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차밭골 동인지 시의 현상학적 해석학적 연구
B. 부산펜문학 시(2016, 2018)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부산펜문학에 발표된 차시는 지역 동인의 친목적 창작을 넘어, 부산 문단 전체가 공유하는 문학 자산으로 차 문화를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차시는 더 이상 특정 소모임의 전유물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역사 항구성 국제성을 담아내는 상징 언어로 확장되었다. 특히 국제펜이 지향하는 자유 평화 연대의 문학정신과 차 문화의 절제 대화 화합의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차시는 새로운 공공성을 획득하게 된다. 아래 네 명의 시인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차를 마시며 / 명상하는 시간 동안 / 차향에서 평화로운 / 어머니의 향기가 되살아나고 / 차향 속에 어우러진 / 차꽃향과 어머니와 내가 / ‘숨보기 명상’ 안에서 / 한몸이 된다
- 양은순 「차와 힐링」
양은순 시인의 「차와 힐링」은 차를 마시는 일상의 행위를 명상과 치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서정시이다. 시의 첫머리 “차를 마시며 / 명상하는 시간 동안”은 단순한 음용 행위가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행의 시간임을 알린다. 이어 “차향에서 평화로운 / 어머니의 향기가 되살아나고”라는 구절은 차향을 통해 잊고 있던 모성의 기억이 소환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차향은 단순한 후각적 감각을 넘어, 화자에게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정서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어머니의 향기를 ‘평화로운’이라 수식한 점은, 차가 지닌 진정 효과와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짐을 보여 준다. 짧은 시이지만 감각과 기억, 정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차향 속에 어우러진 / 차꽃향과 어머니와 내가 / ‘숨보기 명상’ 안에서 / 한몸이 된다”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차꽃향은 자연, 어머니는 사랑과 근원, ‘나’는 현재의 존재를 상징하며, 이 셋이 명상 속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분열된 자아가 치유되고 삶의 본질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특히 ‘숨보기 명상’이라는 표현은 호흡에 집중하며 현재에 머무는 수행법을 떠올리게 하여 현대인의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제시한다. 이 시는 언어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차 문화와 명상, 가족애를 결합해 깊은 정신적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일상의 작은 행위 속에서 치유와 합일의 경험을 발견하게 하는 생활 명상시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
베푼 일은 너무나 적고 / 탐낸 일은 너무나 많네 //
웃는 일은 너무나 적고 / 성낸 일은 너무나 많네 //
지혜로운 일은 너무나 적고 / 어리석은 일은 너무나 많네
- 김월강 「반성」
김월강 시인의 「반성」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인간 존재의 부족함과 허물을 담담하게 성찰한 자성의 시이다. 첫 구절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는 회한과 질문의 형식으로 시작되어 작품 전체의 정조를 규정한다. 화자는 타인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물음을 던지며, 삶의 궤적을 스스로 점검한다. 이어 “베푼 일은 너무나 적고 / 탐낸 일은 너무나 많네”라는 대비는 인간이 지닌 이기심과 욕망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시인은 화려한 비유나 장식을 쓰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삶의 본질적 문제를 건드린다. 이러한 직설성은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 또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웃는 일은 너무나 적고 / 성낸 일은 너무나 많네 / 지혜로운 일은 너무나 적고 / 어리석은 일은 너무나 많네”는 반복과 대조를 통해 반성의 깊이를 더한다. ‘적고’와 ‘많네’의 반복은 후회의 리듬을 형성하며, 동시에 삶의 불균형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웃음보다 분노가 많았고, 지혜보다 어리석음이 많았다는 고백은 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인간 일반의 보편적 초상으로 확장된다. 짧은 분량 속에서도 윤리적 성찰과 인생의 교훈을 응축한 점이 이 시의 미덕이다. 「반성」은 나이 들어 비로소 깨닫는 삶의 진실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독자에게 겸허함과 자기 성찰의 가치를 일깨우는 생활 철학시라 하겠다.
수레바퀴가 도는 위에 마차가 / 안에 있는 사람은 서로를 보는 사람으로 / 되어 있지 않은 옆의 타인이 / 풍경은 보이지도 않는 속도지만 자연들로 쁘려져 / 숨을 주는 것은 없고 / 그것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니까 / 속도와 보이는 것이 보여지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것은 / 그것을 높이 하니 그런 것이다 / 그것이 낮아지려 한다 / 바로 지나가려 하는 ‘풍경’이다
- 김정헌 「풍경」
김정헌 시인의 「풍경」은 익숙한 자연 경관을 노래하는 전통적 서정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 문명의 속도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실험적으로 탐구한 시이다. 작품의 첫머리 “수레바퀴가 도는 위에 마차가 / 안에 있는 사람은 서로를 보는 사람으로”는 이동 수단 안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바깥세계를 보기보다 서로를 바라보거나, 혹은 서로에게조차 무심한 “옆의 타인”으로 존재한다. 이어 “풍경은 보이지도 않는 속도”라는 표현은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 속에서 자연과 주변 세계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정보로 전락했음을 암시한다. 난해하게 분절된 문장 구조는 오히려 현대인의 단절된 의식과 파편화된 현실 감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후반부에서는 ‘보이는 것’과 ‘보여지지 않았던 것’이 교차하며, 풍경의 의미가 단순한 외부 경치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 인식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것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니까”라는 구절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는가에 따라 세계가 구성된다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또한 “그것이 낮아지려 한다 / 바로 지나가려 하는 ‘풍경’이다”는 결말은 높고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순간순간 스쳐 가는 일상의 장면 속에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시는 문법적 파격과 사유 중심의 언어를 통해 독자에게 쉽게 읽히기보다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전통적 서정성 대신 인식론적 질문과 현대적 감각을 앞세운 실험시로서, 풍경을 보는 방식 자체를 되묻게 하는 지적 성취를 지닌다.
회색빛 도시의 흰 새벽은 / 매캐한 매연으로 시작된다 //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 수많은 인파들의 / 삶을 향한 전주곡 //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갈 곳은 / 회색빛이 꽉 막힌 아파트뿐이다 //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 산으로 떠나련다 // 청아한 파란 새벽을 맞이하고 싶어서 / 조용히 시냇물가 새들의 협주곡을 듣고 싶어서 / 나무들이 뱉어내는 숨소리와 교감하고 싶어서 // 그래서 나는 / 산으로 떠나련다
- 김정렬 「산으로」
이 시 「산으로」는 후기호 김정렬 시 세계의 특징인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자연으로의 회귀 욕망’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된 삶과 탈출의 충동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회색빛 도시의 흰 새벽은 / 매캐한 매연으로 시작된다”는 역설적 표현은 새벽이 지닌 청정성과 도시의 오염된 현실을 충돌시키며, 문명화된 공간이 더 이상 생명과 희망의 출발점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어 “수많은 인파들의 / 삶을 향한 전주곡”이라는 구절은 도시의 일상이 음악적 비유로 전환되지만, 그 실상은 생명력 있는 선율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노동의 리듬임을 암시한다.
“회색빛이 꽉 막힌 아파트”는 도시 생활의 폐쇄성과 정신적 고립을 상징하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산으로 떠나련다”라는 반복적 결의가 제시된다. “청아한 파란 새벽”, “시냇물가 새들의 협주곡”, “나무들이 뱉어내는 숨소리” 등의 자연 이미지는 도시의 매연과 대비되는 치유적 공간으로 기능하며, 인간과 자연의 교감 욕망을 구체화한다. 마지막의 반복된 “그래서 나는 / 산으로 떠나련다”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전환을 선언하는 문장으로,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본래의 감각과 생명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강조한다. 전반적으로 이 시는 도시 비판과 자연 회귀의 이분법적 구조를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탈출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다소 선언적 어조가 강하지만 그만큼 정서의 진정성과 메시지의 명료성이 두드러지는 생태적 서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