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브라이언, 오현민
바위가 허락하지 않은 날
어쩌다 보니 세번째 비너스길이 되었다.
이번엔 끝까지 가보려 나름의 결의를 다졌다.
아침에 날씨도 선선해서 좋았다. 브라이언이 어제도 아침엔 선선했다가 낮에는 더웠다고 해서 더워지기 전에 빨리 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4피치 까지는 해봤기에 브라이언은 1,2,3 피치를 선등 하고 나는 4,5,6, 피치를 선등 하기로 했다.
빠르진 않았지만 무난하게 2피치 까지 끝내고 확보점에 있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덥지않고 좋았다.
브라이언이 출발하기 전 3피치 방향을 물어봤다.
전에 선등으로 갔을때 위에 턱부분에서 빌레이어가 안 보였던 것 같은 기억이 있어서 오른쪽인것 같다고 했다. 허나 잘 기억이 안나서 정확하진 않다고 했다.
그렇게 턱을 넘고 계속 가다가 텐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출발을 해서 줄을 줬는데 계속 텐션이 걸려 있다고 했다. 자일이 크랙에 낀 것이다. 여기서 오늘 정상가는 것에 대한 마음은 조금 내려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여서 고민을 해야 했다.
동시에 '근데 왜 자일이 끼지? 그럴 만한 포인트가 없는 곳인데..'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까 머리를 굴리다가 브라이언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기에 내가 등강해서 올라가기로 했다.
크랙에 끼어있는 자일도 빼면서.
그러기 위해 일단 브라이언이 중간에 캠과 볼트를 이용해 앵커포인트를 만들고 거기에 확보한 뒤 자일을 픽스 시켰다. 나는 남아있는 자일들을 어택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티블럭을 하네스에 연결해서 등강모드로 만든 뒤 등반을 했다.
줄을 계속 먹이면서 등반하는게 힘들기도 하고 무서웠다.올라간만큼 줄은 늘어뜨려졌지만 정리할 만큼 몸도 정신도 여유가 없었다. 괜찮겠지하고 계속 올라갔다.
턱까지 올라가니 길을 잘 못 갔다는걸 알았다. 두개의 크랙에서 왼쪽길로 가야하는데 오른쪽으로 간 것이다. 나도 긴가민가 했는데 올라오고나서야 기억이 났다. 오른쪽으로 간 상태에서 텐션을 받으니 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고 다시 올라가다 뭔가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났다. 아.. 늘어뜨린 줄이 크랙에 끼어버린 것이다.
하강모드로 바꾸고 내려가서 줄을 빼고 내려온 만큼 다시 등강해서 올라와야 한다는걸 알았지만 상상만으로 지치는 느낌이여서 일단 올라가기로 했다.
무작정 올라가려다 아무리 생각해도 끼어있는 자일을 빼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것 같다고 생각을 할때 2피치치 확보점에 근접하게 접근하고 있는 대학산악부 팀을 발견했다. 염치 없지만 대학산악부팀에게 부탁할 생각으로 앵커포인트 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대학산악부 선등자분이 끼어있는 포인트에 거의 다다랐을때 쯤 부탁을 했다. 흔쾌히 빼주셨고 '이제 됐다'란 생각에 안도 했다.
자일을 정리하고 마저 올라가려 하는데 자일을 빼주셨던 선등자분이 더 이상 못 올라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2,3피치를 한번에 가고 있는 상황인데 1피치에서 자일을 늘어뜨려 놓고 빌레이를 보다가 자일이 크랙에 끼어서 선등자에게 줄을 더 못 주고 있는 상황이였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부는 상황에서 무섭기도 하고 전의도 상실한 상태여서 도와주기 위해 하강을 생각했다. 사실 괜찮은 빌미로 도와주는걸 선택한걸지도 모른다.
브라이언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그러겠다고 해서 얼른 하강링이 있는 곳 까지 올라갔다. 바람이 엄청 불어서 크랙에 자일이 낄까봐 슬링을 하네스에 걸고 양 자일을 매단채 풀면서 하강했다. 그런데 한쪽 자일이 꼬여서 아예 슬링을 풀어버렸다. 오버행을 지나서 공중에 있을때 꼬인 매듭이 하강기에서 한 뼘도 안되는 곳까지 와서 제동을 했다.
쉽게 풀릴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풀려했지만 한손으로는 무리였다. 뮬매듭을 하고 싶어도 하강기와 매듭의 거리가 짧아서 할수가 없었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몸이 빙글빙글 돌고 한쪽 슬링에 매달아 놓은 자일은 이리저리 휘날렸다. 자연스럽게 입에선 'x발 x같네'란 욕이 나왔다.
끼이고 꼬이고 참 오늘은 뭘 해도 안 되는 날인건지 어이가 없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며 나를 이리저리 흔들었는데 바위가 빨리 여기서 나가라고 하는것 같았다.
손에는 펌핑이 나고 바람은 불고 조금 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일단 두줄을 고정 안 해놨기에 고정만 하면 한줄로 뮬매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브라이언보고 두 줄에 푸르직 매듭을 하라고 소리쳤다. 근데 바람소리 때문에 전달이 됐을까 의문스러워서 믿으면 안 될것 같았다.
그래서 한손은 제동줄을 잡고 한 손으로 하강기 위쪽에 클램 하이스트 매듭을 겨우 했다. 하는 동안 제동줄을 잡고 있는 손이 펌핑이 나서 손을 바꿔가며 했다. 거기에 확보줄을 건 다음 꼬인 매듭을 풀고 무사히 2피치 확보점을 지나 1피치확보점까지 하강했다.
아는 얼굴이 있어서 반가웠다. 마지막 하강을 하며 자일을 빼줬다. 내려온 후 브라이언과 나는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이기도 했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었다.
대학산악부팀도 곧 바로 하강하려는 듯 했다.
다 내려올 때 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느긋하게 장비 정리를 했다. 끝까지 못 갔지만 좋은 경험을 한것 같고 서로 도움을 주며 클라이머의 의리를 느낄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했다.
요즘에 참 이런 상황을 많이 겪는데 이런 경험들이 하나 둘 쌓여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물론 예방이 최선책이겠지만..
첫댓글 바람이 워낙 심했네.
비너스 길은 조만간 현민이가 전문가 되겠다.
힘든 상환을 함께 겪은 2인조, 끈끈한 동지.
정교한? 후기 고마웅~~~
현민 브라이언 큰산에서 아주큰 경험 했구나 등반은 안전이 최우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