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서 대상을 비유하는 것은 적어도 두가지 대상이 함께 병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물론 몇가지가 더 연결되어 다의적인 의미를 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작품은 한가지 의미를 안쪽에 담아서 주제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강렬함, 그것을 다양한 이미지로 표출할 수 있는 힘이다. 그렇다면 의미, 상징, 작가의 생각, 본관념은 여러갈래로 퍼져가는 것보다 한가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마도 효과적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되도록 의미를 다중적으로 하지 말 것. 그렇게 된다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혼동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이것을 표현할 이미지는 다양한 속성으로 다양한 연계 이미지로 연관된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아마도 아주 상상력이 뛰어난, 그래서 독자들을 휘황찬란하면서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능력임과 동시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자기장인 것이다. 이제 한가지 사물을 다양하게 비유할 수 있는 연습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본관념의 속성이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표현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의 속성을 조금더 다양화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양화는 아무런 기준없이 다양화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본관념, 즉 상징과 어느 정도 공통적인 교집합을 띄면서 다양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양화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관찰이다. 여기 그 관찰 연습을 위해 필자도 아직 써보지 않은 대상을 두고 관찰 연습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관찰은 되도록 이성과 감각 감정 자신의 오감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만큼 관찰은 소중한 것이다. 시의 모든 언어와 요소 하나 하나가 여기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제:청과물(과일가게)상회의 과일들을 백열전구으로 비유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청과물 상회의 과일에 대한 관찰을 시작하고 백열전구에 대한 관찰을 시작하라.
먼저 청과물 상회의 외적 모습과 내면적 모습을 관찰한다. 그것은 열거여도 좋고 하나의 이야기여도 좋다. 필자는 이곳에 그 청과물상회의 모습을 묘사라는 방법을 통해서 관찰을 시도할 것이다. 또한 묘사 속에서 청과물 상회에 대한 몇가지 사색을 끌어내고자 한다. 그것도 또한 관찰의 일환이다. 관찰이라고 생각하면 외적인 모습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관찰은 눈으로 보는 것도, 마음으로 보는 것도 관찰이다. 그렇다면 이제 청과물상회를 마음 속에 넣어야 한다. 눈을 감고 천천히 청과물 상회의 모습을 그려보고 느껴보자.
2. 관찰 연습 1.-청과물상회
청과물상회는 과일을 파는 가게다. 초록 줄무늬로 무장한 수박과 은행잎의 빛깔에 이를 덥썩 밀어넣고 싶은 참외, 홍옥처럼 단단하게 부풀어 곧 터질 것 같은 자두, 그러고 보면 이들은 갖가지 풍선같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응하고 발음하는 순간 새어나오는 옛이응의 모양을 띄고 있다. 그 둥근 과육들은 근육질의 제 몸을 드러내며 한껏 전시되어 있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잠시 이들이 떠나온 나무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들은. 기다란 줄다리기의 끝에서 그 버팀을 꿋꿋하게 지켜온 수박 꼭지에는 얼마나 긴 넝쿨이 달려있었을까? 초등학교1학년처럼 아직 이응자를 잘 그리지 못하고 자꾸만 타원을 만들어버리는 서툰 글씨를 안쪽에 빼곡이 껴안고 제 모양까지도 그렇게 변하고 만 참외씨도 한켠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다 이들은 제각각의 이응발음을 부르며 동그랗게 동그랗게 그런데 동그랗지 않게 탑의 시옷자 모양으로 쌓여 있다 아마 자두를 떼어온 그 나무는 몇 살이나 먹었을까? 늙어서도 빛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데,
청과물상회의 여주인은 이상하게도 뚱뚱하다. 그 뚱뚱함은 수박만한 머리통과 갖가지 과일로 쑤셔넣은 원피스처럼 옷 여기 저기가 과육으로 울룩불룩한 모양으로 빛나고 있는데, 그녀를 보면 과육보다 더 탐스럽게 몸이 부풀어 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이빨을 들이밀 수는 없잖은가? 결코 사지 않아도 흘낏 시선을 넝쿨처럼 잡아당기는 저 푸른 손길들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날이면 그집에서 풍겨오는 그 진한 냄새가 코 끝에 아리다.
청과물상회의 과일들은 검은 봉지에 담겨가는데 그들은 오늘만 아마도 땅 속의 시간이나 나무의 시간들을 탐닉하게 될 것이다. 내 몸에 수액이 흐른다. 내 꿈에서도 나무가 자랄 것이다. 씨앗을 뱉어내며 딸아이는 아버지 목구멍에 걸린 굵은 목청을 복숭아씨같다고 웃을 것이다. 과일을 먹으면서 과일을 태생을 모르듯 오늘도 우린 밥을 먹는다. 벼가 키워낸 작은 과일들을 밥솥에 찌고 하얗고 환한 한숟갈 밥을 뜨며 우리는 초식동물처럼 순하게 살아간다. 과일은 어쩌면 인간이 인간의 야성적인 속성을 버리고 식물적 속성으로 향하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한없이 수동적이다. 그들의 씨앗은 언제나 안쪽에 있다. 물론 밖에 조그맣게 박아놓은 딸기 같은 과일도 있고 단단한 갑각류의 껍질처럼 부드러운 속살을 껴안고 있는 호두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일들은 그 씨앗을 안쪽에 감추고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부드럽고 달콤한 과육으로 우리들의 혀를 유혹한다. 어떤 열대과일들은 껍질로 자신의 부드러운 과육을 감싸고 있기도 하다. 얼마나 오랜 지혜인가? 자신의 씨앗을 안쪽에 숨길 수 있고 밖에는 맛좋은 과육으로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그 씨앗속에는 또 얼
마나 커다란 나무가 들어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과일들이 열려있는가?
과일을 흔들면 씨앗도 흔들린다. 과일을 흔들면 주인 아줌마의 표정도 흔들린다. 자꾸 만지면 물켜진다는 핀잔과 함께 덤으로 몇 개를 더 얹어주는 그 인심도 과일맛을 닮았다. 수박씨앗처럼 푸짐한 인정을 안쪽에 담고 살고 싶다. 과일가게가면 그렇게 많은 씨앗들을 담고 있어도 완벽한 원으로 이응 발음을 하고 있는 무수한 과일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널출이든 가지이든 어디에서 따온 것이든 안쪽의 사연들을 꼼꼼하게 씨앗으로 박아넣고 환하게 빛나고 있는 과일들을 만날 수 있다. 과일을 파는 푸짐한 주인 아줌마를 만날 수 있다. 보송보송한 솜털을 손으로 쓰윽 문지르며 한잎 맛보게 해주는 그녀의 푸진 손을 만날 수 있다. 일단 맛을 보면 안다니까 그러네. 맛을 보면 안된다. 그럼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과육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하게 되는가? 아줌마는 그렇게 유혹한다. 일단 맛을 먼저 보라고, 그러면서 쓰윽 칼을 들이미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칼이 과육을 파고 들고 과일은 힘겹게 유지하고 있던 이응 발음을 반으로 나눈체 안쪽의 씨앗들의 무수한 신음소리와 말들을 보여준다 . 그것은 흡사 저물거나 차오르는 반달을 닮았다. 한쪽의 상현달과 한쪽의 하현달로 둥근 보름달을
만들었던 그들의 날들이 청과물 상회에 가면 저마다 이응발음을 달고 말한다. 혹 그 주인 아줌마는 전라도 사람은 아니었을까? 조까 먹어보랑께이~ 끝의 이응발음이 지독하게도 길던, 말 끝에 수많은 과일을 달고 있던 주인 아줌마의 발음이 끝내 과일을 사게 만드는 청과물 상회 그곳에 가면 맛좋은 감탄사를 하게 된다. 나뭇가지에 달린 과일모양의 아 넝쿨에 달린 수박모양의 오!
자 이쯤에서 청과물 상회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상상력은 한도 끝도 없으니까.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말할 수 있고 그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자 이처럼 자신의 대상을 향해서 말을 걸어보고 생각도 해보고, 갖가지 요리를 준비해보라. 한가지 대상으로 한가지의 요리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맛을 독자에게 줄 수 없다. 필자는 저 묘사를 통해서 청과물 상회를 쓸 수 있는 소스 및 자료를 갖게 되었다.이제 저 상상력으로 백열전구와 이을 준비를 할 것이다. 저 묘사에는 과일의 맛이나 주인 아줌마의 심성이나, 청과물 상회의 인상들이 가득 들어 있다. 자신의 대상을 가슴 속에 품지 않으면 한가지 대상의 묘사가 아주 짧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아주 긴 묘사나 인상을 정리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자신의 이성이나 말을 믿지 말고 자신의 감성이나 느낌을 믿어라. 그럴 때 자신의 상상력은 배가되고 확성기를 달게 된다.
첫 번째 관찰연습은 자신의 대상에 대해 종이 한 장에 빼곡하게 찰 수 있을정도로 정리해가보자! 그러는 도중 자신의 가장 상투적인 말들도 튀어나오고 점점 그것이 고갈되면 새로운 샘물이 솟아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헌 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얻을 수 없다. 상상력은 할수록 새로워지는 것이다. 마침내 자신을 덮칠만큼의 홍수가 일어날 정도로 상상력을 진행시는 것. 그것이 대상을 관찰하면서 병행해야 할 일이다.
3. 관찰연습2 - 청과물 상회에 있는 백열전구
저녁이 오면 가게에 수십개의 백열전구가 켜진다. 백열전구는 기다란 전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검은 소캣에는 돌리면 꺼질 수 네모난 스위치도 달려있다. 전구는 60와트짜리 빛을 거리로 쏟아내고 있다. 어둠 속 시장통을 바라보면 청과물상회는 둥근 빛에 휩싸여 농익어가고 있는 거대한 빛의 과일처럼 보인다. 전구의 안쪽에는 씨앗처럼 가느다랗고 연약해 보이는 필라멘트가 눈으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빛을 내고 있다. 그 빛은 둥글고 위험한 유리를 빠져나와 빛의 그물을 펼친다. 빛의 줄기를 따라 과일들은 더더욱 싱싱하게 보이고, 빛은 거두어들이기 전까지 싱싱한 제 줄기를 사방으로 뻗어낸다.
주인 아줌마는 제 몸매처럼 생긴 백열전구를 갈아끼우기 위해 소켓을 쥐고 둥근 전구알을 돌려서 따낸다. 그러면 다음날 이면 그곳에 더욱더 싱싱한 투명한 과일처럼 둥근 전구알이 열려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왕이면 일차 관찰작업이 끝났으므로 과일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풍부하게 전구알을 표현하는 동사어미를 바꾸어보는 것이 좋다. 그것이 또한 자신의 상상력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은 뻔한 일이다.
썩거나 물러터진 과일처럼 한켠 쓰레기 봉투에 깨진 전구알이 담겨 있다. 혹 그 곁에 썩은 과일에서 흘러나온 단물이 전구알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평생 달디단 빛을 쏟아내던 필라멘트가 노랗거나 벌건 과일이 되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백열전구가 꺼진 시장통은 어둠만 가득하다. 과일가게도 문을 닫고 넌출마냥 전선에 걸려있던 백열전구도 가게 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수액을 충전하고 있다.
너무 세게 쥐면 퍽하고 깨져버릴 것 같은 백열전구를 멀거니 쳐다보고 있으면 하얗게 불투명한 물질을 안쪽에 바르고 필라멘트의 연약한 속성을 보여주지 않는, 언젠가 전파사에 백열전구를 사러간 적이 있다. 그때 주인 아저씨는 백열전구를 흔들어보며 그 안쪽에서 울리는 가는 필라멘트의 울음을 듣고 있었다. 그 울음이 심하면 필라멘트가 끊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소캣에 끼워보고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다. 그럼 백열전구는 환하고 달디단 빛을 쏟아내는데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얼마나 탄성을 질렀는지 모른다.
---관찰을 할 때 자신의 과거 경험을 대동하는 것은 커다란 효과를 발휘해낸다.
그렇게 백열전구를 가지고 돌아오다 손에서 미끌거리는 백열전구를 꼭 쥘 수가 없어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 안타까움이란 아마 홍시하나가 땅에 떨어져 터지는 기분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백열전구는 연약한 필라멘트를 안쪽에 숨기고 있다. 그러나 그 연약함을 숨기거나 과장이라도 하는 듯 마치 수박 껍질의 두꺼운 은폐처럼 강하고 진한 빛을 쏘아내는 것이다. 빛은 농익은 과일처럼 과일가게의 과일들 위로 쏟아져 물러터지고 으깨어진다. 그렇게 알전구 백열전구가 농익어간다. 농익은 과일은 따내야 하지만, 세상엔 단 하나 농익어서 스스로 제 빛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이상 따내지 않는 과일 하나가 있다. 그것은 과장되게 이응발음을 해대는 연약한 영혼의 필라멘트를 안쪽에 담고 있는 백열전구일 것이다.
이쯤에서 백열전구에 대한 사색과 관찰 그리고 그 보고서를 마치기로 하자. 여러분들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 관찰을 할 때 이쯤에서 그만두자 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 그것은 가장 치명적인 상투성을 낳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자신의 관찰이나 상상력은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그 최대나 극대값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상력의 표현이 튕겨나온다. 그것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법이 없다. 그것은 아주 강렬한 빛과 색채를 띄며 당신 속에서 튕겨나온다. 그럴 때 놀라지 마라! 그것은 당신이 한 일이며 그것으로 당신의 상상력은 이제 머리라는 딱딱한 감옥속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4.관찰 연습을 통한 글쓰기의 고찰
관찰연습을 통해서 우린 아주 많은 것을 얻게 된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소스, 즉 집에 비유하자면 벽돌을 얻게 되는 셈이다. 벽돌은 빚어야 하고 구워야 하며 말려야 한다. 이런 수많은 과정을 통해서 단단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벽돌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린 무수히 많은 벽돌을 구워내지마 그 중에서도 오직 하나의 벽돌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 많은 상상을 해 놓고도 우린 주제 하나를 위해서 많은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아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글쓸 자격을 이미 상실한 것이다. 글은 화장하는 것처럼 쓰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 이제 글을 쓸 수 있는 만반의 무기를 갖춘 셈이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하고 넘어갈 것들이 있다. 그것은 위의 과정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다.
-관찰을 할 때는 외양의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할 것.
-그 속성을 충실하게 끌어낼 것.
-그 속성으로부터 생각을 이끌어낼 것.
-생각으로부터 그 대상의 다른 면을 바라볼 것.
-다른 면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시작할 것.
-설명하는 것보다는 되도록 서사나, 묘사를 통해서 말할 것.
-그렇게 그려진 대상을 다른 것과 접목해 볼 것. 굳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다른 여러 이미지로 접목을 시도해볼 것. 마치 이응이나 씨앗 나무 먹는 행위등 과일과 관계된 여러 행위로 연결해 볼 것.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충분히 이용할 것.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충분히 정리해 둘 것.
-이미 관찰한 대상의 속성을 연결하는 연습도 할 것.
이 외에도 관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바, 굳이 여기서 수많은 방법을 대동한다 하더라도 보편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의 관찰법을 빨리 개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관찰법이다. 필자는 글을 쓰기 전에 백지에 그 대상의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그 대상의 외양이나, 속성을 몸으로 느끼기 위한 버릇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좀처럼 대상이 글로 그려지질 않는다. 글은 그림과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감정이나, 모양 소리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찰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져보기도 하고 냄새맡아보기도 하며 흔들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나름대로 변형시켜보는 실험도 중요하다.
5. 관찰은 상상력, 자유로운 작업이다.
관찰은 상상력의 첫걸음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중요한 단계다. 이 단계는 피나는 연습이 아니면 좀처럼 자신만의 관찰법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필자가 소개한 것은 간단한 몇가지 방법을 필자의 서투른 글쓰기를 통해서 보여 준 것이며 혹 이글쓰기 방식에서 뭔가 자신만의 것이 떠오른 사람은 지금 손을 멈추지 말고 종이를 채워가라. 이때는 우왕좌왕 글을 쓰는 것도 괜찮다. 어떤 형식을 갖추고 있다면 제대로 된 상상력이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데로 느끼는 데로 글을 자유롭게 써가는 이 순간,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순간일 것이다 아직 옷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잘라내지 않아도 되는 자꾸만 뚱보처럼 몸이 부푸는 이 순간, 자신의 관찰력이 상상력이 사색이 얼마나 살을 찔 수 있는지 저울 위에서 시험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