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나타난 IMF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국제적 금융 위기를 겪으며 경제 성장률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장기적인 경제 침체 현상이 일어났다. 그 이후 기업들은 투자보다 안정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사람을 많이 뽑지 않아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수요를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청년층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고령자의 산업현장 재진입, 재취업 등 부모세대나 기성세대가 산업현장에 예전보다 더 오래 근무하고, 늦게 은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규자를 채용할 이유가 서서히 사라져갔고, 그 결과로 자녀는 부모에게 더 오래 의존하는 형태로 사회 구조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일정 연령을 지났거나, 정년퇴직 이후에도 재채용되는 이들에 대해 임금피크제라는 대안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 취직, 노동 진입연령의 상승도 자연스럽게 산업현장에서 청년 보기가 힘든 환경을 불러왔다. 보통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은 아니라서[1],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졸업하고도 취직하거나, 고등학교 중퇴도 있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취직하고, 3~5년 정도 지나면 여성은 주임, 대리급, 남성은 군 복무 후 20대 후반이면 대리나 주임, 반장 등의 직급을 얻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1987년 군사독재정권 몰락 이후, 해외 여행, 해외 유학이 자유롭게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상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통해 전해지고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 1992년 민주화 이후로는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나 희망이 점차 증가하였다. 1995년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이후로는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청년층의 실업률을 높이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는 21세기 초, 어느 나라든 골머리 앓는 문제긴 하지만.[2]일본의 경우 50대가 되도록 취직을 못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200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났다. 단 이들은 사회불만화되지 않은 대신 점차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거나 몰입하는 쪽으로 변모해갔다.(오타쿠, 히키코모리 등) 다만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그들 또래 중 결혼한 또래들의 자녀 세대인 2010년대 현재 20대, 30대들은 인구 수가 확 줄어들어서 구인난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제점은 이런 일본의 거품 붕괴 때에 20대 30대를 보낸 신인류 세대 중 미취업자들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고, 그들의 부모가 죽었을 때에는 사회문제화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자살과 묻지마 범죄, 분노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 일본은 자살률이 계속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범죄도 이민인구의 증가의 의한 범죄를 제외하면 줄고 있다.[3] 또 일본은 거품경제 당시 자산을 모아둔 사람들이 많아서 부모에 기생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죽었다고 해도 상속으로 버틸 수 있고(실제로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취업을 안 하는 면도 크다.) 또 받을 재산이 없다고 해도 지금 워낙 일본이 구직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나이 먹고 알바 같은 일자리를 하기 창피하기는 해도 먹고사는 것 자체는 큰 문제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과잉보호하여,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말해주지 않는다. 사회에 갓 진출한 청년층이 부조리나 부당한 대우에 협상, 조절보다는 적응을 못하고 쉽게 이직하거나 퇴직을 하게 된다. 또한 양보나 타협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패배로 인정하는 성향 역시 강해졌다. 그런 청년층이 모두 인내심이 없어서 일주일 만에 때려치우고, 한 달 만에 때려치우는 것만은 아니다.[4] 점점 썼던 사람을 또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노동을 거부하거나 구직, 취직을 거부하는 청년층을 제외하더라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있으나 정규직과 달리 소득 및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고통받는 청년이 늘고 있다.
제조업, 건설업, 중소기업생산직 등은 인력이 모자라서 난리지만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체력이 되지 않아 골병이 들어서 약값, 진료비가 더 나오거나, 예를 들자면 갑작스러운 무리한 일로 인대가 늘어난다거나 근육통 등, 멘붕 후 그만두게 된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력서를 넣더라도 힘들고 열악한 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의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것을 보는 이상 불쾌감과 짜증이 밀려온다. 월급 외에 주는 보너스와 상여금은 보통 그 공장에 취직한 후, 6개월이 지나야 지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빠르면 3개월만 경과해도 주기는 한다.
계속되는 구직 실패, 혹은 열악한 일자리, 주변의 시선과 편견, 불필요한 오지랖 등으로 인한 상시적 스트레스로 인해 구직을 포기하고 니트족이나 캥거루족으로 전향하거나 구직 스트레스로 인해 얻은 우울증, 조울증, 정서불안,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는 청년이 늘고 있는 한편으로, 기존의 질병이 더욱 심각해지는 케이스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도박, 자살, 범죄를 선택하는 극단적인 청년들도 나타나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최소한의 삶, 안분지족, 복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조건 비딱하게 보는 기성세대와 높으신 분들의 고정관념과 편견 역시 청년층을 정서적으로 궁지,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바꿔 말하면 청년층이 기성세대가 그동안 얼마나 착취와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지 직시하고 있어 분노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이 단어의 문제점은 구직할 마음이 없는 청년, 일할 능력이 되지 않는 청년층의 존재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질낮고 열악한 일자리인 제조업쪽 생산직은 넘쳐나지만, 인권의식과 기본권, 권리 등에 민감한 선진국과 중진국에서는 그러한 일자리를 점점 기피하는 추세다. 각국의 정부에서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대기업에 인턴이라는 자리를 만들어서 일시적이나마 취직할 시간 또는 취업하는데 필요한 스펙을 쌓는 유예기간을 주기는 한다. 한국은 2006년부터 인턴제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 중 청년층의 욕구에 맞는 일자리를 그 시간 중에 찾지 못한다면 임시방편, 단기적 해결책에 불과하게 된다. 물론 청년실업 문제는 전세계가 풀어갈 숙제이긴 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근거로 자발적으로 비취직, 비취업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 청년의 선택도 존중해줘야 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한국은 IMF 사태 이전의 고도성장기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못 버리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큰 문제점이다. 신용카드 과다 사용으로 인한 카드 빚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기계화와 자동화, 인공지능 등은 한세대 뒤, 늦어도 50년 정도 지나면 시중 상용화가 예상된다.[5]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여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등장, 2000년 이후로 진지하게 논의되는 중이다.[6]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2000년대 초반에는 기본소득제에 대해 공짜로 돈만 받으려 한다, 정부에 과도한 의존이라는 등의 비판이 더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불황의 장기화, 만성화된 경제위기와 취업난, 구직난, 고학력화, 빈곤, 그리고 바뀌지 않는 사농공상적 가치관,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그러한 비판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한국의 대부분 중소기업의 직원 구인난의 원인은 아래에 서술하여 여러가지가 있다. 단 한가지로 단언할 수 없지만 총합하자면 급여는 급여대로 낮으며, 근로시간은 근로시간대로 길고, 복지는 복지대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중소기업의 위치는 대부분 공업단지에 있거나,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 불편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자신의 집에서 직장까지 출근에 1시간, 퇴근에 1시간 총 하루에 2시간씩 도로위에 버리게 되면서 출퇴근에 스트레스와 하루 시간낭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질 근무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해도 출퇴근 2시간을 포함하면 총 10시간이다. 그것 뿐만 아니라 일부 중소기업은 8시 출근 6시퇴근 일일 총 9시간 근무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서 사용하는 총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공업단지는 주로 남초사회이기 때문에 여성과 연애하기가 어렵고 결국 연애도 결혼도 하기가 어렵다. 연애할 대상도 없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없어, 결국 노총각이 되는 급행열차이다. 이렇게 되면 여성 역시 결혼할 남자들이 다 지방에 있거나 외지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남성이 부족하게 되니 결혼하기 어려워진다.
저급여, 통근하기 어려운 위치,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길어진 근로시간 이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국가를 경영한 정치인 및 관료들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이다.
그 동안 베이비 붐 세대와 에코붐 세대로 중소기업에 인원이 그나마 공급되는 편이였지만, 2022년 엄청난 저출산과 비혼주의로 앞으로 한국의 중소기업은 더욱더 심각한 구인난에 몰릴 예정으로 보인다.
사실상 대한민국 취업난의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피현상은 구직자 잘못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고 열정페이랑 애사심으로 굴려대는 기업과 국가가 가장 큰 잘못이다.
단, 여기서 국가가 가장 큰 잘못이라는 말에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실제 본 문단의 링크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최저임금 인상,법적 계도의 강화,52시간제의 시행등으로 국가가 대처한 결과는 유의미한 실업률의 상승이라는 실증적 결과로 나타났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는 '청년층 자본형성'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이 저축한 만큼 국가에서 채워주는(사실상 부의 무상이전) 청년내일적금등의 방안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러한 국가의 노력은 청년층의 유의미한 취업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며, 사실상 '나이'라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속성을 기준삼아 '차별적으로' '심각하게 우대가 되는' 부의 이전(그것도 타 계층에서 착취한 세금이 재원이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있다.
사실 본 문단 링크의 문제해결만을 위한다면, 그리고 국부상승과 수출증대, 경쟁력상승이라는 측면을 본다면 가장 합리적이고 부담이 가지않는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서, 100만원짜리 일자리에 꽂는것이다. 이는 베트남등의 임금이 싼 지역으로의 공장이전을 막아 수출을 통한 국내총생산증가에 기여하고,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증대시키며 이렇게 얻어지는 잉여로 자본을 축적하여 기술집약적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사실 7080산업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것 뿐이기 때문이다.
구직자 입장에서 중소기업 생산직/영업직을 외면하고 대기업, 외국계, 공기업의 사무직을 선호할 만한 이유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적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대기업/공기업/외국계에서 뽑아만 준다면 몰려가고 싶어질 정도다. 간략히 말하자면, 그만큼 취직 후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대기업이나 공무원 말단직이라 해도 일단 주변 취급부터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정도다(...) 어쨌든 문서 진행상 간략히 서술하자면, 중소기업 생산직/영업직은 근로조건, 사내문화, 처우가 대단히 열악한데 이런 열악한 일자리가 취업시장에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물론 강소기업이나 우수 중소기업같이 처우와 보수도 일반기업 못지않은곳도 있으나, 소수일 뿐이다. 특히 중소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사회인식, 홍보부족 등으로 이런 기업이 있다고 해도 고스펙 대졸자들은 대부분 대기업/공기업/공단/외국계회사같은곳 취업을 희망한다. 중소기업/구인난, 블랙기업 문서 참조.
2월 취업자수 증가폭 둔화에 대해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제조업이나 농림어업의 취업자수 증가폭이 크게 둔화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이라며 "2월에 강추위와 폭설로 인한 경제활동 저하가 취업자수 증가폭 둔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월 취업자수 감소에 대해 이호승 비서관은 "매달 15일이 속한 일주일을 고용 통계의 기준으로 삼는데 5월에는 이 기간에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며 "그 영향으로 건설 일용직 일자리가 줄었다"고 밝혔다.
7월 취업자 수 증가폭 둔화에 대해 빈현준 고용통계과장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연초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이번 달 증가폭 둔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예년을 봤을 때 취업자 수에 최저임금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며 “이번에 폭염으로 인해 날씨가 좀 더웠고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이 늘면서 숙박음식 등에 영향 준 게 아닌가 보여진다”고 말했다.
사회진출 연령대의 상승이 청년의 실업, 실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산업현장에 진출하는 청년의 수가 감소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는 고학력화와 함께 사회에 첫 데뷔하는 연령, 즉 처음 정식으로 취직하는 연령(아르바이트는 일반적으로 제외된다.) 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나 중,고등학교 통합 과정을 졸업하면 보통 연령대는 18세~19세가 된다. 그러나 대학을 진학하게 되면 단과대학 과정인 College에 진학한다면 2년에서 3년이 지나므로, 21세~22세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빨라도 20세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4년제 대학교인 University로 진학하게 된다면 23세~24세에 처음 이력서를 들고 구직시장에 나오게 된다. 만약 어떤 군면제자가 재수, 휴학, 검정고시 등의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시 19세, 2년제 전문대 21세, 3년제 전문대 22세, 4년제 대학 졸업시 23세가 될 것이다. 만약 군필이라면 2~3년이 추가되어 각각 21~22세, 23~24세, 24~25세, 25~26세가 될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졸업 직후~졸업 1년 내에 취업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근대사회만 해도, 한국은 1980년대까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은 아니라서[7],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졸업하고도 취직하거나, 고등학교 중퇴도 있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취직하고, 3~5년 정도 지나면 여성은 주임, 대리급, 남성은 군 복무 후 20대 후반이면 대리나 주임, 반장 등의 직급을 얻었다.
그러나 1987년 군사독재정권의 몰락 이후, 해외 여행, 해외 유학이 자유롭게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상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통해 정보가 전해지고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이 정보를 통제하던 이전과는 달리, 1992년민주화 이후로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나 희망이 점차 증가하였다. 1995년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이후로는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보통 고3의 80% 정도가 대학을 간다고 보고 있다. 만 18살에 칼입학하는 비율이 80%이기 때문에, 재수나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대학에 가는 인원까지 합한 생애진학률은 90%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연령대가[8] 여성의 경우 전문대를 졸업하면 22~23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4~25세이다. 남성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복무 기간을 합치면 24~25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6~27세 정도 된다. 여기에 재수생의 존재도 급증하고 있어, 빨라도 여성은 전문대 졸업 후 23~24세, 남성은 군대를 포함해서 26~27세, 남성이면서 군대를 다녀온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복무 기간을 합치면 빨라도 28~29세가 된다. 남성의 경우 군대입대 시기와 휴학과 복학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다시 1~2년의 시간을 더 허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에 사회에 첫 데뷔[9]하는 것이 보통이고, 빨라도 26~27세는 되어야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여기에 2009년 무렵에는 일찍 과정을 마쳤다 해도 졸업유예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무리 빨라도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이 나이대가 되면 집안 가장이 되고 자녀까지 가지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백수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더 나아가서 결혼 연령대 상승, 저출산의 원인으로 이어진다.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인권의식의 확산과 함께, 부모들은 자신들이 고생한 것처럼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도 심화되었다.[10]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국회의원 업적, 시장님 치적을 남기기 위해 너도나도 대학 유치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대학교의 수는 폭증했으며, 대학 진학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와 가계부채가 폭증했어도 대학 유치 열기, 대학 진학 열풍은 막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하던 1987년 이전과는 달리 1987년 이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증가, 고3 때 수능시험을 망치게 되면 1년에서 2년 재수하는 일 증가, 남성은 군대 복무로 인한 경력단절상태 등으로 IMF 구제금융이 터지던 시점에 가서는 남성은 27, 28세 무렵, 여성은 23~25세 무렵부터 처음 취직을 하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처음 사회에 진출하게 되지만, 취업 시장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경력직 채용, 고령자 우대, 퇴직자를 다시 고용하는 데다가 임금피크제는 기성 노동자들의 반발로 기업에서는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오게 된다. 이래저래 청년층이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근로환경 열악하고 박봉인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공기업, 대기업, 공무원으로 몰리는 현상 증가, 장기간의 채용, 임용시험 준비생인 장수생의 증가, 자신이 고생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부모들도 어느정도 심리적으로 이해하면서 첫 취직 연령은 점점 상승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와서는 중소기업 생산직 중에는 20대, 30대를 찾아보는 게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식 취직, 정식 직장으로 처음 사회에 데뷔하는 나이는 1980년대의 20세 전후에서, 1997년 무렵에는 20대 후반으로, 2010년대에 와서는 30대 초반으로 점점 상승하였다.
점차적으로 신규자 채용과 신규자 채용 후 수습하는 데 드는 시간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일부 기업체에서는 경력직만을 채용하게 되므로, 청년층은 휴학이나 대학 재학을 연장하는 등으로 졸업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도 한다. 혹은 대도시는 정보력도 있고 교통편도 편리해서, 당분간 기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그 결과 청년층의 사회 첫 데뷔 시기는 점차적으로 늦춰지게 된다.
구직 의사에 관계없이 회사에서 거부당하는 인력으로는 정신질환과 성격이상 등의 문제이다. 청년 정신질환도 서서히 조금씩, 눈에 띄지 않지만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춘기를 지나고도 사춘기 비슷한 정서적, 심리적 불안증세를 겪거나, 사춘기에는 멀쩡했다가 청년기에 정신질환을 앓는 케이스, 과잉보호 등을 받다가 무방비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로이 생기는 케이스도 있다. 물불을 못 가리는 광란증은 물론, 비교적 가볍게 여기는 우울증과 조울증, 강박증, 불안신경증 등 다양하다.[11] 그밖에 청년기에 알 수 없는 불안감, 우울감, 기억력 또는 집중력 장애로 인해 학업 성적의 저하, 수면 장애 등이 나타난다.[12] 2001년부터 서울시는 청년 정신질환 통계를 주기적으로 산출하기도 한다.[13] 사춘기 청소년들만큼이나 충동 조절 장애가 20대, 30대 청년들 중에서도 제법 나타나는 편이다.
최근 나무위키 등지에서 특정 아이피를 중심으로 청년층의 정신질환 증가가 여러 사회문제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청년들이 가지는 정신질환과 성격이상이 기업들로 하여금 청년들을 기피하게 만들어 청년실업이 발생한다고 한다. 보통 이러한 주장은 청년 정신질환이 증가하고 있다는 자료에 근거하여, 이전 세대보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한국 청년들은 소위 나약하게 자라서 성인이 된 후 겪는 고통에 의해 정신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증가했고, 그런 정신질환자 청년들이 기존 사회질서와 충돌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나타난다고 결론 내린다. 이런 주장은 이 문서 뿐만이 아니라 저출산, 구직단념자 등 다른 문서에도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청년실업에 한해 다루어 그 신빙성을 보고자 한다.
먼저 해당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노인들은 옛날부터 정신질환자가 박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특히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도 의지가 나약해서 병에 걸린다는 개소리를 잘도 지껄인다. 그래서 과거에 많은 정신질환자들은 정신질환이 있어도 숨기거나 치료를 피했다.[14] 그러나 최근에 과학지식이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당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정신질환자들도 자신의 병을 숨기기보다는 점점 드러내고 치료를 받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상황을 통계만 봤을 때는 마치 정신질환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정신질환자 수는 비슷비슷하다. 그저 자신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을 뿐이다.[15]
그리고 통계적으로 볼 때도 정신질환의 증가가 청년실업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통계를 보면 청년 정신질환은 2012년과 2016년 사이 공황장애가 65%, 우울증이 22.2%, 알코올 중독이 20.9%가 늘었다.[16] 2013년과 2017년 사이를 봐도 37.4%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다.[17] 이렇게만 보면 청년의 정신질환이 실업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문제는 실업률이다. 청년실업은 이미 2006년에 8%를 넘었고 2011년에 9%를 찍었다.[18] 그리고 청년 정신질환은 보면 알겠지만 2016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19] 청년 정신질환 증가는 청년실업의 증가에 뒤따르고 있으며 이는 마치 청년실업이 청년의 정신질환을 유발하는듯이 보인다. 실제로 같은 기간 사회적 취약계층인 노인의 정신질환도 증가하였는데, 2013년에서 2017년 사이 80대의 불면증은 87.6%, 60대는 60% 증가하였고[20] 위의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동기간에 노인의 전체 정신질환은 34.4% 증가하였다. 이미 과학자들은 청년실업과 청년 정신질환 증가 사이의 인과관계를 연구하였고[21] 정신질환이 청년실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다.[22]
그리고 요즘 청년들이 눈치가 없어 직장에 적응을 못해서 실업이 증가한다는 말도 있다. 옛날 사람이면 숙이고 들어갔을 부조리를 못 참고 저항해서 취업을 못한다는 얘기인데, 요즘 대학생들은 선배 똥군기를 안 따라줘서 취업이 안된다는 주장과 동급이니 새겨들을 필요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요즘 청년들이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자그마한 스트레스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교육학적 사실은 어렸을 때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이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23] 당장 외국과 비교해봐도 한국보다 안전한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갖춘 서구 선진국의 청년들이 한국 청년보다 정신질환을 더 많이 앓는다거나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사실 학창 시절에 얼핏 보면 부모의 과보호로 인해 유약할 것 같았던 부잣집 아이들이, 정작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연애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경우가 주위에 많음을 보면 죽창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이외에 해당 주장은 아무 논거도 없는 단순한 사설을 근거로 제시하거나[24] 정신질환자에 대한 일부 오해를 조장하는 등[25] 해당 주장은 여러 허점을 가진다. 이렇게 결과(청년 정신질환)가 원인(청년실업)을 만드는 것처럼 오도하고 이를 개인적 편견으로 정당화하는 행위는 인과전도의 오류에 해당한다. 더욱이 이런 주장은 멀쩡한 현대청년들을 정신질환자로, 혹은 나이든 사람들의 편견에 따라 나약한 놈으로 치부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일정 나이대가 되면 그에 걸맞는 사회적인 역할을 요구하였다. 그가 학력이 높든 낮든, 결혼을 하든 하지 못하든, 일정한 나이대가 되면 취직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거나, 일정한 나이대가 되면 어른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보통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선사시대나 미개발지역의 원주민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 10대 중반에서 만 18살경이 되면 일정한 시험을 거쳤는데, 이것을 통과하면 비로소 성인, 어른으로 인정되고, 그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성인식이라 부른다. 선사시대에서 문명사회가 된 뒤에도 이 성인식의 흔적이 관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고,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하지 않아도 만 18세가 넘어가면 성인으로 보고,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였다.
한 사람이 일정한 나이 대에 가족 부양을 못하거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가 정신질환을 앓지 않아도, 성격이상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부족한 사람, 모자란 사람,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져 가족 내에서, 친족 사회나 친척 내에서, 지역사회 내에서 배척당하거나 기피 대상이 되었다. 이는 유럽에서는 통상 12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자유도시의 출현부터 19세기 산업혁명 사이에 도시화와 봉건제 붕괴로 서서히 사라져갔고, 미국에서는 195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1987년~1992년 사회의 민주화 이후 서서히 사라져갔다.
한국 외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어떤 연령대에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일도 줄어들었고, 주변에서 눈치를 주는 일도 사라져갔다. 따라서 20대, 30대인데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할 법한 생각이나 언행을 하는 사람들도 점차 급증하였다. 그런 인간을 호의적으로 보는 집단, 조직은 없고, 그런 타인도 없다. 특히 비슷한 또래나 약간 위, 아래 연배의 연령대일 수록 그러한 사람에 대한 무시나 멸시를 공공연히 드러낼 가능성도 높다.
대놓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해서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어떤 나이에 걸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어떤 편견과 무시, 멸시는 개인에 따라서, 고정관념과 편견의 여부에 따라서 존재할 수 있다. 현대에도 문명화가 덜 된 부족사회라던가, 문명국가라 해도 시골지역이나 외곽 지역, 저소득층 주거지역에서는 고정관념, 인습이 남아있어 대놓고, 어떤 나이대에 해야 될 역할을 못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는 만큼 전근대에는 이미 성인으로 취급되는 20대 역시 일종의 유예기로 봐야 된다는 여론이 일부 학계에서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거의 전근대사회나 부족사회에서 요구해왔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어떤 조직, 집단에서 호의적으로 볼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에, 동일 능력이라면 나이가 어린 사람을 선호한다. 업무능력, 일 처리 능력이 된다면 편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은 높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경력자 이직일 때나 가능한 것이고,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채용,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 혹은 관리자급, 중간 간부급 인사들이 느끼는 편견과 거부감, 불쾌감을 극복할 만한 어떤 스펙이나 능력, 성실성, 실무력을 갖추지 못하는 한 뚫고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졸업 직후라든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만한 외모라도 갖춘다면, 조금은 쉬워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지 못했다면 다소 어려울 수 있고, 20대 후반~30살 이상 넘어갈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이런 것은 쉽게 해결하기도 어렵고, 개인의 가치관이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은 문제이다.
설령 뚫고 들어갔더라도, 이런 기업의 간부들은 어떤 나이대에는 무조건 어떤 직급의 업무 정도는 수행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나이 든 하급자는 무능하다는 편견이 박힌 경우가 많다. 주로 "4년제 대학 나왔으면 남자는 세는 나이로 군필 기준 26세, 여자는 24세에 회사에 입사해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26]는 편견인데, 재수생, 병역으로 인한 복학지연,[27] 졸업유예자, 석박사 등으로 인해 사회 진출이 늦어진 사람에게는 알게 모르게 상당한 페널티가 가해지는 것이다.
가치관의 변화, 다원화와 함께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들도 점차 증가하였다. 여기에는 성적 쾌락 외에도 이런저런 감각적 쾌락을 포함한다.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부류가 다른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를 불신하는 이들에게 불쾌감과 거부감을 주는 것처럼,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 역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서로 충돌하기 쉽다. 가치관과 생각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서, 생각처럼 쉽게 고치거나 바꾸기도 좀 어렵다.
이전부터 암암리에 배척해온 심하게 내성적인 인간,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대해 조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분란을 야기할 인간으로 보아 인사담당자나 기업가 입장에서 배척하는 일이 있었다. 여기에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 타협을 모르는 인간, 혹은 타 종교나 신념을 가진 인간들 역시 채용 과정에서 걸러내는 일이 등장하고 있다. 보통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장, 직업에는 취직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고학력자나 상위계층은 당연하고, 그 사회의 중산층을 포함한 중간계층 정도만 되어도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간혹 그런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자신의 적성이나 미래, 능력치 그밖에 환경적 요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취직, 직업을 구하는 인간들도 어느정도 존재해 왔다.[28] 그리고 청소년이나 어린이, 청년층을 지도하거나 다잡아줄 어른이 없는 환경에서 그런 인간이 일부나마 등장하여 회사, 직장에서 갈등, 대립, 트러블을 일으켰고 간혹 사건, 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서구는 19세기, 동아시아는 1980년대 이후 각각 나라마다 개인주의가 사회에 보편화되고 어떤 양보나 타협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확산된 상태에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삶의 목표로 삼는 유형의 인간도 눈에 띌 만큼 나타났기에 이들과 타인간의 사회적 갈등, 대립도 증가하고 있다. 마음에 안드는 이웃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도시 지역 일부와는 달리, 직장 생활과 학교 생활에서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도 상대해야 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한다면 사실상 하루종일 봐야 된다. 가치관이 전혀 다른데 따른 스트레스와 감정 대립에 개인주의적 가치관, 양보나 협상을 거부하는 것이 겹치면서 역시 취직에 대한 적극적 거부나 회피, 소극적인 회피, 그밖에 채용 기피나 거부 등의 현상도 등장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종교적인 신념, 어떤 도덕윤리적 믿음을 가진 인간이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대립, 갈등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형의 트러블메이커로 주목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자기만 그대로 지키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거나, 거부할 경우 매장하려 든다던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타인, 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반하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와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는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런 배려를 해야 될 이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항상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서로 최대한 피하거나, 부딛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다소 갈등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중 한쪽이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여, 피하지 않는다면 대립,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양쪽 다 자신이 옳다는 어떤 사상적, 종교적인 확신을 가졌다면 대립과 갈등은 더욱 더 피할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성적 쾌락 외에도 감각적인 쾌락, 만족을 추구하려는 유형의 인간이 증가하고 있다. 개인주의 확산, 인간관계에 서투른 인간, 외동자녀나 2명의 자녀라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집착수준의 애정, 형제자매 많은 가정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란 한국기준 86세대 이상, 일본기준 단카이세대 이상 세대들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 이런저런 환경적 요인도 갖추어졌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는 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부족하거나,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려는 것이 늘고 있다. 그리고 쾌락 추구에 반해 책임감이나 결과는 회피하려는 현상도 증가하여 갈등, 대립을 지속, 확산시키고 있다.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의 증가,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인간과의 대립과 갈등 역시 취업이나 취직,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기업체나 기관에서 채용 과정에서, 혹은 전 직장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혹은 이 사람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 대학교수 등과의 대화를 통해서 걸러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다면평가는 직장 동료나 아랫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동료나, 직원의 승진, 승급을 제한하고 걸러낼 수 있고, 이렇게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 등을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는 인간으로 보고 걸러내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심하게 내성적인 인간, 개인주의적인 인간을 조직에 맞지 않는 인간, 조직에 분란을 야기할 인간, 원만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고 걸러내려는 일은 진작부터 암암리에 행해졌다. 여기에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 사상적인 신념을 가진 인간, 타협을 모르는 인간 역시 잠재적인 조직문화 부적응자로 여기고 어떻게든 꺼리거나, 걸러내려 한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14세기 도시문화가 나타나고 1850년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로 세습이나 국가에서 정해주지 않고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회가 등장했다. 이는 신분제도가 깨지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회사, 직장에서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그렇게 조성되어왔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일본에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고, 그 중에서도 좀 그런 것이 심한, 극단적인 형태의 인사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 역시 노동환경이나 근로 조건, 급여, 복리후생 등이 괜찮은데도 블랙 기업으로 몰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가치관의 다양화 다원화와 함께 개인주의 문화 확산, 외동자녀나 2자녀 가구의 급증에 따라 이런 것을 걸러내려는 시도들이 어느 정도 등장한 상태.
19세기 근대화 이후로 다소 인간관계에 서투른 유형의 인간형이 전세계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북유럽 등에서는 1960년대 이후, 극동아시아권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인간관계 능력이 다른사람에 비교해서 다소 서투른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2년 이후, 빨라도 미국, 일본의 대중문화와 해외여행이 풀리고, 자율화된 1988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단 여기에서 설명하는 인간관계가 서투른 인간은 장애인이 아니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자폐증도 아니고, 정신질환자가 아닌 인간에 한해서이다.
외동자녀나 2명이라서 타인을 상대하는 방법 자체가 미숙. 양보나 배려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성장했을 가능성도 높은 환경. 이 경우 타인에 대한 양보나 배려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대가족에서 3대가족으로, 3대 가족에서 다시 3~4인의 핵가족으로 변함. 2000년대 이후로는 핵가족화에서 다시 1인 가구화되거나(일본, 미국, 서유럽) 그러한 조짐이 서서히 확산(한국).
학교, 집, 학원만을 오고 가거나 다른 인간을 상대할 환경 자체가 줄어듬. 열악한 환경, 불우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너무 빨리 현실을 파악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극단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혹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고 뒤에서 처리하는 것에 대한 인식, 인지가 부족한 것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른 인간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거나, 거의 남을 상대할 일이 없는 환경에서 성장한데다가 사회적으로도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다보니 굳이 다른 사람을 억지로 상대해볼 일이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인간을 대하고 다뤄야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다소 거친 환경에서 자랐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이런 인간관계에 서투른 유형을 멸시하거나, 증오하거나, 혹은 자신보다 유복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것을 질투하는 일도 있고, 다른 사람을 상대하거나 다루는 능력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언행으로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외관상 정상인이고 상당히 정상인에 가깝더라도 이러한 유형은 이력서만 넣으면 누구나 들어가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꾸준히 걸러지고 있다. 설령 입사하더라도 해고하면 실업급여 처리를 해야되니까 일부러 자기 발로 나가게끔 상황을 유도한다.[29]트러블메이커가 아니더라도 조직생활에 다소 부적합한 유형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미숙한 세대의 출현 역시 청년 취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른 사람을 상대해볼 기회가 없는 사람은 당연히 인간관계에 미숙하고, 그런 인간관계가 미숙한 사람들을 기피하거나, 이용하거나, 배척하는 일도 많다. 특히 3D업종의 제조업 쪽 중소기업은 그런 청년들에게는 거의 "지옥 그 자체"다. 대부분 잘못된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외동자녀 혹은 형제자매가 많아도 2명, 3명 이상을 넘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했거나, 생활고를 이유로 자녀를 방치하는 가정도 존재해왔다. 형제자매도 없거나 적은 환경에서 방치되었다면 거의 다른 사람을 상대할 일도 거의 없고,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아주 절친이 아닌 이상 더욱 다른 사람을 상대할 일도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학교, 학원, 집만을 오고가거나 과외 등으로 자기 개인시간이 없이, 또래집단과 어울릴 일 없이 성장한 세대들이 2010년 한국 기준으로 벌써 30대, 40대를 넘긴 상태이다.
1980년 이후의 미국, 일본, 1989년 이후의 한국에서는 퍼스널 컴퓨터의 가정 보급 보편화와 인터넷 등 통신망 보편화로 다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도 충분히 혼자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인터넷의 취미 동호회나 친목단체를 통해서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공통된 주제 이상의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게 된다.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질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여기에 계속된 실패로 인한 좌절, 현재까지도 잔존하는 가부장제적 역할에 대한 기대, 높아진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 등 인간관계보다는 개인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1987년의 민주화 혹은 1992년 민주화 정부 출범 이후로 한국 사회 역시 과거 선진국들이 그러했듯 인권의식 향상 및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 서서히 확산되면서, 개인, 혼자만의 공간에 몰입하는 일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하여 인구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 것이 청년실업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2018년 6월 청와대 일자리기획관실에서 한 바(현재는 삭제됨)있다. 실업률의 경우 제조업 구조조정과 서비스 산업의 주축인 교육산업이 저출산 추세에 따라 축소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고용률은 고용이 될 젊은 층의 수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악화되어 보일 뿐이라는 주장.
이 주장에 의하면 미래에는 지금의 청년세대[30] 중 지금 도태되는 청년층 말고, 정규직이나 공무원에 합격했거나, 결혼에 성공한 청년층들의 자녀세대부터는 취업난에서 해결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는 일본에서 2010년 이후로 등장하는 현상이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의 아베노믹스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청년 취업 대책의 결과가 아니라, 1980년~1994년 사이 대학을 졸업한 일본의 로스트 제너레이션 세대 중 상당수가 결혼, 취직, 사회적 지위 등에서 모두 도태된 결과, 그들 또래 중 취직과 결혼에 성공한 이들만이 결혼에 성공, 출산율이 떨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시각이 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일본어를 잘 구사하는 젊은 외국인들까지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자국의 1980년~1994년 무렵 대학을 졸업하거나 당시 20대를 보낸 자국의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채용, 고용은 해당분야 경력자가 아닌 이상 신규채용으로는 다소 꺼리는 편이다.
당연하지만 지금 청년층에서 실패된 사람들이 도태되면 해결 될 것이다는 주장은 극도의 반발을 부를 수 밖에 없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잠재적 불안요소로 남게되기 때문에 절대 반길수 없다. 청년실업의 원인이 단순 인구문제라고 하기엔 현장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자리가 점점 줄어늘며 인간의 역할이 AI에게 대체되는게 현 추세인만큼 매칭은 커녕 다음세대에도 불합리한 경쟁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고려 중기 유교성리학의 도입 이후, 고려말과 조선 왕조 500년 내내 글을 쓰는 직업, 문(文)을 우대하고 나머지 직종, 무(武)를 비롯한 기술, 의술, 상업, 예능 등을 다소 천하게 여겼다.[31]
성리학이 국교화되는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시와 소설, 산문 작문 능력, 글씨체 등의 기술을 중시하는, 훈구파와 초기 사림파 내에서 인정되는 사장학 역시 천한 기술로 여겨져, 도학, 성리학 경전을 연마하여 심신 수양과,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문제 이외에는 잡기 정도로 취급되었다.
문(文), 도학 위주, 학문으로 하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현상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1910년 대한제국이 붕괴되고 1945년 광복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과거 문(文)과 학문 위주의 직업이라 볼 수 있는 사무직에 대한 선호현상은 계속되었다. 다만 경제발전이 진행되면서 시와 소설, 산문 작문 능력, 글씨체 등의 기술을 중시하는 사장학도 다시 인정받아지고 있고 상업, 의술, 기술, 예능에 대한 선호도 역시 크게 늘었다.
군사독재정권의 과도한 경제성장 성과 욕구로 억지로 육체노동과 프랑스, 독일, 중동 등에 건설근로자, 광부 등으로 파견된 세대들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다 하여, 자녀들에게 사무직 계통으로 일할 것을 희망하였고, 미디어 매체에서도 검열을 이유로 잘나가는 사무직의 생활만 다루며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했다.[32] 결과적으로 땀 흘리는 일, 손에 때 묻는 일이 천시되는 현상은 21세기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사장학과 상업, 의술, 기술, 예능에 대한 선호도도 많이 늘었고 대중화도 되었다.
그리고 갈수록 여성의 권리 신장으로 여성의 사회진출도 대폭 증가했다. 여기까지는 좋은 얘기지만, 문제는 이러한 여성의 사회진출 대부분이 사무직 위주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무원 시험으로도 알 수 있는데, 기술직, 교정직, 소방/경찰 등은 여성 응시자의 비율이 낮은 반면, 일반행정직과 교육행정직은 여성 응시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주로 책상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직업을 사무직이라 한다. 이 중 첨단기술이나 전문교육 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단순사무직이 자동화, 무인화, 기술적 실업으로 인해 급격히 감소했다. 기계나 프로그램의 개발과 도입이 사람을 채용해서 돈을 주는 것보다 원가절감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만 해도 계산, 경리회계, 캐드, 도장 찍기, 발표자료 그리기 등을 사람의 손으로 했다. 따라서 문과나 상고 졸업자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매우 컸다. 대기업 채용인원의 1/3 가까이가 문과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수요가 급격히 컴퓨터로 대체되면서 문과 일자리는 대기업 채용인원의 1/10~1/30 수준으로 급감했다. 또한, 2018년부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라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영세 자영업자까지 무인주문기로 대체하고 있으며, 선택 옵션이 아닌 아예 기본 옵션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무직과 육체노동 사이에 차별을 두라는 명시는 국법이나 노동법 규정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통 급여를 사무직보다 조금 더 쳐주는 것이, 어느나라든 그 나라의 법에는 없지만 사실상 관례처럼 통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독일은 1970년대 반전히피문화와 함께 인권의식 향상으로 그런 점에 대한 불만, 문제가 제기되었고, 미국과 유럽은 1980년대 이후,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사무직과 육체노동 사이에 급여 차이가 감소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부 국가와 기업체에서는 생명수당, 위험수당 등과 같은 것을 만들어서 육체노동자들을 배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일부 직종에 한한 것이고, 다른 육체노동자들은 비교적 위험이 덜하다는 이유로 생명수당이나 위험수당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확산과 인권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자신이 수고한 대가에 합당한 보상을 주지 않거나, 그러한 보상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거절하는 현상 역시 보편화되었다. 사무직과 육체노동간의 급여 차이가 감소하면서, 구직자의 육체노동 기피는 심화되었고, 여기에 1970년대 이후 일본은 평준화와 유도리 교육 등으로 고학력화가 보편화되면서 육체노동 기피현상은 심화되었다. 기존 노가다 등 육체노동 종사자 중 하루 벌거나 한달 벌어서, 쉬면서 돈을 탕진한 뒤에 다시 일을 하는 등 불성실한 생활패턴을 가졌거나, 음주, 거리 흡연, 거친 언행 등을 보여주었다. 혹은 범죄경력자나 전과경력자 등 비교적 질 낮은 사람들도 쉽게 이력서나 등본만 제출하면, 일단 신분만 확인되면 취직하여 일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 힘과 근력, 체력으로 하는 일이고, 운반, 염색 등 단순노동이 주여서 진입장벽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다. 그 결과 육체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시선이 확산되었다.
한국 역시 1993년 이후로 평준화 정책을 도입, 중고등학교 보충수업, 초등학교의 학력평가와 월말평가, 중고등학교의 시도별 학력고사 등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1993년에는 대도시권, 1995년에는 소규모의 시 단위 행정구역과 농촌), 대학 설립 기준까지 완화되면서 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시도의원 등의 자기 업적 생색내려고 대학 설립을 남발했다. 그 결과 필요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과잉 배출되었다. 이들이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육체노동을 무시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더럽고 하찮게 여기는 사회와 국가일수록 생산직과 사무직, 사무경리직의 급여가 같아진다면 더이상 생산직에 종사할 이유나 메리트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힘들거나, 위험함과 더러움을 참아야 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같은 급여라면 굳이 힘들거나 위험함, 더러운 일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을 하고 하지 않고는 개인의 선택이다. 노동을 기피하거나 거부한다 해서,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군가 노동을 거부한다 해서 비난할 권리는 없다. 이것을 비난한다면 너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고, 적은 일당을 받는 것에 만족하라는 말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이미 올라간 사무직의 일당, 단가를 비전문성을 핑계로 일방적으로 깎거나 낮춰버릴 수도 없다. 고학력화로 인한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 선호현상이 심화된 가운데, 사무직과 육체노동간의 급여 차이가 감소하면서 굳이 위험과 모욕, 멸시를 감수하면서 육체노동을 해야 될 당위성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일본과 한국 등 일부 유교문화의 잔재가 심한 국가일수록, 그런 현상이 이탈리아, 그리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비슷한 조건의 다른 국가들보다 다소 더 심할 수 있다.
인간의 평균수명 증가 및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등장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그에 따르면 평균수명의 증가와 함께 청년기 혹은 유예기 역시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첫째로, 영아사망률이 줄어들면서 기형아나 허약체질 유아가 청년층까지 생존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청년실업이 늘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라면 기형아나 허약체질은 살아남지 못하고 죽었겠지만, 19세기 이후에는 의학의 급속 발전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고, 살아남게 된 이들이 고용시장에 진입하면서 청년실업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 2016년 청년실업률은 거의 12.5%인데,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영아사망률은 신생아 1,000명당 약 23.8명이었다 2015년에는 2.7명으로 감소하였다. 청년실업 12.5% 중 2%를 이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셈이다.
둘째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자 근로자가 많아졌다. 비숙련직일수록 세대 간 경쟁이 더 심해지게 된다. 일부 직종에서는 경력자나 정년퇴직자, 명예퇴직자를 재고용하는 일이 있는데 이를 국가기관에서도 버젓히 행하고 있다. 청년실업 해결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셋째로, 기술의 발달로 노인이나 장애인, 저체력자, 저지능자 등 정신적 허약자와, 신체 허약자가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났다. 인공지능화 기계화가 가속되면서 육체노동의 중요성은 점차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청년을 위해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박탈할 리도 없으니까, 이것은 해결 자체가 요원하다.
1980년 1인당 명목 GDP는 1,645달러. 당시 환율이 1달러에 6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인당 국민소득은 당시 돈으로 연 99만 원에 해당한다. 1980년부터 2018.1까지 물가는 4.681배 상승했다. 즉, 1980년 대한민국 평균인 정도의 생활을 누리려면 연 460만 원이 필요하다. 당시 대기업 과장 월급이 50만 원 정도였으므로 이 정도 생활을 누리려면 오늘날 연 2,7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1976년 현대 포니 (소형차) 자가용 출시가가 230만 원이었다. 따라서 1980년경 대한민국 평균 소득을 버는 사람이 소형차를 사려면 2.3년간 하나도 안 쓰고 돈을 모아야 했다.
한편, 1996년 100대 대기업 대졸 신입 초임 평균은 약 1,860만 원 (물가상승률 1.714배 반영시 2017년 기준 약 2,700만원)[33]이었으나 2018년[34]에는 4,017만 원으로 상승했다. '2017년 기준의 연평균 5,400만 원'을 기업에 벌어줄 수 있는 사람은 1997년에는 뽑았지만 2017년에는 절대 안 뽑는다. 97년에는 그 사람을 뽑으면 밥값을 하지만 2017년에 그 사람을 뽑으면 건물이나 기계 등 자본재에 투자하는 것보다 돈 벌기 어려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위 이야기를 종합하면 1980년대에 대기업 과장의 생활수준은 물가를 반영하여 계산하면 1997년 100대 대기업 대졸 신입과 비슷하며 2017년 중견기업 대졸 신입과 비슷하다.
참고로, 1996년 100대 대기업 대졸 신입 초봉 1860만 원(2018년 2700만 원)은 당시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원하는 평균연봉과 거의 일치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96년경까지 한국의 1인당 GDP의 세계 순위는 계속 상승했다. 1980년 64위, 1996년 33위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는 상승이 거의 없다는 거다. 2021년 순위는 26위에 불과하다. 25년간 성장이 정체되어 있던 것이다.
채용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 미래에 성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을 많이 뽑을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분야를 관리할 소수만 뽑으면 된다. 따라서 채용이 줄어들었다. 2019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을 시작으로 공개 채용을 폐지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성차별이 줄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리고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이후로는 남녀 성평등 운동 확산과 동시에 경제위기로 가정주부들이 맞벌이를 하면서 여성도 취업 일선에 뛰어드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어느 정도의 자동화, 회계나 전산의 프로그램화 등의 기술적 발달과, 사회적으로도 성차별이 줄어들면서 여성의 노동 진출이 늘어났다. 그에 따라 경쟁은 심해졌고, 경쟁에서 떨어졌지만 자신이 원치 않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지만 경쟁자 수는 늘어난 셈이다. 여성 외에도 20대~30대, 그리고 40대 등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세대는 남녀 불문하고 자신이 내세운 조건에 맞지 않는 직장으로의 취직을 거부한다. 경쟁률은 그만큼 높아졌지만.
병역기간이 36개월부터 21개월, 여기서도 현 정부에 의해 순차적으로 단축해서 2020년까지 18개월로 예정되어있는데, 이 역시 남성 노동인구 증가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청년실업률을 1.5% 가량 증가시켰을 것이다.[35] 병역으로 인한 반강제적 실업상태에 대한 지원이나 구제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사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전원 합헌 판결을 받은 그런 나라다. 병역으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도 없고, 관심도 없으며 고령자는 물론이고 386세대 및 일부 X세대들까지도 나때는~ 이라는 이유를 들어 병역에 대한 어떤 보상을 암암리에 방해하는 게 현실이다.[36]
윤태호 화백의 만화 미생(웹툰)/시즌2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대기업 사무직에는 전 회사원의 10% 내외 정도고 나머지 90% 가까운 사람들은 중소기업 소속이라 한다.[38] 한국에서 1년에 약 53만 명씩 배출되는 청년 대졸 이상 구직자 대부분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대한민국 5대 대기업(삼성, sk, 현대, LG, 포스코)에서 1년에 고용하는 총 인원은 기업 채용문이 열렸다는 식의 신문 기사 내 낙관적인 수치를 보아도 4~5만 명 내외다.[39] 심지어 이 5만 명에는 생산직과 비정규직이 상당히 포함되었으며, 여기에 공직, 금융권, 전문직, 사립학교 등 기타 괜찮은 일자리를 다 합쳐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2021년 12월 교육부 인재양성정책과에서 발표한 바로는[40] 한 해 인문, 사회계열 졸업자의 약 8%와 자연계열 졸업자의 10%, 공학계열 졸업자의 14%만이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한다.[41] 그래서 인문계열, 자연계열, 그리고 비인기 공학계열 졸업자들의 경우 특수한 특기를 지닌 사람들, 즉 석박사 이상의 트랙, 특수 언어 구사자, 전문자격면허 소지자, 낙하산 인사, 전공을 굉장히 잘 하는 특수한 사람과 상위권 대학에 졸업하여 인맥 취업이 가능한 사람들 위주로 양질의 일자리를 잡게 된다.
"연봉에는 귀천이 있다." 같은 말을 하거나 직업을 가지고 연애, 결혼 등에서 사람을 차별하기도 하기 때문에, 연봉 낮은 일자리가 남아돌아도 청년층은 들어가기 싫어한다. 게다가 이런 직장에서는 기성세대가 신입을 무시하는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있어 청년층의 구직 의욕을 꺾고 있다. 그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한다, 너는 커서 꼭 펜대 굴려서 벌어먹고 살아야지, 하기 싫지만 가족 때문에[42] 억지로 일한다는 식의 자기 비하와 자조 역시 청년층의 구직 의욕을 꺾는 언행들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 실업계 고교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도피처로 전락한 적이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 생산자동화 개념의 도입으로, 산업이 고도화되며 특히 저숙련 사무직 인력이 많이 필요없는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가능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사무직은 인문학, 사회과학 계열 전공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한국과 오늘날 사회를 비교해 보아도 역량에 큰 차이가 나타난다. 그 시기의 사무직 업무를 보면 결재가 필요하면 손으로 서류를 그려서 직접 관리자를 찾아가 도장을 찍어야 했고 인터뷰를 따면 손으로 빠르게 수필속기를 해야 했고 계산이 필요하면 주산을 했고 부기는 손으로 작성하며 PPT 대신 발표자료를 손으로 그려야 했다. 자료를 찾을때도 인터넷이 아닌 직접 문헌이나 신문기사를 찾아서 스크랩해야 했다. 그러다 기술의 발전으로 문이과 비율에 변화가 나타나 삼성전자 DS사업부나 LG화학의 경우 이공계 신입사원의 비율이 95~100%에 이르게 되었다. 한 대기업 채용담당 임원(2014)은 “영업에서도 제품과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은 이공계가 더 유용하다”고 전했다.
한편 그에 반해 인문계쪽 전공자들의 수를 줄이지 않고, 항상 같은 수, 같은 양을 그대로 배출하고 있다.[44] 그러나 이 부분은 저출산으로 저절로 정원이 줄어들 예정.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실업자들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 그때는 청년 실업자가 청년이 아니므로 해결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 선임연구위원(2015)은 “컴퓨터의 발달로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이 사라진 것처럼, 기술의 진보로 인문계 전공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경영이나 인문 지식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어학실력까지 갖춘 경우가 많아 굳이 인문계를 가려 뽑을 필요가 없어진 반면, 기술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이공계 전공자들의 전문성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됐다. 게임을 만드는데도 스토리가 필요한데, 스토리는 바로 인문학적 지식을 말하는 것. 그렇지만 스토리 개발자가 게임을 구성하는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게임에 맞는 스토리를 개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을 '서비스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 나라 망할 징조, 문예와 공공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후진적이기 때문' 등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정부에 문과 대졸 취업자가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요가 줄어들어서 생기는 일이다. 이때 구직자들은 사회에서 수요가 많은 쪽으로 전공을 바꾸든지, 낮은 대우를 감수하든지, 아니면 고용주에게 '이공계 하나 뽑는 것보다 나를 뽑는 게 더 돈이 되는 길'이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 전에 입학 정원에 대한 조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그런 부작용이 나타나면서도 각 대학에서는 지금 현재도 속칭 돈이 되는 학생 정원수를 낮출 의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취업/전망 문서 참조 바람.
한국은 1992년 이후 성차별이 줄어들고 성범죄에 대한 폭로와 처벌이 계속되면서 여성의 노동 진출이 늘어났고 직업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는편이다. 대신에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둘러싸고 남자와 여자가 경쟁하면서 성별 갈등도 극심해지고 있다.
2016년 한국에는 200만 명의 외국인이 있고 이들 중 150~18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이는 인구의 약 4%가량이지만 임금 근로자 1900만 명을 기준으로 보면 거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또한 불법체류자는 약 2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의 1년간 출생아 수가 40~50만 정도이니 거의 4~5년간 출생한 한국 국민 수만큼의 외국인이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들은 대부분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거주하므로 그만큼 한국의 청년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 세대의 시작인 1983년생들이 노동시장에 나오던 2008년을 기점으로 연간 15만 명씩 10년간 150만 명의 인력 부족과 임금 상승이 우려된다는 재계와 다문화와 인권 단체들을 앞세워 2008년부터 10년간 100만 명의 외국인을 추가로 받아들여 외국인 200만 시대를 열었다. 단순 계산으로는 이들의 절반만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만 해도 한국 청년들에게는 무려 1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셈이라고 여길 수 있다. 참고로 한국보다 인구가 3배가량 되고 극심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가 100만 정도 된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 노동환경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는 굉장히 불분명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가 대체하고 있는 일자리 대부분은 3D 업종으로 처우가 열악하며, 비숙련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줄일 경우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기 쉽다. 게다가 이런 열악한 처우의 일자리는 지금도 한국인에게도 많다.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가 30만 명 이하였고 지하철 요금 400원이던 1995년에 건설 단순 일용직 즉 기술자가 아닌 일반 대학생이 단순 잡부로 받던 일당이 6~7만 원이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20만 원이 넘는 돈이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가 종사하는 일자리는 상당수가 제조업이다. 서비스업의 경우 외국인을 쓰면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손님이 뚝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 명백하게 업계 종사자들이 임금 피해를 보고 있다고 자주 언급되는 곳은 건설현장이다.
한국에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제조업, 건설업, 전문직, IT' 쪽에 많고 '관광, 문화예술, 금융, 의료 (전문직 제외), 복지' 쪽에는 많지 않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성 비교
먼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을 하나의 단일한 덩어리로 정의한 다음 돈 버는 데 도움 되지 않는 전공이 대충 서비스업에 묻어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조업 중에서 반도체 DRAM 생산은 세계를 평정했으며 기술적으로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섬유의복 제조업 등의 저기술 제조업은 1994년에 비해 2008년에 고용인원이 1/3가까이 줄어들었다. [45] 이 두 가지 사실을 놓고 '제조업이 이미 커질 대로 커졌고 중국에 밀려 죽어가므로 정부는 탈 제조업을 하기 위해 반도체를 버려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낼 수는 없다. [46] 마찬가지 이유로 서비스업 역시 '서비스업을 늘려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비중이 높은 '지식서비스업'[47]을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정부가 강제한다고 해서 현실과 맞지 않는 산업을 급성장시키거나 현실적인 산업을 파멸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 당국자가 고민해야 할 목표는 '어떤 산업에 투자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까?'에 가깝다.
어떤 산업의 양질의 일자리가 청년실업자들에게 인기가 많을까? 어떤 산업에 투자하는 걸 청년실업자들이 좋아할까? 청년실업자들이 대졸 문과가 많으니 대졸 문과가 취업할 수 있는 산업에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청년실업자들이 대졸이 많으니 육체노동이 필요한 일자리는 줄여야 하지 않을까? 등은 정부 당국자의 고민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예를 들어, 게임 산업의 성장은 여성가족부, 게등위 등에서 온갖 해코지를 하면서 방해했지만 각자도생을 통해 성장했고, 그 결과 콘텐츠산업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고부가가치 지식 서비스업을 성장시키면 문과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참 바람직하지만, 그 누구도 '어떡하면 한국의 지식서비스업을 전 세계로 수출해서 돈을 벌어올 수 있을까?'는 잘 모른다.
셋째로, 저임금에 위험한 저기술 제조업 일자리를 안전 규제를 통해 줄여버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서비스업 일자리를 늘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규모의 경제 덕에 활동하기 쉬워지는 '대기업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으로는 이 현상은 '정부 당국자가 후자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후자를 천대하고 전자에 집중한 탓'[48]이다. 따라서 서비스업에 일자리가 적은 것은 정부 당국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합리적으로 지원하기만 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이다.
기존의 산업은 어떻게든 대학에서 가르쳤지만 차세대기술은 대학에서 잘 가르치지 않는다. 사실 현대시대에 흔한 기술들이고 응용하는 학습이 대부분인데 개개인의 수준편차를 고려한 제한적인 공부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겠다. 차세대 산업에 제대로 몸담으려면 영재학습이나 엘리트대학[49]에 들어가야 하는 것같이 느끼지만 틀에서 벗어나 할 사람은 이미 다 했다는 것이 요점이다. 똑같이 배워서 똑같이 알고이런 도태된 기술을 배운집단을 채용하는건 낭비라는 것이다. 통신이나 데이터는 충분히 구할 수 있음에도 일단 어려우니 개개인이 피한다. 또 그러한 자료이해가 어려운것은 태초부터 잘못된 상식의 주입식교육에 현대학문이 아니라고 결론 낸 걸 그대로 배워서 새로 배워야 하는 등 기초교육부터 (...) 전반적으로 문제가 터졌다.
현대의 신기술은 혼자서 이루기는 무리수이다. 이미 한 세기 전부터 혼자서 발명하는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 정말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는한 조금씩 기여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는 조금씩 기여가 아닌 한사람이 책임지는 형태를 지지하는문제로 여러사람을 쓸 필요없게 하므로써[50] 별 도리가 없다. 국내에서는 일을 전담하던 주요 실력자가 병역의무로 군대라도 가면 아주 큰일난다. 병역특례라는 제도가 있지만 조건이 너무 빡세서 아무나 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