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시간 (외 2편)
김휼
여섯 살 심장 위에 올려진
검은 돌
식물로 분류된 이후
아이는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힘껏 내달린 시간이 멈출 때, 그 길 끝에서 안개는 피어올랐다
여섯 살의 손과 스물세 살의 얼굴,
한 몸으로 죽은 듯이 누워 귀를 키웠다
출구 없는 침묵
희번덕 눈을 뒤집어 고요를 좇는 아이를 놓칠세라 어미는 잎사귀 같은 손을 붙잡고 시들어간다
병실 창밖의 구름을 이불로 삼고 잠든 오후
어미의 눈물이
식물을 키우고 있다
에덴의 기울기
쫓기듯 떠나간 동쪽이거나
붉은 원죄를 간직한 당신 능선에 어둠이 내립니다
손끝에서 겉옷이 흘러내려요
알몸은 유혹적이에요 날로 먹고 싶은 경향이 있죠
칼과 사과, 승자와 패자는 목 가까이로부터 결정됩니다
드리거나 받는 형식을
둥글기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속으로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과를
사과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밤입니다
에덴은 기울기가 심하고 굴러떨어진 뒤 특히 빛이 납니다
죄짓기 좋은 밤을
무화과 잎사귀를 떼어 가리고 가뿐히 걸어갑니다
눈먼 자의 달콤함과 새콤함으로
과실은 무덤으로 난 비좁은 길을 가고 있으나
너무도 붉어서 놓아 버린
반쪽, 당신의 사과
너의 밤으로 갈까
이 골목의 밤은 미완의 사랑 같다
어슬렁거리는 그리움과 내일을 맞대 보는 청춘들의 객기, 접시만 한 꽃을 피워 들고 저녁을 달래는 담장, 그 아래 코를 박은 강아지의 지린내까지
어둠에 물드는 것들을 간섭하느라
거북목이 되는 중이지만 난 괜찮다
홀로 선 사람은 다정을 기둥으로 대신하는 법이라서
담보 없는 빈 방과 함석집 고양이의 울음까지 시시콜콜 알려 주는 이 골목의 살가움이 좋다
붙박이로 있다 보니 사고가 경직될까 봐
나도 가끔 어둠에 잠겨 사유에 들곤 한다
진리는 항상 굽은 곳에 있다
비탈을 살아 내는 이 기울기는 너의 밤으로 가기 좋은 각도
퇴행을 앓는 발목에 녹물이 들겠지만
굽어살피는 신의 자세를 유지한다
깊숙이 떠나간 너를 찾을 때까지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 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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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휼 / 전남 장성 출생.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너의 밤으로 갈까』. 사진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