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야화>
■ 步行이 神藥
어느 날부터 인가 밤일이 안되는 조 참봉은
황 의원이 추천한 이런 저런 약을 다 먹어도 효험이 없자
분이 치미는데…
요즘 들어 조 참봉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떠벌리던 말수도 부쩍 줄었다.
거시기가 도통 잘 서지 않는 것이다.
추월관에서 술을 마시고 수기생이 붙여주는
제일 예쁜 기생과 뒷방에 깔아 놓은 금침으로 들어갔건만
식은땀만 흘리다가 얼굴도 못 들고 나와버렸다.
가끔씩 안방에서 부인도 안아줘야 집안이 편한데
어린 기생한테도 안 서는 놈이 부인한테 설쏘냐.
“내 나이 이제 마흔 하나. 이렇게 인생이 끝나서는 안되지.”
조 참봉은 황 의원한테 매달렸다.
백년 묵은 산삼·우황· 사향· 해구신에다 청나라에서 들어온 경면주사,
그리고 태평양 건너온 비야그라 까지 사 먹느라
문전옥답 열두마지기가 날아갔다.
그러나 효험은 없었다.
이 기생 저 기생,
그리고 마음 편히 느긋하게 하겠다고 안방마님 치마도 벗겼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황 의원은 이번에
다른 처방을 내렸다.
“조 참봉, 아무리 명약이라도 가슴속에서 불꽃이 타오르지 않으면 허사야.
어부인, 기생들 모두 닳고 닳은 헌것들이잖아.
전인미답의 새것을 한번 품어봐요.”
조 참봉은 황 의원의 권고대로 논 다섯 마지기를 주고
소작농의 열다섯 숫처녀를 첩실로 맞아들였다.
잔뜩 기대를 했건만 자라목 마냥 움츠린 양물은 기어 나올 줄 몰랐다.
조 참봉은 울화통이 치밀어 팔을 걷어붙이고 황 의원을 찾아갔다.
“야 이 돌팔이 새끼야. 네놈은 오늘 내 손에 죽었다.
네놈의 처방을 따르느라 문전옥답 몇마지기가 날아간 줄 알아?”
황 의원에게 주먹질을 하고도 분이 안 풀려
주막에 가서 술을 퍼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삼경이 돼서 뒤뚱뒤뚱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려는데
대문에 딸린 문간방에서 터져 나오는 간드러진 신음소리에
조 참봉은 돌처럼 굳었다.
황소가 진흙 펄밭을 걸어가는 소리,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여인의 감창...
조 참봉은 이튿날 행랑아범을 사랑방으로 불러 술 한잔 따르며 물었다.
“자네가 나보다 두살인가 많지 아마?”
꿇어앉아 조 참봉의 술잔을 받은 행랑아범은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러한 줄 알고 있습니다.” 조 참봉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자네는 며칠에 한번씩 밤일을 치르는고?”
“부끄럽습니다.
사흘 터울로….”
조 참봉이 깜짝 놀랐다.
“그 비결이 뭔가?”
이튿날 행랑아범은 단봇짐 하나 메고,
조 참봉은 맨몸으로 그의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첫날은 이십리도 못 걸었다.
턱과 목이 구분이 안되는 데다 똥배는 산더미처럼 솟았고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평지를 걷는 데도 헉헉 숨이 차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어둠살이 내릴 때 주막에 들어간 조 참봉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쓰러져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또 걸으며 조 참봉 왈.. “오랜만에 잠을 푹 잤네.”
그날도 이십리,
또 다음날은 고개를 넘느라 시오리를 걸었다.
“자네 혼자 걸으면 하루에..” 조 참봉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행랑아범이 답했다.
“고개가 있으면 팔십리, 평지는 백리쯤 거뜬히 걷지요.”
조 참봉은 헉헉거리며 물었다.
“그 음양수를 마시러 가는데 왜 말을 타면 안되는 건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가서 그걸 마시면 말짱 허사가 됩니다요.”
조 참봉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얼마나 가야 그 약을 먹고 약수를 마실 수 있나?”
“참봉 어르신 걸음으로는 석달 넘게 걸립니다.”
바위에 털썩 주저앉은
조 참봉이 탄식을 하더니만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거짓말이 아니지?”
행랑아범이 단호히 말했다.
“거짓이면 삼년 치 소인의 새경을 받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 소피를 보고 난
조 참봉이 고함을 쳤다.
“내 양물이 보이네!” 행랑아범이 씩 웃었다.
올챙이처럼 배가 튀어나와 자신의 양물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그걸 보게 됐으니 배가 쏙 들어갔다는 소리다.
걸음도 빨라져 하루에 오십리는 거뜬했다.
걸음에 지쳐 주막에 들어가면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쓰러져 코를 골았다.
두달이 되어갈 때 함경도 땅으로 들어가자
조 참봉의 걸음은 더욱 빨라져 하루에 칠십리나 걸었다.
집 떠난 지 두달 스무닷새째,
조 참봉이 산속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자 행랑아범이
환약 세알과 표주박에 담긴 물을 건넸다.
그 환약을 털어 넣고 음양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날 저녁 온정리 기생집에 들어갔다.
그날 밤 조 참봉은 참으로 오랜만에 기생을 기절시켰다.
조 참봉은 희색이 만면했다. “그 명약을 한번 더 먹고 음양수를….”
행랑아범은 고개를 저었다.
밀양 집으로 돌아갈 땐 당나귀 두마리를 사서 탔다.
약속대로 조 참봉은 행랑아범에게 삼천냥을 줬다.
실상 조 참봉이 마신 물은 개울물이었고 먹은 환약은 토끼 똥이었다.
행랑아범은 그 집을 떠나며 이런 글귀를 남겼다.
‘步行(보행)이 神藥(신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