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사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구약의 모세를 통해 드러났던 광야에서의 만나사건과 대조를 시켜주고 있다.
우선 복음의 모두에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고 한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이 죽었다면 그 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는 것을 직감하시고 당신이 세상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제자양성을 통한 교회설립 사명이 시급함을 깨달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제자집중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시고 한적한 곳으로 제자들을 모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군중들이 먼저 달려온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으셨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한적한 곳”에서 행하셨음은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당신 백성에게 광야에서 만나의 기적을 행하였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은 모세를 통한 만나의 기적에 상응하는 신약의 만나의 기적사건이며 이는 성체성사로 연결된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 지극한 동정심을 드러내신다. 예수께서는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주셨다.”(14절)
“측은한 마음이 들다”는 표현은 물질적 굶주림뿐만 아니라 영신적 기아상태에 대한 연민의 정이요,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라, 애가 타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마치 엄마가 젖이 부족해 아기가 배고파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애간장을 태우는 심정을 말한다. EX: 6.25 때 한 미군병사가 전투중에 한국인 고아를 데려다가 미국에서 양아들로 키운다음 20세가 되엇을 때 아이를 데리고 한국 철원에 산속 깊이 찾아가서 한 외딴 초라한 무덤앞에서 아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들려준다. 치열한 전투 중에 산속 나무 숲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았더니 눈속에서 아기가 울고 있고 엄마는 발가벗은 채 자기 옷을 다 벗어 아기몸에 둘둘 말아주고 엄마는 얼어죽었더란다. 그래서 전쟁 중이라 이렇게 초라하게 무덤을 만들어 주었노라고. 청년은 말없이 울며 자기 옷을 훌훌 벗어서 “엄마 얼마나 추우셨어요!”오늘 예수님의 측은지심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냐? 육신밥은 100년을 살기위한 양식이지만, 영혼 밥 성체는 영생의 불사약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 두 가지 기가 막힌 약을 가지고 오셨다. 하나는 만병퉁치약이요 하나는 영생불사약이다. 만병통치약은 반드시 두 첩을 먹어야만 효과가 있다. 구약과 신약이다. 영생불사약은 성체성사이다.
요한6,51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이 마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것이다.”(아모8,11)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대해 “그들을 돌려보낼 것이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 오너라” 하시고는 그것을 통해 기적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으로 나누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을 토대로 기적을 이루어내신 것이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의 이 빵의 기적은 성체성사의 예표이다. 물질적인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기적을 상징으로 하여 영신적 기아를 해결해주는 성체성사를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물질적인 배고픔은 시간이 지나면 곧 다시 배고프게 될 것이지만 영신적 빵인 성체성사는 우리 영혼의 굶주림을 영원히 해결해준다.
제1독서의 이사야서에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함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그러면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라” 고 한다. 이 계약이 바로 새계약인 그리스도의 성체성사를 통해 실현된 것이다. 또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극치요, 따라서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그 어떤 세상적 장애요인으로부터도 방해받을 수 없다.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도 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로마8,35) 즉 그 무엇도 우리 주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고 바오로 사도는 단언한다.
우리의 행복은 무엇이 좌우하는가?
예수님의 우리 영혼구령을 위해 애간장이 녹는 마음을 깨닫는 정도에 따라 우리 행복이 결정된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기에, 그리스도는 인간 세상에 내려오셨고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겪으셨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 주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니 이러한 그리스도 한 분 얻게 되면 온 세상을 다 잃어도 후회가 없고, 대신에 세상을 다 얻고도 예수님 한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과 같다. 그러니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주님이 나를 죽도록 사랑하셨는데 세상이 나를 외면한들 그것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얼마만큼 확신하고 사느냐가 우리의 행복을 재는 잣대이다.
이 기쁨을 김석균 형제는 이렇게 노래한다.
1-. 주님 한분 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깊이 숨어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 밖에는 기억할 이 없어요, 처음 주를 만난 그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2-. 주님 한분 밖에는 사랑할 이 없어요, 작은 가슴 뜨거웁게 주님 피가 흘러요. 주님 한분 밖에는 약속한 이 없어요, 나를 믿고 따르는 자 반석 위에 서리라.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