 세워져 있었는데 그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 어쩌면 이번이 다시없는 기회일 지도 모릅니다. 불만을 품고 있는 세력을 일거에 소멸시킬수 있고
명의 사신을 명으로 쫒아버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우리에겐 가용할 병력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군요.”
“일단 조기 진압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만.”
“먼저 이 일을 천황과 상의한 후 관련자들을 아주 조용히 처리 해야 합니다. 단 이몽학이를 작전이
끝날 때 까지는 보호하도록 합시다. 그의 존재가 이번 작전의 요체이니까. 여기에 거론된 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 할 것입니다. 더 많은 관련자를 조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닷세후에 천군부장관인 조준옥과 치우천황의 독대가 이루어졌다.
테이프 내용을 다 듣고 난 치우천황은 만감이 교차하였지만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저들이 폭도인지 우국충정에 기인한 충신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천군부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몰라 선뜻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 천황폐하, 저들이 비록 명분은 천황폐하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 하나, 이미 들으신 바대로
저들은 빼앗긴 저들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이 어려운 때에 난을 일으키려 하고 있사옵니다.
워낙 많은 사대부들이 연루되었기에 그들을 모조리 처형할 수도 없는지라 난감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
천군부 장관의 말을 듣고 있던 치우천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아무런
실권이 없다. 단지 천군부에서 요청하는 서류에 옥쇄를 찍어주는 것 밖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이름뿐이
천황으로 후세에 남을 것이라는 역사의 심판이 두려웠지만 말이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려면 옥쇄라도
잘 챙겨야 했다.
이런 때에 구신들이 떨쳐 일어나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지만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다. 천군부에서 나라살림을 맡은 후 여기저기에 공역장이 늘어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적은 돈이나마 노임을 지불하고 있었고 생각해보면 백성들의 생활이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았다.
군주의 역할이 무엇인가.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제일 으뜸으로 보지 않았던가. 이런 시점에서 반란이라니. 이는 아니 될 말이였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충신들이 부족한 이때에… 치우천황의 머리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 그래 장관께서는 어떤 복안이 있으신지.”
“ 예 폐하, 저들 또한 우리의 백성이고 다는 아니더라도 우국충정에 가담하는 자도 많을 것으로
사료되온지라. 저들을 최대한 설득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나이다. “
“ 그래 그래야겠지요. 피는 피를 부르니 저들을 보살피는데 힘써 주시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 짐이 도와줄 일이 있겠소 “
“ 홍주목사를 한양으로 불러주시기만 하시면 되옵니다, 다만, 저 명의 사신을 쫒아내기위해 약간의
연극이 필요한지라 폐하꼐서는 난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신 후 몽진을 하겠다는 명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려 하였으나 안 들어도 알 것 같았기에 그는 고개를 잠시 끄덕이고 있었다.
그날부로 홍주목사를 한양으로 불러들이는 파발이 홍주로 떠났다.
1596년 여름
내관이 권율장관이 들었음을 알렸다 그는 천군부장관이 황궁에 들 때 미리 변통을 넣어 그를 이곳에
오게 했는데 시간이 절묘했다. 안으로 든 권율은 천군부장관을 보며 약간 의아해 했지만, 서로 예를
취한 후 자리를 잡았다.
“ 찾아계시옵니까, 폐하.”
“ 그렇소이다 장관. 원로에 국방부를 맡아 수고가 많으시구려 장관 “
“ 황공하옵니다. 폐하. 어인 말씀이시온지요.”
치우천황은 권율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을 도모할 거면 좀더 조심스럽게 하지 이게 뭐란 말이냐’ 어찌보면 질책의 눈빛이기도 했다.
“ 네 듣자하니 일부 불순한 자들이 획책하는 구정물속에 장관께서 연루되어 있다기에 그 진위를
파악하고자 이렇게 불렸소만. 장관께서는 이것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신지?.”
직설적인 천황의 질문에 거의 기절할 뻔한 권율은 머리카락이 솟고 식은땀이 흘렀다.
어느새 등에서 땀이 흘러 옷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어찌 그 일을 알았단 말인가? 극비중의 극비로 간세가 끼여들 틈이 없었건만. 혹 천군부에서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얼마 전에 충청도지사도 가담하기로 하였기에 일의 반절은 성공하였다고
생각했거늘. 지난 봄에 홍주목사를 살해한 것이 잘못되었던가 ?.”
홍가수의 가담소식을 듣고 좋아하던 권율은 그가 갑자기 한양으로 올라온다는 소리에 겁을 먹고
그를 죽일 것을 명하였는데 어쩌면 그때 그 일로 인하여 꼬리를 잡혔을지도 몰랐다. 잠시 멍해져 있던
장군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가 머리를 바닥에 세게 찧으며 고 하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렸다.
“ 폐하, 어찌 제가 그런 불충한 마음을 먹었겠나이까. 부디 저의 충정을 믿어주시옵소서.”
“ 그만하시오. 내 어찌 노신의 충정을 의심한단 말이요. 하지만 이것을 한번 들어보시오.”
치우천황이 탁자위에 놓여져 있는 상자의 머리 부분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누르자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말소리가 흘러 나왔다.
“원균대감과 국방부 장관이신 권율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숨은 인사들이 저희들의 거사에 동참하겠다고
알려왔나이다.” “오늘 충청도지사가 합류의사를 밝혔나이다”
“ 장군은 어찌생각하시는지 ?”
“ 폐하 저는 정녕 모르는 일이옵니다. 이는 모함이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그래요. 장관을 누가 모함한단 말인가. 음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쩔수 없구려.
오늘부터 이사건의 전모가 밝혀질때까지 국방부의 모든 권한을 천군부에 이관하고 그 소속 인원을
국방부에 감금하겠소. 아울러 그 가족들 역시 금족령을 내립니다. 만일 명을 어길시는 참형으로
다스리겠소. 그리 알고 나가보시오. 그간의 장관의 공을 생각하여 그대 집안의 목숨을 내 살려줄
터이니 자중하시오.”
권율은 대전을 나오자 다리의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았다. 그가 나오길 기다리던 천군부
소속 요원이 그를 부축여 국방부로 이송했다. 국방부에 돌아온 장군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모조리 결박 당하여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고 천군부소속 병사들이 곳곳을 쑤시고
다녔다.
국방부의 일이 충청도 홍산으로 전해진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이레가 지나서 였다. 워낙 경비가
삼엄하고 한성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뚫기가 어려워서 권율장군의 식솔의 먼 친척중 하나가 홍산으로
달려가 전한 것이었는데. 그는 그 소식이 어떤 파장을 불러이르킬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단지 소식을 전하면 권율장군의 구명운동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
홍산의 산채
“ 장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협조자들이 자리를 이탈하거나 소식이 끊기고
있습니다. 거사일을 앞당겨야 하지않을까요 ?”
원래는 추수가 끝나 갈 무렵인 가을에 거사를 할 계획이었다. 군량미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그들로서는 들판의 곡식이 익을 때를 기다려야만 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상하기만 했다.
“ 장군 산밑에서 얼쩡거리는 놈을 잡아왔아온데, 권율장군의 서신을 가져왔다고 하기에
대려왔나이다.”
잠시 잡혀온 자의 행색을 살펴보던 김덕령장군이 손을 내밀었다.
“ 그 서신을 이리 줘봐라.”
서신을 천천히 읽어가던 김덕령장군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가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장군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하십니까 ?”
최담령이 김덕령이 떨어트린 서신을 주어 들었다.
“ 계획이 이미 발각되었다는군. 국방부가 폐쇄되고 관련자들이 모두 잡혀 들어갔어.”
이미 한성에서의 내응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중대한 때에 이몽학은 전라도 각지를 돌며
은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으니 큰일이었다. 어쩌면 천군부에서는 이미 토별대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일이 발각된지 이레가 지날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이미 일은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았다. 김덕령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 전령대를 불러라”
김덕령의 큰 목소리가 산채를 울렸다. 그의 명령에 각 전령대 수장들이 잠시후 들어왔다.
“ 즉시 전령을 이몽학 대장군에게 보내고 급히 홍산으로 오시라고 하여라. 매우 급한 일이니 최대한
빨리 오시라하시고 관도를 피해 소로로 이동하시라 전하라.”
“ 서신을 들고온 자를 한쪽에 모시고 잘 감시하도록 하고, 지금 즉시 연락 가능한 협조자들에게
연락하여 거사를 앞당길 것이니 준비하라 하라. 거사일은 여름이 가기 전에 할것이며,
추후에 통보해 줄 것이니 하시라도 출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명을 전하라.”
“네 장군”
명을 받은 전령들이 산을 내려와 각지로 흩어졌다. 그들이 사라진 후 숲속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그 뒤를 쫒아 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림자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전령의 급한 전갈을 받은 이몽학은 급히 산길을 따라 홍산으로 가고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있단
말인가.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홍산에 도착한 그는 산채가 일급경계태세를 이루고 많은 병사들이
무장을 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김덕령을 찾았다.
“ 대장군 이제 오십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오시면서 혹 불상사는 없었습니까?”
“ 아무일 없었네. 갔던 일이 잘 되었고 전주 목사도 이일에 동참하기로 했지. 휘하의 병사 이천
거느리고 거사에 참가할 거네.”
“ 잘된 일 입니다만, 한성에서 변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시지요.”
김덕령이 내민 서신을 읽어가던 이몽학은 김덕령을 믿을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그래 사실을 확인하였는가 ?”
“ 전령을 보냈으니 조만간에 정확한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일이 이지경까지 되었다면, 이미 전조선이 다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왜 아직까지 소문이 나지
않았단 말인가.”
“ 이미 관아에 파발이 갔을 것이오나, 대부분이 작금의 사태를 관망하거나, 모병하느라 군대를
보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저들이 군대를 파견할터.
우리가 선수를 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아직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약정된 거사일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지 않는가 ?
이 일에 수천명의 목숨이 달려 있어.”
“ 그래서 이미 주요 협조자들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하는 전령을 보내고 거사를 앞당길 것을
통지하였나이다.”
“ 그래 그건 잘 한일이야. 하지만 한성의 소식이 급선무이니 기다려봄세, 일단 우리의 군세를
점검하고. 아 참 저들의 대한 정보는 없는가 ?”
급하게 달려온지라 땀을 제법 흘리고 있던 이몽학은 냉수를 한잔 들이키더니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 저들의 군대는 대부분 평안도 이북에 집중되어있는지라 자세히는 알수 없으나 아직 군대가
움직인다는 정보는 없사옵니다. 그리고 지금 산채에 천명의 병사가 있고 충청도에서 관병이 삼천,
전라도에서 이천, 협조자들의 수가 이천 도합 팔천입니다만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채
칠백명이 되지 않습니다. 산채 인원들이 지금 전국각지로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을 불러드리고,
거사일을 앞당겨 일단 군세를 늘리고 속전속결로 한성으로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장군.”
“ 한양으로 전령을 언제 보냈는가?”
“ 일이 있은 후 바로 보냈으니 내일이면 소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 일단 전령을 기다리기로 하고 난 조금 쉬어야겠네. 아참 천군부에서 파견된 천군과 천인들의
동태는 파악하고 있는가 ?”
“ 그들은 모두 전라도에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충청도에 있는 인원을 모두 전라도로
움직였습니다. 강화도에 천명이 주둔하고 있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합니다.”
“ 수군이 없음이 안타깝군, 권율장군이 내준 판옥선 열척이 전부이니, 이를 가지고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각지로 파견된 전령은 돌아왔는가.”
“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까운곳에 간 자들은 왔지만 먼 곳에 간 자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 알았네. 좀더 신경을 쓰도록하지. 지금 같은 중요한 때엔 보안이 생명이야”
자기처소에 들어온 이몽학은 그의 스승이신 권율장군을 생각했다. 이번 거사도 그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계획되었고, 그의 친필서신이 많은 인사들을 가담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그가 감금되었다면
큰일이었다. 다행이 참형이 아니고 감금이라면, 저들은 아직까지 이번 거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몰랐다.
그렇치 않았다면, 자신이 전라도를 활보하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이몽학은 스르르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급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이몽학은 김덕령과 최담령을 보고 자리를 바르게 했다.
“ 장군. 대장군?”
“ 무슨일이가 ?”
“ 대장군. 방금 한양을 다녀온 전령이 왔사온데 서신이 사실인 것 같사옵니다. 워낙 경비가 삼엄하여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이미 국방부는 폐쇄되었고 많은 협조자들은 어디론가 식솔들과 함께 끌려
갔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시간 문제이고
거사일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것이 좋을 듯 하나이다.”
“ 그렇군 사실이란 말이지.”
잠시 허탈함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지금 그만두기엔 그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 앞으로 닷세 후 거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라. 7월 초닷새 달이 떠오르면 출병하겠다.”
“ 네 장군.”
“ 일단 식사를 하고, 우리도 계획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검토하도록 하지. “
“ 여봐라, 식사를 들라 하라.”
막사밖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명을 받은 전령들은
다시 각지로 흩어지고 있었다.
임천군수 박진국은 실로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며칠전 홍산에서 사람이 다녀간 후
바로 천군부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관아로 들어와 잠시 머물다가 갔다.
필시 그 전령을 따라왔음에 틀림없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않던 천군부 병사들은 훈련 중에 도움을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도 떠나버렸다. 오늘 또 홍산에서 전령이 와 이틀후 거사하기로 하였으니
출병 준비를 하라는 명을 전하고 갔다. 원래 거사는 추석을 전후하여 하기로 하였는데 이리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이미 일이 잘 못되어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조정에 고하자니 시간도 없었고 이몽학을 진압하기엔 자신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이미
자기가 알기로 많은 관리들이 포섭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방이 적인 사지에서 자신 휘하의 병사로는
홍산의 병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기껏해야 이십여명뿐인 포졸들과 관아에 속한 삼십여명의 잡부들이
전부인데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설사 군민들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조족지혈이었다.
“ 어찌한다. 어찌한다.”
밤새 서성이던 박진국은 식솔들을 그날 밤으로 모두 친정인 경상도로 몰래 보내버리고 관아에 홀로
남아 이몽학군에 합류하는 척 하다가 냅다 한성쪽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한성의 기방에서 거의 매일 술과 아리따운 기생과 계집질에 정신이 없던 왕삼계 명 사신은 자신이
조선에 온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기생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관례대로 상국의
사신은 이른바 국빈대접을 받으며, 많은 선물과 향응을 제공받곤 하였는데 이번은 그 도가 좀
지나쳤다.
명 사신일행의 퇴폐향락은 한성주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모든 것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인
사신일행은 매일매일 놀기에 바빴다. 오늘도 대낮에 월향이라는 기생을 품고 운우지락을 나눈 후
월향이의 젖무덤에서 노닐고 있던 왕삼계는 밖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소리에 옷맵시를 가다듬고
방문을 열었다.
“ 나리 큰일났사옵니다. 변란이옵니다 변란.”
“ 무엇이 ? 변란이라니. 자세히 말해보거라.”
“ 어제 충청도 홍산에서 변란이 일어 여러 고을을 점령하고 홍주를 거쳐 공주를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한성으로 올라오고 있다 합니다. 저들의 군세가 일만을 넘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조만간에 한성에 다다를 것이라는 소문입니다.”
“ 무엇이. 이런 어서 궁으로 가자 조선왕을 뵈어야겠구나. 그리고 너는 하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짐을 싸도록 하고 단단히 준비하여라. 어서 가자.”
월향이 잡는 손을 뿌리치며 방문을 나선 왕삼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변란이라니,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도 반란군이 자신을 해하지는 못 할것이다. 하지만 혹 모르는 일이였다. 성난 폭도들은 어디로
튈지 몰랐기에 이곳에 머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 있었다. 아직은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이역만리 조선에서 폭도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부랴부랴 거리로 나온 왕삼계는 한성
곳곳이 부산하고 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변이 생긴 건 생긴 것 같았다. 지나가던
국방부앞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왕궁입구에도 역시 많은 군사들이 살벌하게 번을
서고 있었다.
“ 전하 변란이 났다는데 무슨 일이옵니까.?”
“ 그러잖아도 내 대신을 부르려 하였소. 흉악무도하게도 역심을 품고 반도들이 난을 이르켰는데
잔압할 병력이 태부족이요. 대부분의 군사는 왜에 가있고 그나마 조선에 있는 군사는 여진족을
경계하기위해 평안도와 함경도에 있는데. 이를 어쩐단 말이요. 저들이 벌서 경기도에 들어섰다하니
아무래도 잠시 평양으로 몽진을 갔다가. 북방의 군사를 몰아 저들을 막아야 할 것 같으니
대신께서로 서둘러 채비를 차리도록 하시구려.”
왕의 말은 실로 어이없는 것이었다. 마땅히 변란이 나면 먼저 진압부대를 편성하여 진압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도망갈 준비부터 하다니. 하지만 그는 겁이 덜컥 났다. 왕이 역도가 무서워 떠나는 마당에
자신이라고 온전할까. 조선의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서둘러 명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굳힌 왕삼계는 짐짓 허세를 부렸다.
“ 전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피난을 가시다니요. 제가 지금 당장 달려가 명의 군사를
몰고 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저 역도들은 평정이 될 것이옵니다. 한번 도와주었는데 두 번
인들 어렵겠습니까 ? 다만 이번에도 그에 상응하는 보은이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 이를 말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무언들 아끼리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천황은 왕삼계의 손을 잡고 감격해 하고 있었다.
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던 왕삼계는 살며시 손을 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 전하 저는 이길로 명으로 가겠사오니 부디 평안하시오서서.”
“ 그러시오 어서 가시오 좋은 말과 변변치는 않지만 작은 선물을 준비하라 일러놓았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시고 황상에게 말씀 좀 잘 드려주시오.”
숙소에 도착한 왕삼계는 서둘러 하인들과 수행원들을 모으고 한성을 떠났다. 올때는 다섯수레였는데
갈때는 15수레가 넘는 긴 행렬이었다. 다 조선에서 뜯어 가는선물명목의 뇌물이었지만 길거리의
행인들은 누구 하나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들 짐보따리를 들고 한성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왕샴계가 보기에 이미 왕이 몽진을 명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평양을 거쳐 의주에 도착하는 동안 왕삼계는 이미 역도들이 한성에 다다르고 있고 왕은 개성에서
평양으로 쫒겨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일 소문에 있던 천군이 있었다면 이리 허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도 왜가 전쟁에서 진 것은 천군때문이 아닌 것이 확실하였다.
이번 조선행은 의외로 짭잘했다. 의주에 처음 도착하여 관도에 들어섰을 때 그 넓고 곧음에 적이
놀라고 소문이 사실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제는 다 허왕된 소문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들어났다.
명에 가서 이 일을 고하면 그의 임무는 엄청난 부수입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명이 다시 출병을
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이미 왜란은 종결되었고, 조선에서 다른 왕이 세워진다해도 명의 속국임이 변하는 것은 아닌 것.
말을 안 들으면, 그때 출병해도 늦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을 좀더 허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오는 도중 수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남과 북으로 오가고 있었다. 군주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고 있자니 측은하기도 하였지만 변방 속국 백성에게까지 베풀 자비는 없었다.
“ 방금 의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명사신이 의주를 건너갔다 합니다.”
“ 우리의 계획대로 조선에 큰 난이 일어난 것 처럼 알고 있을까 ?”
“ 확실히 그럴 것입니다. 주위에서 헛소문이 그들에게 들어가도록 해 놓고 각 지역마다 수령들에게
일급경계령을 내렸으니 모두들 속아넘어갔을 것입니다.”
“ 하하하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명부 부장과 외교부장관은 서로를 보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 그건 그렇고 홍주의 일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 혹 아는 소식이 있는가 ?”
“ 아마도 지금쯤 진압작전이 시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잠시 홍주/공주가 저들의 손에 들어갔지만,
조만간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라도에서 온다는 관병 2천은 끝내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전주목사에게 보낸 전령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외에도 많은 전령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틀어지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홍주와
공주를 점령하고 그 기세를 몰아 천안으로 반란군이 움직였다. 그들이 천안에 이르자 군세가 팔천이
넘어서고 있었다.
전라도 관병이 합세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전주목사에게 간 전령은 전주에 다다르기도 전에
뒤에서 따르던 그림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매우 기분 좋게 말에 올라 천안으로 가던 이몽학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아 흡족해 하고
있었다. 비록 전라도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후위를 계속 돌봐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지금까지
변변한 싸움 없이 천안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닷새안에 한성을 포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몽학은 협조하기로 약조하였으나 동참하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령들이 그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저들이 죽기 싫어 거짓을 말하려니 하며 모조리
참하였으나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거사후에는 경황이 급박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해 미처
챙겨보지 않았지만 많은 전령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세력이 크거나 먼 곳으로 간 자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지만 애써 이를 무시하려고 했다. 예정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반란을 이르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이렇다할 저항이 없었다.
김덕령이 이끄는 삼천의 병사들은 한창 홍성을 거쳐 예산/아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올라오는
본대를 기다렸다가 천안으로 진격할 요량이었다. 예산의 이시언목사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예산을
통과한 그는 이시언이 준 500의 관병과 함꼐 움직이고 있었고, 이몽학이 이끄는 육천의 병사는
공주에서 유구를 거쳐 아산으로 가고 있었다. 다만 최담령만이 잔여 군사를 이끌고 홍주와 공주를
수비하고 있었으며, 혹시 모를 전라도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여기는 참새, 너구리 나와라 오버”
“ 여기는 너구리다. 무슨일인가?”
“ 지금 일단의 군대가 거산을 지나고 있다. 약 오천정도 “
“ 무기는 무엇을 휴대하고 있는가.”
“ 창과 칼이다. 화차와 총통등 화기도 보인다.”
“ 알았다. 다음지점으로 이동하라.”
“ 알았다. 이상”
광덕산에 잠복해 있던 저격여단 소속 정찰팀이 흔적을 지우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천군부에서는 의외로 그들의 군세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도합 8천이며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는데
아직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단지 군수공장과 발전소에만 천군을 파견하여 보호하고
있었고. 전라도에 방공여단을 급히 전개시켜 전라도를 장악했다.
경기도쪽에는 그들을 저지할만한 병력이 없었다. 다만 좀더 가까이 올때까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
밀명을 받고 아산만으로 출발한 일부병사가 이시언의 도움으로 반란군에 스며들었고 반란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각지방에서 조금씩 스며들 예정이었다.
“ 이몽학의 군이 이미 수원에 다다랐다는 보고 입니다. 이쯤에서 이만 이번 연극을 끝내야 할 것
같는데요 장관님.”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받고있던 김영철은 조준옥에게 그만 진압작전을 시행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천인단으로서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이번 연극으로 인하여 근 두 달동안 일손을 놓고 있었다.
하루빨리 안정화를 되찾고 만주를 도모해야만 했다. 그래야 필요한 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원유의
확보는 21세기를 17세기에 올려놓는 중대한 견인차였다. 원유 없이는 유럽과 불과 100년을 앞설 수
있었고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역전될 수 있었다. 그만큼 에너지 확보는 자신의 기술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 그럽시다. 이미 작전은 다 세워져 있고 시작만 하면 됩니다. 의외로 사대부들이 직접 참가하지
않았어요. 애석하게도. 단지 하인들과 자금을 대고 있다는 보고인데 직접 가담은 하지 않고 막후에서
조종만 하겠다는 생각인지.. “
오산을 거쳐 수원으로 오던 만이천의 반란군은 전초병으로부터 전방십리 밖에 관군이 포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다. 적은 기껏해야 일천정도로 무장도 빈약했다.
성을 버리고 벌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몽학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유리한 수성전을 하지않고 성밖으로 나온다.
뭔가 있는 것일까.
“ 관군에게서 전령입니다. 백기를 들고 오고 있습니다.”
“ 난 경기지사 이인화이다. 죄인은 황명을 받으라. “
“ 일찍이 왜란이 있어 선왕과 천군의 도움으로 난을 평정하고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것이 천심이거늘
어찌 흉악무도하게 천황에 반기를 들고 세상을 어지럽히며 하늘을 욕보이는가. 일단의 무리들에 속아
혹세당한 이가 적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대들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이니 무기를 버리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라. 만일 더 이상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하늘의 문을 열어 그대들을
벌하겠노라.”
“ 푸하하 고작 일천기로 우리를 막겠다는 것이냐. 너는 썩 물러가 전하여라, 아버지를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패악 무도한 놈이 어찌 하늘을 논 한단 말이냐. 만일 그런 하늘이 있다면
내가 용서치 않을 터이다. 당장 군사를 물려 길을 열고 우리와 힘을 합쳐 저 흉악무도한 놈들을
처단하는 것이 진정한 하늘의 뜻이니라. 너는 일찍이 우리의 거사에 협력하기로 약속을 하고
이제 와서 이렇듯 그약속을 헌신짝 버리듯하니 어찌 사내 대장부라 하겠느냐, 차라리 안방에서
수나 놓도록 하여라 하하하.”
“ 네 이놈 감히 천황을 능멸하고도 살기를 바라는냐. 고작 서자 출신인 자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구나. 이몽학 너는 어찌 모르느냐 이 모든 일이 하늘이 관여한 일임을.”
“ 썩 물러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적의 사신이라도 목을 베겠다. 각 제장들은 전투준비를 하라.
사신이 돌아가는 즉시 공격할 것이니라. “
이인화는 애초에 저들을 설득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설득한다고 들을 자들이 아닌 무리들 앞에서
그래도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필요는 있었다. 그는 말을 돌려 진영으로 되돌아 갔다.
“ 예 대장군.”
“ 먼저 부랑민으로 구성된 부대를 선봉에 세우고 그들에게 공을 세우라 하라. 그 뒤를 민병이 따르고
그 뒤를 관병이 따른다. 포병은 앞으로 전진하여 화차와 포를 준비하고 궁병은 포병을 엄호하며 적을
공격하라.”
“ 적들이 공격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군 “
이인화는 진영에서 천군이 준 쌍안경을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저들이 비록 숫자가 많다곤 하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관군에게는 막강한 포병이 있었던 것인데 저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 불쌍한 지고, 저들 사이에 우리 관군이 섞여 있으니 그들의 위치를 피하여 방포하도록 하고
준비되는 데로 방포하라 명하라. 이미 좌표는 통지했을 터이니.”
“ 네 장군 모든 관병은 적 후미에서 대기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
“ 잘 되었군.”
“ 궁수를 후위에 대기시키고 쫒아 오는 적들을 막으라 해. 우린 그만 수원성으로 철수한다”
“ 세ㅔㅔㅔㅔㅔㅔ”
하늘을 가르는 파열음이 들리자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작은 점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포를 방렬하고 있는 반란군 포대 위에서 작렬했다.
이어지는 포탄은 창을 들고 돌격자세를 취하는 반란군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 꽝 꽈광 과ㅏㅏㅇㅇㅇ”
“ 으악 “
“ 내다리”
“ 윽”
진영 선두로 떨어지는 포탄소리에 깜짝 놀란 이몽학은 저들에게 포병이 없는 창병으로만 보고를
받았다. 설사 멀리 숨겨놓고 있었다 하더라고 어디에도 화약연기가 나지 않고 있었다. 선두는 완전히
분열되고 있었고 공격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떨어지고 있는 포탄에 허둥대고 있었다. 난을 일으키고
처음으로 전투다운 전투를 경험한 부랑민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도망가기 바빴다.
이러다간 군사가 흩어질까 두려워 관병에게 진격을 명령했다. 기병을 선두에 세운 관병은 포탄사이를
뚫고 언덕 위에 진을 친 관병진영으로 달려갔다. 반란군이 달려오는 것을 본 이인화가 소리쳤다.
“ 활을 쏴라.”
일시에 몇백개의 화살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그에 땨라 선두에서 달려오는 말들이 피를 뿌리면
꼬꾸라졌고 뒤에서 달리던 말들이 연쇄 반응을 이르키며 꼬꾸라지고 있었다. 이인화가 지휘하고 있는
병사는 수원성에 주둔하는 병사와 한성에서 지원 받은 병사로 모두 활과 창을 지니고 있었다.
“ 쏴라 “
다시 한번 비화살이 날아가고 땅위에서 버둥거리던 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화살을 맞아 울부짓고
있었고 몇몇의 기병들이 버둥대는 말에 깔리거나 화살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
“ 모두 전속 후퇴하라.”
“ 장군 적들이 후퇴합니다. 추격하여 단숨에 수원성을 점령해야 합니다.”
“ 모든 병사들은 적을 추격하여 오늘 밤 안으로 수원성을 함락시킨다. 진격.”
“ 와아ㅏㅏㅏㅏ아아”
뒤에서 적들의 외침이 점점 가까워지자 이인화는 병사들에게 후퇴를 종용했다. 궁사 이백만 후위를
맡고 모두들 창을 버리라 소리쳤다. 달려간다. 이인화의 명령에 병사들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창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들도 군인이었던 것이라. 창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간다는 것과도 같았다.
몇몇 병사들을 빼고는 모두를 창을 들고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인화는 사뭇
자신의 병사들이 자랑스러웠다. 오늘아침 천군부에서 내려온 명에 의하면 군사를 이끌고 수원성
30리밖으로 나가 적에게 항복을 권하고 여의치 않을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여 포격을 유도한 후
빠르게 퇴각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에 포병부대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주위에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길목에 도착하여 적과 대치한 후 적의 위치를 보고하던 이인화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포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명령을 받았을 때는 일천으로 일만을 막으라는 천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수성전을
펼치리라 생각했으나 다행히 퇴각해도 좋다는 명을 받았기에 최대한 가벼운 차림을 하라고 병사들에게
명을 하달하였다. 그래서 각 병사들은 창 하나만 달랑 들거나 활과 화살을 몇 개 소지하고 있었다.
만약 반란군이 포위를 하였다면 대부분 죽어 나갔을 테지만, 워낙 군세 차이가 난 지라 반란군은
정면돌파를 시도하려 하였다.
처음의 포격에 허둥대던 반란군은 관병이 무기까지 버리며 달아나자 일시에 진영을 갖추고 관병 뒤를
따르고 있었다. 벌판에서 벌어진 추격전은 일대 장관을 이루었고 앞서 나가는 관병이 무리를 지으며 허둥지둥 가는 것과는 반대로 반란군은 길게 열을 지으며 쫒아 오고 있었다. 점점 간격이 가까워지자.
창을 버리는 관병들이 늘어났고 한결 자유로워진 관군은 빠르게 수원성으로 달려갔다. 간간히 후위를
맡은 궁사가 활을 날렸지만 이는 살상보다는 적의 추격을 일시나마 늦추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기병들을 완전히 멈추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여서 후위를 맡은 부대가 적 기병에게 짓밟혀
나갔다. 변변한 무기가 없었던 그들은 죽어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밖에 할 도리가 없었다.
20여리를 숨가쁘게 달아난 관병은 계속해서 앞으로 내달려갔는데 갑자기 뒤편에서 엄청난 폭음을
들려 왔다. 순간 달아나던 관병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뒤에는 여전히 반란군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다시 10여리를 달려 수원성에 입성하여 숨을 고르며 수성전을 준비하던 이인화는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적들이 보이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혹 수원성을 제쳐두고 한양으로 우회한 것이 아닌가 ?”
이런 저런 생각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발빠른 병사를 뽑아 척후병을 내보내었다.
“ 장군 관도엔 반란군의 시체로 가득하고 부상당한 자들의 신음소리가 온 관도를 메우고 있나이다.
부상자들을 심문하였더니 하늘에서 큰 폭음이 들리더니
수천의 병사가 다치거나 죽고 나머지 반란군들은 퇴각하였다 합니다.”
돌아온 척후병의 보고는 그를 또 한번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마 추격전중에 들려온 폭음이 무었을
의미하는지 그때서야 깨달은 이인화는 천군부에 대해 두려움이 일었다. 천군부에서는 단 일천의
경무장병사들로 하여금 저들에게 방심하게하여 일거에 쓸어버린 것이다. 행여 추격을 하지 않을까
미리 선공을 하여 쫒아 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 옛날 자신에게도 권율대감의 친서를 갖고 온 밀사를 접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 처신을 잘하여
이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실로 촌각이 자신의 가문을 살린 것이다.
밀사가 다녀간후 천군부인물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이번 일에 발을 담그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몽학이 이끄는 반란군은 단 한번의 전투에서 병력을 반수이상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전사했다기 보다는 도망간 자들이 태반이였지만. 실로 천군의 포병은 놀라운 것이여서 저들을 상대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인화부대의 후위를 뭉개버릴 때 까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 하였다.
하지만 후퇴하는 관병을 추격하느라 대오를 흩트려 버린 이몽학군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포탄의
집중포화를 당했다. 처음 있었던 포격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넓고 강력한 포격이었다. 어렵게 포격을
뚫고 달려나가던 그의 본대는 다시 한번 천군의 매복에 걸려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다.
불과 이백명으로 구성된 천군은 기관총과 소총으로 적의 선봉을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이몽학은 일단 홍주로 돌아가 후일을 도모해야만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풀이 죽어 있었다.
전라도를 장악한 천군부는 전라도 병력을 금강을 따라 홍산으로 바로 올라가게 하고. 해군함포로
이루어진 포병대대는 방공여단의 호위를 받으며, 논산을 거처 홍산으로 진격하게 했다. 이미 수원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에 관군은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대의명분과 승리자의 입장이라는 양자의
상승효과로 사기가 높았다. 비록 숫자상으로는 반절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아무도 패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몽학의 군대는 밤을 도와 공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미 그들의 단 한번의 전투와 한번의 패전은
많은 협조자들에게 전해져 그들을 반란군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많은 협조자들이 반란군이 상경할 때는
멀리까지 마중 나와 아낌없는 지원을 해줄 것을 약속하고 많은 식량과 재물을 내놓아 보급에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퇴각할 때는 귀신같이 퇴로에 인접한 협조자들은 야반도주를 하였다.
일반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았던 반란군은 군량미가 떨어져가자 어쩔 수 없이 민초들의 가옥을
뒤지기 시작했고, 반신반의 하는 심정으로 중립을 지키던 백성들은 민심이 흉융해져 피난 길에 올라
한때의 소나기를 피하고자 했다.
악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란군의 퇴각로에 퍼져나가, 퇴각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예초에
속전속결, 현지보급이라는 전략으로 많은 보급품을 챙기지 않았던 반란군은 보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홍주와 공주에서 보급품이 오지 않았다면 태반이 배고품의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 뒤에는 천군 수백명이 중무장한채 추격중이였고,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군대 꼬리가 잘려나갔다.
그들이 천안을 거쳐 공주에 거의 도착할 무렵 홍주에서 전령이 도착하여 홍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제 공주성에 들어가 다음을 도모해야 했지만 대세를 바꾸기는 어려웠다.
“ 대장군, 일단의 관군이 예천에서 공주로 향하였고, 부여에서는 나룻배로 공주로 금강을 거슬러 올라
오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천군부소속 포병대가 거대한 포를 가지고 북상중이라 합니다.”
이몽학은 “포병대”란 말에 눈이 반짝였다.
“ 그 포병대는 어디쯤 있다 하던가. “
“ 예 내일 오후면 삼각을 지날것이라 하옵니다.”
“ 김덕령장군을 부르라.”
“ 장군에게 마병 이백과 병사오백을 줄 테니 지금 당장 삼각에 매복하였다가 적 포병대가 지나가면
공격하여 섬멸하고 포를 노획하여 오시오. 난 공주에서 그대를 기다릴 테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야.
그대의 성공이 이번 거사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니 꼭 성공하셔야 하오”
“ 네 장군. 바로 떠나겠나이다.”
비교적 상처가 없는 홍산 산채 식구들로 구성된 별동대가 본대를 가로질러 앞으로 나섰고 그들은
다음날 아침 삼각에서 매복을 하고 잠을 청했다. 보고에 의하면 오후에나 지나갈 예정이였으니
잠시 눈을 붙여도 될 것 같았다.”
방공여단장 서진원대령은 열악한 도로사정 때문에 거의 미칠지경이였다. 하루에 40KM를 진군하기도
힘들었다. 관도를 따라가는데도 이 모양 이였다.
”이제 조금만 가면 삼각이고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월암까지만 가면 되었다. 그곳에서는
공주성이 포의 사정거리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더 가까이 갈 필요는 없었다.
이런 굼뱅이 포병대대를 호위하는 것은 방공여단이 할 일이 아니었지만, 저 포병대대도 함포를
운영하는 해군이 맞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자신의 입장이 좋았다.
행렬이 삼각을 출발하여 어느 이름 모를 계룡산 자락을 돌고 있을 때, 갑자기 함성이 일고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총탄이 여기저기 박혔다. 방공여단병력은 방탄모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서
화살이나 총탄을 맞더라도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이도 저도 없던 수병이였던 포병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 윽 “
“ 어머니 흑흑”
순식간에 허리를 잘린 행렬은 진군을 멈추고 길가에 포를 방패 삼아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지만 적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적의 총병들은 그 특유의 화약연기
때문에 한발 쏘고 재장전하는 동안에 방공여단의 집중사격을 받았다.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궁사들은
공격할 수가 없었고, 활이 기본적으로 곡사무기이기 때문에 날아오는 화살에 포를 방패 삼은 천군들의
피해가 계속 이어졌다.
“ 기관총 뭐하나 주변 산에 대고 갈기라고, 이봐 유탄 날려. 이런 개새끼들 “
후방에서 행렬을 따라가던 서진원 대령은 무전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대령님 앞에 기마병이 나타났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돌격합니다. “
“ 전방에 골기퍼 날리고, 기관총 거치해서 무차별 사격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 후방에도 적이 있을지 모르니 후방경계하면서 주변을 초토화 시킨다. 모든 포병은 현지점에서
사격 가능한 지점으로 발포하라. 아무데나 쏴 “
서대령의 명령이 빠르게 전파되고 기관총이 길양옆을 향해 불을 뿜었다.
일단 기습을 당한 서대령은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 지휘체계를 장악해야만 했다. 저들의 수가 얼만인지 알 수 없었기에 선두의 기병을 쓸어버리고 이 지점을 빨리 벗어나야만 했지만 포를 이끌던 마소들이
이미 상당수가 죽어버렸다. 적을 너무 얕보고 전초를 세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 타타타타타 “
“ 쾅 두두두두두두”
소리가 일제히 길가 양옆에서 울리더니 달려오는 기병들을 휩쓸었다. 아울러 포대가 발사 가능한
최소거리에 포탄이 날아가 작렬했다. 몇몇 지점에서 포탄에 맞아는지 사람들의 단발마가 간간이
들려왔다. 주변산에 불이 붙었다. 포탄으로 인해 잔가지들이 날아다니고 폭음과 함께 흩어지는
먼지들로 사방이 푸옇게 변해갔다.
포를 버려두고 간신히 매복지점을 빠져 나온 후, 사방을 경계하며 인원점검을 보고받은 서진원대령은
눈물이 주르르 흘렸다. 포병사망자 80명에 부상자 200명 방공여단 사상자 20명, 부상자 80명.
더 이상 진격이 어려웠다. 잔여병력으로 주변 수색을 명했다.
김덕령장군은 기병이 전멸하는 것을 보고는 후퇴를 결심하며 연신 화살을 날렸다. 일제사격을 할
당시 만에도 기습이 성공하는 줄 알았다. 수십명이 일거에 쓰러지고 행렬의 중앙이 무너지면서 마병을
투입시키고 또 한번의 일제사격을 준비하던 중에 반격이 시작되었다.
연기로 인해 위치가 발각된 총병은 천군의 일제사격에 피범벅이 되어 날아갔고 주위에 있던 궁수들
역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앞/뒤에서 공격하던 기병은 대열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고,
적 포대가 불을 뿜자 온 주위가 완전히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가깟으로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수습한 김덕령은 부하가 200여명이 채 남지않은 것을 알고
망연자실해졌다. 지난 이년동안 동거동락을 해오던 부하들이었는데 한순간에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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