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7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글 옮긴이 : 므두셀라 바이블 연구소 원장 박 한 서
제목 : 불감위선 (不敢爲先)이란 말을 아시나요?
어느 철학자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1)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 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이들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부족함’에 있습니다.
옛날 주(周)의 제후국인 노(魯)나라의 <환공>은
의기(欹器)라는 그릇을 늘 가까이 두고
자신을 경계 하였다고 합니다.
<공자>께서도 이 그릇을 의자 오른쪽에 두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하여 좌우명의 유래가
된 그릇 입니다.
이 그릇은 텅 비면 기울어지고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중간 정도 채우면 반듯해 지는 그릇입니다.
공자께서 이 의기가 의미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풀었습니다.
"총명하고 예지가 뛰어 나도 스스로 어리석다
여기며 살아가고 공적이 온 세상을 다 덮어도
사양으로서 이를 지키고...
용맹함이 세상을 뒤 흔 들어도,
항상 겁을 내며 조심하고
부유함이 천하에 가득해도
겸손으로서 이를 지켜라
이 의기는 한마디로 가득 채우지 말고
반 쯤 비워 두라는 메시지, 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직장인의 조건도
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재산이 많아서 외모가 출중해서 학식이 높아서
힘이 세어서 말을 잘해서 이러한 조건들을
가득 채웠다고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득차면 자만해 지고 자만하면
게을러지고 부패해 집니다.
비운다는 것은 바로 부족함을 아는 것이요,
부족함을 아는 것은 겸손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때 혈기방자(?) 하여 자신감 넘치게 아는 체,
있는 체, 잘난 체 한 적은 없었던가를 살펴봅니다.
돌이켜 반성해 보면 얼마나 내가
못 났는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 이었습니다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성훈에 “아는 것은 겸손함만 못하고
겸손한 것은 사랑함 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내가 아는 게 많다고 큰 소리
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또 성훈에
첫 번째가 ‘사랑’이요
두 번째가 ‘겸손’이며
세 번째가 감히 나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의
‘<불감위선>’ 이라 하였습니다.
인격의 최고 경지는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
겸손, 그리고 <불감위선>이라 여겨집니다.
<불감위선>이 되어야 겸손의 단계에 이르고,
겸손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만의 가르침 이었습니다.
겸손 없는 자부심은 자만이 됩니다.
겸손 없는 용기는 무모함이 됩니다.
겸손 없는 지식은 아집이 됩니다.
겸손 없는 승리는 오만이 되고 맙니다.
겸손 없는 비지니스는 고객을 무시 하게 됩니다.
겸손 이라는 비움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데,
자만, 무모, 아집, 무시, 오만, 으로 가득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더 담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도전과 경쟁의 원천은
바로 ‘겸손’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일류를 지키기 위해서,
일류에서 초일류로 가기 위해서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물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고 빈곳은 채워 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뜻 쓰기를 물과 같이 하면
말없는 가운데 공덕이 있습니다.
물과 같은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요,
겸손이며, <불감위선>이 아닐까요?
<오늘의 묵상>
<베드로 전서>5장 5절-7절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아멘>
<오늘의 기도>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주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사랑과 자비하신 주여!
오늘도 살아있어서 스스로를 생명이라
자랑하는 나의 일부를 내려놓습니다.
힘이 있기에 저항도 할 수 있고
욕을 하는 방종도 부릴 수 있지만...
나의 삶을 사랑하기에 그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을 향한 기도에 깊은 한 숨 깃들여 봅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지금의 시간,
진정으로 내가 사는 것이 무엇인가?.
비대하게 살찌워진 나의 안락인가?,
가득 채워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는 여유의 부재인가?.
모든 것을 편리하게 만들었던 물질의 축복인가?.
가진 것을 지키려 포기해야 했던 자유인가?.
사랑과 자비하신 주여!
나로 주님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생명을
간구하는 지혜를 허락 하옵소서.
내가 나를 살려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살려서 나도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삶,
내가 나를 만족시켜서 내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만족시켜서 나도 같이 만족할 수 있는 삶,
내가 나를 배불려서 내가 배부른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배불려서 나도 배부를 수 있는 삶,
사랑과 자비하신 주여!
나를 죽여 너를 살리고 너를 살려
나를 살리는 기쁨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나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을 포기하셨던 주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인생의 달콤한 기쁨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주님을 생각하며
죽었던 내가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여 봅니다.
지친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잊혀진 가치들을 다시금 살려낼 수 있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다시금 나를 살리는 십자가의 영광이오니...
나로 그 십자가 따라 지며 주님의 뜻이 깃든
사랑과 용서를 세상에 베풀고 하루하루 나를
죽여갈 수 있는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죽기 전에 죽어 죽을 때 죽지 않으셨던
부활의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한서 원장 건강 치유 비방 공개>
제목 : 의술보다 자연치유가 좋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면 송진이 나와서 상처를 덮고
외부에서 오는 세균 침입을 차단합니다.
개는 병이 들면 밥을 먹지 않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몸을 구부리고 휴식을 취하면서 차츰 풀잎도 씹고,
가볍게 걸으면서 건강을 회복합니다.
사람도 뼈가 부러지면 의사를 찾는데 의사의 역할은
뼈를 붙여 주는 것이 아니라 맞춰주는 것입니다.
뼈를 가지런히 맞춰놓고 움직이지 않게
깁스를 한 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습니다.
병이 나면 열이 오르는데 이것은 병을 회복하고자 하는
체내 치유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스스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자연치유력이 있습니다.
자연 치유력은 혈액순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다만 인체의 조직이나 기관 또는 질병 원인이나
증상의 변화에 따라 편의상 병명을 다르게
부르는 것뿐입니다.
완전한 건강은 완전한 혈액순환에서 옵니다.
다시 말하면, 암, 당뇨,비만 등 어떤 병이라도
피를 깨끗하게 하고 피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면
병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를 더럽게 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쁜 음식입니다.
둘째는), 나쁜 공기이며,
셋째는), 나쁜 생각입니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넉넉하게 먹고
섬유질이 많은 통곡 류 음식을 먹는 것은
피를 깨끗하게 하는데 필수적입니다.
반면에 육류나 기름에 튀긴 음식은
2시간 안에 피를 우유 빛으로 변하게 합니다.
햇빛을 받으며 공기가 깨끗한 숲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피가 맑아져서 피로가 가시고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예쁜 꽃을 보고 은혜 받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의 즐거움이 곧 양약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고 성경 <잠언>17장 22절)
이런 점에서 볼 때 병을 고치면서 사람을 죽이는 의술보다는
병도 고치고 사람도 고치는 자연치유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자연치유 제 중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공기와 햇볕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람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것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증류수와 같은 깨끗한 물을 충분히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킵니다.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산길을 거닐면
신선함과 상쾌함을 곧 느끼는데,
이는 피가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연 환경에 산다면
그 순간부터 병이 치료되고 건강이 회복됩니다.
자연에 순응하면 영생복락을 누리고,
자연에 역행하면 병들어 죽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피가 맑아져 건강이 보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연적인 환경과
음식과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하는 자들은
인간의 본래모습을 회복할 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것을 만드신
창조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자료 제공 :
<므두셀라>건강 바이블 연구소.
원장 : 박 한 서
전화 : 010-4464-0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