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 20일을 넘기면서 양측 대표단으로부터 '외교적 타협' 가능성 발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16일 "양측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병력 감축을 전제로 휴전하고,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하는 내용을 포함한 15개 항의 '평화 협정' 초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 보도에 대해 "당사자 간의 합의를 공개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고, 우크라이나 협상팀을 이끄는 미하일 포돌야크 대통령 고문은 "당사자들의 입장이 서로 달랐으나, 이제 일종의 타협에 이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FT(파이낸셜 타임스):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교전을 중지하고 철군하는 것을 포함한 계획(초안)에 근접/얀덱스 캡처
우크라이나 측은 (그동안 거론된 핀란드식이 아닌) 스웨덴과 오스트리아와 같은 중립국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국제적으로 보증받는 안전보장 체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체제에는 미국과 독일 등 나토(NATO)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고,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스웨덴의 예를 따른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타협안의 하나'라고 인정했다. 자체 군대를 보유하지만, 외국(나토)의 군사 기지를 허용하지 않는 스웨덴 방식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협상 대표단이 특정한 주제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타협에 대한 희망은 어느 정도 있다"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협상 당사자들의 입장이 '보다 현실적이 됐다'고 한 발언을 중시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실제로 처한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러시아가 협상에서 요구해온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반나치화)와 중립국화를 대체로 수용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또다른 요구사항인 돈바스(도네츠크인민공화국 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 LPR)의 독립과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은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정부 수장들과 화상으로 회의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푸틴 대통령은 이날 지방정부 수장들과의 민생 관련 회의에서 "키예프 등 우크라이나의 도시에 러시아군의 출현한 것이 이 나라를 점령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없으며, 우리는 그런 목표 자체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특수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특수 군사작전을 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작전 개시 후) 무의미한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키예프 당국에 적대 행위에 나서지 말고 돈바스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며 "그것은 그들의 결정이며, 실제 상황을 인정하는 날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 16일 밤 12시까지(모스크바 시간)
- 이리나 베레쉬축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17일 키예프(키이우)와 제 2의 도시 하리코프(하르키우)로 인도주의적 구호품 운송을 위한 통로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또 마리우폴의 민간인 대피를 위한 '안전 통로' 확보를 위한 휴전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마리우폴 주민 6,426명이 오늘(16일) 자포로제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의 여러 도시가 인도주의적 재앙에 처했다"며 "러시아군은 키예프 등 여러 도시에서 인도주의적 구조를 위한 휴전은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또 마리우폴 등에서 하루동안 3만1,000명 이상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특수 군사 작전이 시작된 이래 모두 27만1,231명이 위험지역에서 벗어났으며, 이중 5만8,422명이 어린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리코프에서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러시아군/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인스타그램
- 슬로바키아 당국은 소련제 S-300 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미 CNN이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S-300을 우크라이나로 이전할 경우, 슬로바키아 자체 방어력에 문제가 생겨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슬로바키아는 S-300 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이나로 이전하는 대신 패트리어트 대공미사일 배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평가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화상을 통한 미 의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에 인도적인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해 줄 것과 S-300 등 방공 시스템을 이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또 푸틴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전범"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그러한 발언은 용납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상공의 비행 금지 구역 설정'에 대해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이며, 미국은 그러한 조치를 취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요구한 '인도적 비행 금지 구역'도 '군사적인 비행 금지 구역' 도입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주에 800개의 (스팅어) 휴대용 대공방어 미사일과 9,000개의 대전차 미사일, 드론, 7,000개의 소형 무기 등 10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미 NBC 방송은 러시아군 탱크를 파괴할 수 있는 초현대식 '스위치 블레이드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노획한 각종 무기들/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인스타그램
- 키예프를 방문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 폴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안'을 차기 나토 정상회의에서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배치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측이 설치한 기뢰의 폭발 위험 때문에 외국 선박 70척의 입항이 봉쇄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해군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내수와 영해에서 기뢰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 주요 엘리트들의 자산을 찾아 압수하고, 법적으로 기소하기 위한 '다자간 작업 그룹'이 공식 출범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이 작업그룹은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작업그룹에는 미국과 EU집행위원회, 호주,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영국 등이 참여하고 있다.
- 러시아 국방부는 마리우폴의 드라마 극장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측은 "마리우폴의 지상 건물을 목표로 한 공습 자체가 없었다"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세력 '아조프 부대'의 도발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마리우폴을 탈출한 피난민들로부터 극장 건물에는 주민들이 '아조프 부대'에 의해 '인간 방패'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극장 건물을 공격 목표를 간주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 콘스탄티노프 크림 의회 의장은 러시아 관광객들이 곧 우크라이나 자포로제와 하리코프를 통해 크림으로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니콜라이 파트루쇼프 러시아 안보회의 서기는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공 시스템 공급에 관한 비밀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국방장관도 네덜란드와 다른 나토 회원국들이 계속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보건기구(WHO)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 V'에 대한 평가 작업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당초 WHO는 3월 중에 러시아에서 스푸트니크V 제조 시설에 대한 현장 실사를 실시할 계획이었다.
세계보건기구 본부/사진출처:위키피디아
-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은 러시아의 군사작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어린이 48명을 포함해 691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14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돈바스에서는 173명이 사망하고 578명이 부상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 국가 지도자들에게 키예프 방문을 초청했다.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키예프 방문이) 위험할 수 있지만, 우리와 함께라면 누구나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폴란드와 체코, 슬로베니아 총리가 기차를 타고 키예프로 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