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의 묵계
-성산포
유종인
아무리 둘러봐도 청(靑) 파도 에워싸는 유채꽃밭이다
조랑말에 귓속말하는 유채꽃들 귀이개로 파내느라
근동 파도들 사팔뜨기처럼 눈길이 모이는 화투판이다
고개 들면 아직도 설문대할망이 엉덩이로 지긋이 누르고 앉은 성산 봉우리,
언뜻 언뜻 초록의 분화구 안에 사슴의 관(冠)이 높고
그 사슴 잔등에 오뉴월에도 흰 잔설이 푸르러
땀 들이는 동안 수수억 광년 햇살이 발등에 솜다리꽃 그리메로 흔들린다
몬스테라처럼
늘어진 망사모자의 여인은 성산에 들어 몸이 달랐다
멀구슬나무 넋을 만 평의 하늘 바다로 맘에 들였으니
엊그제까진 장삼이사라도
오늘은 거진거진 세간에 껴둘만한 신선의 방계 직속들,
대구 장모의 발뒤꿈치 낮꿈의 각질을 밀어볼까
기념품점 부석을 들면
기분 호탕한 날엔 돌이 공중에 뜬다
좋이 성산을 바라 바람 속에 캉캉춤을 추다 내려앉는 곳
오지랖이 싱싱한 다시마 미역내음 바람이
성산포 성당에 들러 사방 성호를 긋듯
성산포 절간에 들어 시방 천 배를 모시듯
아닌 곳이 없는 다솜들 아닌 데가 없는 자비들
비바람치는 캄캄하니 궂은 날
성산 같은 한 사람을 들여 그대 찬란이다
이마가 새파라니 영원으로부터 미리내를 예 끌어다
한 사람으로 온천지 사람을 여는 끌림의
한낮에도 은하(銀河)ㅅ물에 목젖이 푸르게 젖는 찬란의 묵계 속이다
---애지 겨울호에서
제주도의 천지창조주는 설문대 할망이며, 이 거인 할머니는 몸이 한라산보다 더크고 제아무리 깊은 바다라도 설문대 할망의 무릎에 닿는 정도라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이자 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일 정도인 제주도는 산과 바다와 섬과 바위들이 모두가 다같이 설문대 할망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유종인 시인의 [찬란한 묵계]는 ‘성산포의 찬가’이며, 성산포의 아름다운 풍광을 역사 철학적으로 노래한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청靑 파도 에워싸는 유채꽃밭”뿐이고, “조랑말에 귓속말하는 유채꽃들 귀이개로 파내느라/ 근동 파도들이 사팔뜨기처럼 눈길이 모이는 화투판”처럼 보인다. “아직도 설문대 할망이 엉덩이로” 성산 봉우리를 지긋이 누르고 있고, “언뜻 언뜻 초록의 분화구 안에 사슴의 관冠이” 높다. 그 사슴 잔등에 오뉴월에도 흰 잔설이 묻어 있고, “수수억 광년 햇살이 발등에 솜다리꽃 그리메로 흔들린다.” 천남성과 상록 다년초인 ‘몬스테라’처럼 “늘어진 망사모자의 여인은 성산에 들어 몸이” 달아올랐으니, 그것은 “멀구슬나무의 넋을 만 평의 하늘 바다로 맘에 들였”기 때문이다. 멀구슬나무는 멀구슬나무과의 활엽교목이며, 꽃과 열매가 아름답기 때문에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고 하지만, 성산에 든 망사모자의 여인에게는 그 나무에게서 설문대 할망과도 같은 회임(다산)의 징후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모든 축제는 대동축제이듯이, 유종인 시인의 [찬란한 묵계]의 성산포는 남녀노소의 차별도 없는 곳이고, “성산포 성당에 들러 사방 성호를 긋듯/ 성산포 절간에 들어 시방 천 배를 모시듯” 수많은 민족과 그 어떤 종교적 차별도 없는 곳이다. 엊그제까지도 이 세상의 장삼이사였던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두가 다같이 영생불사하는 신선의 자손들이 되고, 대구 장모의 발뒤꿈치의 각질을 밀어도 어느 누구 하나 흉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기념품 가게의 부석들마저도 더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공중에 떠 있고,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은 성산을 바라보며 캉캉춤을 추다 내려 앉는다. “오지랖이 싱싱한 다시마와 미역내음 바람이/ 성산포 성당에 들러 사방 성호를 긋듯/ 성산포 절간에 들어 시방 천 배를 모시듯” 성산포의 ‘찬란한 묵계’에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이곳에도 애틋한 사람뿐인 다솜들이 살고 있고, 저곳에도 애틋한 사랑뿐인 다솜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도 더없이 너그럽고 인자한 자비들이 살고 있고, 저곳에도 더없이 너그럽고 인자한 자비들이 살고 있다. 이 애틋한 사랑뿐인 다솜들과 더없이 너그럽고 인자한 자비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비바람치는 캄캄하니 궂은 날” “성산 같은 한 사람을 끌어들여” 그대 [찬란한 묵계]를 완성해 낸다. “이마가 새파라니 영원으로부터 미리내를 예 끌어다/ 한 사람으로 온천지 사람을 여는 끌림의/ 한낮에도 은하銀河ㅅ물에 목젖이 푸르게 젖는 찬란의 묵계 속이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미리내는 남북으로 길게 퍼져있는 별무리이며, 은하수의 제주도의 말이라고 한다. 미리내는 성지이며, 성스러움과 찬란함이 만장일치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유종인 시인의 [찬란한 묵계] 속의 성산포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